따뜻한 만남 1/국내외여행

동남아 불교유적을 돌아보고

황와 2010. 5. 24. 23:14

 

 지난 1월30일부터 2월 4일까지 우리 선생님 일행이 동남아 문화의 알맹이인 캄보디아의 앙코르 유적지와 타일랜드 왕궁과 사원을 둘러보고 왔었다. 그 걸 여러분에게 본대로 느낀대로 기록하였기에 읽고 공부에 도움되도록 해 주기 바랍니다.

 

 

 / 교장 이동춘

 

  - 대단한 遺蹟은 帝王들의 暴政으로 인한 百姓들의 殘酷史를 보는 듯 그 遺蹟으로 깊은 歷史와 文化 民族의 矜持를 가지고 後人들이 觀光 收益을 얻는다는 아이러니를 본다. 그리고 홀로 幸福感에 젖은 國民들의 모습은 너무나 참담하였다. 마치 눈감으면 아무것도 안 보이듯이 ......


1. 방문 목적 : 동남아시아의 태국과 캄보디아 생활 모습을 보고 중요한 유적인 앙코르 와트와 방콕의 사원을

                     답사해 보고 그 나라의 역사와 문화 인류사를 우리 도천 교육의 자원화하도록 한다.

2. 여행기간 : 2005.1.30 - 2.4 (5박 6일)

3. 참가인원 : 도천초등학교 교원 16명

4. 방문국가 : 캄보디아, 타일랜드

5. 방문비용 : 1인당 약 94만원 내외(여행사 : 능공항공여행사)

6. 방문코스

   1일째 : 05.1.30. 17:30 진해 출발 -마산-창원-김해공항(09:25 출국) (1박)

   2일째 : 05.1.31 12:40 Bangkok Don Muong 공항 도착 - Aran(태국 국경마을) -캄보디아 입국 - Poi Pet(캄보디아 국경마을) - Sis Phon - Siem Reap - Tulle Sap 호수 - Siem Reap City Royal Hotel호텔 (2박)

  3일째 : 05.2.1. 07:00 호텔 출발 - Angkor 유적 (Angkor Thom (Bayon 사원, - Pimi Anakas궁, - 왕궁터) - Taprom 사원 - Angkor Wat 사원) - Sis Phon - Poi Pet Grand Diamond Hotel (3박)

  4일째 : 05.2.2. 07:00 호텔 출발 - 캄보디아 국경 통과 - 태국 Aran - Bangkok시 RCA街 (젊은이의 거리) - Central World Plaza(백화점) - Toyo Ichibun (동양 1번) 석식 - 번화가 짝퉁 거리 - Grand Tower Inn (4박)

  5일째 : 05.2.3. 09:00 호텔 출발 - 왕궁 관람 (Sappier 사원-왕궁 집무실-예식행사관-장례예식관) - 선상 관광 (왕실 전용선 보관소- 수상 가옥 - 수상  상인- 물 고기 밥 주기) -새벽 사원 - 와불 사원 - 태국 특산품 매장 - Lumpini Park - Lumpini 초등학교 - River City 선상 석식 - 마사지 센타 

 6일째 : 05. 2. 4. 02;30 Don Muong 공항 출발 - 09:00 김해 공항 도착 - 창원 - 마산 - 진해

 

7. 안내인 : 

 태국 현지 안내인 :  한국인 최승호

 캄보디아 안내인 : 한국인 이동근

 태국 왕궁 안내인 : 태국인 말라위

 태국 관광청 관리인 : 태국인 째키   


8. 보고 들은 일


 가. 캄보디아


  김해 국제 공항에서 밤 비행기로 동남아 여행길에 올랐다. 밤이라서 비행기 타자마자 잠을 청했으나 잠이 오지 않아서 뜬눈으로 기내식을 먹고 시차 2시간이 나는 태국 Don Muong 공항에 현지 시각 밤 12:40분에 공항에 내렸다. 후텁지근한 날씨가 동남아 기후를 연상하여 입고 온 겨울 내의를 화장실에서 벗고 여름옷으로 갈아입었다.


  내리자마자 현지 안내인 최승호씨를 만나 2층 관광버스를 타고 바로 여행코스인 캄보디아 국경마을로 직행하였다. 3시간의 밤길을 무작정 달려 태국 국경의 Aran에 도착하여 Mermaid Hotel 216호실에서 약 3시간 동안 잠자고 09:00경에 캄보디아 국경을 넘는 비자 발급을 위하여 사진 1장과 여권으로 캄보디아 국경을 넘을 수 있었다.


  태국과 캄보디아 국경마을은 서로 쉽게 오가는 사람들이 많았는데 특히 양 국경 도시는 시내(국경선)를 사이에 두고 이어져 있는데 이 곳에서 못살고 어려운 사람들의 표본을 보는 듯하여 충격이 컸다. 나무로 만든 리어카를 끌고 다니며 사람과 짐을 나르는 인력거 택시, 사람을 실기 위해 한없이 기다리는 오토바이 택시 기사들의 눈길, 맨발로 걸어다니며 동냥하는 걸인, 아이를 업은 채 버스 가까이에 우르르 다가와 ?원 달러, 천 원? 을 외치며 옷을 잡아끄는 아이들, 손발이 잘린 구걸꾼, 광경 모두 처절하나 가이드의 도난 조심, 동냥하는 사람 조심하라는 경고에 아무런 도움도 주지 못한 채 차를 올라야하였다.

