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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성 동산리 중촌동네 가운데담
굴문댁 대밭 그늘이 반쯤 잡아먹고는
한쪽 정방형 밭에는 삼이 자라고
낮은 강담 두른 밭뙈기와
손바닥만 한 한 뼘 꺼진 텃논과
한센병 삼곶쟁이 부산 할배 삽짝 앞에서
살찐 장닭과 봄 무리 햇병아리들
이랑 솟은 보리싹은 그놈들 차지
엄마는 갈 때마다 들 담 너머로 구시렁댔다.
찬바람 된서리 아침
개똥망태 걸치고
논귀 산책 나가시던 할아버지
삼촌은 똥 장군 지게에
바 작대기 가로 안은 팔장 낀 손
또 물지게 한두 짐
그건 아침 해장꺼리였었다.
형들 조기 횡사로
일제말 중학교 문턱에서 그친
삼촌은 반거 칭이 농사군 이었다.
온 조상 대대로 살아온 터
돌덩이 일군 박토
조산 언덕 성(城)처럼 두르고
주먹돌 담쌓아 만든 샘
원 없는 가난 베풀고
이사(移徙)로 무너진 종토(宗土)
한쪽 헐어내니
깊은 물 넉넉한 조상의 지혜였다.
시꺼먼 늙은 감나무
땡감 떨어져 샘에 침시(沈枾) 담고
시퍼런 눈 두둑에
붉은 점 박힌 배 비단개구리,
징그런 뱀 허물과
한삼덩굴 덮은 음침한 조산 무덤
허어연 하늘 비추는 반영
피에 허기진 시꺼먼 거머리
구불구불 헤엄치는 까만 밤
비스듬한 비탈 내려가는 게
귀신 만나러 가듯 가슴이 저렸다.
한 번도 거기선 나를 찾지는 못한
공포의 대상
죽음의 구렁텅이
손바닥만 한 가뭄에
장대 가로 걸치고
긴 버드나무 목 끝에
양철통 잘라 달고
지렛대 원리 깊은 물 돌려 퍼서
가슴 팎 타고 눌러
손잡이 틀어 퍼올린 두렛 물
발 담근 채 참 신기한 어린 놀이터
할아버지 아버지 또 머슴은
땀 뻘뻘 7월의 노동 터였었다.
땀 먹은 물맛에
작은 손바닥 애달픈 장리(長利) 양도(糧道)
겨우겨우 봄날 이은 삶
송구 꺾어 풀칠한 끈질긴 목숨
등지게 입고 배꼽 내미는
우리 집안 장정(壯丁)들의 쉼터
새벽부터 밤까지
잠 쫓는 삶의 터
준비성있는 조상의 지혜
애환 기록의 장(場)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