景德祠 追享 三賢
題字 決定을 爲한 諸資料
載寧李氏大宗會
목 차
1. 高麗朝 在世之 諱小鳳 諱日祥 諱日善
三賢之題字 標記 前文 -------------- 3
2. 貞敬大夫人李氏墓碣銘 -------------- 9
3. 貞敬大夫人李氏墓碣銘(原文)-----------10
4. 故中郞將李日祥叔哀辭 -------------- 12
5. 故中郞將李日祥叔哀辭 試釋文 --------- 13
6. 代李惠薦父疏 ------------------- 15
7. 奉安告由文 --------------------- 16
8, 奉安文 Ⅰ,Ⅱ,Ⅲ ------------------ 16
9. 常享祝文 ----------------------- 18
10.柱聯, 正稱 略稱, 堂名, 門號 --------- 19
高麗朝 在世之 諱小鳳 諱日祥 諱日善 三賢之題字 標記 前文
回顧하면 1991년 辛未 五月 五日은 우리 李氏가 永遠히 잊을 수 없는 날이었다. 前日에 載寧君 位牌를 景德祠에서 奉安 儀典을 마쳤고 오늘 第一回의 享祀를 마쳤는데 李鉉正大同花樹會長은 在內在外 宗族 앞에서 인사말의 한마디 한마디가 感激에 젖어 있었다.
인사말의 槪要는 첫째 境內에 景德祠와 講堂 등 附屬建物을 建設하여 境內를 聖域化하여 士林奉祀를 圖謀하였으나 資金의 造成難으로 景德祠의 完工에도 隘路가 많았다.
둘째 景德祠의 享祀에 필요한 備品은 다 具備되었고 셋째 祠의 正常的인 管理運營費는 備蓄되어 있으나 네째 天災地變으로 因했을 때는 募金이 필요하며 다섯째 本基金은 他에 轉用하지말며 一時 立替도 아니하기 바란다했으며 오늘까지 五年동안 全族의 協助와 勞苦에 感謝한다하였다. 傾聽하는 諸族諸宗은 祠의 完功이 마치 自己만의 힘으로 이루어진양 自祝의 기쁨을 안고 돌아들갔다.
그로부터 오늘은 이미 二十五年째이다. 그 동안에 載寧李氏大同花樹會가 發展的으로 載寧李氏大宗會로 改編되고 會에서 主唱하여 景德祠의 聖域化事業이 進行되어 數年前에는 大整地를 爲한 築造事業이 完了되고 今 二千十五年 五月 五日에는 講堂 上梁式을 盛了하였다. 이어 三建物의 造成이 進行中에 있으니 世人이 曰 李氏善事 事業으로 有事以來의 大工事라하니 其實 豫算全額이 十五億원이라 들었다.
全般의 工事가 完了되면 우리가 우리 李氏의 中祖라고 傳言되어오던 諱小鳳祖와 下代인 諱日祥 日善을 合하여 三位의 奉安 行事도 論定되어 事業의 節次와 基金 獻誠方案 등도 論議되었다한다.
小鳳祖는 譜牒에 「補祚功臣上將軍尙恭愍王女」라했고, 또 一譜는 「上將軍尙恭愍王女討逆淸亂特進金紫光祿大夫載寧府院君諡文益公」이라했으며, 諱日祥祖는 보기에「中郞將」또 一譜에는 「號草堂追封純誠補祚功臣門下評理本朝戶曹判書諡文獻公」으로되어있고, 諱日善祖는 「司宰令贈宗簿寺正」또 一譜에는 「司宰令」으로 되어 있다. 까닭에 奉安文이나 題牌의 標題에 대하여 諸彦과 多角的으로 論議도 했다.
생각의 餘에 初譜의 序文을 奉審하였더니 첫째 鼻祖以後부터 月城과는 分別되고, 둘째 子孫은 中外에 散處하면서 衰微하기도 하고, 셋째 兵火가 거듭되니 族譜는 不傳하였고, 넷째 月城 以後 載寧 以前에 代數가 缺失되고, 다섯째 移封 以後도 世系와 諱爵의 異同함이 있으니 吾宗의 一大欠事라 序述되어 있다. 그리고 序文의 마무리에 여섯째 後日 好子孫이 있어 史乘을 傳考하여 내가 보지 못한 바의 完譜를 이룩할지야 누가 알겠는가? 일곱째 이 族譜는 一人之手成이 아니고 累世에 걸쳐 編輯한 바라 可傳할만하다 하였으니 後世의 諸孫이 指向할 바까지 提示하셨으니 感慨가 無量하지 않는가?
