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 궁궐을 해설해 보다
1. 기간 : 07.1.9-1.12 (3박 4일 33시간)
2. 연수명 : 전통문화(궁궐기행) 상급과정 직무연수 (한국청소년연맹 주관)
3. 연수장소 : 경기도 광명시 하안동 근로청소년복지관
4. 관람장소 : 경복궁, 고궁박물관, 국립민속박물관
5. 특별강의 : 서울시 문화재 전문위원 이연노, 경기대학교 교수 이재범,
성균관대학교 공학박사 백난영, 문화재 해설사 정태수
[특별 강의 내용]
지도층은 지도층다운 행동을 하라 (Noblesse Oblige)
/청소년연맹 차종태 총재
이스라엘 - 나를 따르라 (솔선수범, 6일전쟁 승리 - 재외 국민 귀국 대열)
영국 - 1,2차 대전 이튼스쿨 출신 약 2,000명 순직 - 대전 승리
미국 - 6.25 때 미군 장성급 아들 182명 전쟁 참여, 35명 사망, 자유 평화 지켜냄
로마제국 - 카르타고 한니발 장군 2차 포에니 전쟁에서 집정관 13명 사망 전쟁승리
삼국시대 - 황산벌 싸움 품일장군의 아들 관창(16세) 참전 전사 계기로 계백장군에 승리
중국 - 6.25 때 모택동 아들 전쟁터에 사망 - 시신도 거두지 말라
즉 국가의 지도층이 지도층답게 행동할 때 국민은 이를 존경하며 따른다.
도덕이 해이해 지면 싸움이 일어나고 이합집산하면 패망한다는 교훈을 알자
Ⅰ. 근대 조선궁궐의 변화 (덕수궁을 중심으로) : 2시간
/강사 서울시 문화재 전문위원 李演魯
덕수궁의 창건
덕수궁 - 태조 조선을 건국한후 한양을 천도하였으나 인심을 잃어 정종에게 임금자리를 내어주고
정종은 다시 개성으로 돌아가 소어하게 되는데 상왕을 위해 지은 궁을 덕수궁이라 하였다.
즉 태상궁을 덕수궁, 부를 숭녕부, 태상전, 궁호의 명칭으로 덕수궁 사용 (궁궐의 명칭이 아님)
고종이 순종에게 자리를 양위한 후 이므로 상황이 같아서 덕수궁이라 함
덕수궁의 위치는 정릉동(정동), 정릉-계비 강씨 릉이 있었고 흥천사를 세우고 범종을 울리게 하였으나
(흥천사 종 : 세조8년 주조, 현재 덕수궁 안에 있음) 태종 때 정릉이 양주 사하리로 옮겨지고 흥천사 폐함)
덕수궁 - 왕궁이 아니고 세조의 왕세자였던 덕종의 아들 월산대군의 사저이었으나
임진왜란 후 선조가 의주에서 돌아와 보니 경복 · 창덕 · 창경궁이 소실되어
월산대군의 사저에서 시어소로 삼고 정릉동 행궁이라하였다.
행궁에서 궁재건을 꾀하지만 선조는 창덕궁을 재건하는 준공도 보지 못하고
1608 즉조당에서 왕위에 등극하였고 7년동안 왕궁으로 사용 -
창덕궁 완공 후에도 단종과 연산군이 폐위된 창덕궁으로 옮겨가길 꺼려함
1611년 광해군 3년에 창덕궁으로 옮겨가면서 행궁을 경운궁이라 칭함
경운궁 - 당쟁으로 인목대비 유폐 및 영창대군 사살 서궁으로 격하 퇴락함
1623 서인이 선조의 손자 능양군을 옹립 인조가 등극하자 인목대비와 더불어 창덕궁으로 옮겨가고
원 주인에게 부지를 돌려줌
1895. 8. 20 고종이 일본 낭인이 민비를 시해한 을미사변후
1896. 2. 11 아관파천 후 일본의 내정간섭을 벗어나기 위한 몸부림이었다.
즉 세계 열강의 공사관들이 밀집해 있는 정동 경운궁으로 옮기고
1897. 2. 20. 2년만에 경운궁으로 들어와 살게 되었다.
1897. 10. 2. 황제에 오르면서 즉조당을 태극전으로 이름을 바꾸고
1898. 2월 중화전을 건립한 후 정전의 역할을 다하게 되었다.
