육사뜰 소식/만사참례기

조 외숙부 제문(弔外叔父祭文)

황와 2020. 2. 18. 00:06

20.2.17 나의 외숙부 은암처사(隱岩處士) 향년 91세로 할멈따라 소천하셨다. /264

         소천 : 20.2.17(음 정월 24일) 새벽 5시경

         장례예식장 : 진주 장례예식장 3층 특실

         발인 : 20.2.19,

         장지 : 미천면 반지리 종중묘지  

         제문 지어 조문하였음 

 

할멈따라 지난 섣달 대목에 가셔야 할

고혈압 중환자 은암처사 우리 외숙부

할멈 앞장 서 소천하신 것도 모르고

요양병원에서 바보처럼 할멈 기다리고 사셨다.

그런데 어쩌랴 기다림에 지쳐 두 달동안

구순 에너지 다 소모하셨으니 

어찌 남은 힘 있었으리오.

짚불 사라지듯 사르르 아무도 모르게 가셨단다.

매정한 자식들 노고 안 주려고 

암소리 없이 새벽별 따라 가셨단다.

그 소리 보자마자 내 편 하나 또 잃었으니

눈물이 눈가에 모인다.

외숙부 내외분 두 달 터울로 가셨는데 

내 등짝이 감기든 것처럼 서늘해 진다.

 

 

 

그저 보내기 싫어서

족보 이력 찾아 슬픔 참는 제문 짓고  

아내와 반성 누이, 진성 동생 담아싣고 

우리 조실부모한 삼남매 늘 다독여 주시던 

따뜻한 말씨로 우릴 키워주신 마지막 어른

외갓집 정을 콩고물처럼 뭍혀주신 은인이다.

매년 정초, 추석때 한바퀴 도는 친척집 순방

어릴적엔 한번씩 가서 뵈었는데

바쁘다는 핑게로 성인이 되어 끊어졌으니 

얼마나 날 기다렸을까 ?

만년 병중 두 차례 누이와 찾아 뵙고 

외깃집 정 받아 고마왔는데 

그 어른 기다리지 못하고

이제 하늘길 유람 영원히 떠나가셨다. 

 

국화꽃 속에 묻혀 웃음지우며 

검은 자식 손자 상주 백관들 울음 속에

훨훨 춤추며 날아가셨다.

엎드려 재배하며 모두 엎드려 제문 내용 알게 하고 

훌쩍이는 소리 속에 눈물 흘렸다.

한 어른의 일생을 그렇게 매듭지었다.

묘소는 선조 종산 할멈이 묻혀있는 곳 

모든 산소 모아 평분으로 모은단다.

상주와 자식들 뜻대로 하게 했고 

묘표는 평장에 맞게 

'은암처사 진양하공 휘 일원,

'배 유인 진양정씨 지묘'  라 하기로 했단다. 

늘 덕성이 높은 어른이라 

내외분 함께 천국에서 명복귀천하리라 빌었다.

모든 상주들과 악수하며 노고 치하했고 

아버님 이제 편히 하셨다고 전했다.   

 

 

 

함께 이런저런 이야기 나누며

내외종간 인척 연줄 당기고

서로 고맙다고 격려해 주었다.

조문식으로 저녁 먹는 둥 마는 둥

돌아오는 길 모두 나와 배웅해 준다.

이미 내가 사촌중 가장 어른이 된 나이다.

그래도 날 믿고 힘을 준 분이 떠나니 허전하다.

돌아오며 동생 고향 내려다 주고

누이집 들러 무 얻어 싣고

동배 생질 집짓는 철골조 보고

누이 팔룡동 딸애집으로 배달한 후

까만 하늘 별이 되신 외갓집 그렸다.

 


[弔 外叔父 祭文]


  維 歲次 庚子年 正月 丁卯 朔 스무나흗날 庚寅 일에,

  小甥 李東春이 삼가 엎드려 감히 하옵나이다.

 

隱岩處士 晉陽河公 外叔父靈前에서

또 한분 부모님을 여의니 어찌할 바를 모르겠으니

오호 痛哉요 오호 哀哉로다.