 

  캄보디아의 국경도시 Poi Pet으로 이동하여 현지 교민 가이드인 이동근씨의 안내로 캄보디아 소속 24인승 관광버스에 올라 진흙 여행이 시작되었다. 관광버스는 우리나라 제품 아시아 버스였으며 중고 자동차인 관계로 부품이 떨어지고 에어컨이 시원찮아 억지로 덥덥한 가운데 ?즐거운 여행은 아시아 자동차로?라는 떼어버리지 못한 글씨를 보며 비포장 길을 붉은 먼지를 내뿜으며 무려 5시간동안 체증을 내리며 달렸다.

 

  차창 밖의 풍경은 전형적인 사바나 기후의 모습을 담고 있었고, 지평선을 잇는 광활한 토지에는 수확하고 남은 벼 그루터기만 온 들판을 누렇게 뒤덮고 있으며, 간간이 불로 태워져 시커멓게 그을러 거름으로 변하는데 황토 먼지가 길가 집과 나무를 붉게 덮었고 오가는 자동차나 오토바이 자전거에는 한껏 사람을 싣고 다니는데 먼지를 안 마시려고 수건을 덮어쓴 채 눈만 내놓고 부지런히 오가고 있으나 어려운 생활은 늘 주변에 있었다.


  집들은 길가에 작은 나뭇가지나 야자 잎으로 얽어 땅위에서 조금 띄워 지었는데 바람이 많이 없다는 게 다행이었고, 기우뚱 스러져 가는 집도 많았다. 집안에는 큰 항아리에 빗물을 담아 쓰고 있고 진흙탕 물로 목욕과 빨래하는 모습이 처절하였다. 물소 종류의 허연 소가 들판을 오가기도 하고 닭과 개, 돼지가 우리 없이 집 주변에서 자유롭게 노닐고 있는데 아이들은 뻘 밭에서 시커먼 먼지를 마시며 뒹굴고, 마루 밑에 매단 그물에 누워 놀고 있었다. 작은 물구덩이마다 누런 뻘 물이 갇혀 있는데 그 속에 초망을 던지며 고기를 잡는 모습이 아이러니하고 뻔한 결과를 보는 듯하여 씁쓸하였다.


 가는 길에 간간이 학교가 보이는데 교복은 흰 상의와 푸르고 검은 바지를 입고 다니나 학교의 모습은 운동장이 작은 마당 수준이고 교사도 길게 ―자 집을 지어져 있고 아이들이 나무 밑에 놀고 있는데 푸른 나무가 교정에 적다는 것도 매우 더운 밀림 지방에서 생각 밖의 환경이고 삭막하였다. 이곳의 아이들은 1년에 3월부터 5월까지 여름방학을 한다고 하는데 학교 등교는 3부제로 아침, 중간, 오후에 등교하였다가 오후 6시경에 학교를 파한다고 하였다. 그리고 학교 교육제도는 우리나라와 같이 6-3-3제도로 운영하나 국민의 약 47%가 문맹자라고 하였다. 


 이 나라의 전기는 100% 이웃나라에서 수입하기 때문에 매우 전기세가 비싸서 전기 없이 지내는 경우가 더 많고, 간선 도로를 제외하면 모두 비포장 도로이며, 물은 어디서나 파면 잘 나오는데 석회성분이 많아 음료에 부적합하여 주로 식수를 사 먹는다고 하였다.


  이 나라의 국왕은 얼마 전까지 시아누크 공 이었으나 지금은 51세된 그의 6째 아들 노르돔 시아모니 국왕이 종신제로 연계하였고 가정과 관공서에는 시아누크 국왕의 사진이 아직도 걸려있다고 하였다. 그리고 수상은 힘센 훈센 수상이 장기 집권하고 있고 입헌 군주국이며 국왕 사진에게 손가락질을 하는 것과 사람의 머리를 만지면 영혼이 달아난다는 미신이 있으므로 우리처럼 아이들 머리를 쓰다듬는 일에 늘 조심해야한다고 하였다.


  기후는 9-1월은 건기, 3-5월은 우기이고, 자동차는 번호판이 없는 것도 자유스럽게 운행하는 중이었으며, 운전석은 좌측에 있고 입헌 군주국들이 대체로 오른쪽에 운전석이 있음에 비하여 예외였다. 그리고 우리나라 아이들처럼 구슬치기하는 아이들도 발견되었고, 이 나라는 벽돌집을 가진 자가 부유층이며, 화장실 보급률이 낮아서  6 가구당 1집 밖에 없다고 하니 하천과 수질 오염을 눈에 보는 듯 하였다.


  이 나라의 역사는 매우 오래 전에 캄보디아 왕국이 왕성한 11세기에는 이웃나라 인도차이나 반도 일대에 대 왕국을 건설하였으며 그 문화를 파급하여 지금 사용하는 태국문자와 아라비아문자가 캄보디아 문자에서 유래하였다고 분류하고 있다고 하였다. 이 나라의 번영의 역사가 지금 우리가 가고자 하는 Angkor 유적지를 만들게 되었고 캄보디아 국민의 민족 자긍심이라고 하였다.

 

   이 나라는 많은 왕족간의 정권 다툼 속에 피폐하여 잘 살아왔던 과거가 묻히고 지금은 최대의 빈국으로 된 것이나 폴포트 정권이 다른 외세 권력에 의해서가 아니라 자기 나라 국민의 약 250만 명을 악질적이고 잔혹하게 죽인 이야기를 들으며 그래도 저항하지 못한 이 나라 국민의 무지함과 어리석음에 비애를 느끼며 국가 지도자가 더 없이 중요하다는 걸 새삼 느꼈다.


