육사뜰 소식/만사참례기

외숙모와 영원한 이별.

황와 2019. 12. 20. 12:03

19.12.19 단목골 외숙모 소천 우리 형제자매와 함께 조문하다./264


 

항상 갑자기 오는 신호가 불길하다.

아침 자동차 안에 앉으니 딩동 운다.

외종에게서 눈물 머금은 문자다.

구순 아버지 어머니 모두 병중 간호하는

어느 누가 먼저 갈지 불길한 외가 사정이다.

그런데 다정했던 특히 내게 더 인자했던

지나칠 정도로 챙겨주었기에 벗어나고파 했던

그 외숙모님이 낭군보다 먼저 소천하셨단다.

지난해 두어번 찾아 뵈온 것이 마지막

언제나 무정했던 우리들이었다.

우리 삼남매  10살 이하로 조실부모하고

불쌍히 자라는 모습 늘 고맙게 안아주고

힘을 북돋워 정을 준 그 어른이시다.


아내와 함께 누이, 동생 태우고

달음산 질매재를 넘으며 부모님 한 번 쳐다보고 

진주장례식장 문을 여니 국화꽃 복도를 메웠다.

안내판에 한 분 정기순 거룩한 이름 아래 

외삼촌 하일원 요양병원에서 천치같이

할멈 죽은 것도 모르고 계시고 

아들 셋 딸 넷 7남매 각 내외 

눈에 넣어 고왔던 친손자녀 7명

외손자 각기 둘씩 여덟 

외삼촌 독자에서

총 스물아홉 소대를 벌린 위인이셨다.

못 사는 훈장네 집안 외아들에 시집와서

짐승처럼 아이 낳아 기르시고

인간미를 일궈오신 거룩한 생산자

가족칸이 빽빽하다.

향년 91세로 살만큼 사셨는데

그래도 섭섭한 건 인간애다.


   

빈소에 들면서 누이 울음보 터지고 

삼남매 서서 잔 올리고 재배

상주들 어루만지며 일일이 위로했다.

어느새 내가 제일 나이 많은 내외종이다.

눈꼬리에 눈물 감추고 

자초지종 이야기 들으니 

전일 저녁에 큰며느리 더러 이젠 더 오지마라고

유언 아닌 마지막 말 전하시고 

밤새 세상을 깨끗이 소복으로 소천하셨단다.

병원 영감님은 그렇게 할멈 찾아대는데도 

미리 정 떼시고 세상 하직하신 듯

장례 절차 산소 다 물어보고 

선조묘 아래 부모님 묘소 평장으로 자리잡아 두었단다. 

지금껏 정성으로 모신 제수씨에게 위로 전하니

복받히는 설움 눈물 터진다.


접빈실로 나와

마지막 남으신 매끌 이모와 정만석 이모부 

그 아이들 태화와 태원이 척정(戚情) 붙인다.

그래도 늘 병객 이모님 얼굴이 화평하니 좋다.

서울 이모님 내외는 이미 다녀갔단다. 

큰이모댁 동만이 식구와 동학이 내외는 늦게 도착했다.

둘째 이모댁 근호 설호는 아직 보이지 않는다.

어머님 형제는 외삼촌 하나에 이모 다섯 6남매다.

그중에 우리 엄마는 셋째다.

인정망(人情網) 모두 확인하고 

예절 절차 빠지지 않게 이르고 

외삼촌 소식 전해 듣고

저녁밥 함께 먹고나서 

깜깜한 밤 고향 둘러 동생과 누이 배송하고 

돌아오는 길 별말 없이 차를 몰았다.

인생은 누구나 그저 사라질 뿐이다. 

내 인생의 증인 또 한 분 떠나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