석계(石溪) 이시명(李時明)선생은 경북 영양 석보 두들마을에서 사신 조선 중기(1590-1673) 유학자이시다.
석계 선생의 부인 인동장씨는 더욱더 유명하다. 조선 시문학과 음식디미방 조리법책을 남기신 할머니시다.
두분의 사이에 일곱 아들이 유학자로 이름을 떨치셨는데 상일,휘일, 현일, 승일, 정일, 융일, 운일 7형제이시다.
명나라가 망하자 집을 수비로 옮겨서 73세 생일을 맞는 날 아들들의 시 문력을 확인할겸 먼저 자신이 시 한 수를 짓고
專前賢年 4자를 운으로 아들들에게 시를 짓게 했다고 한다.
그 시가 바로 다음과 같다.
1. 석계 선생의 시
晨與靚服坐茅椽 새벽녘 일찍 일어나 단정히 옷갈아 입고 집에 앉았노라니
신여정복좌모연
斗覺胸襟更靜專 문득 마음이 온통 고요해짐을 깨닫노라
두각흉금경정전
陽氣潛生南至後 동지가 지나 양기가 잠겨드니
양기잠생남지후
雪山宛轉朔吹前 아직 북풍도 안불건만 모든 산들 설산의 자태로다.
설산완전삭취전
愁聞天下容戎醜 근심스럽도다. 이 세상 오랑캐가 침범하였으니
수문천하용융추
悶見人心自聖賢 걱정이로다 사람들 성현을 찾음이
민견인심자성현
且喚家僮斟一殘 아이종 불러 한 잔 술 따르게 하고
차환가동짐일잔
做成今日太平年 시 읊어 금일이 태평하길 비누나
주성금일태평년
2 長子 상일(尙逸)의 시
首比之陽屋數椽 수비산 북쪽 몇 서까래 띠집에
수비지양옥수연
春萓棠棣樂俱專 어머님과 형제들 화락하니 이 즐거움이 오롯하구나
춘의당체락구전
星蹟漸改陽生後 병자리는 양이 생한 후에 점점 바뀌어
성적점개양생후
月魄將消莢望前 바야흐로 달이 사라지려함에 보름 전에 명협이 자란다.
월백장소협망전
孝弟成家而及遠 효제로 집을 다스리고 또 미쳐 멀리 나가야하리니
효제성가이급원
詩書居業是希賢 시서로 학업을 닦아 성현을 배우리라
시서거업시희현
吾家福慶知無極 우리 집의 복 그지 없으니
오가복경지무극
麟趾螽斯賦每年 '인지', '종사' 편을 해마다 읊으리라
인지종사부매년
3. 次子 휘일(徽逸)의 시 - 호 존재(存齋)
題詩安得筆如椽 시를 지음에 어찌 서까래 같은 글을 읊으랴
제시안득필여연
慚傀年來業不專 여러해 학업에 전심하지 못한 게 부끄럽도다.
참괴연래업부전
和氣滿堂寒自戢 화기가 집안에 가등하니 한기 절로 멎는데
화기만당한자집
班衣聯메舞爭前 아롱진 옷에 소매 서로 맞잡고 앞다투듯 춤을 추네
반의연메무쟁전
天全二樂方欣慶 하늘이 이락을 온전히 해주었으니 정말 기쁘고
천전이락반흔경
心做新工願學賢 생각컨대 새롭게 하기 위해 성현을 배우려 했네
심주신공원학현
爲賦短歌廣一闕 시 읊어 화시하노니
위부단가광일궐
益膺多作自今年 아버님 금년엔 더욱 복 많이 받으시길
익응다작자금년
4. 三子 현일(玄逸)의 시 - 호 갈암(葛菴), 이조판서 역임
寂寞心期慕采椽 내 맘 속에 오직 바라건대 거친 집에서나마 고요히 살기를 그리워 할 뿐
적모심기모채연
不圖箕顈意還專 가산 영수를 꾀하지 않음이 분명하도다.
