11.2.20 / 264
난 동심이 떠난 자리가 무섭다.
손자 두 놈 다섯, 일곱 살배기
마루를 뛰며 노는 아이들
벽에 줄긋고 다니는 작은 놈
거실 책꽂이서 방금 빠져나온 책들
방바닥에 널린 이불
넘어진 쓰레기통
공부한답시고 펼쳐진 카드들
악쓰며 귀를 울리는 비명소리
관리소로부터 올라오는
민원전화 눈 붉은 소리
전쟁터에 사는 삶의 현장이다.
일요일 그들이 비운 휴일
창밖 베란다에선 춘란이 노란 혀 내밀고
소철 나란한 잎이 조용히 기도를 한다.
건조대에 다복히 걸린 빨래도
아이들 따라 놀러가고
할미 버선 한짝만 거꾸로 매달린 채
햇빛의 속삭임에 지겹게 하품한다.
고요한 오후
산사에 법복입고 산 버릇이면 당연한 평환데
그들 패악쟁이 무법자
우리 안의 곰 새끼들이 떠난 빈 자리
따라 오는 적막
벽에서 화장실에서
까르르 까르르 박제된 음
당장 뛰어나올 듯
웃음이 그속에 있음을 깨닫는다.
자유 속에 속박된 버릇
그게 해방된 자유를 구속한다.
난 가족의 빈 자리가 두렵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