  이 나라의 국민 투표권은 18-25세까지만 법으로 인정하고 있다는데 그 이유는 나이가 들수록 현정권을 싫어하기 때문이라고 하니 매우 웃기는 법도 있구나하는 생각이 들었고 건물의 계단은 반드시 홀수로 설치되고 집이나 건물마다 조상신을 모시는 제단이 설치되어 매일 닦고 치성을 드리고 있으며, 한달 생활비는 한국 돈으로 약 4만 정도로 생활하고 있으며 공무원 봉급도 그 정도 수준으로 지급된다고 하였다.


  화폐제도는 ?리엘? 이라는 호수의 물고기 이름과 같은 말을 쓰고 있으며 우리 돈으로 약 2500원의 가치가 있다고 하나 리엘 단위 이외에는 화폐가 없어 작은 물건을 살 때는 여러 개를 한꺼번에 사서 돈의 가치에 맞추어야 하므로 자국의 화폐보다 오히려 달러나 한국 돈을 더 선호한다고 하였다. 음식의 대부분은 불교국가이므로 육식을 하지 않기에 물고기에서 80% 단백질을 얻고있고 이 나라 국민은 세계에서 첫째로 행복감이 가장 높은 나라라고 하여 귀와 눈을 막으면 스스로 행복해 질 수밖에 없고 숙명처럼 생존하는 재미로 사는 나라라는 걸 느꼈다.

 

  Poi Pet과 Siem Reap사이 147km의 중간쯤인 Sis Phon의 들판의 교민이 운영하는 종로식당에서 한식 점심을 먹고 식당에서 한 병에 2달러 짜리 물을 사먹어야 하는 고충도 겪으며, 캄보디아 제3의 도시인 Siem Reap시 City Royal Hotel에 여장을 풀고 남은 자투리 시간을 이용하여 큰 호수란 뜻을 가진 Tulle Sap을 관광하였다.


  가는 길에는 수상 촌의 가난에 찌들린 빈곤을 보고 오토바이가 사람과 같이 방안에서 자리잡고 퀴퀴한 냄새나는 진흙창 호수 물에 수상보트를 타고 한국인이 경영하는 수상 카페 Tara Boat에서 다라이를 타고 노는 아이들과 하늘에서 떨어지다 바위에 걸려 버린 해를 보며 다시 Siem Reap 호텔로 돌아와 한국인 식당에서 민속 공연을 보면서 야채 쌈이 푸짐한 저녁 식사를 마치고 과일가게에서 City Royal Hotel에서 몸을 눕혔다.


  2월1일 새벽 눈이 뜨자마자 06:00 호텔 식사를 마치고 07:30에 Angkor 유적지 관람을 위하여 출발하여 07:40에 유적지 도착하여 입장료가 우리 돈으로 20,000원 정도를 내고 입장하였다. 처음에는 ?그저 그렇겠지?하는 마음으로 출발하였으나 차츰 차츰 경이로움이 더해 갔다. 나는 비디오 카메라와 디지털 카메라 두 개를 메고 부지런히 찍고자 철저히 준비하였었다. 원래 이 유적은 20세기초 캄보디아가 프랑스 식민지였을 때 프랑스 사람 앙리 무어가 처음 발견하여 세계에 알려진 것으로 발견한 후 약 3년 간 나무를 베어내고 정리한 후에 공개되었다고 하였다.


  앙코르 유적은 크게 3지역으로 나누는데 왕궁이었던 Angkor Thom과 ,왕의 어머니를 위해 만든 Taprom 사원, 그리고 왕의 사원이었던 Angkor Wat로 구성되어 있고 모두 자야 바라만 왕조인 AD 800-1100년대에 건립되었다고 하였고 세계문화 유산에 등재된 인류의 보물이라고 하였다.

 

   Angkor Thom을 보기 위해 Bayon 사원의 남문을 들어서기에 앞서 수변에 다리를 놓고 다리 난간이 한쪽에 善神 54명과 다른 쪽에 惡神 54명이 양쪽으로 줄다리기하는 모습의 다리를 건너 힌두교 양식의 조각상 위에 4상의 불두상을 새긴 문을 지나 아름드리 나무가 자라는 Bayon 사원을 들어섰다. 참배로를 지나 우뚝 선 정방형의 부지에는 사방 회랑 벽면에 글씨가 아닌 아무나 보고 알 수 있는 그림을 부조로 새겨 이 왕국의 역사와 전쟁사를 알 수 있도록 새겨두고 있으며 사원 내부에는 약 54개의 4 불 두상을 가지고 있었으나 현재는 37개만 남아있다고 하는데 중앙 돔은 더 높고 크며 중앙에는 부처 불상이 안치되었다고 하였다. 지금은 부처 앞에 향을 꽂은 늙은 할머니 보살이 시주 놓고 기도하라고 재촉하고 있었다.


  그 규모에 놀라고 각 불상마다의 다양한 미소에 매료되면서 신나게 촬영한 다음 다른 곳으로 이동하였다. 주변에 널 부러져 파손된 석재와 부처 상 파편을 보면서 그리고 정 소리내면서 복원중인 왕궁을 보고 위대한 유산의 복원이 얼마나 더디고 어려운지를 짐작하면서 이를 처음 세울 당시는 얼마나 많은 인력들이 소모되었는지를 알 것 같았고 이 인력의 소모 규모가 인류의의 문화로 되돌아오는가를 생각케 하였다.,


  왕과 신하가 다닌 길이 다른 참배로를 왕이 다닌 길로 지나 욕탕을 보고 현재 프랑스 기술자들이 복원 공사중인 석공들의 돌 쪼는 소리를 들으며 바로 옆에 있는 Pimi Anakas 궁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왕이 뱀과 동침 전설이 있는 70도 계단이 있는 피라미드 형식의 약 40M 높이의 제단 위를 기어오르는 만용을 부려 어지러움을 느끼면서 정상에 올라 승리자처럼 손을 흔든 내 모습이 스스로 생각해도 가관이었다.