부도기경의환전
靈臺肯許留塵渧 사람들과 함께 살며 진세에 남고 싶지만
영대긍허유진제
世變堪傷不後前 세변이 일어남이 내 앞 시대도 뒷 시대도 아님이 슬프네
세변감상불후전
荊樹朝朝交映愕 아침마다 햇빛은 숲속 꽃에서 빛나고
형수조조교영악
鯉庭事事要希賢 일마다 잉어 노니는 뜰엔 현인을 배우려 하네
이정사사요희현
虛堂夜久暄囂息 허당에 밤이 깊어 시끄러움 멎자
허당야구훤효식
歌曲渾祈壽萬年 모두들 시 읊어 아버님 만수를 비네
가곡혼기수만년
5. 四子 숭일(嵩逸)의 시 - 호 항재(恒齋)
蕭相曾爲沛邑椽 일찌기 패읍(沛邑)의 서까래였던 소하(蕭何)는
소상증위패읍연
宏才不鄙小官專 재목이 컸으되 작은 벼슬을 맡았었네
굉재불비소관전
當年名在常人後 당년엔 그 명망 보통 사람에도 못미쳤거늘
당년명재상인후
異日功居汗馬前 훗날엔 그 공로 남들보다 앞섰다네
이일공거한마전
識務自慚非俊傑 시무(時務)를 잘 알았으되 그 스스로 준걸(俊傑)에 못 미쳤음을 부끄러워 했고
식무자참비준걸
匡時長恨乏英賢 세상을 바로 잡았으되 기리 영현(英賢)에 부족했음을 한(恨)스러워 했다네
광시장한핍영현
北堂風雪黃昏後 북당(北堂) 어둔 밤 풍설이 불어대는데
북당풍설황혼후
更酌餘樽祝萬年 다시 아버님께 남은 술 권하며 만수를 비누나
경작여준축만년
6. 五子 정일(靖逸)의 시
此日開尊共小椽 금일 술동이 열고 서까래들이 다 모였으니
차일개존공소연
世間三樂一家傳 세상의 삼락을 온식구가 함께 했네
세간삼락일가전
深漸學古言違行 옛 도를 배운 것이 언행에 어긋날까 심히 부끄럽고
심점학고언위행
且畏操心後淚前 마음 잡은 게 전후로 어긋날까 두려웁지
차외조심후누전
抱膝謾愁民有疾 무릎 포개 앉아 민생에 병폐 생길까 걱정하고
포슬만수민유질
廢書潛歎國無賢 책을 덮고 가만히 나라에 현인 없음을 탄식했네
폐서잠탄국무현
從知天道闕當開 아노니 천도란 닫히면 마땅히 열려진다는 것을
종지천도궐당개
復覩衣官在幾年 어느 때 다시 보랴 예모(禮貌)가 회복될 날을
복도의관재기년
7 六子 융일(隆逸)의 시
紛紛飛雪打茅椽 날리는 눈발이 어지러이 띠집을 치는데
분분비설타모연
當夜開樽與更前 이 밤에 술동이 여니 흥이 돋워지네
당야개준여갱전
爲樂吾思居衆後 즐거함이 내 다른 사람들보다 뒤에 하려하고
위락오사거중후
深憂誰復在人前 깊이 근심하기론 어느 뉘보다 앞서하리로다.
심우수복재인전
論時自槐平生拙 시를 논하려면 평생토록 졸하였음이 부끄럽고
논시자괴평생졸
談世差誇一日賢 세상을 말하려면 하루 어진 것만 가려 뽐내었다네
담세차과일일현
匣裏鋩寒有古釖 갑옷속에 든 옛 칼 끝은 차갑도록 날카로운데
갑이망한유고도
此心長照擒胡年 길이 비추리라. 이 마음 오랑캐 잡는 날까지
차심장조금호년
8. 七子 운일(雲逸)의 시
壽席額開此筇椽 이 띠집에서 수석을 자주 여니
수석액개차공연
人間至樂一堂專 세상 지락이 일당에 가득했네
인간지락일당전
當仁自擬師無讓 인을 행하는덴 뭇사람이 양보하지 않으리라 생각하고
당인자의사무양
臨利誰稱馬不前 이를 당해서는 그 누가 말했던가 말도 앞세우지 않는다 했으니
임리수칭마부전
陋巷沈潛顔氏樂 누항(陋巷)에 고요히 파묻혔나니 안회(顔回)의 즐거움이요
누항침잠안씨락
首山景仰伯夷賢 수산(首山)을 우러러보며 백이(伯夷)의 현이로세
수산경앙백이현
流光荏苒知難再 빠른 세월 흘러가면 다시오지 않으리니
유광임염지난재
須着工夫及壯年 모름지기 공부에 뜻 붙여 장년에 이르리로다.
수착공부급장년
[출처 : 재령이씨 종보 2012 12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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