건강한 만남 3/산책로풍광

진주성 에나길 걸으며 문화유적 관람

황와 2021. 12. 23. 19:49

                                          21.12.23 목요벗 함께 진주성 남강 에나길 걸었다./264

                                           코스 : 마산-진주버스터미널-진주성(촉석루, 의암, 의기사, 순의제단, 김시민비, 공북문, 

                                              김시민동상,영남포정사문,경절사,북장대,청계서원,박물관,창렬사,호국사,서장대)-

                                              천수교-남가람유등축제장-경남문회회관앞휴게소(점심)-대밭길-진양교-뒤벼리길-

                                              진주향교-진주버스터미널-마산  

                                          거리 시간 인원 : 18,400 보, 13.6km, 7.0시간, 7명

                                          특색 : 진주유등축제장 철거 중 관람

                                                  진주성내 유적 일일이 관람

                                                  남강변 봄날 같은 날씨 아름다운 풍광

                                                  진주향교 처음으로 관람

 

 

진주 나의 꿈이 자란 고향

중고대를 거기서 키워주었다.

그래서 고향 가는 기분으로

또 연말까지 연다던 유등축제장 구경하러

그러나 코로나로 공개 중단하고 철거하는 중

강물에 뜬 밝은 풍광이나마 보러 떠났다.

오늘은 고속버스로 진주여행길 올랐다.

오늘따라 엄한 날씨 활짝 풀어 

봄날같이 화장하니 관람 시민도 없으니 더욱 안전하다.

진주시가지 중앙으로 남강 가로질러 흐르니

경승지 진주성과 남쪽 대밭숲 칠암벌

거울같은 맑은 물 하늘 깨끗이 닦아준다.

겨울 오리 동동떠서 평화로운 정경

철거중인 유등 강물에 그림자 흔들며

유유히 흐르는 하늘에 잡혔다.

참 아름다운 고향이로고 

눈속엔 어릴적 까가머리 중고등생 모습

떠올려 비교 감상하고 있다.

여기는 대밭 저기는 백사장

모래밭 발 빠져가며 맨발로 달리던 놀이터

도동 나룻배 사공이 미는 긴 장대 삿대 

영남예술제 때 터져 나가는 기차 창문으로 타기

새벽밥 먹고 나와 늦은 밤 돌아가는 기차 통학 

공부 시간 없어 찻간에 서서 외우는 단어장

주마등처럼 활동영화를 돌린다.

아 참 그리운 고향가는 길 설렌다. 

 

 

마산서 진주버스터미널에 내리니 약 50분만에 닿는다.

강둑에 올라서니 강물이 넉넉하다.

물이 있는 곳엔 언제나 풍족함을 얻는다.

물은 재산을 나타내기에 오행의 의미가 그렇다.

강둑 선 곳은 옛날 옥봉남동 모래언덕가 

사막처럼 언덕에 서면 발이 슬슬 빠지며 미끄러져 내려 가던 곳

눈아랜 다 찌그러져가는 초가집들이 빽빽했던 물드는 저습지였다.

그러나 지금은 둘을 막아 신규 건물들이 드러찼으니

이미 그것도 70여년이 지난 지금 옛 시가가 되었다.

진주버스터미널이 있기에 그래도 집결지다. 

강가 수양버들 아직도 잎을 다 떨어내지 못하고 

누우런 단풍 매달고 있고

수면 거울에 그림자 담그고 있으니 더 아름답다.

코스 설명하고 강변길을 따라 오른다.

진주대교 물그림자가 반원을 그리고 있다.

상하 반원이 합치니 원이 생겨 이어진다.

이번 축제 때 도강 부교에 병사 모형이 강변에 밀려섰다.

매년 아용되는 형상도 있지만 새로 만든 형상도 많다.

채색감까지 있으니 멋진 강의 풍경화다.

점점이 떠있는 유등들이 멋지다.

7 동행인 즐거운 모습도 마스크에 갈려 몸만 섰다.

 

 

코로나 체온 점검하고 

촉석루에 서니 진주 명승 그 누각 정말 멋지다.