  동쪽의 작은 문을 지나 왕궁이 있었다는 터에는 성터 위에 왕궁이 있은 좀 넓은 정방형 돌 단이 있어 좌우 약 500여 미터 제단과 문루가 있었던 모습을 짐작할 수 있었고 제단 아래에는 병사들과 코끼리를 탄 모습들이 부조되어 당시 왕의 권위를 보는 듯 하였다. 앞뜰에는 넓은 마당에 많은 군사들을 열병하는 듯 펼쳐져 있으며 그 앞쪽에 부서진 왕궁 문들은 복원 수리 중에 있었다.

 

  다음은 Taprom 사원을 보았다  이 사원은 자야 바라만 7세 왕이 그의 어머니를 위해 건립하였다고 하는데 현재 자연에 인공이 장엄하게 파괴되는 모습을 바라볼 수 있는 곳이라 그대로 보존된다고 하였고 사원을 타고 자라는 나무는 매년 성장 억제제 주사를 맞고 유지한다고 하였다. 승리의 문을 지나 숲속로를 걸으니 캄보디아 민속악사들이 아리랑을 연주하면서 동정을 바라고 있었고 외국에서 아리랑 멜로디가 매우 동질감을 느끼게 하였다. 그리고 이억나무를 보며 800년 수령에 약 50M 높이로 치솟아 있는 모습을 보았고 흑단나무를 보며 설명 듣다가 우연히 소 떼가 유유히 지나는 풍경을 목격하고 마치 힌두교를 숭상하는 인도 모습을 연상하였다.


 사원 회랑 입구를 들어서자마자 Spong 나무가 바위를 감싸고 자라고 있으며 유적이 나무 뿌리에 걸려 옆으로 기울어져 가는 모습을 보고 Spong나무를 맹고보리수 나무가 휘감고 자라는 모습이 자연의 위대함을 보고 있었다. 성벽을 기어오르는 Snake Tree와 어머니의 방에  뚫린 구멍마다 보석이 박혔다는 보석방, 가슴이 퉁퉁 울리는 공명방, 파괴되어 가는 사원의 미로를 둘러 나오며 인공이 자연에 의해 엄청나게 파괴되는 현장을 우리는 충격적으로 보았다.

 

  다음은 Angkor Wat 사원으로 버스를 타고 이동하였다. 이동하는 도중에 사원을 둘러싼 연못가를 빙 둘러서 여성 인부들이 연못의 잡초를 걷어내고 있었는데 약 50-60명은 족히 되어 보였다. 정문은 동쪽으로 나 있는데 출입 통로를 거쳐 정문으로 입장하였는데 정문도 중앙문과 양옆으로 약 50m 정도 연결된 회랑과 높다란 돔이 있는 건물이 이어져 있었고 정문을 통과하면 참배로가 약 200m 가량 중앙으로 뻗어져 그 길로 걸어가니 또 양쪽으로 건축물이 서 있는데 왼쪽 건물은 지금 수리 중에 있었고 그 앞쪽으로는 큰 연못으로 조경이 되어 있었다.


  사원의 본관인 참배로 끝은 약 3m정도 높은 계단을 통해서 들어가게 되는데 본관을 포함한 사원은 정방형 회랑을 만들었고 그 중앙에 약 40m 높이의 피라미드처럼 높은 약 70도 계단을 올라가 그 위에 정방형의 회랑이 또 있고 그 가운데에 중앙 돔이 우뚝하게 서로 연결되어 약20m가량 첨탑이 솟아있는 매우 장엄하고 규모가 대단한 사원으로 11세기에 수리야 바라만 2세 왕이 37년 간 건축한 미완성한 건축이라고 하니 놀라왔다.


  특히 이 건축물이 약 1,000년 간 지나면서도 튼튼한 모습을 그대로 간직할 수 있었다는 것과 특히 암반에 쌓여진 것이 아니고 약 67m 깊이를 파고 다져서 돌을 쌓아 지진이나 지각의 흔들림에 견디도록 건축되었다니 우리나라처럼 암석이 많은 곳이 아니고 주변 몇 백 리 밖에서 옮겨와서 진흙 위에 이렇게 거대한 바위산을 쌓아놓고 지금까지 큰 틈이 생기지 않는 기술의 신비함은 경이로움 그 자체이었다.  


  출입문을 통과면 1층 회랑에는 동, 남, 서 벽면에 이 왕국의 전쟁사가 석조로 부조되어 있는데 가이드의 절절한 설명이 인상적이었고 그 규모가 길이 약 200m 3단으로 높이는 약4m 가량 그려져 있고 기둥마다 부조가 작품으로 박혀있으며 천장도 연꽃무늬로 조각되어 있어 지나는 길목이 책을 읽고 지나는 것처럼 사설적이다. 그러나 동북면 남북면 북쪽면 모두 그리지 못하여 미완성 건축이라고 한다.


  회랑을 지나 중앙 피라밑 같은 계단을 오를 때는 현기증이 나는 걸 참고 먼저 기어올라 약 40m 높이 위에 서 다시 4방 회랑을 둘러보고 중앙 돔 아래 방에서 노승이 부처 상을 두고 기도하고 있어서 참배하고 사진 촬영은 금하여 되돌아 나왔다. 다시 급경사 계단을 내려올 때는 가느다란 쇠 난간에 뒤를 돌아서서 조심스레 현기증을 참으며 내려왔다. 정말 대단한 유적이었고 보고 가는 것이 소중한 체험일 수밖에 없었다.

