따뜻한 만남 1/조상사료실

선조 산가 대청소의 날

황와 2019. 8. 26. 00:21

19.8.25 재령이씨 통덕랑공(諱 再文) 종중 묘소 벌초작업 실시하다./264

작업 : 동산리 뒷뫼, 달음산, 수의동, 안즌뱅이 산소 18 상부 공동 벌초작업 실시

참여자 : 우리가 3, 병철가 5, 병일가 2, 계 10명  

점심 식사 준비 : 집안 종수들  큰집에서 준비

수고 감사 10만원 전달


녹음방초(綠陰芳草) 우거진 아름다운 산가(山家)

우리 국토 어디든 땡볕과 잦은 빗물 

여름내내 지붕이 안 보이도록 키워댔다. 

어쩔거나 저러다가 우리 할배 잃겠다.

그래서 연중 이때쯤 잠자리 날고

제초기 우는 소리 산천에 자욱하다.

자손들 불러모아 조상집 대청소의 날

할배 할매 만나고

종형 사촌 반가움에 손잡고

아지매 종수 모여 음식잔치 고향맛 푸짐해진다.

아재비 조카 손자 만나 모처럼 만남의 잔치다.

그간 잘 살았는가?

형님도  건강하셨소?

형님, 동생, 아재비 조카 끈끈한 정이 오간다. 

바쁜 몸 모두 빼내서 고향에 모였다.

조상 벌초작업은 명목상 목적이고

집안 사람끼리 모임이 주목적이다.

몸소 실천하고 느끼는 것이 배움이다.

자손들 바라보는 조상은 싸늘하지만

조상이 후손을 끌어 안는 현장은 그리 따뜻하다.

땀 빼며 노력한 몸의 가치보다

마치고 나서 느끼는 정이 더 넉넉하다.

그래서 지금껏 작년에도 올해도 

또 내년에도 이어가는 것이다.



인천 가서 사는 아들 밤에 늦게 도착했다.

늘 바쁜 몸 짬내기 어려운 사정 알지만

"8월 25일 일요일 벌초인데 어쩔래 ?"

그날 내려오겠단다.

암소리 안하고 그 정성 기다린다.

새벽 6시 헌옷 긴옷 입히고 

고향 찾아들었다.

사촌 동현이도 이미 와 있다. 

아침 한 숫갈씩 뜨고 큰집으로 내려갔다.

부산 종제와 제수들 조카들 

큰집 종제와 제수들 온통 잔치집이다.

고마움에 한사람 한사람 악수로 정 표했다.

벌초는 조상이 불러 모은 축제날임을 알린다.

빈집들이 덩실덩실 사람으로 끓는다.

살아있는 삶의 진정한 모습 아닐까!

친척은 묶음의 인장력이다. 



어제부터 올라와서 윗대 산소 벌초를 마친

고생한 병철 종제 삼형제 내외

그의 아들 조카들 정말 고맙다.

우리 종가 최고 종조 10대조 사과공 할배(휘 蓂) 태기태 산소 

문익공(文益公)(휘 時玟)과 배인 청주한씨 할머니 쌍봉 산소  

씰미 겸서공(兼瑞公) (휘 以默)선조 배인 인천이씨 할머니 산소 

달음산 광현공(光炫公)(휘 華奎)선조 배인 파산이씨 할머니 산소와

남칠공(南七公)(휘 鉉斗)선조 배인 경주박씨 할머니 산소

배망골 너른 벌안 산소군

선조 사과공 할머니 전주이씨, 여주이씨 두 분,

선조 여평공(汝平公)(휘 德新) 할배 및 파산이씨, 광주류씨, 삭령최씨.내외분 네 분

선조 두보공(斗輔公)(휘 漢勣) 할배와 배인 진양정씨 쌍봉

선조 노수공(魯叟公)(휘 再陽) 할배와 배인 남평문씨 두 분 

선조 태여공(泰汝公)(휘 崙) 할배와 배인 안동권씨 쌍분 

7대조 통덕랑공 (휘 再文) 할배와 배인 밀양박씨 합분 

또 생조부 윤필공(允弼公)(휘 鉉球) 할배와 백부(휘 文浩) 두 분

생부모 (휘 紀浩)와 장흥고씨 쌍분 묘    

모두 벌초 마치고 오늘을 기다리고 있었다.