前述한 바를 再三 講究하고 深思해 보면 時期에서 또 時事에서 現世之人이 推想하기 어려움이 있고 그러나 初譜序에서 序한 바 諱爵의 異同도 있을 수 있으며 또 譜의 記錄에 欠事도 있으려니와 所錄에 있어 其非一人之手成이 아니리라 생각할 때 어렵고 주저됨이야 實로 감당하기 어렵다 할 수 밖에 없다.
여기에 參考로 添記하는 바 諱日祥之子 諱惠之外孫인 領議政姜文景公之母妣載寧李氏墓碑文이 있어 諱爵도 參考했으며 諱日善之子諱午之宗派譜之註書에 錄之曰 「以全羅道按廉使始卜居於密陽」云했으며 女婿河之溟家之譜에 錄之曰 「全羅道按廉使李日善女」云이라. 또 ‘溪隱(李申)先生實記’도 도움을 받았다.
前記 貞敬大夫人載寧李氏墓碣銘中 家系에 「曾王父諱小鳳追奉純誠補祚功臣匡靖大夫門下評理上護軍」「父諱日祥左右衛保勝中郞將」으로 기록되어있다.
雙梅堂 篋藏文集은 李詹 撰으로 1345~1405년의 人物로 諡文安公 藝文館 大提學이었는데 麗末에 召溪公諱日善之長子溪隱諱申과 同章의 疏에 連名하였으니 高麗史에 載錄되었고 溪隱先生實記에도 分明하고 雙梅堂文集에 「故中郞將李日祥叔哀辭」가 있고 또 「代李惠薦父疏」가 있어 좋은 傍證이 되며 哀辭中에「叔」「叔父」의 表記를 보아 戚誼로서도 가까움을 말하고 있으며 哀辭中에 「叔少而孤」「念母之寡且老」之語가 있어 父公 諱小鳳은 壽하시지 않았음을 알 수 있다.
前記한 바 諱日祥祖의 記錄은 貞敬大夫人墓碑文에 또 雙梅堂文集의 哀辭에도 中郞將으로 되어있을 뿐인데 金浦派譜에 門下評理라 되어있으니 窮理를 거듭하였더니 文集中에 代李惠薦父疏中에 「庶仗聖慈可伸哀懇」之句가 있어 이는「庶幾하옵건대 聖上께서는 慈愛하는 對臣之情을 可伸愛懇하소서」함이며 또 있기를 「其書狀奏聞與凡御膳進獻叔必价矣其幹足將命也」한 書句는 곧 公이 宮中에 在職했을 때 忠信을 다했음을 말하고 있다. 이를 銘念하면 先公이 匡靖大夫이니 長子公이 戰歿하였음에 追封 門下評理를 생각할 수 있다.
高麗時에는 朝鮮時에 贈職을 追封으로했음을 더러 보아왔다. 敍上에서 族譜와 「貞敬大夫人李氏墓碑銘」과 大提學雙梅堂 文集 中에서 摘出한 「故中郞將日祥叔哀辭」와「代李惠薦父疏」原文을 別添했으니 參考하려니와 따라서 三賢의 題字를 提示한다.
諱小鳳 先祖之題字 - 追封 匡靖大夫 上將軍公
諱日祥 先祖之題字 - 追封 門下評理 中郞將公
諱日善 先祖之題字 - 贈 宗簿寺正 司宰令公
註 ①貞敬大夫人李氏墓碣銘과 派譜에 追封으로되어 있고 또는 贈으로 되어 있기로 追封과 贈의 뜻이 같다하 지만 標題는 달리했음.
