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4.6.13 길사랑회 하동 최참봉댁 화사별서 취간림, 광평솔숲길 걷기 나서다./264 코스 : 마산역-23인승버스대절-악양공원 주차장 하차-악양들판길-부부송-동정호 -악양루-치참판댁-시장식당 점심 쇠고기국밥-하평마을-대촌마을-정동마을-상신마을-화사별서(사랑채 수리공사중)-취간림(청학정, 지리산항일투사 기념탑. 팔경루-취간림(翠澗林)-하동 광평소나무숲길-사천휴게소-마산역 거리 시간 인원 : 15940보 13.4km, 23명, 8.0시간 여행 및 걷기 특색 : 영상 34도 무더위길을 고향산천 구경하듯 구석구석 구경하며 악양들판길 거닐며 부부소나무 안아보고 동정호 둘렛길 돌며 악양루에 올라 들판 바람 땀 식히고 토지세트장길 오르며 허무한 세월에 세트장이 축소 무너진 모습 비교해 보고 박경리문학관 강연자 머리위 참새가 앉아 강의하고 최참판댁 무더위에도 땀 흘리며 둘러보고 시장식당에서 점심 쇠고기국밥으로 요기하고 화서별서집 찾아 주인도 없는집 둘러보며 보조 해설사 역할하고 상신마을 팔각정자에서 더위 먹고 쉬다가 취간림 숲속에서 팔경루에 앉아 홍시 수박 쪼개 먹으며 감사하고 광평 소나무숲에서 천년숲 오솔길 걸으며 땀을 식혔다. 걷기참여 건강하게 1만 6천 보 가량 무사히 걷고 별 지장이 없음에 고마워했다. |
무척 오래간 만에 평사리 최참판댁을 찾는다.
우리민족의 대 서사시
우리 국민을 울고 웃겼던 진짜 k-드라마 표본
박경리의 '토지' 가 그배경지 하동 악양면 평사리에 살아있다.
우린 그 추억을 찾아 버스에 올랐다,
이제 하도 오래돼서 줄거리마져도 희미하다.
그러나 당시 그 책을 한 번 손에 들면 놓아야 잠에 드는 마력의 스토리다.
섬진강변 악양공원에 우리를 푼다.
섬진강 모래톱이 눈부시게 덥다.
오늘 기온이 35도를 오른다고
노년들 외출 자제하라고 경고메세지가 계속 뜬다.
그런데 더워도 걸어다닐만 하다.
그늘에 모여 국민체조로 몸을 푼다.
먼저 평사리들판부터 훑고자 나선다.
북쪽 지리산에서 내려오는 경사로
들판 가운데로 직선 라인 날 행해 내려온다.
사각 논들이 넉넉히 섬진강물로 주사 맞고있다.
도랑물이 도랑을 걸쳐서 흐른다.
이제 곡식농사가 귀찮아졌는지
논을 밭으로 바꿔서 엄나무 묘목 감나무 묘목 특수작물 밭이 늘어나고 있다.
벼가 심겨진 논에는 탁근이 잘 되어 가로 새로 줄이 맞춰져 싱싱하다.
개구장이 둥글레씨 논 안에 자연농법으로 키우는 논고동을 잡고 있다.
온 불볕이 온 들판에 번져 잘도 자란다.
여기 일하는 모습 저 마을 위에서 내려다 보고 평가하고 있겠지?
우리들 일행도 이상한 눈으로 내려다 보겠지.
전국을 헤메며 산천을 거닌 우리는 자연인
길사랑 이름걸고 다닌 거리가 무려 지구 반 바퀴는 넘었을 걸
참 아름다운 지구탐험 답사대이다.
부부송에 잡혀 논둑을 따라 소나무 곁으로 간다,
조그만 나무로 생각했는데
만나니 어른 두 명이 마주손 잡아야할 대목이다.
그런데 곰솔인 줄 알았는데 육송이라는 것도 발견이다.
과수원 사이에 있는 큰키 나무 두그루 정답게 부부처럼 섰다.
일년내내 정다운 표정으로 사진에 박힌다.
