따뜻한 만남 1/조상사료실

굼실촌(隅谷) 향가(鄕歌)碑

황와 2018. 6. 19. 22:13

                    굼실촌(隅谷) 향가(鄕歌)  

                                                                                                                    / 정환학(鄭煥鶴)


천지(天地)가 부판(剖判) 후에 인생(人生)이 출생하야

방방(坊坊)곳곳 정처(定處)하고

계계승승(繼繼承承) 상전(相傳)하야

여기저기 인생이요. 이곳저곳 동리로다.

방방곳곳 동리 중에 성쇠우열(盛衰優劣)있는 바라

그러나 경상도 한중앙에 진주 동면(晉州 東面) 하는 곳에

굼실 촌향(村鄕) 더욱 좋다.

우곡 선생(隅谷 先生) 우리 선조 지리(地理)가 대단할사

세거지(世居地)를 광탐(廣探)하야 이곳 저곳 다 버리고

이곳을 사방 촌향(四方 村鄕) 살피시니

삼강수(三江水) 흐른 물은 남강(南江)으로 합수(合水)되고,

봉령산(鳳嶺山) 높은 봉은 방어산(防禦山) 연맥(連脈)이라.

산수(山水)도 좋을시고 지세(地勢)도 화려할사

만고명승(萬古名勝) 여기로다.

세거지가 적당하사 고려난(高麗亂)을 생각하고

폐직(閉職)하야 계시온 중

아태조(我太祖) 정치(政治)할 제 국난(國難)

사량상(思良相)을 어진 정승(政丞) 구하실 제

우곡선생(隅谷 先生) 징출(徵出)하니

충절(忠節)이 대단하사 충신불사이군(忠臣不事二君)이라

솔닢으로 눈을 찔러 거짓맹인(盲人)되었으며,

기어이 사폐하사 두문불출(杜門不出)하시온 중

서편(西便)에 붙어있는 모정곡 한중앙에 널리널리 터를 닦아  

웅장하고 거룩하게 삼간 기왓집(三間 瓦家) 정각(亭閣) 지어 들어와서

후원(後園)에 대를 심어 욱욱청청(郁郁靑靑) 의의(依依)한데

봉황(鳳凰)이 날아들어 죽실(竹實) 물고 희롱하고

앞뜰에 솔을 심어 낙락장송(落落長松) 늘어진대 백학(白鶴)이 춤을 추고,

뜰앞에 못을 파서 금어 붕어 양육(養育)하야

낚싯대를 던지시어 취적 비취어(取摘 非取魚)

일생(一生} 소창(消暢) 하신대라 지혜(智慧)가 장하시네

높고 높은 산상(山上) 저 못물이 7년 대한(大旱) 가물음과

9년 대수(大水) 비가 와도 여일(如一)하게 영축(盈縮)없네.

좌우(左右)에 서판(書板)이요.

뜰앞에 유허비(遺墟碑)는 고적(古蹟)을 계전(繼傳)하고

유명하신 퇴계(退溪) 선생 유허(遺墟)를 지내실 제

정공(鄭公) 유택(遺宅) 있다고 말씀 하셨도다.

동구(洞口)에 구동비(舊洞碑)는 둥덩실 세워두고

동편(東便)에 묘각(墓閣)이요. 서편(西便)에 정각(亭閣)이라.

산소(山所)는 어데신고 방어산(防禦山) 연맥(連脈)받아

봉령산(鳳嶺山)이 높이 솟아 기구있게 내려온데

수 많은 자손(子孫) 만세유전(萬歲遺傳)할 명승지(名勝地)

그 밑에 터를 닦아 묘각(墓閣)을 지으실제

도리 기둥 기왓집(瓦家)집에 정당(正堂)은 4간(四間)이요

대문(大門) 중문(中門)  3간(三間)이라.

시월(十月) 망일(望日) 시향(時享)할 제

수백여명 후손들이 일자(一字)로 늘어서서 정성있게 향사(享祀)하니

제물도 거룩할사 제관(祭官)도 수다(數多)하다.

