육사뜰 소식/만사참례기

처외숙부 소천(召天)

황와 2021. 8. 20. 20:37

                                                 21.8.20 고성 회화 남진에 사시던 晉陽鄭公(諱 鎬東) 향년 91세로 소천하다./264

                                                           장소 : 고성장례예식장 조문(부부동반)

 

갑자기 초랑초랑 쇠소리 울린다.

남진 처외숙모 척정댁 목소리다.

최근 왕래가 없어서 소식 또 뚝 끊어졌었다.

영감 늘 결핵병동, 요양원 눕혀놓고

무소식이 희소식이라고 무덤덤 지내왔다.

어제 21년 8월 19일 밤 10시경

영감님과 이별하셨단다.

향년 91세로 오래도록 해로한 어른이다.

"고생하셨소."

"괴팍스런 영감닌 모신다고 욕봤소"

"아마 좋은 곳으로 가셔서 편히 쉬실 겁니다."

십이지장암으로 집에 와서 지내며

자녀들 모두 불러 종신 다하고

자는 듯이 사그러지셨단다.

장모님 모시고 처외갓집에 오면 

날 믿음직하게 봐 주신 분이다.

일제시대 1931년에 탄생하여

신식교육으로 고성농고와 동아대학까지 나온

당시 농촌 계몽자로서 선도자였으나

결혼후 부인의 질환 간호로 외지에 나가지 못하고

고향농사를 도운 착한 농자였습니다.

정이 많고 무조건 권하는 어른이셨다.

예전 장모님 논을 부치면서 정을 많이 주신 분이다.

하루종일 소를 기르고 먹이고 거름치우고

논 물귀 돌보며 허리 휘게 농사짓고

늦은 저녁 한 숫갈 뜨고는 피곤에 쓰러지는 생이셨다.

새벽같이 일어나 동네 한바퀴 논두렁 무넘기 단속

부지런 부지런하게 쉬지 않고 일하셨다.

그도 그럴 것이 같이 대가족으로 살지만

두 집안으로 갈래가 나누어져 있었다.

부친 정진석 할아버지와 모친 함안이씨 할머니 사이에서

위로 첫딸이 내 장모이시고

이어 두 딸을 더 낳고 나서

기다리고 기다리던 아들 형제를 낳은 후 기뻐 대를 이었고  

다시 막내 딸을 얻었으니 모두다 짝을 지어  

6남매 다복한 진양정씨 충장공파 양반 집안이었다.

당시 큰아버지 형수를 한집에 모시고 살았기에

큰 형은 큰집 양자로 종손이 되었고

조부모 봉제사와 종손 노릇은 자연히

둘째인 고인이 떠맡게 되셨단다.

형은 큰집 종손으로 강단있게 살다가

장년에 몹쓸병 암으로 먼저 돌아가시고

안타깝게도 그의 장자도 그병으로 죽으니

집안이 몰락하여 사라지는듯했으나

억지로 큰집 조카들과 자기 자식 7남매를 건사하며

고향 남진의 향노로 지내며

농삿일에 정성을 다하셨었다. 

고인은 첫결혼으로 함안이씨 부인을 맞이해서

행복하게 신혼살림을 했으나

부인은 결핵병으로 4남매 어린 아이를 남겨두고 돌아가시고 

새로이 재취로 현부인 척정댁 외숙모를 얻어

그사이 삼남매를 더 낳았으니

농토 얻어 분가한 살림은 첫부인 치료비로 다 사라지고

7남매 아이들을 기르자니 입에 풀칠하듯 겨우 지탱하여

높은 학교를 못보내고 겨우 뿔뿔이 자립하여 나가고

지금 그 아이들이 결혼하여 울타리를 이루니

낳은 지손을 벌인 일 대단한 업적이었습니다. 

그러다가 농삿일에 시달린 노년에

난데없는 결핵병으로 결핵병원 전전하다가 

요양병원 신세로 남은 여생 힘들게 사시더니

자녀들 모두 불러 모아 종신하며

조용히 넉넉히 눈 감으셨단다.

까만 상복 입은 상주들이 가득하다.

고맙고 수고하셨다고 위로했다.

내 할 일 표석문 정리해 주고

암 소리 없이 배웅 속에 떠나왔다.

발인까지 조문행하지 못함은 코로나 핑게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