따뜻한 만남 1/조상사료실

신축 설날 차례 및 성묘

황와 2021. 2. 12. 15:47

                          21.2.12 설날 차례지내고 고향 성묘하고 오다./264

                               코스 : 설날 차례-진성 숙모댁-월아산, 뒷뫼 산소 성묘 

                                         - 큰집-이병렬,성태우,성동주묘 참배-성득찬집-동생집-마산

                               특색 : 설날 오고감이 없는 쓸쓸한 풍경,

                                         고향선조 성묘,

                                         옛은인(양촌댁(成泰祐), 승산댁(成東柱), 굼실댁(儂汕 李炳烈) 묘참배

                                         禮山精舍 옛 공부하던 곳 방문(공사중)  成得欑 만남, 昌勳 귀향 만남

 

신축년 설날 코로나로 사그러졌다.

가족 친척을 자꾸 멀어지게 한다.

멀리있는 아들 손자

모두 내려오지 못하게 막고

우리 내외가 조촐한 제삿상 차리고

아내 처음으로 제관되어 지냈다.

제삿상 장만할 줄만 알았지

제관 노릇은 아마 오늘 처음인 것 같다.

나는 제주 아내는 집사자

아내가 따르는 술 선조님께 권하니

모든 선조들 흐뭇해 하신다.

술잔 드리기 전에 몽롱하게 기분 좋아진다.

떡국 한그릇 지단 띄워 퍼 먹고

남해고속도로 타고 진성으로 달렸다.

 

 

설날인데도 고속도로가 한산하다.

고향 숙모집에 도착하니

이미 숙부님 10주기 제사는 끝났다.

잠시 설음식 입 다시고

선조 성묘행사에 참여하여

달음산 질매재 생부모, 양부모님 찾아 뵙고

뒷뫼 고조부, 증조부모, 조부모, 숙부 인사드리고

책장 할배 손때 묻은 한문고서와 진주 애향시 훑고

직와처사 할배 내음이 진하게 내게 배인다.

큰집 찾아 종제 내외와 조카들 세배 받고

쌀 찧은것 담아 싣고선

당뇨 핑게대고 재빨리 떠나왔다.   

 

 

여시미 모팅이 내 어린 고향이다.

굼실댁 문태는 아무도 꾸중도 못했다.

양부모의 대를 잇는 종손이라 귀한 존재였으니

동네 귀여움 다 받고 자랐다.

나도 도를 넘치는 잘못은 할 줄 몰랐다.

왜냐하면 훈장 할배의 모범 손자라 더 그랬다.

남해고속도로에 들어가 버린 옛 집터

까마귀 울어대던 큰 돌감나무

사랑방에 새끼꼬며 가르치던 훈장집

객지 손님들 자주 들락날락

여인들은 주안상 개다리상 들고 나르고

밥도 빼앗기고 물로서 배채우던 증산댁 며느리들

굼실댁 다못골댁 모두 신혼초기 생과부된 집이라

6.25동란으로 불쌍하고 애닯은 몰락 집안이었으니........

이웃 사람들 모두 울타리 되어

한 집안처럼 아이들 길러 주었으니

그 속에서 장난하며 자란 우리 삼남매

오늘따라 갑자기 고마운 분들이 생각난다.

돌아가시고 한 번도 찾아 본 일 없다.

예음 동사(洞舍) 마당에서 올라가면 그네 뛰던 뻔덕

그 자리에 빤한 묘 그럴 것 같아 올라가보니

날 귀여워 해 주고

대학입시 공부할 자리 재실 내어 주신

굼실댁 농산공(儂汕公) 전주 이병렬(李炳烈) 어른 내외분 

만날 때마다 말로서 힘을 주신 분이라

생뚱한 인사 받으며 놀라신다.

내외분 비문을 손수 작성하여 비를 세웠다. 

진주 향토에 서예가로 이름난 어른이셨다.

동네 속 예산정사(禮山精舍)를 지나며

60년전 여름방학 내내 밤샘공부하던 방

추억 빛으로 쳐다보았다.

그 덕으로 진주교대를 합격할 수 있었다.

재너머 고개 아래 갓골 골짜기

고 성태우(成泰祐) 양촌 할배와

유인 남원양씨(南原梁氏) 양촌 할매 내외분

내 생명의 은인

수십년 만에 처음 찾아 인사드렸다.

우리 문태 왔내고 머리 쓰다듬으신다.

내 부은 몸 내 팔다리 만지며 더 튼튼하라고

용기주신 분이었는데.......

바로 곁에 장자 고 성동주 승산 아재도

날 장정왕으로 추천해 주셨고

계창교 첫부임시 자기 옷을 입혀보낸 분이셨다.

그의 자녀들 숙희 숙점이 내가 엎고 놀았는데

     

 

우리 22회 동창회장 성득찬댁

양반처럼 서로 맞세배하며 웃고

친구들과 고향이야기 즐기다가

정월 초하룻날부터 찾아온 타성 손님이라

미안함에 일찍 일어서서 나왔다.

동생댁에 들러 창훈이 세배 받고

세뱃돈 모처럼 찔러주며

껴안고 등두드리며 고마와했다.

그놈은 이제 대단한 명사다.

장애인 앵커로 KBS에서 들어갔으나

임시직으로 쫓겨나는 바람에 

연세대 대학원에 다시 들어가서

사회복지사로 장애인복지사업에 참여하고 있다니

고맙고 대견하며 고마운 핏줄이다.

애인도 하나 있다니 믿음직하다.

이것저것 챙겨 정을 받고

고속도로 줄 선 길 고맙게 고향을 떠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