분방기(分榜記) 써 붙일제 초헌(初獻)은 종손(宗孫)이요.

아헌(亞獻)은 차손(次孫)이요, 종헌(終獻)은 문장(門長)이라

문중(門中) 우수한 문장 가려내어 집례(執禮) 대축(大祝) 정하시어

거룩하게 향사(享祀)하니

선생(先生) 음덕(陰德) 계시온듯

촌향(村鄕)도 수려(秀麗)하고 인물(人物)도 번성하다.

이 세상(世上) 신풍조( 新風潮)에 상하(上下) 촌수 백여호(百餘戶)

우리 선생 자손들은 의관과 장발(長髮)을 갖추고 선재(先齋)에 각각 모아

시경 서경 예기(詩 書 禮記) 만 권서(萬卷書)를 자자송독(孜孜誦讀)하여가며

수신제가(修身齊家) 하는 것이 우리 선조(先祖) 유업(遺業)이라.

선생 선생 우곡 선생 만세유풍 좋은 덕(德)

천세 천세 천천세(千歲千歲千千歲)요  만세 만세(萬世萬歲) 또 만세(萬歲).

촌향도 좋거니와 우정경개(隅亭景槪) 더욱 좋다.

우정경개(隅亭景槪) 들어보소

우곡정(隅谷亭)을 올라서서 사방팔경(四方八景) 살펴보니

봉령산(鳳嶺山) 에 제월(霽月)이요 매산(梅山)에 낙조(落照)로다.

죽항(竹項)에 장연(長煙)이요. 아산(牙山)에 숙운(宿雲)이라.

용평(龍坪)에 낙안(落雁)이요 삼강(三江)에 귀범(歸帆)이라.

우단(雩壇)에 청풍(淸風)이요 연당(蓮塘)에 약어(躍魚)로다.

행화 도화(杏花桃花) 만발하여 백백홍홍(白白紅紅) 꽃봉지에

벌 노래 나비 춤춰 훨신훨신 탐향(探香)할제

고인(故人) 생각 절로 나고 수양 백양(垂楊白楊) 늘어진대 

천사만사(千絲萬絲) 가지 위에 두견이 울음 울고

꾀꼬리 환우(喚友) 소리 꾀꼴꾀꼴 울음 울제 붕우회포(朋友懷抱) 간절이라.

뒤에는 청산(靑山)이요, 앞에는 벽계(碧溪)로다.

뒤의 청림(靑林) 나뭇잎은 푸른 비단 둘러 있고

앞의 벽계(碧溪) 흐른 물은 은(銀)기둥을 세우는듯하다.

   위에는 청산(靑山)이요 밑에는 화초(花草)로다.

   위에 있는 청산봉(靑山峰)은 초록병풍(草綠 屛風) 둘러있고,

밑에 있는 화초들은 원앙금침(鴛鴦衾枕) 펴논 듯하다.

해 돋고 날 저물어서 조조모모(朝朝暮暮) 때가 되면

조그마한 목동(牧童)들은 지게 목발 두드리며

냇가에 버들 꺾어 피리 불고 돌아오며 그도 한 경(景) 볼만하다.

삼춘화절(三春花節) 좋은 때에

꽃도 피고 잎도 피고 제비 날고 새도 울제

이팔방년(二八芳年) 여자들은

채의단장(彩衣端裝) 곱게하여 꽃구경 가자하고,

회차체로 가자하야 쌍쌍이 짝을 지어 때때로 탐경(探景)할 제

희소담락(喜笑談樂) 손뼉치고 바람 불고 달 밝을 제

빈빈(彬彬)한 시사(詩士)들은 서책(書冊)을 옆에 끼고

문방사우(文房四友) 갖춰들고

때때로 완상(玩賞)할 제 음풍영월(吟風詠月) 무릎친다.