②匡靖大夫-高麗때 文官의 官階 從正二品 金紫光祿大 夫를 고친 명칭임
③門下評理-高麗門下部의 從二品職(出漢韓辭典)
④司宰令-令은 從三品(高麗)
⑤宗簿寺正-正은 一品(出 官職表)
前 三面에 司宰令 先祖 事蹟을 言及하였지만 史料를 얻음이 없었다. 長子公 溪隱先生 行狀에 中山아래 淸溪上에 齋舍를 짓고 朔望마다 모든 兄弟가 省墓하고 堂中에서 講睦終好 夜話하시다가 同枕하니 그 堂名을 召溪라하였는데 사람들이 일컬어 칭하기를 孝友堂이라했으니 孝하고 友했다 했음이니 堂名은 先公의 雅號가 아닌가 생각해 볼만하다. 사람들은 그러한 뜻을 모르고 孝하고 友하는 집이니 孝友堂이라 하였다.
溪隱先生은 父喪을 마치고 上京하여 李成桂一派의 彈劾에 加擔하여서 鄭文忠公이 殺害당한 날 金震陽, 李擴, 李種學, 李申(溪隱公) 등의 十三名이 流配되면서 李申은 杖流死되었으며 다음에 流配 豫定인 6명중 李詹은 諱日祥祖의 近姻이며, 姜淮伯은 日祥祖의 아들 諱 惠의 女 媤父인 因緣이 있다.
以上에 記錄하였음은 根據없음이 없다.
貞敬大夫人李氏墓碣銘
一九四一年刊 司宰令公 各派譜 凡例 所載文
中郞將日祥之子舊譜只載「天龍」今按姜叔卿所撰其先妣貞敬大夫人載寧李氏墓碣云考諱「惠」知甫州事王考諱「日祥」保勝中郞將曾王考諱「小鳳」純誠補祚功臣上將軍---庚辰(1940年)春咸安宗人秉株,秉栽,晉州宗人鉉郁,鍾浩親往姜氏墓所剔苔看審--本墓碣曾王父諱「小鳳」追封純誠補祚功臣匡靖大夫門下評理上護軍--王父諱「日祥」左右衛保勝中郞將考諱「惠」朝奉大夫知甫州事---
雙梅堂文集 李詹著(1345-1405)藝文 및 普文館大提學을 經했으며 諡文安公임. 溪隱公 諱申과 同時人으로 同章疏之人임.
①文集中에 故中郞長李日祥叔哀辭와 ②代李惠薦父疏가 있음. 原文 및 釋文을 참고바람
貞敬大夫人李氏墓碣銘(原文)
故朝散大夫知昌寧縣事晉山姜公諱友德之夫人李氏載寧人也曾王父諱小鳳追封純誠補祚功臣匡靖大夫門下評理上護軍王父諱日祥左右衛保勝中郞將考諱惠朝奉大夫知甫州事妣盈德鄭氏奉善大夫書雲副正諱公富之女夫人生於洪武二十二年己巳旣笄歸姜氏正憲大夫東北面都巡問使諱淮伯東萊君夫人鄭氏卽夫人之舅姑也初巡問爲子□配以載寧之李三韓著門而甫州具以詩禮名也故令知縣公委禽焉夫人旣入門婦道修飭宗族竟爲法式正統五年己未知縣公卒于官夫人煢煢居晉州三十餘年子文景公久在相位屢欲迎養于京夫人安鄕曲不肯往故不□□□□□□□世祖特命除次子密陽都護府使許以便道省養又命文景歲一歸覲每行□□□□夫人□下庇□受國□文景以保全之道天姿嚴懿文景每進見禮容不少懈退而語人曰敬畏之心無異少時人然後知內訓之有素皆曰有是母斯有是子及文景先卒密陽秩滿入爲軍器監正抗辭歸養□□□□□□□□□
