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일(遺逸) 벼슬을 안 하고 숨어서 산 큰 선비
1. 이예훈 (李禮勛) - 지소
자는 화백(和白)이요 호는 성재(誠齋)이며 재령이씨다. 유행편(儒行編)에 기록된 이침(李琛)의 손자다.
공부를 하면서 일찌기 급제를 하여 대간(臺諫)이 되었으나 대간으로 직무를 충실히하다가 계미년에 세 번이나 내침을 당하자
벼슬할 마음을 접어버리고 오로지 성리학(性理學)을 더 좋아하며 말하기를 중용(中庸)이야 말로 사군자가 자기 몸을 수양하고 목숨을 지켜가는데 있어서는 오로지 정성(精誠)을 쏟아야할 이유가 여기에 있다면서 誠(정성성)이라는 글자 한 자를 재실 편액의 이름 자로 하고 스스로 부지런하게 살았다.
유집(遺集)이 있었으나 불에 타 버렸다.
송정(松亭) 하수일(河受一)이 묘갈명을 지었다.
2. 이덕윤(李德潤) - 마진
자는 여택(汝澤)이요 호는 도와(道窩)이며 유행편에 기록된 이형(李蘅)의 아들이다. 갈암(葛菴) 이현일(李玄逸)의 제자다.
성리학을 배워서 실천하는데 뜻을두고 아주 독실(篤實)하게 열심히 하였다.
부모님이 병중에 계실 때에는 똥을 맛보아 가면서 약을 달여드리고 손가락을 잘라서 피를 마시게 하고 낫게해 달라고
하늘에 빌었다. 돌아가신 뒤에는 여묘(廬墓)를 살면서 삼년상을 마칠 때까지 죽만 먹었다.
고을과 道에서 효자라고 추천을 하였다. 문집(文集)이 남아있다.
고계(古溪) 이휘영(李彙寧)이 묘갈명을 지었다.
3. 이강(李崗) - 마진
자는 사허(士虛) 유일편에 기록된 이예훈(李禮勛)의 아들이다.
학문과 덕행이 있어서 동계(桐溪) 정온(鄭蘊)과 같이 덕천서원(德川書院)에서 강학(講學)을 받았다.
집안이 너무 가난하여 밥을 자주 굶는 것이 자주 있었다.
아들 다섯을 가르쳤는데 모두 재주가 있어서 공부를 잘하여 저명하였다.
4. 이영국(李榮國) - 수곡
자는 여구(汝龜)요 호는 심운재(心雲齋)이며 재령이씨다. 봉사(奉事,종8품벼슬) 이홍훈(李弘勛)의 손자다.
학문을 좋아하며 배운대로 행동하기를 좋아하였다. 사방산(士芳山) 가운데 정자를 지어놓고 후생을 가르쳤다.
남사(南沙) 이우(李遇)가 묘갈명을 지었다.
5. 이중복(李重福) - 마진
자는 수보(綏甫), 이강(李崗)의 아들이다.
학문으로 명망이 있었고 부모에게 효도하고 형제간 우애가 돈독하였다.
현종때 호군(護軍:오위의 정4품 벼슬)이되었으며 통정대부(通政大夫)가 되었다.
6. 이형(李蘅) - 마진
자는 이문(以聞)이요 호는 제헌(霽軒)이다. 이중복(李重福)의 아들이다.
효행이 유달리 특이하였으며 학문과 행의(行誼)가 남달라서 명성이 높았으므로 그당시 남들에게 존중을 받았다.
영조때에 지평(持平)이 증직되었으며 실기(實記)가 있다.
고계(古溪) 이휘영(李彙寧)이 묘갈명을 지었다.
7. 이덕관(李德寬) - 마진
자는 여길(汝吉)이요 호는 소암(素庵) 이강회(李堈會)의 손자다.
사람 됨됨이가 도량(度量)의 그릇이 크고 학문이 깊으며 의리를 좋아하고 행동이 독실하였다.
학사(學舍)를 크게 넓게 지어서 많은 사람을 가르쳐 성공시켰다.
학서(鶴棲) 유태좌(柳台佐)가 묘갈명을 지었다.
8. 이한정(李漢楨) - 마진
자는 방용(邦用)이요 호는 창암(蒼菴)이며 이강현(李堈玄)의 손자다.
재예가 남보다 뛰어나고 배움이 올되어 열 네다섯에 부모상을 당하고도 여묘(廬墓)를 법제대로 완전히 마쳤다.
일산(一山) 조병규(趙昺奎)가 묘갈명을 썼다.
9. 이한철(李漢哲) - 마진
자는 내원(來遠)이요 이덕관(李德寬)의 아들이다.
어려서부터 박학다식하여 후배들의 학문진척에 뜻을 두고 학업을 권장하였으므로 후배들이 스스로 칭송하는 말을 하였다.