우리들도 그 모습 따려고 풀숲 긴풀에 발 빠져 가며 답사했다.
길을 발견하고 빠져 나오니 역시 멋진 두 그루 짝지 소나무다.
다음은 중국의 이야기를 닮아보려고 전설을 만든다.
즉 양자강 주변의 동정호 만들었듯이
평사리 들판 저습지를 몇십 년동안 올 때마다 파 내더니 연못이 되었다,
인공 연못 분홍색 다리 놓아 섬으로 연결하고
섬가운데 돌팍정자에 앉아 바람 쐬니 조용하고 시원하다.
다시 나와 건너편 정자에 오르니 여기는 악양루(岳陽樓)란다.
중국의 옛이야기 속에 그 환상적인 장소로 악양루와 이야기 줄거리 엮인다.
악양루에 올라 기분좋게 앉아 쉬니 신선이다
바람이 땀을 다 거두어 간다.
광양시 가족들이 놀러와 우리에게 수박을 선물하니 더 맛있다.
정자위 그림보다 정자아래 그림이 더 멋지다.
가로수처럼 늘어선 모습이 소실점을 찾게 만든다.
연못 가운데로 새로운 푸른 빛이 덮고 나온다.
맑은 물빛이 자꾸 가리우니
그림의 기준이 달라진다.
자기가 못하는 일이 더 어렵게 보이는 법이다.
악양루에서 내려다 보는 눈
그건 평사리 농민들이 보면 감시하는 눈일 게다.
그걸 쳐다보는 사람들은 아마 천불이 날게다.
이 세상 사람들은 여러 면으로 평가하고 있다.
특히 자기와 관계되면 더 그렇게 자극한다.
그래서 늘 사람은 사람을 비교하고 평가하고 나무라고 시샘한다.
왜 있는 그대로 보지 못할까?
그건 결국 나와 비교대상자가 되기에 미리 떨어내 버려야 한다.
바람이 날 사고하는 사람으로 만든다.
참판댁 동네로 오른다.
도롯가 도랑물이 새롭게 졸졸 흘러간다.
그 물 때문에 주변이 달궈지는 걸 막는다.
서양 건축물에는 종일 흐르는 도랑물이 맛있듯이
우리 동네도 그 모습이 멋지다.
새로 우뚝한 돌이 섰다.
'박경리 토지문학비라'
대다한 작품활동으로 대문호가 되어 돌아가신 박경리 여사
통영에서 태어나서 자랑 고향을
진주여고에서 공부하며 배운 규모를 세우고
열심히 평사리 드나들며
그 산천 풍토 환경 풍습 기후 다 적용하여
사람들의 인간개발사 개척해 내니
그는 소설속의 인물이 되어
아직도 백 년이고 천 년이고 살 것 같구나.
평사리길 46-1 이무원님은
접시꽃 당신이 되어 분홍 빛으로 환영행사다.
대문에서 맞아하는 모습이 사람처럼 밝다.
옛날 그 지점에서 오르면
극중에 나오는 이름들 투박한 살림살이들이
집안 곳곳에 쌓이고 헐벗은 삼베 적삼 차림으로
돌돌 말려 올라간 저고리
마치 금방이라도 젖무덤 쏟아질듯
퉁퉁 불은 아이들 식량 나누어 주듯
거기에는 인간의 존엄이 있기에 성스럽다.
옛날 배역자 이름 언제 다 까 먹었는지
아무도 생각 안나는데
길상이와 소희는 그래도 떠오른다.
다쓸러져가는 집마다 인간미 돋는 이야기 부르는 이름
이제 까마득히 잊어져 버렸다.
새로 인 초가지붕만이 노랗게 물들었다.
드라마 세트장 자꾸 썩어갈텐데
관리가 참 어려워 질 것 같다.
전보다 확 달라진 토지문학관으로 든다.
마당에는 엉거주춤 책을 들고선 박경리 선생님
그 머리 위에는 참새 한 마리 정수리에 앉아서 지켜본다.
그걸 난 재빨리 찍었다.