바윗돌이 우거진듯한 누각이란 뜻

전국 3대 명승 누각 중에 으뜸이다. 

진주 촉석루, 평양 부벽루, 남원 광한루. 또 밀양 영남루 .....

6.25 전쟁 때 소실된 후 내가 고등학교 다닐적 지금의 촉석루 중건했었다. 

그땐 촉석루 현판 글씨를 이승만 대통령의 갈묵 글씨가 붙어있었다.

그 글씨체가 훨씬 굳세고 씩씩한 느낌이었다. 

 

 

작은 돌문을 나서 아래로 내려가면

바위절벽이 강물 위에 어지럽다.

해가 강물에 빠져서 의암에 걸렸다.

오래간 만에 의암으로 건너 뛰었다.

강물이 논개를 엎고와 날 유혹하여 잡아당기는 듯

기록에 의하면 왜장을 껴안고 빠진 몸

30여km 떠내려가 시신이 의령 정암부근에서 떠 올랐다니

여인의 충절이 붉고 강물은 강낭콩보다 더 푸르다고 시인은 노래했다.

시신은 반장하여 그의 고향 장수 너머 함양 서상에 묘를 썼다.

의암 논개비가 바위절벽에 역사처럼 섰다. 

 

 

의기사로 올라갔다.

의기 논개의 사당이다.

최경회 장군의 양처 부인인지

진주 기생인지 분분하지만

연약한 여인으로서 굳은 절개로 나라의 충성을 다하니

참 거룩한 충절녀로다.

그레서 매년 여름철 복더위쯤 되면

논개 제향을 지내고

진주 기생들이 칼을 뿌리며 추는

진주팔검무가 무형문화재로 공개된다.

여군장 여인들이 빙글빙글 돌면서 추는 춤은

진주 지방의 구경꺼리요 전국 유일한 검무다. 

초상화가 바뀌어 눈에 서툴다.

옛날 조선말 왕실 화공이었던 김은호 화백이 그린

영정이 더 차분하고 아름다웠었다. 

사당 뒤쪽에는 제말 장군 형제에 대한 추모비각이 서있다.

형제는 진주성 대첩에서 장렬히 전사했다.

제말 장군의 묘는 창원 구산면 다구리 도로변에 있다.

  

 

공원정상에 오르면 네모난 병풍석 빙둘러 쳐진

진주대첩계사순의단이 설치되어 

계사년 진주대첩중 전사하신 수많은 장수와 병졸들 

그들을 도와 싸웠던 백성 시민들을 모신 제단이다.

1차전에선 진주성민이 함께 나와 성을 지켜냈으나 

2차전에선 더많은 왜군 대병력으로 며칠간 침투 보급을 끊으니 

결국 함락하고 모든 군민 왜병에 주살당했다.  

그 영령들 여기 제단을 모아 제사지낸다. 

당시 진주목사 김시민전공비와 진주촉석정충단비 둘이 붙어서 있다.

예전엔 이곳에 영남예술제 공연장이 설치되었던 공터였다.

 

 

아래 잔디밭으로 내려가면 

진주성 정문 공북문을 만난다.

2층 대문으로 북문에 해당한다.

그 바로 곁에 예전에 진주세무소가 위치해 있었던 자린데

오늘 보니 발굴중 암반바위가 절벽으로 드러나 있다.

공원 나무들이 뜨개질한 옷을 입었다.

겨울에 추위를 달래나 보다.

이제 온 사물에 인간의 생각을 입히고 있다.

목도리 두른 듯 아름답다.

풀밭 가운데 진주샘터가 있다고 소개했다.

성안 시민들이 왜적과 싸우며

그 우물물을 이용했으리라.     

 

 

당시 진주목사 김시민 장군상을 본다.

손가락으로 가르치는 전투 지휘상

푸른 하늘에 우뚝하다.

진주성전투 삼장사로서 

성을 지키다가 전사한 장군이다. 

장군은 충청도 진천 출신으로 묘소도 거기에 있다.

 

 

영남포정사길을 오른다.

하늘에 달린 수많은 조각보 청사초롱이 아름답다.

