육사뜰 소식/만사참례기

단활재(短豁齋, 諱 惠)공 시제에 동참하다.

황와 2019. 10. 29. 17:29

19.10.29 진주 진성 태기태 단활재공 시제에 동참하다./264

                                                                                                         동참자: 창원종친회 고문 충주, 회장 동춘, 부회장 병목 (3명)


우리 종중의 시발점 현존하는 묘소 중

어제는 상장군의 차자 사재령공의 묘사 지냈고

오늘은 상장군의 장자 중랑장공의 차자  단활재(諱 惠)공 시제날이다.

후손의 집단 세거지가 김포, 인천이기에

새벽에 천리길 나서서 할배 찾아 진주까지 내려옵니다.

우리는 재령이씨 창원종친회를 대표하여

우리 조상의 옛 터를 알고 조상을 섬기는데 앞장 서서 

옛 선조 시제에 동참하는 일 결의했습니다.

9시 마산역에서 동승하여 진성으로 향했다.

찻간이 조상을 아는 학습교실 

단활재 할배 이력을 복사 준비하여 실행을 도왔다.

종인들에게 체험과 지식을 주는 좋은 방법이다. 

시간이 남아서 옛날 다리껄 앞 정자나무 아래 소풀밭 곁에 있는

단활재 할배의 사위와 외손자 둘

진양강씨 유명 선조 용두 쓴 삼 신도비석군이다.

가운데 장자 영의정 강문경(諱 姜孟卿)공

왼쪽은 차자 집의 통정대부 밀양부사(諱 姜叔卿)공

오른쪽은 아버지 창녕현사(諱 姜佑德)공 신도비

많은 사람들 오가며 보라고 주된 길가에 섰다.

내 어릴적 놀이터 그 땐 영의정 신도비 한 기만 있었다.

연관관계 설명하니 종인들의 귀가 뚫린다. 

더하여 반야동(배망골) 진양강씨 박사공파 종산

우리 정경대부인 재령이씨 할머니 묘를 올려다 본다.

바로 단활재 할배의 따님이고

그 남편분은 할매 묘소 아래에 있다.  

할머니 둘째 아들 집의공 묘도 거기에 있었다. 

반야재 오른쪽에는 강혼(姜渾) 판서묘도 보인다.

반야재 밖을 돌아보며 감회가 새롭다.

어릴적 묘사떡 얻어먹던 재실이다.

그 모든 기록이 정경대부인 할매 비문에서

그 연맥(緣脈)을 확인하고 보사(譜史)의 기준을 제시한

우리 선조 단활재공 묘사에 참석한 의의다.

바로 문헌공파 기록이 바로 진성에 다 남아있다.

이제 이끼 끼고 마모되어 글을 읽기어렵다.

오늘은 시제 전하기전 사전학습을 알뜰히 다하고

태기태 골짜기 참예지(參禮地)로 향했다.

우리가 먼저 도착하여 골짜기 열고 들어갔다.

철조망 둘러쳐진 묘소안으로 멧돼지 놀다가 간 흔적 남았다. 

오늘따라 시간이 넉넉하여 비문을 읽어내려가자니 

문헌공파 내력을 거기 모조리 알게 되었다. 


    


    

                                        [진양강씨 박사공파 창녕공문 분묘군, 반야재(盤野齋)가  관리함] 


약 11시경 김포서 인천둘러 5시에 출발하여

할배 묘소 찾아 버스 한 대 실려왔다.

오히려 우리가 주인 노릇 환영했다.

문헌공파 회장 병성씨와 병옥 전회장

반갑게 손 잡아 준다.

주손보다 방손이 먼저와 맞이한 편이다.

여인들이 따라와서 진설을 돕는다.

朝奉大夫知甫主事載寧李公諱惠之墓

郡夫人 盈德鄭氏 合祔

뒷면에는 재령이씨 문헌공파 계열의

보사를 알 수 있도록 명문해 기록했다.

읽어보니 묘는 실전되어 없는 분도 많으나

할배 할매 부부 명함과 관행은 모두 알 수 있게 밝혀두었다.

원래 비문은 종보의 기록이었고

그걸 통해서 족보가 창설되고 확인할 수 있었다.


      

    

                                                                    단활재공 묘(영덕정씨 합부)


묘소 주변에 새로 잔디밭 넓혀 잔디밭 확장 조성했다.

혼유반석에 옛 처럼 시사 제물 차리고

초헌관은 병성 회장이

아헌관은 내가

종헌관은 김포 젊은 종인이 

그리고 모든 첫 참석자는 잔을 다 올렸다.

아마 할배 할매가 취해서 빙빙 돌아갈 게다.

음복 대신 알밤 한 톨 씹었다.

달콤한 소리 바로 옛날 그맛이다.

우리 남부지방과 진설 방법과

제사지내는 홀기 및 방법이 다르다. 

아마 서인 노론지역에 살다가 보니 그렇게 변한 것 같다. 

가가례(家家禮)이니 그들 방식을 존중해서 지냈다.

진설 방향이 우리와 정 반대다.

술잔 드리는 방향도 반대다.

옳고 그름의 눈으로 봐선 안된다.

그들 나름의 문화이기에 존중해 주어야 한다. 


    


    


마치고 음복하며 인절미 떡도 말랑말랑 맛나다.

어릴적 시제 떡 얻어먹다가 배탈이 났다가

신우신장염 되어 죽다가 살아난 추억이 돋는다.

우리 엄마가 그때 이리저리 백리를 멀다않고

걸어 다니면서 약을 구해 주지 않았다면

난 이 세상 성인이 아니었다.

그래서 양모(養母 굼실댁 晉陽鄭氏)에 대한 사모곡이 돋는다.  

태기태를 벗어나와 삼거리 치돗가 

민속갈비집에서 모두 모여 앉아 점심식사 했다.

그들은 또 올라가서 저녁까지 먹고 헤어진단다.

오늘 함께 참석하니 우리도 그들도 모두 고맙다.

재홍 서울종친회 사무국장도 함께 내려왔다.

학서 형님은 어렵게 가고파국화축제장 구경하셨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