용소(龍沼)들 내려다보니 상하평 너른 들에

농사 짓는 농부들은 아랫들에 밭을 갈고

윗들에 논을 갈 제 이라자라 고함하고

갈미봉 비온다고 곡조 돌려 노래한다.

삼강수 흐른 물에 솔을 베어 배를 모아

주효(酒肴)를 많이실어 소동파(蘇東坡)의 본을 받아

칠월(七月) 기망(旣望) 좋은 날에

이팔청춘(二八靑春) 소년(少年)들이

범주유어(泛舟遊於) 삼강(三江)하고

쇠립(衰笠)한 저 어옹(漁翁)

일엽편주( 一葉片舟) 도도(陶陶)히 타고

천어환주(穿魚歡酒)하자하여

배 돛대 돌려세워 류계변(柳溪邊)을 찾아간다.

못 가운데 차려보니 금어 붕어 출몰(出沒)하고

연잎(蓮葉) 연꽃(蓮花) 만발(滿發)이라

삼하 염열(三夏炎熱) 더운 날에 서쪽으로 바라보니

월아산 높은 봉에 편편히 떠난 구름

불 같고 솜 같이 봉우봉우 지어낼제

혈기쇠(血氣衰)한 노인들은 피서(避暑)하러 상림(上臨)하고

일락서산(日落西山) 저문 날에 동쪽으로 바라보니

봉령에 돋는 달이 옥(玉)도 같고 꽃도 같이 둥글둥글 올라올 제  

의기방장(義氣方長) 소년들은 완월(玩月)하러 등림(登臨)한다.

쪽으로 바라보니 선유봉(仙遊峰)이 우뚝 솟아 신선세계(神仙世界) 방불하고

쪽으로 바라보니 천년고목(千年古木) 솔정자는

천지만지(千枝萬枝) 늘어져서 용의 허리 굽은 것 같다.

삼추가절(三秋佳節) 청량(淸凉)한데 국화 피고 단풍들 제

연아(年稚)한 아이들은 국화도 꺾어보고 단풍도 날려보아 서로서로 희롱하네

삼동상한(三冬霜寒) 차운 날은 문을 닫고 앉았으니

모진 바람 북풍 불 제 천동(天動)인지 지동(地動)인지 풍성소리 요란하다.

좌우의 송죽(松竹)들은 절개를 자랑하고 풍상에 우뚝 섰네.

사시경개(四時景槪) 좋을 시고 문을 열고 차려보니

내왕하는 기차(汽車)소리 산천(山川)이 요동하고 천지(天地)가 진동한다.

호걸(豪傑) 미녀(美女) 가득 실어 번개같이 달아나서

진주 마산 발착(發着)이라 그도 경개(景槪) 더욱 좋다.

만천경개(萬千景槪) 무궁하나 단문졸필(短文拙筆)하여 대강(大綱)만 기록(記錄)하오. (끝)


        주) 선고(先考)께서 지으신 원고에 의거 현행 맞춤법으로 고쳐 씀


                                                                          아들 순규(舜圭) 서(書)


 주) 작자 소개 :

      작가의 본관은 진양(晉陽) 자는 성여(聲汝) 1906년생으로

      경남 진주시 사봉면 향리에서

부(父) 헌주(憲柱) 모(母) 진양하씨(晉陽河氏)의 4남1녀(四男一女) 중 장남으로 태어나

백부(伯父) 호주(昊柱)와 백모(伯母) 재령이씨(載寧李氏) 앞으로 입양하여

            17세에 현풍곽씨(玄風郭氏)와 결혼(結婚)하여 2남(二男)을 두었음.

            생애 첫 작품인 촌향가는 1920년대 후반기 중에 지은 것으로 추정되며

            194439세로 타계하였음.  (주) 내 외숙부이시다.


            아들(子) : 순규(舜圭) 종규(宗圭)

            조카(姪) : 희규(稀圭) 창규(昌圭) 영재(英在)

                                                               백양문중(栢楊門中)

                                                           2016년 병신 58일 세움(竪)