결국 큰집 큰 아재께서

종중 종손으로 양자 가게 되어서

큰집 종제들과 사촌 간이지만

양가로 치면 22촌이 되는 먼 종제가 되고 말았다.

상선조님는 모두 우리 할배이니 같은 후손이다.

모두 뭉쳐 올라왔으니 얼마나 고마운지



뒷뫼산소부터 올라갔다.

여섯 대의 제초기가 울어댄다.

제초기 소리 윙윙 귀 시끄럽고

코로는 휘발유 타는 냄새 

담배 끊은 내 코엔 독하다. 

안개 내음 뿌리며 장정들이 흩어져 깎고

까꾸리질 톱질 낫질 바쁘다.

무성한 풀잎이 쓰러져 눕고 

까꾸리질 허리 아프다.

주변에 난 나무 가지 톱질

장차 묘지 위 진출을 막는다.

한 번 대강 긁고 나면

전문가 병석 종제들 땅바닥에 붙어 깎는다.

재미있게 보노라면 그게 쉬는 시간이다.

아무나 제초기 메는 것이 아니다.

키다리 훈이가 메고 한 번 베어보더니

자꾸 흙에 쳐 박는다.

전문가 재주가 확실히 있음을 깨닫는다.

 순식간에 우루루 다음 코스로 이동한다. 

진동쪽 두 상부는

통덕랑공(通德郞公) 할배(휘 再文)의 광산김씨 할매묘는 상석이 있고 

죽헌공(竹軒公) 할배(휘 時長)의 벽진이씨 할매묘는 표석도 없다.

반야동쪽 두 상부는

아랫쪽은  황재공(篁齋公) 할배(휘 嵎)의 삭령최씨 할매묘는 상석이 있고 

좌측 위쪽 치순공(致純公) 할배(휘 聲默)묘는 표석도 없다.

            [진동쪽]

     

                      통덕랑(휘 再文) 배인 광산김씨 할머니 묘소              죽헌공(휘 時長) 배인 벽진이씨 고조모 묘

[반야동쪽]

    

                         5대조 치순공 (휘 聲默) 할아버지 묘                    6대조 황재공(휘 嵎) 배인 삭령최씨할머니묘      


다음 산등 아래로 내려오면 

아랫골 대밭뒤 중턱 가장 위쪽엔 

큰집 경오공(景五公) 할배 (휘 壽庸)와

진양정씨 할머니 내외분 쌍분 표석도 없고 

조금 더 내려오면 

큰집 할매 (휘 穎陽千氏) 표석도 없고 

곁엔 큰집 아재 (휘 泰浩) 표석도 없고 

아래엔 그의 장자 종제(휘 東一)가 이름표 없이 미리 누워있다

조금 아래엔 

우리 증조 영서공(英瑞公,휘 壽英) 할배 와 김령김씨 할매 합분이시고 

바로 곁에 조부 직와공(直窩公, 휘 鉉祉) 할배와 창녕성씨 할매 합분이시다.

이장하면서 오석 표석을 세워 이름표 달았다.

또 조금 아래엔 

내 숙부님 남파공(南坡公, 휘 典湖) 이름표에 이력까지 새겼다.

맨 아래 바로 대밭뒤엔

내 고조부 죽헌공(竹軒公, 휘 時長) 밀양할배 묘가

대밭 그늘에 매우 홀로 이름표 못달고 갑갑하시겠다.

모두 정성을 다해 깨끗하게 대청소 했다.

위의 묘소들은 모두 종산에 집단 산촌이다.

