육사뜰 소식/만사참례기

추원재(追遠齋, 사재령공, 계은공) 시사 전일 성묘 인솔하다.

황와 2019. 10. 28. 02:26

19.10.27 추원재 사재령 선조와 계은 선생 부자 시제를 위한 전일 행사에 참관하다./264

   장소 : 밀양 상남면 조음리 경덕사 경내 재양서당과 추원재 건축현장, 석축 담장공사

   참가인원 : 서울 3, 부산3, 창원 8, 김해1, 청도 1 진주 1 (총 17명)

   추원재 건축현장, 석축공사 현장, 성암산 사재령할머니 묘소 성묘

   시제 지내는 절차와 방법에 대한 합의 의논, 홀기 조정, 지방쓰는 기준 마련 등 


10월 상달이 되면 할배가 자손들을 부르신다.

못된 상놈들은 불러도 올 줄 모른다.

아니 우리가 할아버지를 찾는다.

나를 위하여 할아버지를 찾는다.

우리 건강과 가족을 위하여

조상의 음덕을 갈구한다.  

그래서 조상도 기뻐서 웃고

자손들은 만남에 웃고 

뿌듯한 자존감에 싸이는 것이 조상의 은혜다.

남한에 계시는 최고 선대조 산소 

사재령 할아버지 내외분 즉 추원재 할배와 감모재 할머님

또 그의 장남 사헌부 지평 계은 선생 효자문 할배

밀양 오현 중 수두이셨으며

덕망있는 선비로 지금껏 추앙받고 계신다.

부모에 대한 정성으로 태종으로부터 효자문을 받으신  

조선초 가장 훌륭한 선조이셨다.

안타까운 점은 이후 5대에서 절손이 되는 바람에

친자손에게서 밥을 얻어 잡수지 못하는 선현이시다.

그래서 종중에서 함께 부자 합사하여 시제올린다.

바로 그날이 내일 10월 초하룻날이다.

정성을 다해 모시자고 예절 범백을 닦는다.

현장에 도착하니 한창 추원재 지붕공사 건축 중이고 

아래는 쌓아둔 위험한 석축 헐어내고 

포크레인 두 대가 새로 바윗돌 한 점 한 점 쌓고 있다.

온통 길바닥이 먼지 투성이다.

참 대단한 공사다. 

인부들에게 일일이 수고로움 감사한다.

새집 짓는 걸 쳐다보는 놀이도 참 재미있다.

미리 온 서울 회장님들 감독자 되어 세상 즐기고 있다.

만나도 일가는 언제나 반갑다.


     


    



부산팀 떠 온 횟감으로 소주 회맛 보고

헌관들 모시고 성암마을 뒤에 숨은 

할머니 뵈러 간다.

그 길 아는 사람이 별로 없다.

내가 안내자가 되고 말았다.

갈 때마다 나도 잠시 길을 헤매는 곳이라 

내가 안내자 되어 끌고 간다.

많은 사람이 이리저리 말해서 혼란스럽다.

내가 아는대로 가니 바로 그 길이 정로다.

감모재(感慕齋) 거미줄 비 새는 재실 사용 안하니 폐허다.

이미 문짝도 누가 뜯어가고 없다. 

옛 재실에서 산소로 오르는 길도 없어지고 

할 수 없이 동네 집안으로 들어가서 올라간다.

들머리 사각 봉분 밀양변씨 묘가 있고

조금 위에 우리 사재령 할배 배인 영인 이씨 할머니

손자들 반갑다고 웃음 준다.

어서 오라고 머리 쓰다듬고 

줌치에서 용돈 꺼내시는 우리 할머니시다.   

그런데 비석에 관행이 없다.

처음 간 종인들은 할머니 묘소를 방치한데 분노다.

그러나 어쩌랴 ! 내외 간에 시오리는 떨어져 

항상 그리면서 지내온 게 6백년 

모두 의미깊게 성묘했다.

봉분은 크나 잔디가 죽어 흙이 허물어지고 있다.

문제는 산소와 재실 이대로 놔둘 것인가 ?

올 때마다 숙제를 주는 곳이다. 

오늘도 그대로 스러지도록 놔 두자는 의견

지금 뜯자면 철거비용이 많이 든단다.

또 이장하여 사재령 할배묘에 합봉하자는 의견

결국 그리 되는 것이 최종 방안이다. 

또 숙제로 남는다.

 

    


    



돌아와 어둑한 길

저녁 불러 함께 먹고 

모두 모여 누구도 딴소리 없도록 

시제 방식에서 밥제(飯祭)는 없애고 주과포(酒果脯)로 진설하고 

또 합사(合祀)하는데 별도 젯상이 없으므로 

두 번 나누어 지내지 않고

병설(倂設)하여 한 번에 지내기로 결정하고

홀기와 위패, 모든 절차를 정형화 하자고 하고 

추원재 공사가 완공되고 나서

절차와 도구를 확충하자고 했다.

의논이 척척 잘 진행되었다.

그러나 반론을 제기하는 자 나타날 것이기에

합의한 회의 기록과 서명을 남겨두기로 했다. 

초헌에 병진 청도지역 형님이

아헌은 옥천 충주 교육장 형님이

종헌은 부산 균태 사장이

집례는 정호 고문 아재가

축은 진주 향교 용섭이가 맡기로 했단다.

 

    



즐겁게 의논하고 

난 내일 우리 종인들 참석 동승을 위하여 

밤길 마산으로 돌아와 

벽사 형님 모셔다 드리고 

집에 와서 느낌이 사라지기전에 기록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