궁전의 삼문은 정문은 인화문, 동문은 대안문,을 만들었다.
편전은 대유재, 청목재, 공묵헌 등이 사용되었고 침전은 만화당을 뜯어 지어 함녕전으로 바꾸어 사용하였다.
혼전으로는 명성황후 장례가 끝난 뒤 우주를 우재 베풀 혼전으로 경소전을 경효전으로 혼전의 역할을 하였으며
문성, 홍릉, 경효 시호 능호, 전호를 짓고 사용하였으며
1897. 10. 12에 대한제국을 선포하고 황제에 올랐다.
어진은 선원전에서 집옥재로 다시 보문각으로 옮겨져 보존하였다.
대비전 홍태후는 수인당에, 정비는 아니지만 정비 역할을 한 엄비는 영복당에 기거
양관 건물로 구성헌, 수옥헌, 환벽정, 정관헌 , 돈덕전, 석조전 등이 세워졌다.
중화전 영건과 화재, 그리고 재건축
1900년 중화전 영건 계획 추진 하여 1년여만에 건립하였고 인화문 조원문을 신축하여 3문형태를 만들었으나
협소하여 이웃 공사관이 옮겨가는 일이 있었다
1804 함녕전을 수리하다 중화전, 석어당 즉조당 등 화재로 소실되고 다시 경운궁을 중건하게 되었다.
1905 을사늑약이 체결되고 11월에 다시 중화전이 중화문, 광명문, 즉조당, 준명전, 석어당, 함년전, 대한문이
이때 지어진 건물들이다.
헐리고 옮겨지는 경운궁
1907 헤이그 밀사사건으로 고종이 물러나고 순종이 즉위하면서 궁호를 덕수로하고 돈덕전에서 황제즉위식을 가짐 1907 순종은 창덕궁으로 거쳐를 옮기고 경운궁은 고종을 억류하는 궁이 되고 말았다.
석조전,- 영국인 브라운에 의거 1900 공사시작 1909 완공 - 고종의 외교관 접견장소로 쓰임
1931 석조전을 미술관으로 공원으로 동물원 1960년대 담장 허물고 도로확장
궁궐의 역사
/ 경기대학교 이재범 교수
1. 경복궁
정도전의 조선경국전 재상정치 희망
풍수지리상 배산(북악)임수(한강, 청계천)
좌청룡(동대문 창신동 언덕-약함), 우백호(인왕산-강함)
1392 조선 건국 1394 한양도읍
신의왕후 한씨- 6형제(방우, 방과, 방의, 방간, 방원, 방연),
계비 新川康씨- 2명(방번, 방석) - 11세 방석 세자 책봉
1398 이방원 정도전 살해 세자 방석 유배뒤 살해(1차 왕자의 난)
신덕왕후 강씨 릉 -정릉(현 정동)→동대문밖 양주로 이장-그 돌을 청계천 석축돌로 사용함
조선의 王權은 臣權에 의해 위축당함
세조의 계유정란 - 1453 10.10 왕권에 저항하는 臣權 탄압 - 김종서 - 順天金氏 몰살,
한명회에 의한 살생부 요인암살 제거
1455 윤 6월 세조 왕위찬탈 즉위
사육신, 생육신
경회루와 연산군 - 興淸, 運平 기생, 龍舟
중종 기묘사화 - 1519 조광조 道學政治 - 走肖爲王 역모죄 사림파 몰아냄
경복궁의 재건과 화재 - 고종 2년 1865 궁궐공사 1867 근정전 낙성 - 7225칸
1868.7.2 경복궁 이어
1873 12월 자경전(대비전) 불로 재건
1876 경복궁 전소 - 창덕궁으로 이어
1885 1월 경복궁으로 환어
1888 7월 경복궁 영건공사 완료
임진왜란과 경복궁 소각 -
건청궁과 을미사변 - 1873 건청궁 건립(고종 10년) -
1894 잠시 창덕궁으로 갔다가 한 달만에 건청궁으로 임어
1895 (고종32년) ‘여우사냥’ 을미사변
(곤녕합에서 명성황후 살해후 시신을 녹산에 불태우고 뼈를 연못에 버림)
1929 대규모 박람회 개최(건청궁 헐어냄)
경복궁 근정문 즉위왕 : 2정종, 4세종. 6단종, 7세조, 9성종, 11중종, 13명종, 14선조 (8분)
2. 창덕궁
연산군과 흥청망청