늦은 나이에 인격을 갈고 닦는다는 뜻으로 자호를 지려(砥勵)라하고 좌우명으로 걸어 두었다.
학서(鶴棲) 유태좌(柳台佐)가 묘갈명을 썼다.
10. 이재환(李再煥) - 마진
자는 원장(元章)이요 호는 쌍괴당(雙槐堂)이며 현감 이한익(李漢翼)의 아들이며 통덕랑(通德郞)이다.
부모에게 효도하고 형제간에 우애가 있었으며 학행이 독실하고 뜻하는 바가 남보다 우수하였다.
집안 일족이나 자식을 가르칠 때는 백 번을 참아야 집안의 융화가 잘되어 9대가 잘 살 수 있다는
중국 당나라 장공예(張公藝)의 백인지훈(百忍之訓)을 일깨워 훈육하였다. 유집(遺集)이 있다.
11. 이재훈(李再勳) - 마진
자는 원숙(元叔) 이요 호는 우졸(愚拙)이며 이한철(李漢哲)의 아들이다.
타고난 자질이 영특하고 고매하여 덕망이 있었으므로 지역까지 명성이 드러났다.
부모를 섬김에 효성이 지극하여 부모가 아플 때에는 똥을 맛보아 가며 처방하여 치료하며 간병하였다.
동라 가신 후에는 여묘(廬墓)까지 완전히 마쳤다.
더욱이나 계모까지도 성심으로 모셔 이 소문을 듣고
정재(定齋) 유치명(柳致明, 병조참판, 당대 유명한 학자임)이 묘갈명을 지었다.
12. 이우(李嵎) - 나의 6대조 할아버지 - 동산
자는 대여(大汝)요 호는 황재(篁齋)다. 유일편(儒逸編)에 기록된 이예훈(李禮勛)의 후손이다.
학문에만 독실하게 힘썼으며 영달은 추구하지 않았다.
월아산 밑에 재실(齋室: 晩翠軒)을 지어놓고 후진 양성에 전력하였다.
유집(遺集, 篁齋集)이 있다.
13. 이국병(李國昞) - 마진
자는 치성(치성)이요 이재훈(李再勳)의 아들이다.
일찍 벼슬은 그만두고 학문에만 마음을 쏟았다.
시를 지어 이르기를
荒山半畂玉晠世
14. 이인모(李仁模) - 마진
자는 인경(仁卿)이요 호는 영모재(永慕齋)다. 이국우(李國祐)의 아들이다.
어려서 부모를 여의고 학업을 열심히 하여 정재(定齋)와 학서(鶴棲)에게서 학문을 배웠다.
어려서부터 집이 몹시 가난하여 굶지않고 살아가려고 무척이나고 생했다. 유집(遺集)이 있다.
단계(端溪) 김인섭(金麟燮)이 행장(行狀)을 지었다.
15. 이국헌(李國憲) - 마진
자는 치로(致魯)이고 유일편(儒逸編)에 기록된 이덕윤(李德潤)의 증손자이다.
어려서 부터 글을 배우기 시작하였다. 타고난 성풍과 성질이 방정하고 남보다 우수하였다.
독실하게 마음먹고 열심히 공부하니 원근 사람들이 모두 칭찬하였다.
유고(遺稿)가 있다.
16. 이정모(李廷模) - 마진
자는 찬경(贊卿)이요 호는 주화헌(輳龢軒)이다. 이국정(李國禎)의 아들이고 유정재(柳定齋)의 제자다.
성질은 깨끗하고 밝았으며 올되었으나 뜻한 바를 이루지 못하고 돌아가니 글을 가르치던 선생이 슬퍼하고 안타까와하였다.
만구(晩求) 이종기(李種杞)가 묘갈명을 지었다.
17. 이희좌(李熙佐) - 마진
자는 맹도(孟度)이고 이인모(李麟模)의 아들이다.
자신의 몸을 잘 수양하고 집안을 잘 다스려 수신제가(修身齊家)를 잘하였고,
선행을 돈독히 하여 정의롭게 살았으므로 사귀는 선비들로부터 추앙과 존중을 받았다.
대사성(大司成) 이휘준(李彙濬)이 선행한 훌륭함을 세상에 알리고자 책을 저술하였다.
친부모를 잘 모셨고 양자간 아버지가 아파서 여러해 고생하자 하루 같이 약을 다려 병간호를 하면서 잘 모셨다.
우헌(于軒) 이수악(李壽岳)이 묘갈명을 지었다.
18 이정모(李正模) - 마진
자는 낙휴(洛休) 호는 오양(梧陽) .유행편(儒行編) 이국병(李國昞)의 아들이다
기억력이 좋고 재주가 뛰어나 어릴때에 서경(書經) 우공편(寓公編)을 한 번 보고 책을 덮은 후 바로 외웠다고 한다.
그러나 불행히 단명하였다.