박경리 선생님 그 꼬마 손님이 고마워 놀라지 않게 이끌고
관객들 아이들 "선생님! 머리 보라"는 소리 한 마디
그 소리 안해도 생채는 자동으로 읽힌다.
모두가 조심하는 자세 살아있는 이야기다.
ㄱ자 한국식 건물에 문열고 들면
우리를 빨아들이는 흡입력 선풍기 바람처럼 대단하다.
토지 20권 한 질의 세계
그의 글속에 이런 말로 표현했다.
아무쓸모도 없는 몸뚱이 하나
그것도 바로 쓸 수 없기에
자리를 옮기려해도 옮길 수 없고
그러니 썩어 문드러져도 맨 그 자리에서
할 일이라곤 아무 것도 없었다.
그래서 그는 그 자리에 앉아서 뼈가 으스러지도록
지독하게 오로지 할 수 있는 일
글을 썼다는 것이다.
꼼짝 않고 몇 달?
아니 몇년?
아니 몇십년이나 잡고 늘어져
토지를 쓸 수 밖에 없었더란다.
지금 가고난 후 남은 것들
안경집과 안경
만년필,
큰 돋보기 하나
이게 바로 그가 버릴 것들이었단다.
그래서 그 버릴 것들 버리고 나니
아무 걱정이 없겠지
우리가 보기엔 귀중품인데.......
전시장 기획 의도가 참 다르다.
토지 책 1질이 가강 간편한 기획이다.
그런데 각 배역의 스케치화가 날 표현하게 만든다.
배역의 표정 의상 디자인 소품이 말을 하며 다가오는 것 같다.
자기 말을 마구 쏟아내는 느낌이 든다.
특히 못 배운 사람은 그 억압을 제 부모에게 악담하듯 들리고
배운 자들은 그 권위와 체통이라는 것으로 가슴앓이하는 모습으로
말 못하고 마는 그걸 그림으로 느낀다.
또 지리산과 섬진강 꿈틀거리는 그림
아무 색채감 없이 짧은 줄긋기로 실감있게 부피감을 나타낼 수 있다니
그 조감도 정말 살아있는 지도다,
죽은 사물지도가 아니라 살아난 생물지도 생생하다.
옛날 작품인양 생각했는데 몇년 안지냈던
남도대교가 조용히 그려져 있다.
최참판댁으로 나간다.
훈장 선생님도 배 고픈가 봐
메 산 모양 갓 모자 둘러쓰고
식당가로 몰려 나간다.
그런데 평사리 들판 넌지시 내려다보며
돌팍 벤치에 둘러싸인 그늘아래
최참판 동상 곁에 앉아서 사진찍기하느라 바쁘다.
난 하도 자리 없어서 훈장 어깨를 잡고 일어서 찍었다.
대낮 길다란 양반 대가족사회 부잣집
길다란 집이 대낯 빛깔이 희뿌옇게 밝다.
대문을 열어 두었으니 쉽게 든다.
행랑채 들어서자마자 하인들이 곰탁곰탁 나올 것 같다.
"여봐라"를 부르지 않아도 대답이 나올 듯
안채 주변엔 온갖 말린 식재료 다 달고
각종 농기구 다 벽면에 걸려있다.
안방을 들면 파리 한마리 미끄러질듯
정돈된 느낌 깔끔하고
매서운 안방마님의 성품이
눈아래 주루루 떨어진다.
안채를 넘으면 또 있는 숨어 있는 집 별당이다.
보통 별당 아씨들 혼기를 앞둔 젊은 처자들이
금욕 생할하면서 아무도 만나지 못하도록
감시 감독 속에 감금해 둔 공간이다.
작은 연못도 파 두고 물고기 새를 기르기도 하며
낮은 누마루까지 있어서 남의 집과 견줄 필요가 없는 구조이다.
이런 집에서 향단이와 춘향이가 양반 자녀와 섬싱이 났겠지?
안채 뒤를 돌아가면 양지 바른 햇볕 속에 익고 있는
각종 채소류 반찬과 그 조미료들
주변의 식재료만 치대면 맛있는 반찬이 되어버리는 마술
그 비장의 장소가 장독간이다.