 

  오전 내내 약 5시간을 앙코르 유적지에서 지내면서 정말 그 규모나 정교함 예술성 그 기술, 그리고 숨겨진 인력 동원에 대한 秘史까지 추측하면서 나는 놀라고 또 놀랐다. 참 좋은 인류 문화사를 보는 듯 하였다. 결국 작년에 둘러본 중국의 만리장성과 같이 어느 나라 어느 王祖나 수많은 백성과 인력이 동원되어 오랜 기간동안 이룬 대공사들이 인간 殘酷史들과 합쳐 이렇게 인류문화사를 빛내고 관광자원이 되는구나 하는 감회를 가졌다.

 

  다음은 우리 교민이 경영하는 상황버섯 전시장을 둘러보고 소나무 식당에서 맛있는 쌈밥으로 풍성한 점심식사를 마친 후 태국으로 향하는 우리 전세 버스에 몸을 실었다. 모두다 피곤과 식곤증으로 잠에 떨어졌으나 나는 주변에 펼쳐지는 풍경을 담고자 열심히 보고 또 보면서 잠을 쫓았다.


  캄보디아와 태국은 이웃해 있으면서도 서로 약 170년 간 앙숙 관계로 지냈고 지금도 국민 감정은 그리 좋은 관계가 아니라서 한 태국의 여배우가 어떤 프로그램에 나와서 Angkor Wat가 태국의 유적이 아닌가 생각한다고 말했다가 캄보디아 국민의 거센 반발로 태국대사관이 불타고 태국의 육해공군이 총동원되는 등 전쟁 일보 직전까지 가는 사건이 몇 년 전에 벌어진 일이 있다고 하였다. 그 만큼 살기는 어렵지만 국민의 정서나 자긍심은 대단한 민족이라고 하였다.


 그리고 이 넓은 벌판에 벼 재배는 기계화되지 않았기에 물에 뜨는 볍씨를 뿌려 파종하고 스스로 싹이 나서 발근하여 땅에 뿌리를 내리면 그대로 물만 대어 주었다가 익으면 이삭의 목만 자르고 볏짚이 마르면 불을 질러 태우고 다시 2모작을 뿌리는 방식으로 재배한다고 한다, 너무 많이 수확할 필요가 없으니까 2모작으로 끝낸다고 한다. 뒤에 안 일이지만 태국은 3모작까지 한다고 하니 그게 국력의 수준이 아닌가 싶었다.

 

 신나게 붉은 먼짓길을 되돌아 나오다 쉬기 위해 Sis Phon 휴게소를 들러 화장실을 이용하였는데 기사가 자동차를 뜯고 있기에 한참 시달려도 되지 않는 듯 그대로 연결하여 에어컨 고장이 난 채로 찜통 운행하였다. 가다보니 더워서 반대편 차가 오면 닫고 먼지가 걷히면 열고 하는 창문 당번이 되었다가 다시 연락받고 온 회사 버스로 바꿔 타고 예상보다 늦게 국경마을 Poi Pet에 도착하여 Grand Diamond Hotel 917호에서 피곤한 하루를 뉘었다.

 


  나 태국


   2월 2일 새벽에 일어나 여행기록을 메모하고 호텔 조식을 마친 후 호텔앞 도로를 나와 보니 마치 한 줄기 인파가 모조리 태국 쪽을 향해서 밀어가고 있었고 손에는 통행증이라는 종이쪽지가 들려 있었다. 조금 후 그 인파는 다시 캄보디아 쪽으로 이어졌는데 그들의 어깨와 수레에는 수많은 물건들이 실려서 캄보디아로 향하고 있었다. 채소 과일을 비롯하여 생필품들이 이곳을 통해서 보급되고 국경 무역이 이루어지고 있었다. 그 오가는 군중 속에는 팔다리가 성치 못하거나 괴기 병으로 얼굴이 이상하게 일그러진 사람도 휠체어에 실려 아이 손에 끌려가는 모습을 보면서 저것도 생존을 위한 사업임을 느꼈다.

 

  7시에 국경을 통과한 후 또다시 수많은 인파 속을 헤쳐 아이들의 손 내미는 시련을 겪고 Aran에서 태국 관광의 길을 나섰다.  

  태국의 가이드는 최승호가 다시 맡아 안내하였는데 태국애서는 감기와 물에 주의하고 생수만 사용하도록 해 주고 태국은 교통 건널목의 건너는 신호가 없음으로 주의해야 하고 도로는 일본이 고가도로 건설 후 40년 간 유료도로로 사용료를 징수할 수 있도록 하였다고 하고 우리나라 기술로 건설한 이명박 도로도 있다고 하였다.


  자동차 찻값은 대체로 싸서 일본차, 독일차, 한국차도 들어와 있는데 우리나라 찻값과 비슷하다고 하였다. 차량 통행은 오른쪽 통행이며 복잡하고 특히 러시아워에는 몇 시간씩 막히나 신호체계가 우리와 달리 한 쪽 차를 다 보낸 다음 다른 쪽 차를 보내므로 조금 오래 기다리지만 한번 빠지면 많이 지체하지 않는다고 하였다. 특히 2층 관광 전용버스를 채용하여 관광자원화에 성공하고 있다고 하였다.