아마 나도 언제 쯤 그 마을에 들겠지 

여남 명이 달겨드니 금새 후따닥 해 치웠다.  


     

                      큰집 종증조부(휘 壽庸) 배인 진양정씨 쌍봉묘           큰집 종조(휘 鉉球) 배인 영양천씨 할머니 묘             

    

                                 큰집 종숙부 (휘 泰浩) 묘                                  큰집 종제 (휘 東一) 묘

      

                         증조부(휘 壽英)와 배인 김녕김씨 합봉묘             조부 직와공(휘 鉉祉)과 배인 창녕성씨 합봉묘 


                                                                   고조부 죽헌공(휘 時長) 묘


다음은 모두 두 팀으로 갈라져

동권 종제는 셋을 데리고 

집현 장흥리 수의동 산소 

황재공(篁齋公) 할배 (휘 嵎) 명당지를 가고 

할배는 유월장(逾月葬)을 지내신 숨은 선비로

문집을 내손으로 해석해서 펴낸  황재집(篁齋集)의 주인이시다.

매년 갔으니 종제들이 아주 잘 했을 게고

나머지 종제들과 종인은 

먼저 달음산 먼당 내 양부모, 생부모 산소 

선부공(善夫公) (휘 寅浩)과 진양정씨 굼실댁 어머니 쌍봉으로 

장부공(壯夫公) (휘 升浩)과 진양하씨 단목골댁 어머니 쌍봉으로 

형제 내외분과 동서분끼리 고개 먼풍경 끌어당기며 

문패 달고 산새 풀꽃과 놀고 계신다.

풀내 만들며 열심히 두벌 논메기하듯 깨끗이 닦았다.

얼마나 기뻐했는지 모른다.

웃음소리가 달음산을 넘어 퍼진다.     


     

     양부 선부공(善夫公, 휘 寅浩)과  양모 진양정씨 쌍봉묘                생부 장부공(壯夫公,휘 升浩)과 생모 진양하씨 쌍봉묘

 

다음 마지막으로 안심방 5대 조모 의령남씨 할머니 산소 

산맥등성이 급경사 올라야 한다.

달음산 뒷등이라 제법 멀다.

금산면 금호못 돌아 보궁사 가는 길

안심방길 산구비 돌고돌아 안심방 고개마루에 섰다.

거긴 예전 산노루 벗하는 외딴 오지 유배지였다.

그 외진 곳에 20리 산길 좁은 길 어찌 장례치렀을까 ?

깔딱 경사지 올라야 산등에 외로이 누웠다.

이미 산림청에서 풀을 다 베어 놓았다.

그래도 긴풀 잠간만에 제초기 돌렸다.

깔끔하게 청소했다.

혼자 산속 외딴집 할매가 참 무섭겠다.

1년에 한번 겨우 얼굴 보는 그리움에 미소다. 

마지막 기쁨에 사진에 담겼다.

오는 길은 산길 넘어 가좌골로 넘어왔다.

벌초, 추석 때만 출입통제를 풀었다. 

큰집에서 따뜻한 점심 마시고 

종수들 고마움에 10만원 종숙모께 전했다.

모두 수고했다고

이 모습이 사람사는 모습이라고 축하했다.

찧어둔 쌀 싣고

숙모님 잠에 인사도 못하고

동생네 들러 아픈 모습 애기 듣고

약값으로 조금 전하고 

신신당부 빨리 회복하라고 빌었다.

동기간의 정이 아무래도 딴사람과 다르다. 

고속도로 밀리는 길 버리고 

어시재 넘어 군북으로 

법수에서 가야로 재빨리 돌아왔는데도

갈길 바쁜 아들에게는 많이 늦었다.

엄마밥 맛보고

아들 바리바리 엄마정 싸서 빨리 쫓아 보냈다.   

고속도로 덜 밀려야 할텐데 

인천서 왕복 그것 또한  걱정거리다. 


                                                   안심방 오대조 (휘 聲默)의 배인 의령남씨 할머니 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