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4.4.23 경주 표암전과 악강묘에서 춘계향례 참례하다./264 코스 : 마산역-김해-양산-경주 동천동 석탈해왕릉 주차장-표암전 헌관,회장, 종친간 인사-표암공유허비-광명대 표암- 석탈해왕릉-경주이씨시조 휘 알평 경모비-표암전 점심식사-천년솔밭-경주IC-진영휴게소-마산) 참석자 : 헌관 : 초헌 이용태 박사, 아헌 이원흥 갈암 종군, 종헌 이석호 교수 재령 종인 : 웅호, 일환, 덕호 재홍(서울), 택수(김포), 웅환(진주), 동춘,병목, 완섭(창원), 균태 희섭(부산), 등 특별의의 : 표암재를 표암전으로 바꾸고 국가문화재 등록 기념 첫 향례 - 갈암, 존재 형제분 표암재 참석 기록물로 인해 국가문화재로 등록이 쉽게 되었기에 맨 처음으로 영해 출신 용태, 원흥, 석호 세분을 우리 재령이가가 모두 맡음 많은 우리 일가 종인들이 참례해서 축하하며 시조공 향례에 동참했다. |
오늘은 나의 원 뿌리 비조
월성이씨 시조공 전설 속의 상계 비조
신라개국보조공신 급량부대인 이공 휘 알자평자 유허지
경주시 동천동 악강묘에서 춘계대제를 올린다.
전국에서 모여든 신라 경주이씨 후손들이 모여든다.
오늘은 내가 종인 후배를 위한 서비스로 자동차를 운전했다.
듬직한 후예들이 타고가니 차가 저절로 간다.
경주까지 아무 거리낌 없이 1시간 반만에 닿는다.
먼저 표암재가 표암전으로 바뀌고 단청 산뜻하게 칠했고
삼헌관과 웅호 일환 덕호 재홍 대종회 회장단과 인사 나누었다.
창원에서 참가해 주니 모두 반긴다.
진주에서 웅환, 김포에선 택수 회장 부산에선 균태 부회장과 희섭 국장이 보인다.
재령이가가 오늘 행사의 중심이 된 듯하다.
현장유적 확인을 위하여 산을 오른다.
오르는 입구 신라 3대왕 석탈해 왕릉이 둥글다.
아픈 무릎 끌며 높은 계단길 올라 내려다 보니
악산 절벽아래 표암전과 악강묘 시조공 경모비가 한눈에 든다.
경주이씨 후손들이 무리지어 모여든다.
천년송림아래 텐트마다 손님 맞이 바쁘다.
먼저 시조 알자평자 할아버지 유허비를 둘러보며
처음으로 세웠다는 조선 순조때 이경일 경주부사가
맨 처음으로 표암유적임을 표지했다고 기록했다.
비각안을 둘러보며 기록현판 하나하나 다 찍었다.
우리의 뿌리가 전설에서 역사자료로 등장한 것이 고맙다.
선지자의 숭조정신이 귀감이 된다.
기록문은 즉시 해석 안되어 느끼고 나온다.
출입구 문이 낮아 내 덩치로 머리를 찧고 만다.
시조 할배가 한껏 꾸짖는 형상이다.
참배객이 줄지어 오르니 빨리 비워 줘야 했다.
조금 더 산 위로 오르면 광명대
빛을 밝힌 돈대 표암을 맞는다.
바위가 구유처럼 파져있다.
여기가 절설의 현장
표암 선조께서 하늘에서 강림하여
아기가 되어 누워 계셨던 그 현장
주변 빛을 모두 모아 세상을 밝히는 광명이세 현상
눈부심이 탄생이요 우리 성씨의 출발점이다.
여기 경주이씨발상지라고 비석세웠다.
오늘 오니 어머니 자궁처럼 아늑하고
생각이 모두 한 곳으로 모여든다.
겸손한 내 모습이 조상을 그리는 맘 아닐까?
아무 할말을 잊고 그저 감사할 따름이다.
기념사진 찍어 다녀감을 기록한다.
시조발상지비 후면에 표암선사께서
200년을 수했다고 기록되어 있다.
산을 내려와 악강묘 앞
담벽에 기댄 화려한 축하화환이 기쁨이다.
9척 비신 드높은 시조공 경모비 우뚝하고
어느 가문 어느 비석보다 높고 장대하다.
그 모습만 봐도 후손이 천년 만년 대대로 흘러가라는
산고수장(山高水長)이 느켜지는 규모다.
빙돌며 그 비문 읽고 사진으로 남겼다.
비문은 가고파 시인 이은상 선생이 짓고
앞면 제자는 후예 병철 삼성회장이 쓰고
비문 글씨는 동래 정하건이 쓰고
후예 약우가 새겼다.
10시 50분에 춘계대제가 시작되었다.
선비복을 입은 참여제관들만 월대 위로 올라가고
일반 참배객은 구경군이 되어
진행되는 홀기에 따라 엄숙히 서서 지켜보았다.
먼저 개좌를 열어 헌관과 참제관을 표암전에 모여
붉은 조복을 입은 삼헌관을 맨먼저 안내하고
뒤를 이어 도포입은 선비제관들 줄을 지어 따른다.