   Aran에서 2층 버스에 갈아타고 오면서 08:00시가 되자 군부대와 학교에서는 전교생 조회를 하면서 국기 게양 식을 엄숙하게 실시하는 모습을 보며 1970년대 우리나라 모습을 보는 듯 하였고 도로변 정경을 통해서 캄보디아보다 푸른 색깔이 더 짙어지는 풍광만큼 국민소득이 높아진다는 느낌을 받았다. 흰 껍질이 벗겨지는 유칼리투스 나무 같은 나무를 밭에다 줄지어 심고 가지를 쳐서 길고 곧게 자라게 하여  석가래나 삽보드 등의 건축재로 쓸 거라고 하였고 대단위로 재배하는 중이었다. 그리고 야자수를 기르는 곳도 있고 이랑을 지어 채소가 자라는 모습도 보이고 논에 물이 대어져서 모가 자라는 모습, 물을 가두어 민물새우를 기르는 모습도 보며 이웃 캄보디아와 색달랐다.


  이른 점심 때 쯤에 방콕시에 도착하여 한국인 식당인 대양식당에서 중식을 먹었는데 불실하기 짝이 없어서 불만이 있었다. 젊은이의 거리인 RCA街를 지나 Central World Plaza주변에서 태국 상품을 눈요기하고  Grand Tower Inn 호텔에서 여장을 푼 후 Toyo Ichibun이라는 일식집에서 푸짐한 일식 요리로 저녁을 먹었고 야간 시내 관광으로 중심가 짝퉁 거리와 말로만 듣던 태국 섹스 산업 현장을 순방하면서 콜라 한 잔에 매달리는 여인들의 애절한 웃음을 보고 흑단 여인상 1개를 1/3價인 10달러를 주고 구입한 후 호텔로 돌아와 방콕의 야경을 높은데서 완상하면서 잠자리에 들었다.

 

  2월 3일 마지막 코스로 태국 왕궁 관광이 있는 날이다. 호텔 조식 후 09:00에 출발하였는데 태국인 왕궁 투어 가이드인 말라위 씨가 안내하였다. 태국은 관광산업이 발전하면서 왕궁과 같은 역사적인 관광지는 본국인 가이드를 의무적으로 채용해야 한다는 사실이 매우 중요한 자국 관광정책이라고 느껴졌다.


  이 나라의 이름은 중국식 이름으로 태국이고 원래는 타일랜드(Thailand)이며 1515년 개국한 입헌 군주국으로 국토 면적은 55만㎢이고 인구는 6,500만명으로 현재 짜끄리 왕조 라마 9세 왕인 부미폰 국왕이 1947년에 등극하여 현재 77세로 재임 중에 있으며 국민으로부터 매우 존경받는 절대적인 왕이라고 하였다.

 그러므로 방콕의 주요 거리는 국왕의 이름을 따서 라마 1가부터 라마 9가까지 간선 도로 명이 붙어 있다고 하였다.


  현 국왕의 저택은 질라타궁으로 시내 중심부에 있으며 면적이 20만㎡나 되나 개방은 하지 않고 있으며 부미폰 아동야벳 국왕(77세)과 파냥 자오펫 왕비가 사신다고 하였고, 국경일은 종종 국민과 더불어 어울리는 서민적인 왕이라고 하였다.

 

 4월 13일은 지금 왕의 탄신 일로서 태국인 최대의 국경일이며 설날이라고 하는데 이즈음에 치앙마이에서는 송크란 이라는 물 축제를 여는데 이 축제를 통해서 가족의 의미를 더 돈독하게 하는 날이라고 하였다.


  2월 6일은 국민총선거일인데 최고 많은 의석 수를 가진 정당에서 총리가 선출되는데 탁신총리가 선출될 것이라고 예상하고 있었다. 특히 입후보자 사진이 도로에 즐비하게 서 있는데 당 기호는 추첨으로 결정한다고 하여 우리나라는 의석수가 많은 당을 1번으로 하는 것과 차이가 있었고 현재 여당은 9번 제 1야당은 1번으로 지정되었고 선거 비용은 개인이 부담하기로 되어있어서 부자들은 대형 사진을 빽빽하게 붙였고 그 중에는 방콕 터키탕 재벌인 폭력전과범도 당당히 출마하였다고 하였다


  이 나라의 국화는 연꽃이며, 남자는 17세에 불교에 입문한 후 스님이 되기도 하는데 ?왓데? 라고 하는 어린 동자 스님이 아침 7시 이전에 신발을 신지 않고 음식 공양 받으러 다니는 모습을 볼 수 있고, 특히 여자가 스님을 만지면 불경스럽다고 보므로 여성들은 주의해야 한다고 하였다. 국민의 종교는 약 91%가 불교인이고 4%가 무슬림이며 다른 종교도 있으나 시가지 어디에도 십자가는 발견되지 않았다.

민속 신앙으로 ?채디?라는 탑을 건물 앞에 설치하여 매일 가꾸고 숭상한다고 하였다.


 국민 국방의 의무는 남자에게만 부여되고 있으나 선발은 추첨으로 결정되므로 운이 좋으면 면제되는 경우도 있고 복무기간은 3년이며. 이 나라는 政情이 불안하여 17회의 쿠데타로 정권이 바뀌었고 이 나라에 GAY들이 많은 것도 국방의무 면책 방법으로 남자들이 여자로 꾸며 지낸 것이 체질화 된 것이라고 하니 지금은 이를 국가에서 인정한다고 하고 성전환 수술을 쉽게 할 수 있으며 정형수술 기술이 세계적으로 인정받는다고 하였다.