뒤뜰 굴뚝을 돌다보면
동쪽 밝은 지점에 대밭속에 묻혀있는 가묘(家廟)
연대 조상의 위패가 모셔져있고
밤이나 낮이나 음침한 기분이 감도는 무서운 곳
원래 여기는 제사 지낼 때만 불을 파워 향을 피우고
평소에는 촛불도 향불도 다 꺼 두는 곳이다.
특히 불천위 위패가 있으면 이 패를 옮겨 제사지내지 않으므로
바로 그 자리가 제사지내는 자리이므로
아무리 추운 겨울이라도 그 자리에서 지낸다.
물론 위패를 밖으로 모시고 나가는 홀기를 부르고
큰 강당에서 지내는 경우도 있다.
돌아나가면 사랑방 누마루 높은 사랑채
주인 영감이 거쳐하는 가장 줏대 높은 가옥이다,
여기는 수 많은 외부인사가 방문하거나 초대되어 기거하고
온갖 지식과 학문이 연마되기에 최고의 지식기반 건물이다.
그래서 여기는 늘 문학과 독서와 바둑과 학문이 겸전된 장소이므로
자유분방하면서 고급 문화가 잠재한 곳이기에
말씨나 행동거지 하나도 서로 집안을 비교하는 쟁지가 된다.
그러니 늘 주인의 말씨를 물고다니는 하인이 대기하고 있으며
하시라도 자유롭게 이동하는 준비가 되어있는 장소이다.
저 아래 들판의 모습이 바로 읽혀지는 높은 장소이다.
시장 식당에 예약하여 두 가지 메뉴
소고기국밥과
메밀국수를 선택하여
함께 맛있게 먹었다.
장거리 장옥건물이라 선풍기 바람으로 시원했다.
즐겁게 먹었다.
다음은 조씨고가를 훑었다.
평양조씨 조준의 후손 화사의 고가다,
특히 평양조씨 문중으로 조선초기 훈구파 조준의 개국공신 집안이다.
그 조준과 정도전 남은 남재 반역자들이 고려의 역사를 무너뜨리고
이성계를 옹위하여 역성혁명을 일으키니 조선의 개국이다.
이때 고려의 명신이었던 당시 사헌부 지평이셨던 우리 선조 이신(李申) 할아버지와
성균관 진사 생도였던 그의 동생 이오(李午, 茅隱) 할아버지께서
이를 반대하여 당시 언관이었던 김진양(金震陽)과 더불어 여러차례 왕에게 상소하여
반역죄를 주어야한다는 상소를 올리자 이르 계속 미루어 나가자
당시 왕자 이방원이 자기의 스승인 포은 정몽주(圃隱 鄭夢周)를 선죽교에서 척살함으로 인해서
고려를 지키자는 수구파들을 내몰리게 되니 되려 역신으로 몰려
결국 우리 계은 할아버지도 곤장을 맞고 끌려다니거나 돌아가시게 되었다.
우리 할아버지 계은(溪隱)공 이신(李申) 할아버지는
개성에서 이곳 밀양까지 아들이 시신을 반장(返葬)하여
밀양시 상남면 조음리에 장사지냈고 묘소와 효자 정려가 있고
밀양 오현으로 숭앙받는 인물이시다.
그의 동생 모은(茅隱)공은 함안 산인 갈대밭으로 피신하여
망국 죄인으로 스스로 둘레에 담장을 쌓고 살며
" 여기 담안은 고려땅(高麗洞)이오"라고
이를 지키며 담안 곡식만 먹고 조선의 곡식은 먹지 않고 돌아가셨고
자녀도 조선의 벼슬을 하지 않고 고려 곧은 선비로 살다가 돌아가셨다.
오늘 여기 와서 보니 사랑채는 모두 뜯어내어 고치고 있고
대문은 새재목으로 고쳐지었다.
이 집이 실제로 토지 소설의 모델이 된 건물이라고 해설되어있다.
