육사뜰 소식/황재회동정

'황재집(篁齋集)' 발간 고유제(告由祭) 실시

황와 2019. 2. 4. 11:48

황재집 발간 고유제 실시

1. 일시 : 2019(기해)  2월 4일  설날 성묘시 11 : 00

2. 장소 : 진주시 집현면 장흘리 수의동 묘소

3. 참석자 :  종인  후손 11명 참례 (우리집 4명, 큰집 3명, 병철가  4명 )

      초헌 :  동권,  아헌 :  병철  종헌 : 승훈  축 , 집례  : 동춘

      자녀들에게  연보 설명해 주고 어린 아이들에게 기념으로 주변 나무를 한그루 베어서  주변 정리함 .

      부산  제수들이 참가하여  더욱  호응의 깊었음 - 황재집 견본 2권 부산 형제에게 나누어 줌  


'황재집(篁齋集)' 발간(發刊) 고유제(告由祭) 축문(祝文)


維歲次 己亥 正月 癸酉朔 初一日 癸酉 七世孫 ( 東卷 )

  유세차  기해  정월   계유삭   초일일     계유   칠세손 (동권)

敢昭告于

  감소고우

顯七代祖考 篁齋處士 府君 할아버지이시여!

 현칠대조고   황재처사 부군

엎드려 말씀드리건대

할아버지께서는 휘가  우(嵎), 자가 대여(大汝), 호가 황재(篁齋)이시고

아버지 통덕랑(通德郞) 휘 재문(再文)공과  어머니 밀양박씨(密陽朴氏) 사이에서

32녀 중 둘째로 1776년 영조 52년에 태어나셔서

형과 동생은 백부와 재종숙부께 양자(讓子) 나가시고

자연히 사손(嗣孫)이 되셔서 집안을 이어지게 하셨고

어릴 때부터 효행, 우애, 신의를 지켜 항상 곧게 실천하시고

시(詩), 서(書), 예(禮), 학문(學問)을 익혀 어려운 처지를 돕고 성현(聖賢)을 섬기시

모은(茅隱) 선조의 유적인 운구서원(雲衢書院) 개신축(改新築) 보존을 위해

헌성금(獻誠金)을 모아 수백금(數百金)을 전달하셨고

집안의 어른으로서 집안 종중을 지휘하시고

지역 및 좋은 선비들과 교류하며 향토사를 발전시키고

종질 휘 중묵(中默)공께서 어려서 어머니를 여의고

장례 관곽(棺槨)을 마련할 돈이 없자

자담(自擔)해서 무사히 장례를 치르도록 하셨고

만년(晩年)에 대나무 숲속에 ‘만취헌(晩翠軒)을 지어

자손들 공부시키는 서당(書堂)을 개설하여 가르치시고

문인 친구들과 시음회(詩吟會)를 자주 가지시며

선현유적지를 보사(譜事)일을 맡아 기행문을 쓰며 여행하셨고

시문(詩文)을 읊고 난 후 겸허히 기록으로 남기지 않으셨으니

다른 친구들의 문록(文錄)에서 발췌한 글만 존재한 것입니다.

배인(配人) 할머니는 삭령최씨(朔寧崔氏)로 공과 혼인하셔서

42녀를 두셨는데

장자(長子) 휘 성묵(聲默) 공은 우리 집 선조이시고

차자(次子) 휘 추묵(樞默), 삼자(三子) 휘 태묵(太默), 사자(四子) 휘 유묵(裕默)이시고

장녀(長女)는 양천허씨(陽川許氏)로 

차녀(次女)는 창녕조씨(昌寧曺氏)로 시집 가 자손이 번성하였다.


할아버지께서는 헌종 7년 신축년(1841) 1214일 향년 67세로 돌아가시니

유림에서 나서서 헌종 8년에 유월장(逾月葬)을 하여

임인년(1842) 정월에 삼십리 여기 수의동으로 장려지내니

만장(輓章)과 조문객(弔問客)이 긴 줄을 멀리 이었다고 합니다.

이상의 이야기가 행장(行狀)과 묘갈명(墓碣銘)으로 남아 있으니

할아버지 문적과 그 아름다운 글을 우리 후손들에게 전하기 위해

공의 현손이신 휘 현지(鉉祉) 할아버지의 육필서(肉筆書)를 해석하여

이를 현 황재회(篁齋會) 회장(會長) 불초(不肖) 잉손(仍孫) 동춘(東春)

한글로 해석하여 후대 자손들이 쉽게 읽을 수 있도록 하여

2017(丁酉)1214일 할아버지의 제175 주기일에 맞춰

‘황재집(篁齋集)을 발간하여 황재회 가구마다 배포하였습니다.

이에 늦었지만 그 사실을 할아버지께 고하며

자손 대대로 할아버지의 충효예신(忠孝禮信) 정신이 이어지게 하여

자손이 번성하고 학문이 충실한 많은 인재가 배출되기를 바라며

이에 삼가 조촐한 음식을 차려 고유제 올리오니

흠향하시고 자손을 더욱 격려해 지켜주시기 바라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