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4.6 창녕 성산면 부용정 성안의 선생 향례 헌관으로 참여하고 예연서원을 둘러보다./264
코스 : 마산역-부용정-향례 종헌관하다.-예연서원-달창저수지-마산 우리요양병원(학서)위문
재령이씨 참례자 : 병철, 동영, 나(종헌), 용섭(축)
조상의 스승은 내 스승인가?
우리 재령이씨의 주요 인사
행정 이 중(重)자 광(光)자 방선조
그의 스승이셨던 창녕성씨
부용당(芙蓉堂) 성안의(成案義) 의병장(義兵將)
원래 창녕군수로 부임한 한강(寒崗) 정구(鄭逑) 선생이
학문 문화 중흥 수련을 위해 서재를 개설하였고
이 역할이 성안의 장군에게 이어져
많은 후인들을 교육 단련시킨 은혜로운 어른이시다.
자손들이 제관이 되어 향례를 지내나
시작부터 고매한 선생을 모시는 예덕(禮德)의 맘으로
유림 향례로 이어져 왔는데
선생께 감사하는 마음
우리 재령이씨 종인들이 매년 참례해 왔었다.
아마 내가 창원종친회장이라 맡겨진 벼슬인듯 싶다.
오늘 역할이 부여된다고
한복에 두루마기까지 일습(一襲) 입고
내 차로 부용당까지 종중 형님들을 모셨다.
4월 벚꽃 가로길이 꽃철이다.
온통 성산면 일대는 꽃 터널 축제장이다.
맨 먼저 재실에 도착하니
뒤이어 재실 관리자들이 등장하여 인사 나눴다.
창녕성씨 종인들이 올 때마다 구식 인사 나누자니
여남 번 이상 일어섰다 앉았다 무릎이 아프다.
오늘 오집사(五執事) 중에 아는 사람이 많다.
집사분정 개좌 열어
초헌관은 창녕군수 한정우가
아헌관은 물계서원이사장 성낙진 교장이
종헌관은 내가 창원종친회장 자격으로
집례는 진주향교 성석기 고향 동생이
축관은 이용섭 진주 청원 병찬 형님 아들이 맡았다.
주변을 보면 그 집안의 범례를 안다.
오로지 성병태씨 혼자 전체를 지휘한다.
다른 이들은 명령 오기만 기다리고
가뜩이나 군수가 늦게 온 까닭에
두서가 바뀌기도 한다.
창녕군 관계자가 줄줄이 따라왔다.
행정관 출행에 저리 많은 관리가 따라다니면
원 담당 업무는 어찌 처리할까?
오늘이 토요 휴무일이니 괜찮겠지.
자문자답으로 나를 달랜다.
난생 처음으로 결혼식 때 못 입은 관복 입었다.
제관복 푸른 복장에 사모관대 혁화까지 신었다.
지방기념물인 훌륭한 영정이 있는데
'부용당 성 선생' 이란 지방을 써 붙이는 건
초상화가 더 나은 표상인데 지방을 덧붙인다?
곶감 접문자가 되는 건 아닌지?
본가의 습속이니 암말도 안 했다.
행례가 진행되어 사당 높은 계단 올라가
홀기대로 차질없이 진행했으되
홀기가 잘못된 건지 또 혼선이다.
참신을 빠뜨렸다가 다시 중간에 끼워 넣었다.
만반의 준비성 역할자에겐 사전 알렸어야 했다.
창홀되는 의미를 알아들어야 했다.
난 암 이상없이 진행 완료했다.
향례하는 대상자
성안의 선생의 내력을 소개하는 절차가 생략되었다.
종문 내부도 다 알아야 하고
외부 유사들도 자세한 약력과 이야기를 들어야
개념적으로 아는 데서 더 깊은 이해를 할 수 있다.
그래서 선조의 스승은 내 스승인가를 물었다.
무사히 마치고 함께 식사하며
참여 인사 두루 소개하고
나도 일어서서 창녕 25년 교직생활 말했다.
산증인 바로 동료였던 성낙진씨가 소개했다.
무사히 마치고 고맙게 헤어졌다.
당시 지인들에게 안부 전해 달라고 했다.
돌아오는 길 가까운 달창저수지 주변
곽 망우당의 유적지 예연서원(禮淵書院) 가 보자고
진주 팀과 함께 앞장 서 갔다.
나도 첫길이니 더듬었지만
달창저수지 넉넉한 물 위에 빨간 낚시질
둘레에 하얗게 두른 벚꽃길
마치 관광지 온 기분이다.
예연서원 들렸다.
마을 입구 대왕 비석보다 더 큰 약 4미터
현풍곽씨 임진란 의병장 두 분
존재(存齋) 곽준(郭䞭)과 망우당(忘憂堂) 곽재우(郭再祐) 장군 비석
존재 장군은 함양 황석산성 전투에서 전사하셨고
망우당 곽재우 장군은 진주성싸움에서 승전했으나
전란 후 창녕 우강리 낙동강가에 망우정(忘憂亭)을 짓고
쓸쓸한 노후를 보내다가 돌아가셨다.
마을 보호수 느티나무가 역사처럼 버티고 섰다.
마을 안길 들어서니 은행나무 보호수 우뚝하고
예연서원 (禮淵書院) 현액
우남(雩南) 이승만(李承晩) 초대 대통령 글씨다.
뒤에는 비슬산록 앞에는 달창저수지 펼쳐지고
양명한 자리 따뜻한 기운이 우리 몸에 입힌다.
지은 지 얼마 안 된듯 체목(體木)이 모두 새 목재다.
현판마다 새 글씨체로
벽사 형님 구성진 창독(唱讀)소리가 귀에 익다.
사당에 들러 함께 재배하고
선비 예법을 다하고 나왔다.
나라의 안위(安危)를 걱정만 안 하고
몸소 전장에 뛰어가 나선 애국충정(愛國忠情)의 충신
그들이 있었기에 우리의 나라가 이어져 왔다.
행동하는 지식인 선비
현재 우리에게 주는 표본인 두 분이시다.
돌아내려오며 다시 또 갈 곳 더듬는다.
백순 종친 원로 학서 형님 보러 가기로 합의
그리 자주 찾는 노종인은 아마 드물 거다.
자주 찾아 뵙고 위문하고
오늘 있었던 얘기 보고 드리고
후예의 바른 행동에 흐뭇해 하셨다.
늘 그리 혼자 외롭지만
결코 혼자가 아님을 복노인이라 했다.
내가 저러하면
어느 누가 이리 자주 찾아볼 이 있겠는가?
내 생활을 돌아보게 하는 반면교사가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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