외숙부님께서는 자랑하는 진양하씨 단목 종가에서

아버님 丹菴 先生과 어머님 開城王氏 사이에서

15녀 중 장자로 태어나셔서

嗣子로 온 집안의 짐을 다 일구시고

단목 고향을 지키시며

晉陽河氏 宗中 德業範家로 이어오셨고

晉陽鄭氏 외숙모와 혼인하여 7男妹를 낳아

어렵게 어렵게 길러 출가시켜서

아들, , 며느리, 사위, 직손, 외손 29명을

진양하씨 大宗家를 이루셨으니

조상의 연줄 부챗살처럼 벌인 宗君이셨습니다.

 

숙부님께서는 고향을 지키시며

大谷 丹牧 晉陽河氏 宗門洞里 발전을 위해

獻身 垂範 노력하셨고,

특히 崇祖敦睦 行儀模範이셨습니다.

본디 가난한 訓長 집안이라

궁핍한 생활로 대밭 뒤 그늘진 小家에서

가지 苦事를 겪으시며 自手成家하여

집안과 가솔을 일으켜서 돌보셨고

祖上崇拜와 늘 勤儉節約 模範이었습니다.

그 가난 속에서 7남매를 낳아 교육의 눈 뚫게하시고

모두 長成하여 職業을 선도하는 役軍들이 되었는데

만년을 평화롭게 지내시는가 싶더니

세상 모르는 惡疾에 걸려

두 달 전 바보처럼 할멈 가시는 줄도 모르고 보내시더니

오늘 이런 靑天霹靂 같은 離別을 들었습니다.

 

열 살 남짓 어릴적 부모를 여읜 우리 삼남매를

늘 용기주시고 키워주신 그 따뜻한 말씨

우리 미야, 문태, 율이 왔나?”

이제 그 격려도 끝이 되고 말았습니다.

큰 옹벽이 무너짐을 느끼니 애절합니다.

 

지난번 得病 後 두어 차례 뵙긴 했으나

人情도 없는 小子 제 일만 챙기고 자주 찾지도 못했으니

아주 뻔뻔한 놈임을 사죄드리며

이제 먼저 가신 외숙모님과 만나

부디 長天極樂에서 永生하시옵고

남은 子女 食率들 잘 보살펴 주옵소서.

 

오호 哀哉요 오호 痛哉로다.

어디 가서 의 그 따뜻한 목소리,

믿음직한 風采, 仁慈한 모습

다시 듣고 볼 수 있으리오,

이제 모든 짐 다 내려놓으시고

편안히 儒仙되어 가시옵소서.

아아! 哀痛한 마음 금할 수 없어

小甥 哭하며 엎드려 再拜합니다.

부디 素餐 朴酒를 흠향하시옵소서 !

 


외숙부님께서 지으신 絶句 두 편 읽어 弔享합니다.


     鶴洞訪道人村  청학동 도인촌을 방문하여

     청학동방도인촌

 

默溪何世八河東  묵계골은 어찌 여덟번째 하동인가

묵계하세팔하동 

 

 

舊在汾西七里中  옛 모습 큰골 서쪽 칠리 중에 있나니

구재분서칠리중

 

渡水穿山來相見  물 건너고 산 뚫어서 서로 보러 오니

도수천산래상견 

 

道人村景有淳風  도인촌 풍경은 순박한 풍속이 남아 있구나

도인촌경유순풍

 

 

 

           回路觀寺谷瀑布  돌아오는 길 절골 폭포를 보며

           회로관사곡폭포 

 

洞門深鎖客來東   골문 깊은 자물쇠 나그네는 동쪽에서 왔으니

동문심쇄객래동 

 

長瀑誰知在此中   긴 폭포 여기에 있다는 걸 누가 알리오.

장폭수지재차중

 

脉脉相看纓濯坐   콸콸 물줄기 서로 보고 갓끈 앉아 씻으며

맥맥상간영탁좌 

 

偏憐吹雪起凉風   한조각 가련한 눈보라에 서늘한 바람 이누나

편련취설기량풍  

 

 

 

                                                                呼哭 小甥 李東春 謹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