2층 누각문으로 조선 후기 관찰사가 근무한 관청이 진주에 있을 때 

그 누각정문이다.

예전 본성동 남성동 가옥들이 빼곡히 들어 차 있었는데

공원화 하면서 잔디밭으로 변하고

지금은 국립진주박물관이 차지하고 있다.

 

 

더 올라가면 진주고을 병사를 비롯한 

많은 지방관들의 선정비를 모아둔 곳이다.

줄지어 선 비석이 약 30여기가 섰다.

조상들 중에서 이름이라도 발견하면 긍지가 돋는다.

둘러보아도 우리 조상은 안보인다.

진주는 역사 깊은 고향임을 비석수가 말한다.

 

 

바로 곁에는 경절사가 있다.

고려 현종 때 충절신 하공진 장군을 모셔둔 사당이다.

북쪽에서 2차 거란 40만 대군을 외교로 물리친 명장이시다. 

또한 진주하씨의 시조이기도 하다.

매년 향례와 절사를 모시는 행사를 치룬다.  

 

 

뒤쪽 성터 위에는 높다란 북쪽 지휘소가 있으니 북장대이다.

진주 내성은 물론 외성까지 다 정찰할 수 있는 전망대로서

진주시내를 다 훑어 볼 수 있는 망대이다. 

아래는 절벽을 이루고 높은 위치다. 

보수하여 새목재로 마루난간과 주춧돌 빛깔이 밝다. 

 

 

경절사 곁에는 또 청계서원이 자리한다.

경사진 계단을 오르니

우람한 돌기둥 비석이 거북등을 타고 섰다.

무던히도 무거운지 목을 쑥 빼고 있다.

'류방백세' 그 향기 백세까지 흘러라는 글귀가 멋지다.

좌우에 선 양비가 규모면에서 거대하다.

고려초 거란침입을 물리친 은렬공 정신열 장군과 

목화 시험재배를 완성한 정천익 선생을 모신 서원이다.'

서원 건물도 6간 대건물이고 사당이 곁에 있다.

진양정씨의 중심 문화재인 것 같다.

 

 

국립진주박물관에 들어갔다.

우리가 처음으로 방문한 관객인 듯

코로나 점검을 일일이 진행한다.

가장 엄정하게 점검하는 기관인것 같다.

접수 아가씨가 내 핸드폰에 일일이 QR코드를 만들어 준다.

내부 전시물을 둘러보며 

전에 전시한 것보다 많이 바꿔졌다.

식성군 할배 임진왜란 선무공신 기록 눈에 확인하며

전에 있던 정랑 이덕후 할배 어사화도  

동산 김명윤 선생 쌍검도 오늘은 눈에 안보인다. 

주마간산격으로 돌아나오니

다른 사람들은 더 빨리 보고 나왔다.

양지볕 탁자에 앉아 쉬며 간식 나누었다.

그것도 박물관 곁에서 음식 먹으면 안된단다.

바로 겉에 국보 105호 산청 범학리 삼층석탑이 반듯하다.

꼭대기 구슬들이 없을 뿐

탑신 추녀라인이 그대로 살아있다. 

 

 

다시 성벽을 따라 올라가면

청사초롱등이 숲길에 매달렸다.

어울린 모습이 참 예쁘다.

진주성전투 선열들의 위패를 배향한 사당

창렬사 들어서면 진주성 위인들 앞에 고개숙인다.

제장병들의 지위 비는 밖에 섰다.

둘러내려오며 비탈진 계단을 오르내릴려면

향례 헌관은 노약자는 출입이 불가하겠다. 

 

 

바로 곁에 있는 사찰이 월영산 호국사다.

진주성 전투에 전몰한 장병과 시민의 영혼을 비는

호국불교의 절이다.

입구 사천왕상의 눈이 우락부락하여 무섭다. 

밖을 나오면 12지신상등이 늘어서 있다.

멋진 모습에 색채감이 있다.

잇빨이 드러나 순둥이 모습은 아니다.

 

 

월영산 정상 절벽에 놓인 서장대

남강 강벽 위에 남강상류 너우니 쪽으로 

올라오는 외적을 관찰하기 좋은 망대다.