世祖許之辛卯冬就拜咸安郡守俾終榮孝成化十年甲午四月二十六日以疾卒享年八十有六是年冬十一月初九日庚申葬于班城盤野洞從知縣公之兆云夫人生二男二女長諱孟卿卽文景也□□□□世祖策爲佐翼功臣累進至領議政府事晉山府院君以故知縣公贈議政府左議政晉山府院君夫人封貞敬大夫人次諱季卿後改叔卿卽密陽也女長適密山君朴公諱居謙貞齋先生諱宜中之孫□□□□叡宗策爲翊戴功臣令方建節于合浦次適將仕郞曺榮故水原府使由仁之子次先卒文景㛏上護軍坡坪尹公須彌之女封榮川郡夫人生一男曰允範爲慶尙道觀察使亦先卒二女長適前行甕津郡守南暿次適故僉知中樞朴壽長密陽㛏漣川縣監金哲誠之女生四男長曰元範生員次義範次禮範次信範二女長適修義副尉河龜年季幼密山君生一女適行中和郡守李會晳曺榮生一男傑二女長適行司勇尹山石次適進士李諄內外曾高孫凡二十人銘曰 婉婉碩人 擇歸于良 爲婦則順 慈訓所楊 三十餘年 旣貴且壽 鬱彼故原 紀德貞珉 生時禮門 載穆令聞 爲母則嚴 邦家具膳 榮養□□ 世親興世 □□□果 以永芳徵
成化十一年 乙未六月 日
□□□□□□□□□□□□□□□□□□□□□□□□□ 男叔卿 立石
故中郞將李日祥叔哀辭
古語有之曰。重賞之後必有死夫。今叔父公之歿也有類焉。故作哀辭以弔之。叔少而孤。長而從事於軍營。惟以敏達知名。宰相出使卽營。必以叔父應僚佐。連爲兩界參謀。每處事。必出主帥之意外。以故見重焉。驟轉右列。仍拜犀序。叔性坦蕩好詼諧。不以細故而過人。不以小能而矜己几與人處。混合無厓異。怡然使有願交之志。邑正末。念母之寡且老。以來于鄕成家以居者四三年冬。適時方急於求士。惟防禦爲在外計。佐幕合浦。鎭歷四帥。皆能令喜怒焉。其書狀秦聞與凡。御膳進獻。叔必爲价矣。以其幹足將命也。去年秋。叔出奇捕倭十餘級。府帥以其。授中郞將。今年春。大獲戎功。闔府咸授賞職。時叔以私在家。故不在賞例。常扼腕謂人曰咄得之不得皆命也。其意若欲獲敵而殺之。殺之而得之也。戰敗梁州。叔爲軍後敵數人匍匐且避。陽示槍殘。叔卽馳馬前導後徒半入。覆敵俱起追之。蒼黃窘迫。顚踣澗壑。死者六人。叔亦勢不得免。義不可辱。殺身報國。鳴呼哀哉。其以敏達也而隋敵計。斯非命邪。其受賞職也而又求欲得。斯亦非命邪。命則命矣。而其所以使之然者。重賞之爲也。吾故引古語以當之。而作哀辭。以慰叔九泉之魂云
其辭曰。義氣其崇。淑問其讐。死不亡兮。有子業文。有女珮芬。存者長兮。功靡鑴鍾。爵靡書封。謂我無良兮。斂襲旣優。祭禮旣修。余仰哀以自彊兮
-李詹先生所著 雙梅堂篋藏文集 拔取-
故中郞將李日祥叔哀辭 試釋文
古語에 일러 말하기를 重賞을 받은 후에는 必有死라 했는데 叔父公의 歿은 유사하다하겠다. 故로 哀辭를 지어 弔慰하련다. 叔은 小少之年에 父公을 잃었으며 成長하여서는 軍營에 從事하였는데 敏達로서 이름이 알려졌다.
宰相이 軍營에 出動하면 필히 叔父公이 僚佐에 應하였다. 連이어 계속하여 兩界(東界와 西界)의 參謀가 되었는데 항상 處事함에 반드시 主帥의 뜻에 벗어남이 없었기로 때문에 見重하였다. 突然 右列에 轉補되고 犀序를 拜命하였다. 叔은 性稟이 坦蕩하고 詼諧를 좋아했으며 細故를 아니함이 過人하였고 小能하지 않아 남에게 잘함 또한 자랑하지 않았다. 무릇 여러 사람들과 자리했을 때 함께 쌓이며 싫어함이 없었다. 여늬 사람들과 다름이 있었으니 고을에서 無名之人과도 사귀기를 원했다. 母妣 섬김을 寡且老함으로 任地에서 鄕으로 와서 成家하여 四三년을 居家하였는데 冬季에 접어들어 나라에서 급히 求士하였는데 在外의 防禦之計로서 合浦兵幕을 補佐하는 일이다. 四帥가 鎭歷하였는데 모두 능히 喜怒를 함께했다. 