그 모습이 장관이고 감동이다.
악강묘(嶽降廟) 내삼문(內三門)인 조동문(肇東門) 앞에
줄지어 대기하며 홀기에 따라 기다린다.
초헌관의 점시진설을 먼저 한 후
각 집사자별로 배위에서 4배한 후 취입시하고
삼헌관은 서향립하고 그 뒤에 찬자 찬인 알자가 보필하며서고
도포 유건 쓴 정식참사객은 월대 배위에 줄지어 서니
엄숙한 분위기로 참례하게 되었다.
혹시 방해될까 봐 스마트폰도 껐다.
먼저 폐백을 모시고
개독 후 촛불을 밝히고
참신배로 은열왕께 올리는 예식절차를 세워
국궁사배를 창홀하니 아픈 무릎 참으며
굳건히 동참하여 성의를 다한다.
초헌례로 헌관 관세위를 둘러 작세위로 가서
작주한 잔을 헌관과 함께 입실하여
헌관에서 전작으로 신위전으로 올리고
전 삼사관 부복공사 없이 서서 듣는 중
대축의 낮은 음성의 독축을 들으며
사당내에서 찬창이 동작이 끝났음을 '흘'로 알린다.
다음은 초헌관이 원래 자리로 돌아오고
9순을 넘은 초헌관 노구를 알자가 거들어 보살피니
그 모습이 정녕 아름답게 보인다.
다음은 아헌례로 초헌례와 같은 순서대로 이어지는데
헌관 체력이 조금 젊어서 그침없이 진행된다.
다음은 종헌례를 위와 같이 진행했다.
단지 절차는 그대론데 독축이 아헌 종헌은 없다.
다음은 사신례로 축이 올라가 신독을 덮고
전 헌관이하 참례관이 사신배 4배를 하며
신위를 닫고 신이 떠나가는 절차이다.
그 다음이 음복례로
초헌관을 음복위에서 서향으로 앉고
대축이 판을 초헌관 앞에 놓고 북향으로 앉아서
봉작이 준소에서 사준에게 받은 복주 잔을
대축에게 전하고 다시 초헌관에게 전하여 졸작하고나서
술안주로 젯상에 있는 육전을 덜어와 헌관에게 전하니
헌관은 음복행위를 마치고 복위한다.
다음은 망례행사로 헌관은 안내를 받아
망례위로 가서 북향으로 서고
대축은 축문과 폐비를 거두어
망례위로 가서 분축하고 그 재를 흙으로 덮고
불이 다 소화된 것을 확인한 후
초헌관은 안내에 따라 제 자리로 돌아온다.
알자가 초헌관 왼쪽으로 나아가
'예필'을 고하니 드디어 제전이 끝난다.
이로서 참배제관은 차출되나
홀기는 계속되어 당내에 올라갔던 집사자들이 내려와
사신 4배를 다하고서야 끝이 났다.
특히 대제에 참여한 제관과 관람했던 종인 후손들이
참여 팀별로 기념촬영하느라 부산하나
이미 제사 순서가 끝난 이후라
우리도 우리 종씨끼리 기념촬영을 했다.
마지막으로 용태 초헌관의 기념사로
조상을 섬기고 이어가는 건
바로 우리를 찾는 길이니
내년에도 그 이후 오래오래 찾아와
이어가는 노력을 다하자고 하고
경주이씨 대종회의 인사와 경과보고로
금년도부터 악강묘와 표암전 표암이 국가문화재로 등록되어
이를 밝히는데 가장 공헌한 후손이 바로
재령이씨 존재와 갈암 형제분이 여기를 다녀가시며
남긴 기록물이 이번 중요한 자료가 되어 지정에 도움되었기에
재령이씨 종족분들을 처음으로 삼헌관으로 모셔서
계기를 삼고자 하였다고 소개했다.
우리 선조의 훌륭하신 행적을 들으니 좋아한다.
서로 감사하며 그 의의를 자축하였다.
마지막 전참례객들과 관광객을 위한 대접으로
외부 송림숲에서는 긴줄 서서 점심 음복상을 받아서
일족 타족 다 만나 인연나누고
우리 재령인들은 표암재 헌관과 함께
헌관을 모시는 범백대로 외상 겸상받아 음복하니
조상의 배려는 후손의 홍복이더라.
헌관종친들과 헤어지며
5월 5일 경덕사 향례때 만나자고 숙제를 준다.
2천년 고도 경주를 떠나오며
창원 삼총사는 참배 후 소감으로 이야기를 태우며 차를 달렸다.
진영휴게소에서 창원회장 정헌이 사는 커피로 피로까지 풀었다.
'따뜻한 만남 1 > 조상사료실' 카테고리의 다른 글
경덕사 춘계향례 집례를 맡아 완수하다. (0) | 2024.05.05 |
---|---|
경덕사 홀기첩(笏記牒) 제작 (0) | 2024.04.25 |
경덕사(景德祠) 시조공과 삼선현 소개자료 (0) | 2024.04.21 |
경덕사 향례 홀기 (0) | 2024.04.21 |
[강63] 재령이씨 상계 선조와 경덕사 추원재 내력 (0) | 2024.04.20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