강아래 낮 유등들이 내려다 보인다.

건너편 망경산 봉수대도 바로 보이고

천수교 다리가 아래에 오감도로 보인다.

최고 높은 장대이기에 풍광이 아름답고 좋은 군사망대다. 

 

 

성벽을 내려와 후문을 빠져나오면 

절벽 아래 산기슭 도로를 만난다.

인사동이 있으니 서울처럼 골동품 가게들이 있다.

김해김씨 호화로운 비각을 보이고 싶지만 

뒤돌아가지 못하고 만다. 

망경동과 신안동을 잇는 돌다리 천수교다.

둥근다리 모습이 진주대교처럼 멋지다.

천수를 누리라는 뜻이니 오래오래 가리라.

강벽아래 유등들이 점점이 떠 있다.

천수교아래 분수대 주위로 유등들이 논다.

이 다리 아래는 유등을 보관하는 장소로 이용한다.

 

 

남가람공원 강변 길을 걷는다.

강에 뜬 유등들이 아직 그대로 찬란한 빛이다.

밤에 불을 켜지 않아도 낮채색이 곱다.

새로운 디자인 소품들이 세워져 있다.

세우는 데도 오래 걸리겠지만

철거하는 데도 오래 걸리겠다.

넉넉한 강물만 거울과 같이 아래 위를 비춘다.

그 풍광이 그림속에 멋지다.

수평선이 상하 기준선이 되어 포개진다.

상하 정면조(Simentrical) 구조다.

진주 남강유등축제는 우리나라는 물론 세계적인 관광 축제다.

오늘이라도 둘러보고 가니 남은 것만이라도 고맙다. 

 

 

진주대교를 지나며 타원형 7개 원이 그린다.

진주다운 아름다운 다리다.

예전엔 직선 2차선도로였는데

지금은 4차선 도로로 확장되었다.

 

 

경남문화회관앞 강변 쉼터에 앉아서 

점심도시락 나누었다.

둘러 앉아서 정을 나누니 우린 가족이다.

진주 전통 특식으로 사 먹어도 좋으련만

코로나 사태로 혹시나 건물내 전염될까 봐

요즘 무조건 야외에서 도시락을 싸와서 먹는다.

그러니 모두 즐겁게 소풍이 된다.

칠암동 대밭길을 간다.

청죽이 늘어선 그늘길

푸른 기운이 젊게 만든다.

대나무 향기가 우리 몸을 맑게 만든다. 

댓잎 속에 우리 몸을 담그는 길이다.

 

 

 

이제 돌아가야만 한다.

진양교를 건너서 강을 지른다.

강물이 질펀하게 번져흐른다.

옛날 도동 나룻배가 오가던 곳에 놓인 다리다.

다리를 건너 상하 절벽이 뒤벼리 새벼리다.

뒤벼리 절벽아래에 열린 자전거 도로를 걷는다.

강물이 강안에 촐랑거린다.

건너편 문화회관이 높은 기둥이 거꾸러졌다.

강남동의 멋진 풍광이다.

뒤벼리 먼당은 선학산이다.

 

옥봉동으로 들어가 진주향교를 찾아간다.

아직 한 번도 안 가 본 진주역사교육의 요람

우리나라 가장 우수한 향교로 알려져있다.

성균관에서 유교대학을 개설한 모범 향교다.

급경사면에 세워진 건물유적이라

홍살문을 들면 높다란 풍화문이 하늘을 가린다.

일직선 계단 중심로를 기준으로 

우측은 명륜당이 좌측은 사교당이 있고

동서 교당이 있고 

다시 급경사 길다란 계단을 오르면

대성전엔 대성왕과 제현의 위패가 있고 

내려다보니 조감도처럼 한눈에 보인다.

아래 입구에 유도회관이 있어서 교육을 한다.

가까운 길이라고 예사로 여긴 평탄로

다 걷고 보니 다리가 뻐근하다.

약 1만8천 보, 13,6km 먼길 걸었다. 

오늘 진주 역사를 훑은 아름다운 산책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