  이 나라 학교 제도는 6-3-3제로 6년제 의무교육에 3월에 개학하며 상의는 흰색, 하의는 청색 계통의 교복을 착용하고 있고 보이. 걸 스카우트 학생들이 매우 많다고 하였다. 학교에는 급식제도가 없고, 3월 15일부터 5월 18일까지 2개월 간 학교는 여름방학에 들어가는데 이때의 기온은 37-40도를 넘나드는 폭염이 이어진다고 하였다. 그리고 유명한 대학은 두 곳으로 조하롱곳대학교 의과대학과 탐마산대학교 법과대학이 세계적으로 100대 유명대학에 포함되어있다고 하였다.


  이 나라의 건축 현장을 보면 기초를 단단하게 다지지 않는 데다 앝게 파서 쌓는 기초와 기둥부터 먼저 세우고 나중에 가는 보를 설치한 다음 두께가 앏은 블록으로 쌓아 올리는 식으로 건축하는 모습이 어설프기 짝이 없으나 그래도 금이 간 벽이 보이지 않음이 이상하였다. 태국에서 가장 높은 건물인 88층 건물이 우리나라 LG 건설이 건축했으나 현재 쓰지 못한다는데 소식이 가슴아프게 하였다.

 사각 콘크리트 전봇대가 설치되어 있는데 짐승이 감고 오르지 못하고 온도의 변화가 크지 않기 때문에 터지거나 갈라진 모습을 볼 수 없었다.


  치앙마이 카렌족에 미인이 많아 세계 미인대회에서 두 번이나 미스월드에 선정되었다고 하며 원래 태국인은 키가 작은 민족이 아니라 키가 크고 늘씬한 민족인데 단지 식당 종업원은 키가 작은 사람을 채용하여 손님과 시선을 맞추는 배려라고 하니 세심한 데까지 고려하는 인력배치라고 느꼈고, 대부분의 국민성이 그 날 벌어 그 날 써 버리는 경제생활을 하고 있으므로 맞벌이가 많고 외식산업이 발달하여 가정에 열 조리기를 두지 않으려고 한단다. 퇴근시각에 길가의 외식 장소에 수많은 사람들이 들끓고 있는 모습은 쉽게 발견되었다.

 

  태국어 인사말로 안녕하세요는 싸와티 캅(남자), 싸와티 카(여자)이고, 감사합니다는 코큰 캅(남자) 코큰 카(여자)이며, 화장실은 홍남 이라고 하였고 현재 태국의 한류 열풍은 원빈, 장동건이 잡고 있으며 팬클럽이 생기고 이들이 나온 영화를 방영하는데 인기가 매우 높다고 하였다.


 국민의 의식은 직업은 공무원이 되기를 선호하고 있으며 대졸자는 30-40만 바트의 봉급을 받고 있는데 우리 돈으로 약 120만원 정도 된다고 하니 우리나라와 비슷한 수준인 것 같았다. 태국의 산업은 주로 농업 생산력이 약 65%를 차지하고 있고,  태국을 지배하는 자본은 주로 인도인과, 중국인 화교가 상권을 장악하고 있다고 하였다.


  먼저 에메랄드 사원으로 들어갔다. 버스에서 본 사찰의 모습이 금빛 지붕에서 특색이 있었다. 지붕의 모습이 아라비아 돔 형식의 둥근 지붕, 태국의 사원처럼 비탈진 맞배 지붕, 캄보디아 앙코르와트처럼 둥글게 쌓아올린 첨탑 지붕 등이 어울러진 건물들이 섞인 사원이었다.


 스리랑카식 사리탑과 태국식 대장경전, 캄보디아식 제왕 동상전이 황금 빛을 번쩍이고 있으며 태국식 대웅전에는 금빛 장식에 중앙 단에는 녹색 에메랄드 불상이 자리잡고 그 주변애는 온갖 불상과 벽화들이 금빛으로 채색되어 있어서 마치 금곽 속에 들어온 느낌이 났다. 그 곳에서 신발 벗고 입장하여 엎드려 참배하고 나오면서 다른 외국인들도 신비한 눈으로 관찰하고 있다는 걸 읽고 나왔다. 


  사원의 북쪽에는 왕궁이 있었는데 현재 사용중인 영빈관에는 총을 든 군인들이 지키고 있었고 국왕 집무실은 왕좌 뒤쪽에 불상전이 있고 가운데에 왕좌가 홀로 놓여있으며 바닥은 대리석으로 밖과 천장은 온통 금빛 무늬로 꾸며져 있었고 뒤로 왕궁이 이어져 있었다. 

 왕궁 옆으로는 왕실의 예식행사와 접대를 하는 유럽식 대리석 건물에 태국식 지붕을 인 4층 건물이 있었는데 그 앞에서는 보위병의 교대 식이 엄숙하게 진행되는 광경을 보았고  앞뜰에는 푸른 잔디 카펫으로 단장된 정원이 산뜻하였다.    그리고 바로 옆에는 왕실 전용 장례식장이 있는데 왕족이 사망하면 이곳에서 6개월 간 시신을 보관하였다가 화장하여 장례를 치른다고 하였다.

  왕실은 직영 공장을 운영하여 각종제품을 생산하여 고가로 판매한 재원으로 새로운 건축물을 짓고 왕실 관리비용은 관광 재원으로 충당한다고 하였다.


 이곳을 구경하면서 역시 국왕들이 백성의 눈물을 많이 짜냈다는 느낌을 받았으며 그래야만 이런 유적이 남는다는 진리를 얻은 것 같았다. 그러나 이 사원은 현 국왕은 거주하지 않는 한 번씩 행사할 때만 사용되는 문화재로 존재하는 건축물이었다.