勤務宮中에 書狀을 奏聞하여 御膳을 進獻함에 叔은 최선을 다했으며 將命에 대비함도 完璧하였다. 지난해 가을에는 叔이 奇計로서 倭軍을 十餘級 逮捕하니 府帥가 上奏하여 中郞將으로 進級하였으며 금년 봄에는 크게 戎敵捕獲한 功으로 모든 府員의 賞職을 除授받았다. 이때 叔은 私事로 在家하였기로 賞例에 不在러니 항상 强調하며 曰 咄得하려해도 得하지 못하면 이 또한 運命이라 이 말의 뜻은 敵을 捕獲하여 죽여서 目的을 達成함을 말하는 것이다. 梁州에서 敗戰하였으니 叔은 軍後의 數敵이 포복하여 자취를 감추며 피하면서 그들이 가졌던 槍을 널어놓았기에 敗戰하여 도망간 것으로 誤認하고 叔이 잇달아서 말을 달려 前導하여 部隊의 반쯤 險路에 들어섰을 때 숨었던 敵이 모두 起進하니 갑작스러운 일이라 窘息하여 길섶의 내에 자빠져서 쳐박히기도 하여 죽은 자가 六人이요 叔 또한 勢不得免으로 義理上 辱될 수는 없는지라 殺身으로 報國하게 되었다. 嗚呼 哀哉라. 그는 敏達하였건만 敵計에 빠져들다니 이 일은 天命이 아니다. 그는 賞으로 받은 職이 있었는데 또다시 欲得하려함인데 이 또한 非命이라 할 것인가 運命 또한 天命인 것을...... 그 하신 바가 그렇게 되게 하였는데 重賞을 받은 바 있었기 때문이다. 내가 그러한 고로 이에 古語를 引用하여 哀辭를 지어 九泉의 魂이 되신 叔을 弔慰하련다.
그 말은 義理氣魄 崇高함이여 譽評이 眞摯했도다.
비록 九泉의 客이 되었어도 오래오래 잊지 않으리. 文章爲業 有子舍에 佩芬令愛 있음이여!
尊者가 길이길이 이어가리니. 큰 功이 없었으니 鑴鍾에 못 새겼고. 書封의 恩 없었으니 爵位도 못 들었네. 나에게 無良之라 말씀하시다. 歸去에 斂襲함 빠뜨림 없고, 祭禮 또한 禮대로 修行함이여. 하늘 보며 우럴어 自彊을 다짐하네.
代李惠薦父疏
諸佛若抱津之吏皆欲濟焉衆生是撲燈之蛾自求禍也宜投福地以洒免魂念先考義及家傳撫我躬恩偏鍾愛學孔鯉之再過從師遠遊得何蕃之一歸事親欲孝曾策名於戎籍遂隕命於賊鋒何期天地之恩兮竟委原隰之衰矣旣能死於國事人雖曰忠未得終其天年我以爲感嘆蓼莪之罔報哀梁木之遽摧庶仗聖慈可伸哀懇適齋晨之七迪設心炷以三薰營締雖微照詳伊邇云云悉除熱惱悟四大無常之身直至樂方觀一切有爲之法
李惠를 代身하여 그의 아버지를 나라에 薦한 上疏
諸佛은 若抱津之吏하여 皆欲濟焉이나 衆生은 是撲燈之蛾하여 自求禍也하여 宜投福地로 以酒寃魂이라 念先考컨대 義及家傳하고 撫我躬恩에 編鍾愛로 學孔鯉之再過로 從師遠遊하여 何蕃之一하시라. 歸事親欲孝라도 曾策名於戎籍이라. 遂隕命於賊鋒하시니 何期天地之恩兮리오. 竟委原隰之裒矣라 旣能死於國事하시니 人이 雖白忠이라하여도 未得 終其天年하시니 我以爲感嘆이 蓼莪罔報이요. 哀 梁木之遽摧라 庶幾仗義에 聖上은 慈意를 可伸哀懇하소서. 適齋晨七迪之日에 設心炷하고 三薰營締하여 雖微儀라도 照詳伊邇오이라. 남김없이 惱悟를 除熱하고 四大無常之身은 直至樂方으로 一切를 觀之컨대 爲之法이 있으리이다.