1504 9.1 중종반정 -성종 공혜왕후 아들 진성대군 즉위 - 연산군 강화도로 유배
인조반정과 돈화문 - 1623 (광해군 14)-반정 주도세력(서인)-능양군(인조) 등극
영창대군을 죽이고 계모 인목대비를 서궁에 유폐한 빌미로 삼아 성공
인조반정의 논공행상에 불만을 품은 이괄의 반란 - 인조 공주로 피신-이괄 내부 반란 주살됨 20일만에 평정
인현왕후 민씨 - 숙종의 계비, 아이를 생산하지 못함. 희빈장씨의 모함을 받아 폐서인이 됨
임오군란과 명성황후-1882 임오군란 - 청군 끌여들여 대원군 청나라 보정부로 납치 유배생활,
민비 수색을 부대부인이 궁녀복색한 명성황후를 자기 사인교로 피난케함
갑신정변 - 개화파 인사들이 대조전의 고종과 명성황후를 경우궁으로 모셔와 3일천하를 이룸
- 김옥균 등 일본 망명
1907 고종의 양위로 순종이 경운궁 돈덕전에서 즉위 재위 4년만에 한일합방
1926. 4.25 창덕궁 대조전에서 순종 승하 - 순종 장례 6.10만세 사건
흥복헌과 마지막 어전회의 -
1910. 8. 27 총리대신 이완용, 내부대신 박제순, 농상공부대신 조중응, 탁지부대신 고영희, 법무대신 이재곤,
종친대표 이희, 중추원의장 김윤식, 궁내부대신 민병석, 시종원경 윤덕영, 시종무관장 이병무 참석,
통감 데라우찌의 조종대로 이완용이 합방 강요 - 김윤식 쫓아내고 옥새 날인
3. 창경궁
태조때 별궁, 세종때 수강궁, 성종때 창경궁, 임진왜란때 전소, 광해군때 재건
세종때 태종과 원경왕후의 거처로 이곳에서 승하
수강궁과 단종 - 세조가 수강궁에 단종 유폐
1749 영조 사도세자 왕세자로 책봉 건강상의 이유로 세자가 대리청정 -남인, 소론, 소북이 정권쟁취전
-노론과 정순왕후 김씨와 숙의 문씨가 세자와 영조사이 이간
1761 관서지반 유람 발각 세자 뒤주속에 갖혀 사망
희빈 장씨와 취선당
4 경운궁
인목대비와 즉조당
광해군 5년 영창대군 폐출, 김제남 사사 10년 인목대비 유폐 서궁으로 격하-반정으로 인조 즉조당에서 즉위
김홍륙과 독다사건 - 김홍륙 커피에 독약타서 고종에게 전함 발각되어 사형
대한제국- 1897 8016 연호를 광무로, 원구단 축조, 대한제국 선포 황제즉위식 거행
광무8년 1904 4014 함년전 아궁이서 화재 발생 전각 소실
경운궁 중건 도감 설치, 대안문을 대한문으로 개칭 경운궁 중건
1907 8.27 석조전 건립,1916 덕혜옹주의 교육을 위해 준명당에 유치원 개설,
1907 헤이그 밀사사건으로 을사늑약이 체결되고 고종 강제 퇴위
1947 석조전에서 미소공동위원회 개최 -1986 국립현대미술관으로 사용
궁궐 조경
/ (성균관대학교 공학박사, 문화재 수리 기술자) 백난영 박사
1. 한국정원의 대표-궁궐 정원
2. 한국 정원에 깃든 사상
토착신앙과 산악숭배사상
도교사상
신선사상
은일사상
음양오행사상
풍수지리사상
유교사상
불교사상
조선시대 궁궐
입지 서양 - 비례 대칭
조선 비대칭 자연미
배산임수 좌청룡 우백호,
方池
方島
물 혼입
자일 - 물을 자연스레 흘러들게 함(열상) - 향원지
현폭 - 요란스레 소리내며 떨어지게 함 - 안압지
잠류 - 지하로 스며들어 솟아나게함 - 경회루
돌과 담장
교태전 후원 화계 - 아미산원,
자경전 꽃 담과 십장생 굴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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