따뜻한 만남 1/조상사료실

증조부 이하 조상 기제사 봉행

황와 2024. 4. 6. 18:48

 

24.4.5 한식날 증조부모(90주기.78주기) 조부모(72주기,66주기)
                       양부모(87주기,57주기) 생부모(72주기 66주기) 기제사 봉행하다.

 

 

오늘은 나를 낳아주신 분파 소종중 조상님을 만나는 날

1년중 가장 견건한 날이다.

날 이세상에 있게해 주신 거룩한 조상님

더 이상 무엇을 기대할 수 있겠는가?

요즘 다들 부모님에게 태어난 자신을

당연히 부모님이 해 주어야할 것인양

자신의 처지를 조상에게  요구하고 

더 안될 경우 낳은 정의 의무를 책임 사명으로 돌려

자신의 불쌍함을 남의 화복함과 대비한다.

 

남 어릴 적 부모님을 거의 다 잃어서 

숙부모님의 슬하에서 성장해 왔으므로 

부모정을 늘 그립고 따뜻한 말이라도 기다렸다.

내가 종손으로 자라났으니

제삿상 앞에 엎드려 그 꿈이 실현되기를 기다렸고

대답없는 나자신의 홀로서기가 그 답이 되었다.

그래서 더욱 나를 뭉치기 시직하고

조상의 의미를 더욱 알게하는 것에서 

외로움을 찾으려고 가족간 우애하고 

형제간 정을 나누며 위로를 받고 살아왔다.

그래서 제삿날 모든 가족이 모이길 기대했으나

이제 몸 아픈 형제자매로 

우리 가족들만 모여 제사지내고 

함께 음복하는 것으로 의의를 가진다.

이번에도 딸이와서 제수마련 돕고 

아들이 성남에서 내려와 참례하였다.

사위도 함께 동참해 주어서 고맙다.

 

난 이때먄 되면 늘 아애의 눈치를 살피는 하인이 된다.

왜냐하면 제수준비로 늘은 몸 아파 

혹시나 병 날까 봐 조바심 나서

내가 대신 그 일을 해주기로 하고 

시키는대로 나물 다듬고

젯상 병풍 펴고 

집안 청소하고

장보기 따라다니고 

무거운 것은 무조건 내가 나른다.

혹시나 짜증낼까 봐

여성상위시대가 된 요즘 세태

명절이나 제사가 지낼 즈음이면 

종손 종부로 맡은 역할 내가 들으라고

사례를 들어  누구도 누구도

제사 안 지낸다는 소리를 한다.

난 할수 없이 묵묵부답 벙어리가 된다.

내 조상 내 마음에 섬기고 싶은 평상심을

자꾸만 남 이야기로 자극하니 안 들은 것만 못하다.

그러나 성을 낼 수가 없다.

요즘 무척 병약해져서  기운을 잃어가니 두려울 뿐이다.

 

오늘 음력 2월 27일 

증조부님은 휘 수자영자 이시고 돌아가신지 90주기이며

증조모님은 유인 김녕김씨 휘 시동이시고 87주년이며. 

조부님은 직와 처사 휘 현자 지자이시고 72주기이고

조모님은 유인 창녕성씨 휘 인녀이시고 66주기 이다.

또 부모님은 

양부님은 휘 인자호자이신데

향년 23세에  일본에서 돌아가셨으니 87주기이고

양모님은 향년 57세로 내가 대학 1학년때

몹쓸 대장암으로 돌아가셔서  57주기이고 

생부님은 6.25사변중 호열자에 감염되어

향년 26세로 돌아가셨으니 72주기이고 

생모님은 향년 35세로 여성장부가 되어

사시다가 갑자기 돌아가시니 66주기가 된다.

분석해 보면 할아버지와 생아버지가 같은 해에 돌아가셨고

할머니와 생엄마가 같은해 별세 하셨다.

이때 난 나이 겨우 10이하 어린 상주였었다.

내 따바리 상복 입고 가는 모습 보고

동네사람들 함께 울었었다.

그래도 여성 호주로 할머니에서 양어머니로 이어졌다가

내가 스무살 겨우 넘자마자 호주가 되었었다.

 

오늘 그 제사 뭉쳐서 합사하며 

초헌에 내가 아헌은 딸이 종헌은 아들이

아내는 음식 나르기로 

아들은 축관 되어 축문 읽고

온가족 다 제관이 되어 정성들여 무사하게해 달라고

친손자 외손자들 잘 보살펴 달라고 빌었다.

여인들이 샤마니즘에 기대는 풍습은 기도이다.

마지막 음복시간은 제상 거실에 펴놓고

저녁으로 제삿밥 찐고기 맛있게 나눠 먹으니

사위는 제주 병째 비우고

저녁밥 맛있게 먹었다.

우리가 담은 김치가 맛있다고 다들 인기다.

어미는 아이들 입맛을 위해

아들 딸 몫으로 모든 제수 다 아이스 박스에 담아 나누어주니

돌아가는 짐이 귀찮다 한다.

가족이라는 것이 부모라는 자리가

자식이라는 울타리가 제사를 지내게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