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4.29 우곡 선생(휘 鄭溫) 석채례(釋菜禮) 진주 사봉면 굼실 우곡재(隅谷齋)에서 실시하였다. /264
내 외가는 굼실이다.
생외가는 단목골이지만
양모 나를 길러준 엄마라서
더 고마운 외가로 느껴지는 건
어릴 때 추억이 더 진하기 때문일 게다.
그 어머니 내가 교원이 되면 따라 다니며
밥해 줄 거라고 희망처럼 말했으되
내 임직(臨職)도 보지 못하고 눈을 감으셨다.
날 젖동냥과 밥물로 생명잇고
여남 살땐 신우염 죽음에서 건져냈으며
정성을 다해 뉘게도 빠지지 않게 키웠는데
나는 아무것도 해준 게 없어 지켜만 보며 하늘로 보냈다.
그래서 늘 짠한 그리움이 죄인(罪人)으로 남았다.
그 어머니의 선조이시니
어머니 은혜 갚는 셈 우곡(隅谷) 선생 채례에 동참했다.
그런데 와서보니 오늘로서 석채례(釋菜禮)를 잠시 중단 한다니
마지막으로 올리는 향례(享禮)에 참석이다.
우중에 당내에서 사람들과 어울려 초면 인사했다.
절반쯤 안면이 있는 분들이다.
원임 이도기는 고향 마을 형님이요
헌관 남상숙 님은 고향 아저씨고
집례 홍두표는 고교 동창 친구고
축 이병목 종중 동생이다.
구순 수와(守窩) 형님도 어려운 출입하셨고
진성과 지수 청원리 출신 일가 지인들
압재 의성 김종선 인사하니 반갑단다.
진영업, 강삼수 교장은 구면이다.
본손 정호영, 호종, 삼형제가 심부름 중이다.
정임규, 희규, 극규 외재종형제들이고
모처럼 유소에서 만나니 반갑다.
나도 창원서 모처럼 참석했다.
참가한 인사들 도착 하는대로 시도기(時到記) 접수하고
만나서 상면 인사하고
유림식 진행이 엄격하게 진행되었다.
제복 갖춘 후 개좌 열어
원임 인사말과
주벽 우곡(隅谷) 정선생에 대한 행장 소개가 있었다.
고려말 대사헌 망국 청맹과니 절사(節士)
우리 선조 모은(茅隱) 절사(節士)처럼
망복절의(罔僕節義)의 충신이었던 분이시다.
이어 집사 분정하고
원임이 직일(直日) 지명 기록한 후 벽에 붙이고
집사분정 기록시 정좌하여 엎드리고
집례가 집사분정 낭독하고
축관이 위패 지방 축문 기록한 후
석채례 진행을 외쳤다.
다시 한번 더 집사분정 낭독하고
홀기대로 창홀 찬창하며 진행해 나갔다.
행동거지는 창홀로 의미를 알 것 같고
분정자가 무슨 일을 해야 할지는 듣고 알 것 같다.
엄숙하게 잘 진행하였다.
진주향교는 각 분장자의 행동을
모두 연습으로 익힌다고 들었다.
진주향교 전교가 여기 원임이니 더 엄숙하다.
수와(守窩) 형님도 암소리 않고 지켜보신다.
우리 첨소재에 오시면 엄격한 말씀에 모두 숙연해 지는 분이다.
벌써 아흔을 넘고서도 유림 출입이시다.
헌자 진설 점시하고
관세위로 나가 관수 세수 하고
작세위로 나가 세작 식작 하고
준소로 가서 잔에 작주를 받아
신위전에서 삼좨주하고
다시 잔을 채워 잔을 드리고
축관 독축한 후
헌관 재배하니 단잔 배향 끝이 난다.
사신 재배하고 축문 분지하니 모든 절차가 마무리 된다.
엄숙하게 마치니 비는 하염없이 훼방군이다.
3집사 원로분 독상 받고
모든 제관들 겸상 합석으로 점심 먹으니
비오는 날 빈객접대 온통 빗속을 뛰어 다니며
소반상 대령한다.
비를 홀딱 맞고 젊은이들이 수고롭다.
점심이 파하고 나니 모두 뿔뿔이 배웅 출발이다.
나는 희규 형님댁에 잠시 들러 병문안 드리고
빗속 외갓집 나들이 손 흔들며 배웅해 주신다.
이제 모두 8순을 넘은 분들이시다.
오다가 팔룡동 누이집 들러 푸른 채소들 얻어왔다.
처음으로 팔룡터널 통과해 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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