19. 이수모 (李秀模) - 마진
자는 사휴(泗休), 유행편(儒行編) 이국병(李國昞)의 아들이다
기개가 탁월하고 넓어 경세제민(經世濟民)의 큰 뜻을 지녔다. 스스로 몽광자(夢狂子)란 호를 지었다.
젊은 나이에 세상을 떠났다. 탁암(拓庵) 김도화(金道和)가 묘갈명을 지었다.
20. 이시장(李時長) - 나의 고조부(高祖父)임 - 동산
자는 서길(序吉) 유행편(儒行編) 이우(李嵎)의 손자다.
일찌기 집안의 가르침(庭訓)이 있었으며 천성적으로 효우(孝友)함이 있었고 독실하게 행동하며 스스로 수양하였다.
사람들이 죽헌거사(竹軒居士)라 불렀다.
동암(東庵) 이현욱(李鉉郁)이 묘갈명을 지었다.
21. 이번(李蕃) - 옥종
자는 사영(士英) 호는 남계(南溪)다. 본관은 재령이다. 사의(司議) 이계현(李季賢)의 증손이다.
큰 절의가 있는 강개지사(慷慨之士)였다. 임진왜란 당시 아우 이분(李蕡)과 함께 망우당(忘憂堂) 곽재우(郭再祐)를 좇아
화왕산성(火旺山城)에서 그와 함께 고생하였다. 또한 충무공(忠武公) 이순신(李舜臣)을 좇아 노량(露梁)에서 여러차례 공을 세웠다. 천거로 금부도사(禁府都事)에 제수되었다. 응와(凝窩) 이원조(李源祚)가 묘갈명을 지었다.
22. 이한익(李漢翼) - 마진
자는 성은(聖恩) 유행편(儒行編) 이덕관(李德寬)의 아들이다.
영조때 무과에 급제하여 전중시어사(殿中侍御史) 승선(承宣)을 지냈다. 문숙공(文肅公) 채제공(蔡濟恭)이 그의 뛰어남을 칭찬하였다. 이후 사헌부 감찰로 옮겼으며 외직으로 나가 웅천(熊川)을 다스리게 되었는데 치적이 너무 많았다. 임기가 다하여 기장(機張)으로 가게되자 아전과 백성들이 길을 막고 더 머물기를 원했다. 기장에 있을때도 역시 이와 같은 일이 있었다. 그후 얼마있지 않아 벼슬살이 중에 세상을 떠났다.
23. 이씨(李氏) -
본관은 재령이고 승지(承旨) 한시회(韓時晦)의 아내이다.
시부모님을 잘 섬겼다. 조세 부역을 감면받았다.
24. 황씨(黃氏) - 옥종
본관은 장수(長水)이다. 도사(都事) 재령(載寧) 이번(李蕃)의 아내이다. 계사년에 순절하였다.
인조때에 정려를 내렸다.
송정(松亭) 하수일(河受一)이 정려기(旌閭記)를 지었다.
25. 이씨(李氏)
본관은 재령이다. 진양(晉陽) 하응림(河應霖)의 아내이다.
효렬(孝烈)을 모두 갖추었다. 정려(旌閭)를 받았다.
26 이희정(李喜精) - 옥종
사의(司議) 이계현(李季賢)의 손자이며 예종 때 생원시에 합격하였다.
27 이희중(李喜中) - 옥종
이희정(李喜精)의 아우이다. 진사시에 합격하였다.
28 이희익(李喜益) - 정수
사의(司議) 이계현(李季賢)의 손자이다. 명종때 진사시에 합격하였다.
29 이희만(李喜萬) - 옥종
사의(司議) 이계현(李季賢)의 손자이다. 진사시에 합격했다.
30 이경훈(李景勛) - 옥종
사의(司議) 이계현(李季賢)의 손자이다. 진사시에 합격하였다.
31. 이재헌(李在獻) - 마진
자는 숙보(숙보) 유행편 이덕관(李德寬)의 손자이다. 생원시에 합격하였다.
32 이원모(李原模) - 마진
유행편(儒行編) 이강(李崗)의 후손이다. 고종때 생원시(生員試)에 합격하였다.
33. 이희용(李熙容) - 마진
이원모(李原模)의 아들이다. 사마시(司馬試)에 합격하였다.
34. 이울(李蔚) - 마진
자는 이흥(以興) 유행편 이강(李崗)의 손자다.
인조때 무과에 급제하여 사과(司果)를 지냈다.
'따뜻한 만남 1 > 조상사료실' 카테고리의 다른 글
2019 경덕사 재령이씨 시선조 향례 및 추원재 개축제 거행 (0) | 2019.05.05 |
---|---|
이운룡함 명명 기원행사 (0) | 2019.04.24 |
내 조상의 연보를 만들어 보자 (0) | 2019.02.18 |
증조부(諱 壽英)님 만장시(輓章詩) / 妻男 棲山 金容台 (0) | 2019.02.08 |
묘지명(墓誌銘) (0) | 2018.12.10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