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6.1.23-26, 중국 상해, 소주, 항주 여행보고서]
1. 기간 : 2006.1.23-1.26
2. 참가인원 : 도천초 교직원 6명, 및 여행사 11명
3. 코스 : 부산-상해-소주-항주-부산
중국 중부(상해, 소주, 항주) 여행기
1. 대한의 독립과 번영 중국의 표상 - 상해
06.1.23
기대는 설렘으로 잠을 설치고
세 시간 전부터 아이들 마냥 뒤척인다.
새벽 첫차로 김해 공항에 미끄러져 들어갔다.
08:45 부산에서 상해를 향해
하나투어 팀 스무 명이 한 가족이 되어
비행기 옆 좌석에 앉는다.
우리 선생님 5명, 울산 두 가족 6명,
여수 선생님 1쌍, 부산 자매 2명, 거제 모자 3명
그리고 가이드
상해에서 넓고 푸른 중국의 꿈과
죽순처럼 솟은 빌딩 숲을 보며
드넓은 푸동 국제공항에서
430km 고속 자기부상열차로 용양역에 내렸다.
푸라타나스 가로수가 향수를 불러오고
황포강 양포대교의 현수선(懸垂線)이 부채살처럼 아름다운데
이곳이 상해의 과거와 미래를 구분 짓는 경계선이라니
포동(浦東),포서(浦西) 1,800만 인구로 성장하여
1919년 시작된 어촌 100년의 역사가 중국을 대표하는 대조구가 되어
웅변으로 말해주고 있고
억대 부자가 무려 5천만명이란다.
대한민국의 터전 아픈 역사의 현장에서
의열(義烈) 선조와 만나 애국혼을 주사맞고
그 많은 시련과 아우성이 몸서리치도록 시리운데
그 좁은 공간 구석구석마다 굳세고 향기롭다.
27년간 아홉 군데로 쫓겨 다니면서
존재 의미를 깃발처럼 매섭게 휘날려온 대한민국 임시정부 청사,
장부출가생불환(丈夫出家生不還)의 윤봉길(尹奉吉) 의사 충의에
시라카와 대장의 신음소리가 유쾌한 홍구공원(虹口公園),
중국 문학의 아버지 노신(魯迅)이 뺏어간 우리 독립공원
그 피비린내 나는 역사를 가슴 저리도록 사랑해 본다.
내일이면 춘절(春節)
붉은 등불로, 금빛 글씨로
온 시가지가 요란하다.
한 효자 반연단이 그의 부모 위해
14년간 집 짓고 연못 파고, 수석(壽石) 쌓고, 담장 둘러서
구석구석마다 아기자기한 최고품의 동산을
무리해서 벌인 만용의 극치가 후세인의 돈벌이 장소로 되어
갑갑하고 답답한 비련의 역사를 밟고 지나다닌다.
중국의 표상 동방명주탑(東方明珠塔)이 우뚝하고
황포강(黃浦江)을 거슬리는 유람선에서
우람하고 무딘 중국인의 국력을 다시 보며
반듯반듯 새로 솟는 건물에서 새 희망을 보고
외탄(外灘)언덕에서 청조말 개화경제의 유물을 보며
남경로 백화점에서 중국경제의 출렁임을 눈으로 확인하였다.
향장(香匠)나무 가로수가 사철 향기로운데
상해 서커스가 간장을 멋게 긴장하게 만들었고
밤 깊은 소주 남아빈관호텔에서 피곤한 하루를 접었다.
2. 비단과 정원의 도시 - 소주
06.1.24
중국인은 이곳 소주에서 태어나서,
항주에서 살고,
광주에서 맘대로 먹고,
유주에서 묻히는 것이 소원이란다.
물산이 풍부하고 중공업단지로
상해 배후도시가 되었으며
너른 평야에 비옥한 토지와 비단으로
중국에서 매우 잘사는 곳이기에
문화 유적도 풍부한 고장이었다.
운하들이 자연스레 뱃길을 만들고
동네를 휘두르고 다닌다.
물에 비친 낡은 가옥과 쪽배들이
그림처럼 아른거리고
이 곳으로 모든 물건이 오가는 듯 기대를 담는다.
