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3.5.27 부부 석가탄신일 부모님 산소 성묘하고 화성사 다녀오다./264 코스 : 마산-진성 질매재 성묘-진주특별시-화성사-진성동생집-진성철물-반성누이집-마산 특색 : 생부 제삿날이었던 석탄절날 부모님(양부모, 생부모) 산소 성묘 석가탄신일 화성사 등달기 점심 먹고 동생집 방문 동생 질병문안, 숙모 만남 생질 진성철물점 방문 건강조심하라고 하고 차음 누이집 방문 각종 풋나물 얻어옴(상추, 열무, 두릅, 죽순 등) |
1
오늘은 부처님 오신 날
산사 암자 절터 마다 환영 꽃등을 단다.
시내 길거리에도 줄등이 달렸다.
나는 이날이 가장 아픈 날이 된다.
나의 어린 이력은 고아 아닌 고아였다.
나의 양부모님은
아버지는 내가 태어나기전 돌아가신 분으로
한학자의 장남이지만 문물을 빨리 깨우치라고
새로 생긴 지수공립보통학교에 삼십리 먼길
1회로 입학하여 한국 3재벌들과 동문수학하였고
할아버지는 굼실 한학자와 서로 사돈 정하고
진양정씨 어머니와 보통학교 학생 아버지와 혼인하여
무남독녀 누이하나 낳고 일본으로 취업나섰다가
태평양전쟁중 3년만에 1942년 일본서 산재사망하니
양아버지 나이 겨우 향년 23세이셨고
양어머니 나이 26세 생과부 되셨다.
그후 날 양자 삼아 오로지 정성으로 키우셨다.
젖을 1년만에 떼고부터 21살까지
정성으로 어릴적 중병 간호하여 살려낸
고맙게 길러주고 집안 종부로 봉제사 호주노릇
아들 군입대전 영광도 보지 못하고
몹쓸 중병으로 병원 한번 가보지 못하고
향년 59세로 눈을 감으신 기른정 어머니시다.
나의 생부모님은
아버지는 건장한 청년으로 동네 장사로 소문났었고
할아버지와 동류 훈장이셨던 단목골 단암처사와 사돈맺고
부모 권행으로 진양하씨와 혼인하여 삼남매 낳았으나
아버지 6.25 동란중 방어산 전투에 인민군의 보국대로 끌러가
군수보급작업에 동원되었다가
다행히 도망쳐 나왔으나
전선에 뿌린 생물학전 병원균에 감염되어
집에 눕게되니 아무도 들리지 말고 할아버지가 간호하다가
향년 25세에 청운을 접었으니 난 그때 4살 영아
어머니 27세 또 한분 청상과부가 한 집안에 생겼고
그 어머니 낭낭한 목소리로 재담선창 잘하여
동네 행사 앞소리장이로 희락을 이끌더니
향년 33세에 침적하셨으니 내 나이 12살 적이다.
그후 숙부모 아래 장성하였으나
우리 삼형제 외롭게 뭉쳐 자랐고
나만 중고대를 나와 배움을 텄지만
누나와 동생은 집안 어려워 초등학교만 졸업했고
각자 어렵게 인편으로 혼인하여 가정 이루었으니
지금까지 살아 있는 것 만 해도 감사하다.
오늘은 생아버지 제삿날이라
산소 찾아 엎드려
그 후회를 문안 드리는 성묘를 매년 해 왔다.
오늘와 보니 주변환경이 확 바꼈다.
오르는 길에 황마카페트 깔아 월아산 등산로 개척했고
예년 오면 봉분에 산유화 피고 산새 노래하더니만
오늘은 온통 고사리 무리가 덮고 방초 무성하니
저멀리 두견이 소리 슬피 내 마음 울리고
오늘따라 황망한 산가가 내 죄인 양 허망하다.
맨손으로 고사리 뽑고 손바닥 가시피 흘리며
양부모님 생부모님께 용서와 무사태평 빌었다.
2
부모님 산가를 떠나가며 쓰라림에 맘으로 운다.
나도 아내도 제법 늙었는가 보다.
진주 혁신도시를 이리저리 돌며
마지막 구도를 찾아 화성사에 드니
그 흔한 줄등불 하나 안 달렸다.
누이가 그 절에 다니니 꽃등을 달아왔다.
실제 절도 아닌 작은 암자인듯
골짜기 농가주택 암자에 누이가 건강기도해 왔다.
이제 주지와 보살도 나이가 많아 외부꾸밈도 안 한단다.
아내가 대웅전 드니 우리 이름 꽃등이 달려 있단다.
내방객에 대한 점심식사 보시받고
비빔밥과 과일 식혜 떡 갖춰 먹었다
먹는 도중 재채기로 가족 앞에서 추태보였다.
나이 드니 삼키는 작용 바란스가 자꾸 깨어진다.
돌아 나오며 감사 합장하고 등값 지불했다.
3
내 차에 누이 태우고 돌아오는 도중
아팠다는 동생 확인하러 진성으로 들어왔다.
동생집에 들러 동생 확인하니
그간 갑자기 허리통증으로 119로 실려 가서
제일병원에서 척추병 입원 고생했단다.
다행히 나아서 집에서 출입 안하고 지낸다니
눈으로 봐도 회복된 것 같아 안심했다.
우리 삼형제 모두 모였으니
이제 더 이상 크게 아프지 말고 웃으며 살자고 했다.
거기서 진성미장원 동네 사람들 만나고
숙모도 우연히 만나 보고 인사 나누었다.
무릎이 많이 나아진 모습이다.
4
오다가 다시 생질집 진성철물에 든다.
누이의 큰 아들네다.
장사가 장되는 듯 매장이 넓고 품목도 많아졌다.
생질도 가슴앓이 한 환자로
생질부가 친절하니 고맙다고 했다.
커피 한잔 마시고 나온다.
5
누이집에 도착하니 혼자사는 집
작은 강아지가 짖으며 맞는다.
술귀신 남편 초년에 잃고
홀로 살면서 4남매 장성하게 키워온 대인
요즘 흐르는 뇨기로 망가진 몸
완전 노인이 돼버린 홀로 남은 누이다.
집에 있는 것은 모두 나눠주려고
여기저기 챙겨둔 것 비닐에 싸고
밭에 나는 어린 열무 뽑고
앞집 두릅밭 어린 두릅순 가시에 찔리며 따고
온 정을 담아 찻간에 실어준다.
감사한 맘 용돈 조금 전하고 온다.
돌아오는 길 우리 삼남매 부모님 만나
살아있는 고마움 부모님 은혜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