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마운 만남 2/청아한글샘

열무김치 담그기

황와 2025. 6. 8. 05:10

 

어머니 그 고단한 표본 

넉넉할 게 하나도 없는 가난한 세월

가족 모두 종일토록 들밭에서 일하다가

해질녘 집으로 향하는 어둑한 길

보리 벤 깡테기 틈에 목화 심고

듬성듬성 사이에 뿌려 너풀너풀 자란 열무

손가락 굵기 뿌리 하얗게 올라 오면   

여남 뿌리 쑥쑥 뽑아 도랑물에 대강 씻고

검댕이 뚝뚝 떨어지는 정지에서 

대강 소금 약간 뿌려 절이고

빨강고추 듬성듬성

들기름 몇 방울 떨어뜨려

손으로 주물주물 풋내 나는 와삭이 김치 

엄마는 모든 걸 다 아는 일류 요리사

보리밥 한그릇 뚝딱 

그게 어머니의 준비성이었더라.

 

요즘 아내는 어깨뼈 부셔져

큰 핸드빽 하나 겨드랑이에 끼어 안고

한 달포 입원 퇴원해서 주방 지휘자 됐고 

난 평생 부억 출입 못하는 서방님 대우 받다가 

갑자기 간호인 신세 모든 게 내 몫

밥이나 겨우 지어 먹다가 

오늘 느닷없는 명령이 떨어진다.

열무김치 담으러 역시장 가잔다.

요즘 6월초 시장 바닥에 푸른 잎 채소전 널렸다.

여기 기웃 저기 기웃

좀처럼 상인들 애를 태우더니

아주 굵고 싱싱한 딱 벌어진 열무 한 단

첫눈 봐도 맛있겠다는 느낌 내게 지운다.

 

집에 돌아 와 펼쳐 놓고는 

가장 잘 산 열무라고 하며

먼저 물에 대강 씻고 

작은 칼로 알뿌리 긁어내고

알맞게 듬성듬성 잘라서 소금 뿌려 숨죽이고

보리쌀 갈아 풀죽 끓여 붓고 

풋고추 마늘 양파, 홍당무 다져 넣고 

액젖 뿌려 버므려 뒤집으며

한 잎 떼어 맛 보라고 내 입에 넣는다.

짭쪼롬이 어느새 김치맛이 난다. 

내 손으로 담근 최초의 열무김치

며칠만 삭으면 맛진 반찬 밥도둑이 될 터

하루 종일 하인 되어 손에 물 뭍혔다.

 

여인의 삶 체험 

그저 반찬 아무나 하지 

그러나 직접해 보니 하루 종일 일이다.

주부는  하루 종일 음식 메뉴 걱정

식구들 먹일 숙제에 쌓여 지내는 구나 

음식이 그저 공식적으로 생기는게 아니구나.

설거지라도 내가 해 주었어야 하는구나 

남자는 사랑방 책상 앞에서 지내고 

여인은 안방에서 종일 부엌과 빨래터에서 

삼시 세끼와 간식,  아이 키우기,  부모 돌보기

너무나 많은 부역을 지고 살았음을 자각한다.

남자는 힘 쓰는 일만 일인 줄 알고

음식은 그저 나오는 줄 알았던 사내들

이제 가족 모두의 역할 중

어머니, 아내가 중심이었다는 걸  몸소 느낀다. 

아내를 더욱 잘 보호해야 노후가 편안해진다.

호불애비가 되지 않기 위해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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