 다음은 방콕 시내를 흐르는 써프라야 메남(강)을 따라 선상관광을 하였다. 왕실 전용선 보관소도 보고 수상상인의 장사하는 모습, 富貴佛亭이라는 중국 사찰 앞에서 빠가사리 모양의 물고기에게 먹이를 주니 물고기가 줄지어 떠오르는 모습을 보며 새벽사원으로 뱃길을 안내하였다.


  새벽사원은 캄보디아식 건축 사원으로 67m높이의 첨탑이 서 있고 사방에 작은 첨탑이 4개가 서 있으며 청나라 도자기를 박아 건축한 아주 격조 높은 건축물이었다. 닥신 국왕이 새벽에 참배하는 사원이란 데서 유래하여 ?새벽사원?이라 하였고 옆에는 왕궁이 있었는데 이 건물은 현재 태국 해군사령부로 사용되고 있었다.


  와불상 사원은 배에서 내려 시가지 옆에 있는데 와불각은 태국식 건물의 맞배지붕에 불상 크기는 높이 15m이고 길이 47m나 되는 금와불을 모셔 두었는데 세계 최대로 그 규모면이나 금빛으로 얼마나 많은 금박이 둘러싸고 있는 그 가치로도 대단할 것이라고 짐작되었다.


  왕궁 관광으로 오전을 보내고 광한루 식당에서 한식 점심을 때우고 특산품 판매장으로 악어, 가오리 가죽과 천연고무제품을 구경하고 오로지 호야 놈 장난감에 관심을 쏟았으나 하나도 발견하지 못하고 태국 건국의 아버지라는 Lumpini 장군의 이름을 딴  Lumpini Park를 구경하기전 공원 가에 있는 Lumpini 초등학교를 우연히 방문하여 태국초등학교의 좁은 운동장과, 우리와 비슷한 교실 모습과 환경 게시판을 보고 특히 화장실에 들러 색다른 쪼그려 앉은 변기와 물을 보관하는 물통, 그리고 바가지로 물을 떠서 내리는 화장실을 보면서 중간 정도 발달 수준에 있음 감지하였다. 특히 집으로 돌아가기 전에 식탁 책상에 앉아 숙제인 것 같은 공책에 부지런히 연필로 계속 고쳐 써가며 글씨 쓰기를 하는 어린이와 기념 촬영을 하기도 하였다.

 

 Lumpini Park에는 수많은 사람들이 Well Being의 실천을 위해 끊임없이 걷거나 달리고 있었다. 특히 가이드는 태국에는 안경 쓴 사람수가 적다고 하였는데 그것은 눈 영양에 좋은 식품을 평소에 많이 섭취하여 그렇다고 하는데 우리와 같이 TV나 Computer 영향이 미치지 못해서 그런 것이 아닌지 의심스러웠다.


  康身泰民 (몸은 건강하고 국민은 태평하라), 大愛 (큰사랑)와 같은 중국 춘절 구호가 인상적이다는 느낌을 받았으며, River City Co 건물에서 옛 고보당의 문화재를 보면서 서울 인사동 골목을 연상하였는데 모두 원래의 자리에 있지 못하게 도둑질하여서 이곳 가게에서 점잖게 높은 가격으로 자리하고 있는 모습이 한편으로는 아이러니 함을 느꼈다.


 저녁에는 새로운 귀족문화를 체험하는 선상 석식으로 Chao Phraya Princess호 선상 라이브 무대가 한국 노래를 애창하는 가운데 멋있는 뷔페 식사를 하면서 강변을 오르내리며 완상하였고, 특히 낮에 본 새벽사원의 야경은 황금빛 찬란한 아름다운 정경이었고, 마지막에는 춤 파티가 열려 이국에서 외국인과 섞여 한국노래 전주 속에 일행들이 흥겹게 두 시간을 즐겼다.


 이어 마지막 프로그램으로 호텔 마사지 센터로 자리를 옮겨 2시간 전신 마사지를 하면서 그간의 피로를 푸는데 충분하였다. 특히 큰 내 몸뚱이를 매만지던 아가씨에게 팁이라도 더 주지 못한 미안한 마음을 가지면서 방콕의 돈무앙 국제공항으로 이동하여 현지 시각 2월 4일 새벽 02:30에 출발하여 어느새 피곤함에 잠들었다가 깨어나자마자 바로 기내식 아침을 먹고 김해국제공항에 09:00에 내리니 며칠만에 그리운 고향에 온 듯 먼저 집으로 전화를 걸고 학교로 이상 유무를 물었다. 모두 무사함을 감사하면서 창원을 거쳐 집으로 도착하였다.

 

 

9. 소감


  이번 5박 6일간의 동남아 국가중 주요 문화재 보유 국가인 캄보디아의 앙코르 유적과 태국의 왕궁 사원을 보고 이동하는 가운데 빈곤과 생존의 현장을 냄새 맡으면서 나라의 국력이 국민의 품위를 얼마나 좌우하고 국가 문화재의 유명세는 그 국왕의 업적도 중요하지만 그 일로 인한 인력의 소모 정도에 비례한다는 느낌을 받았다. 우리나라도 대원군에 의해 경복궁을 중건할 때의 백성의 등골을 휘게 한 결과가 지금의 경복궁 궁전이 라는 것과 마찬가지라는 사실로 짐작할 수 있었다.

정녕 문화재란 인류 문화사 속에 남겨진 인간 殘酷史인가?

여행은 휴식을 위해 떠나지만 과정은 피곤 속에 이루어지고 결과는 진한 감동을 남겨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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