30여 미터 낮은 구릉이 호구산(虎丘山)이라니
산의 의미가 희소가치를 말하고
그래도 그 속에는 문화재 명당이 되어
나무꾼이 개구리가 되어 지키는 샘터,
시검석(試劒石)과 돌복숭
천명이 죽었다는 바위, 한비야 무덤,
시인 묵객과 왕휘지의 글씨
동쪽으로 천천히 기울어져 가는 전탑 원탑(塼塔 圓塔) 등
역사 관찰자로서 품위를 읽었다.
한산(寒山)과 습득(習得) 스님의 장난끼 어린 화애와
짙은 향 연기, 배불둑이 부처님,
고요를 가르는 종루와 청종석(聽鐘石),
회랑에 걸린 수많은 문필가의 시서화 작품들
여기는 한산사(寒山寺),
5층 목탑을 올라 둘러보며
어지러움을 감추는 나도 늙어가는 비애감을 읽는다.
이곳은 절이지만 문필박물관일러니......
이웃에 오왕 손권(孫卷)이 그의 부모를 위해
5층 목탑 보은탑(報恩塔) 세워 부모공덕 기리고 있는 걸 보며
아직도 손권은 살아있었다.
자사박물원(紫砂博物苑)에서 녹색다기의 가치성을 보았고
정원 도시 소주에 '졸정원(拙政園)' 과 '유원(留園)' 이
중국 4대 명원(名苑)에 든단다.
왕헌신이라는 졸장부가 만용을 부리며 만든
졸정원이 세계 문화유산으로 등록된 국가문화재였다.
무모한 16년간의 노력으로 이렇게 많은 사람에게
아름다움이 무엇이라는 걸 가르치는
그는 바로 영웅
동원, 중원, 서원으로 나누어
난설헌(蘭雪軒)에서 출발하여
설향운위정(雪香云尉亭)에서 주인의 높은 콧대를 보며
사람 위를 걷는다는 ‘ㅅ’자 보도,
원앙이 숨어 깃든 누각,
눈 내리는 착각을 보이는 청색 유리창,
하늘이 내려와 노니는 연못과 수석
분재원의 기묘함, 퇴화수석(退化水石),
쉴새없이 인조 자연미를 훔치려고 샤터를 누른다.
이곳은 상해의 ‘예원(豫園)’보다
여유롭게 하늘을 끌어다 앉힌 것이 답답함을 풀어준다.
늘 시간에 쫓겨 버스에 오른다.
중국 비단의 고장 소주 비단전시장에서
누에고치와 실잣기, 비단 솜 만드는 과정을 통해서
비단이불 구입 물결을 보고 호화의 극치를 맛보았으며
품결 높은 비단셔츠 큰 맘 먹고 하나 사고
평소 관심 준 그리움을 비단 수건으로 메꾸었다.
맛사지로 피로를 푼 후에
호항고속도로(滬杭高速道路)를 달려
아름다움의 도시 항주에 이르러
산이 그리운 숲속 취음관(醉吟館)에서 저녁 요기를 때운 후
아주 특별한 송성가무(宋城歌舞)쇼를 구경하였다.
고품위 기획과 배치,
멋진 배경과 의상,
웅장한 음악과 음향
새로운 별천지를 보는 듯 신선하다.
‘송성천고정(宋城千古情)’이라는 주제로
농경시대, 송왕조의 번창, 전쟁의 극복,
양산박과 주영지의 연정, 평화와 발전 모습 등
연신 셔터를 눌러대고 감동 속에 헤매고 있었다.
2006년 세계엑스포박람회(世界休閑博覽會)가
더욱 멋질 것이라 기대해 보면서,
아름다움을 찾는 여독을 씻고
밤이 늦어 자리에 들었다.
3. 아름다운 서호와 영은사, 명차의 고장 -항주(杭州)
06.1.25
새벽 호텔의 기지개는
모닝콜이 오기 전에 깨어서
커텐을 열어 제낀다.
새벽같이 일어나 호텔조식 맛보고
나그네의 입에 선밥처럼 성글다.
아름다운 고장 항주를 찾아 나선다.
아침 안개 물 위로 깔고
검은 해오라기 한 마리
수면 위로 비상하니
거울이 깨어지며 물결쳐 온다.
한 폭의 멋진 그림이어라.
화선지에 담가 뜨면
녹색빛 나는 수양버들과 홍예교,
주인없는 빈 누각과 일없이 오가는 쪽배......
나는 한 켠에 낙관을 찍는다.