奉安 告由文
維歲次(干支)某月(干支)朔某日(干支)後孫○○ 敢昭告于
高麗門下侍中載寧君 謹惟
載寧之氏 檀族著門 高麗將屋 三賢承源 謹按世系 始祖謁平
嶽降瓢巖 以爲名聲 六村和白 擁立羅王 佐命傾誠 千年圖藏
諡忠憲君 奉恩烈王 月城貫鄕 簪纓滿郁 代有之評 爲世甲族
有偉府君 高麗侍中 爲國精忠 補祚之功 國論優遇 載寧君封
月城載寧 別貫稱窓 尙顯宗女 昌赫承崇 裔有三賢 有德名隆
尙以論決 配享成恭 玆値吉辰
謹告 虔告
奉安文 Ⅰ (上將軍公)
維歲次(干支)某月(干支)朔某日(干支)後孫○○
敢昭告于
追封匡靖大夫上將軍公 謹惟
諱啣小鳳 亦獨世續 初譜之序 事勢詳錄 天稟出衆 純誠功臣
出必勝戰 治德將軍 氣槪衝天 上將名勳 壽不應仁 匡靖追尊
尙恭愍女 兩賢得昆 後孫欽仰 中祖盛論 景德祠刱 今至幾何
屈指計歲 四分百過 時圖聖域 配享議河 玆値良辰 日暖風和
籩豆香酒 告由是格 神其降歆 洽惠啓迪
謹告 虔告
奉安文 Ⅱ (中郞將公)
維歲次(干支)某月(干支)朔某日(干支)後孫○○
敢昭告于
追封門下評理中郞將公 謹惟
追封評理 匡靖之嗣 年少以孤 長從武事 念母寡老 成家以誠
細故過人 己能不矜 敏達知名 以故見重 出奇捕倭 郞將得功
世人同志 義氣其崇 淑問其讐 死不亡兮 有子業文 有女珮芬
存者長兮 功靡鑴鍾 爵未書封 謂我無良兮 斂襲旣優 祭禮旣修
余仰哀以自彊兮 嗚呼 討敵梁州 奮戰而歿 殺身報國 武將誇竭
景德祠刱 今至幾何 屈指計歲 四分百過 時圖聖域 配享議河
玆値良辰 日暖風和 籩斗香酒 告由是格 神其降歆 洽惠啓迪
謹告 虔告
奉安文 Ⅲ (司宰令公)
維歲次(干支)某月(干支)朔某日(干支)後孫○○
敢昭告于
贈宗簿寺正司宰令公 謹惟
匡靖之嗣 昆季二賢 長曰評理 季居密緣 當爲少孤 妣養苦憐
公修篤工 學行倂全 茅隱家錄 歷按廉使 女壻家乘 亦錄其是
司宰令職 極選淸顯 贈職寺正 一品冠冕 次世六生 皆以孝忠
居於三祥 廬墓誠衷 會于廬堂 望朔同枕 長之溪隱 死節義深
闡聞孝義 上命旌閭 偉哉密州 五賢首譽 仲叔五六 罔僕自靖
季之茅隱 杜祠享榮 恭愍外孫 南下居怡 莫說辭蹟 似續推斯
景德祠刱 今至幾何 屈指計歲 四分百過 時圖聖域 配享議河
玆値良辰 日暖風和 籩豆香酒 告由是格 神其降歆 洽惠啓迪
謹告 虔告
常享 祝文
維歲次(干支)某月(干支)朔某日(干支)後孫○○
敢昭告于
高麗門下侍中載寧君 伏以
功存麗社 澤腆載祚 貽謨垂祉 彌增感慕 玆値吉辰
謹以 粢盛牲幣 式薦明禋 以
追封匡靖大夫上將軍公,
追封門下評理中郞將公,
贈宗簿寺正司宰令公 配 尙
饗
景德祠 主聯
恭惟府君 河嶽鍾英 輔佐麗朝 爲國幹楨
雲孫不億 亦驗厚德 距世雖邈 不遠柯則
有奕祠宇 聳動瞻視 于以妥侑 神人胥喜
正呼稱과 略稱
追封匡靖大夫上將軍 諱小鳳 : 匡靖公, 上將軍公
追封門下評理中郞將 諱日祥 : 評理公, 中郞將公
贈宗簿寺正司宰令公 諱日善 : 寺正公, 司宰令公
堂名 門號
堂名(堂號) - 載陽書堂
載其淸淨하여 陽德을 涵養之意 . 陽德 - 萬物을 낳아 기름
門號 - 怡和門
기뻐하고 화락함, 기뻐서 좋아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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