매년 오면 늙은 노인이 우리를 맞이했는데
그분이 영감 할멈 내외가 집을 지키다가
할멈 먼저 보내고 깔끔한 자태로 할아버지가 관리하시더니
이제 축담에 기대선 지팡이와 고무신이
병석에서 일어나지 못함을 일러주니 조용히 관람하였다.
내가 해설사되어 개인이 왕실건물 지을 수 없음을
예외로 적용 받아 왕실이 대목을 파견하여
직접 와서 지은 건물이라 그 품위가 높고
석축과 계단 부연등 등을 해설했다.
네모 모양 연못은 도랑물을 끌어들여 돌도록 만들었고
중앙에 섬을 만들어 자미화를 심어 붉게 꽃이 핀다.
특히 찬 도랑물로 굴속에 수박을 담가 냉장고처럼 사용한다고 했다.
아무도 반기지 않지만 중요국가문화재를 둘러보고 나오며
그래도 감흥은 역사를 되돌아 보게한다.
뙈약볕 무더위에 다니면서 상신마을 정자에서 잠시 더위를 피하고
악양의 명품숲 취간림(翠澗林)으로 내려왔다.
그날 아이스크림 사서 나누어주기로 했는데
농협에 오니 노인들 무더위에 2시까지만 장사를 하고
판매 중단하는 바람에 시원한 맛 못 본 것이 한스럽지만
팔경루(八景樓)에 앉아 계곡바람 쐬며
대신 홍시가 집에서 사 온 수박 깨어 먹은 그 기쁨은 상쾌한 피서였다.
취간림(翠澗林) 속에는 악양의 문화가 숨어있다.
맨 위에는 청학정(靑鶴亭)이란 삼간 정자가 영호남 경계지역의 국악인 연습장인듯
북소리 간주에 판소리라도 들리는듯 소리가 숨어있다.
그 다음은 지리산 일대에 숨어서 일제와 항거하던 애국 시민의 역사
여기 모아 제단을 만들고 받드는 기념탑이 섰다.
우리 국토 어디서든 만세소리 바람 속에 울려온다.
숲의 중앙에는 팔경루(八景樓)라 이름한 대형 팔각정
일본으로 징용으로 끌려갔다가 거기서 몸으로 벌은 돈으로
고향의 마을에 대형 팔각정 2층 누각을 지어 기증한
남양홍씨 홍갑동이란 노인이 대단한 애국자다.
덕분에 남양홍씨 글라디스 홍 회원을 띄워 주었다.
무더위로 더 이상 견디지 못하여
마지막 코스를 대절버스에 실려 섬진강을 따라 내려왔다.
영남과 호남의 경계도시 하동
푸른 물이 흐르는 섬진강
그림같은 골짜기가 지리산 섬진강 절경지다.
그간 비가 오래 안왔는지 모래사장 은모래빛이 유난히 밝다.
광평리 모래사장 앞에 펼쳐진 천년 굽은 소나무 우거진 하동 광평숲
시원한 자람이 숲속에 노닌다.
자동차 세워 빠져 나오니 강바람에 속이 확 트인다.
하동온 김에 옛 도천 지인 백상준 찾으니 반갑게 맞아준다.
목소리 만남이라 지금 적량교감으로 근무한단다.
집은 진주에다 두고 아이가 5학년이라했다.
함께 열심히 노력했던 용사들인데 반가움에 서로 통했다.
오늘은 창원병원에 나가 치료중이라는데
완쾌하기를 빌어주었다.
섬진강 맑은 물이 재첩을 키우고 벚굴을 키운다.
옛날 철도교도 그대로 있고
새철도는 교각이 듬성듬성하다.
푸른 소나무 숲속을 걸어야 내 몸이 편해질 것 같기에
오솔길 돌며 맨발걷기 코스를 신발신고 거닐었다.
더워도 그늘길 걸으니 시원하다.
돌아오는길 피곤에 잠들었지만
사천휴게소에서 강영중 회장이 제공하는 크림으로
가장 행복한 걷기 마감했다.
오늘 걸은 길 약1만 6천 보
무더위에 차를 타다가 걷다가 다녔지만
걸은 걸음수는 거짓말 하지 않았다.
매우 뜻깊은 하동 산책길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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