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성씨 시조 유적(始祖 遺蹟)
1. 표암재(瓢巖齋)
표암재(瓢巖齋)는 경주이씨 시조인 신라 좌명공신(新羅 佐命功臣) 표암공(瓢巖公) 이알평(李謁平)공의 제사를 받드는 사우(祠宇)이다.
신라 35대 경덕왕(742년)이 재각(齋閣)을 건립하였고, 38대 원성왕이 친히 대광보전(大光寶殿)이라는 편액(扁額)을 하사하였으나, 병화(兵火)로 소실(燒失)되었다.
1925년에 후손들이 표암재를 재건하고 1971년 나라에서 세워준 악강묘(嶽降廟)와 신라정(新羅井)을 같이 보존하고 있다.
1806년 신라좌명공신급량부대인이공알평유허비(新羅佐命功臣及梁部大人李公謁平遺墟碑)가 세워졌고,
1967년에 경주이씨시조휘알평경모비(慶州李氏始祖諱謁平景慕碑)와 표암기념관이 세워졌다.
삼국유사에 의하면 시조 알평은 신라의 전신인 진한(辰韓) 여섯 촌의 하나인 알천 양산촌(閼川 梁山村)의 촌장(村長)으로 처음 표암(瓢巖)에 내려왔다는 전설에 의하여 표암공이라 일컫는다. 뒤에 급양부(及梁部) 이씨(李氏)의 조상이 되었다.
제향일 : 음력 8월 17일
소재지 : 경북 경주시 동천동(慶州市 東川洞) 석탈해릉(昔脫海陵) 옆
관리자 : 경주이씨 중앙화수회(慶州李氏 中央花樹會)
2. 경원사(慶源祠)
창건 : 1723년(경종 3)
중건 : 1948년
향사 : 신라 개국원훈(新羅 開國元勳) 표암공(瓢巖公) 이알평(李謁平)공과
강양군(江陽君) 이개(李開)공, 재령군(載寧君) 이우칭(李禹偁)공 세 분 시조
소재 : 경남 합천군 합천읍 중동
관리자 : 합천이씨중앙종친회
경원사(慶源祠)는 신라의 개국원훈(開國元勳)인 표암공(瓢巖公) 이알평(李謁平)과 그 후손인 고려의 가수호장(嘉樹戶長)인 강양군(江陽君) 이개(李開)와 문하시중(門下侍中)인 재령군(載寧君) 이우칭(李禹偁)을 봉사(奉祀)하는 사당이다.
경앙문(景仰門)을 들어서면 정면에 경원사(慶源祠)가 있고 사당 앞 오른편에 경원서당(慶源書堂)이란 편액(扁額)이 붙어 있다.
표암공 이알평은 신라의 개국원훈으로서 ‘처음 계림의 표암 아래로 내려왔다(初降于鷄林之瓢巖下)’는 전설에 의하여 표암공이라 일컫는데 지금 경주시 동천동 석탈해릉 옆에 표암과 악강묘, 표암재 유적이 있다.
표암공은 경주(月城), 합천(陜川), 재령(載寧), 원주(原州), 가평(加平), 차성(車城), 우계(羽溪), 흥양(興陽) 아산(牙山)등 8개 李氏의 始祖가 된다.
강양군 이 개는 표암공의 후손으로, 고려 건국초에 가수호장으로서 강양군에 봉해졌고 경주에서 분관된 합천이씨의 시조이다.
재령군 이우칭은 표암공의 후손으로, 고려의 보조공신(補祚功臣) 문하시중으로서 재령군에 봉해졌고. 경주에서 분관된 재령이씨의 시조이다.
이 경원사는 경주이씨의 시조인 표암공과 분관된 합천이씨 강양군과 재령이씨 재령군을 함께 봉사하는 사우이므로 ‘경주를 시원(始源)으로 삼는다’는 뜻에서 경원사(慶源祠)로 했다고 한다.
3. 경덕사(景德祠)
창건 :
향사 : 고려 보조공신(補祚功臣) 문하시중(門下侍中) 이우칭(李禹稱) 公
소재 : 경남 밀양시 상남면 조음리
관리자 : 재령이씨대종회장 이웅호(李雄浩)
경덕사(景德祠)는 고려 초기 보조공신(補祚功臣) 문하시중(門下侍中) 이우칭(李禹稱) 公의 제사 사당이다.
공은 신라의 개국원훈 표암공 알평은 비조이고, 고려의 문하시중(門下侍中) 재령군 우칭은 그의 분관(分貫)의 시조이다.
시조공의 묘소는 황해도 재령군 서어산에 있으나 남북 분단으로 통행이 불가하여 남한 우리 일족의 시조공 사우로
밀양 조음리에 건립하였다.
시향례 : 매년 양력 5월 5일 향례를 올리고 있다.
4. 추원재(追遠齋)
창건 : 약 5백년전
중건 : 1935년
향사 : 고려 사재령(司宰令) 이일선(李日善) 公
소재 : 경남 밀양시 상남면 조음리
관리자 : 사재령공 18대 후손 재령이씨대종회장 이웅호(李雄浩)
추원재(追遠齋)는 고려 말기 사재령 이일선 公의 묘소에 따른 제각이다.
이일선의 본관은 재령(載寧)이니 신라의 개국원훈 표암공 알평은 그의 시조이고, 고려의 문하시중(門下侍中) 재령군 우칭은 그의 분관(分貫)의 시조이다.
아버지(考)는 고려의 보조공신(補祚功臣) 상장군(上將軍) 소봉(小鳳)이니 고려 공민왕(恭愍王)의 부마(駙馬)가 되었다.
그는 고려왕실의 외손으로 태어나 일찍 조정에 출사(出仕)하여 관직이 사재령(司宰令)에 이르렀으나 고려의 국운(國運)이 쇠진(衰盡)함을 보고는 가족을 거느리고 남쪽으로 내려와서 밀양부(密陽府) 서쪽 조음리(召音里)에 은거(隱居)하여 세상을 마쳤다.
아들은 6분으로 신(申), 술(戌), 축(丑), 오(午), 유(酉), 인(寅)을 두었는데
장남 계은공(溪隱公) 신(申)은 공양왕때 사헌부 지평(司憲府 持平)으로서 간관(諫官) 김진양(金震陽)과 함께 정도전, 남언등의 죄상(罪狀)을 탄핵하다가 그들에게서 도로 박해(迫害)를 당하여 매를 맞고 사망하였고(장류도사(杖流途死)
4남 모은공(茅隱公) 오(午)는 성균관 진사(成均館 進士)로서 신왕조(新王朝)인 조선 왕조에 벼슬을 하지 않고 함안의 모곡리(茅谷里)에 가서 은거 자정(隱居自靖)하였다.
그 외의 아들 사정공(司正公) 술(戌), 생원공(生員公) 축(丑), 처사공(處士公) 유(酉), 처사공(處士公) 인(寅)도 또한 신왕조에 벼슬하지 않았다.
공의 묘소는 재사와 약 80보의 거리에 있고 장남 신(申)의 정려각(旌閭閣)은 이 재사와 약 100보의 거리에 있다.
공의 증직(贈職)은 종부시정(宗簿寺正)이다.
배위 영인이씨 묘소는 밀양시 초동면 성암리에 있고 묘재사로 감모재(感慕齋)가 곁에 있다.
제향일 : 음력 10月 1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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