소동파(蘇東坡)가 그린 멋진 그림이
송나라 전성기 상징이었고
양산박(梁山泊)과 주영지의 연가(戀歌)가
수 많은 가슴을 따뜻하게 데워주었으며,
경국무후(傾國武后) 서태후(西太后)가
그렇게 그리던 아름다움일진대
소제(蘇堤) 일곱 개 다리를 건너 그 언덕 끝까지
잡은 손 놓지 않으려는 젊은이들이 어쩐지 그립다.
유람선 타고 나가 하늘에 빠져서
물결 가르는 소리가 가랑비처럼 정겹고
멀찌기 다가선 산능선 위에 오월동주(吳越同舟) 전설을 들으며
사방을 에둘러 내가 한 폭의 동양화 중심이 된다.
아, 아름다워라 !
아, 고마와라 !
아, 사랑하고파라 !
메모지에 걸쩍인 글이 시가 되고 그림이 된다.
천 육백 년의 고찰 영은사(靈隱寺)
지천서천(咫天西天) 글귀와 비래봉(飛來峰)과 숲이 만나
안국정토(安國靜土)처럼 향기롭다.
인도 혜리 스님이 세웠다는 선종(禪宗)의 본산 부도탑,
석회암 벽에 새긴 수많은 불상
회오리쳐 흐르는 냇물 신비로움을 꺼내 온다.
수십 미터나 되는 우람한 건물
팔대장만한 주변의 거목들
춘절(春節) 준비에 붉은 등이 분주하다.
입구 천황전(天皇殿)이 우릴 맞으며
사방 8미터 사신상 먼저 석조각 한 후
뒤에 천황전각 지었다니 놀랄 수 밖에......
중앙 배불뚝이 부처는 중생에게 웃음과 복을 나누어 주고
고마운 불자는 열심히 절을 한다.
대웅보전은 3층 건물 높이인데
전당은 맨바닥으로 신발 신고 들어가니
19.6 미터 본존대불(本尊大佛)이 아래로 내려다 보고 꾸짖고 있는데
그는 바로 우리나라 부처님이라 눈 설지 않았다.
귓속에 우리 몸이 다 들어 간다니
그리고 목조불(木彫佛)이라니 놀랍다.
배광판(背光板) 뒷편에는 석가모니불과
남해 바다 속에 수 많은 불상, 파도,
바위와 삼라만상(森羅萬象)을 흙으로 조상하였는데
그 규모 사방 20미터로 어마어마하여
국가문화재를 만지다가 시선에 압도당하고 말았다.
오백 나한전(羅漢殿)은 5백 나한을 청동으로 조상한 듯
요즈음 외국인 낯 익은 모습들로 기대보다 아쉽고
중앙에 4대 보살이 조상되어 있는데
신라 왕태자 구화산(九華山) 지장보살(地藏菩薩)이 되어 앉아
우리를 내려다 보고 있음에 어깨에 힘이 들어감은 애국심일까?
뇌봉관(雷奉館) 동파육(東坡肉) 점심이 향긋한데
전당강(錢唐江) 대교가 중국의 첫번 째 건축 다리로
기차와 버스가 함께 다니는 구조이고,
전당강가 절경은 나그네 사진 촬영지로 제격이고
육화탑(六和塔)에 올라 우람한 13층 목탑을 보면서
백두산 소나무를 뗏목으로 옮겨와 건립하였다니
그 6백년 세월이 설명해 주고 있었다.
역사는 말이 없지만 역사를 보는 이들은 감탄하는 말이 많다.
전당강 진주(珍珠) 전시장에서 여심(女心)을 읽고
가족의 얼굴 떠 올려 보았다.
다시 용정 차(茶)농원에서 차와 통치자 모택동의 관심
나무 뿌리 글씨를 보며
예술의 눈은 우릴 또 한 번 놀라게 한다.
상해로 다시 돌아오는 길
고속도롯가에 펼쳐지는 농가와 토지 정경을
귀찮도록 가이드에게 묻고
지겨운 버스에 내려 오성급 난생호텔에서 짐 챙기며
여로를 끝내고 있었다.
같이 온 가족들이 함께 어울려
울산 5학년 아이가 투어 마스코트가 되어
웃음과 행복감을 배달해 주었고
상해서 날아 부산으로 케이이 876편이 나비처럼 가볍다.
가슴에 사랑의 씨앗을 안고 맨 먼저 전화를 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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