육사뜰 소식/만사참례기

식성군 시제 참례 및 칠원윤씨 충효공 묘소 안내

황와 2025. 12. 4. 16:58

1. 식성군 선조 시제 참례

 

우리 재령이씨 선조중 이름난 분들이 많으나 

임진왜란을  승리로 이끌게 한 영웅이시고 

이순신 장군을 이어 제7대 삼도수군통제사를 역임한 위인은 

식성군 휘 이운룡 장군이시다.

이 어른 불행하게도 후손이 끊어져 지금은 외손인 밀양손씨가 맡고있으나

시제에는 우리 종친회 열성종인들이 매년 참례하여 빛낸다.

올해는 창원종친회에서는 충도 회장 차로 도유사 장환씨와 내가 동행하여 

의령군 지정면 웅곡마을로 묘소를 찾아 올랐다.

모임 종인과 밀양손씨 외손들이 줄지어 준비중이다.

더욱 안타까운것은 주변에 선 소나무들이 재선충피해로 말라죽었다.

차츰 다 번지면 천년송들이 다 사라질 위험에 걱정스럽다.

김포에서 병옥 택수 회장과 운전자 한분이 처음으로 참례했고

부산에서 승호 회장과 만섭 , 병옥 고문, 희섭, 길수 총무, 동문, 균태 모은회장, 재철  등 11명이  오고

서울에선 재홍 사무국장이 

진주에선  용섭  국장이  참례했고 

창원 의 셋을 보태면  총 우리 종중에선 19분이  참석했다.

밀양손씨는 대여섯명 만 참석했다.

서로 인사소개를 마치고 

초헌은 외손인  손양환씨가 

아헌은 전종친회장 이병옥 고문이

종헌은 현모은종회 이균태 회장이

축관은  부산 이재철 종인이 

집례는  밀양손씨가 맡고

좌우집사는 밀양손씨가 맡도록 배정했다.

우리는 늦게 도착하여 유복도 갈아입지 못하고 참례했다.

홀기를 부르며 진행하고 늘어서니 배위가 비좁다. 

초헌을 올리고  재철 축관이 늘여서 잘 낭독한다.

더욱 힘있게 낭독했으면 좋겠다.

아헌은 오늘 처음 참석한 김포파 병옥 전회장이 

중랑장공 후손으로 휘 승, 혜 천룡 삼파 중

천자룡자 선조 후손으로 식성군이 중요 위인이다.

종헌은 모은종회 균태 회장이 올해는 여러 종파 시제에 참례해 오고있고 

오늘은 종헌관으로 참례하고 있다.

절차중 유식례는 생략하고 

사신재배하고 시제를 마쳤다.

주관측에서 산신제 지내고 

우리는 배위석에 앉아 음복 음식 나누었다.

고기와 육포로 제주 나누고 난 찰떡 나누어 씹었다.

손씨종인들은  식성군 묘소 아래에 있어서 계속 진행했고 

우리는 기강서원으로 내려왔다.

오늘보니 기강서원 관리사를 헐어내고 주차소로 만들었고 

경내 모든 마당바닥에는 쇄석자갈을 깔아서 잡초 생장을 막으려 하고 있다.

아래채 한 방을 화장실로 꾸미고 

온 지면을 쇄석으로 깔아놓으니 어수선하다.

그러나 관리사에 살던 관리인이 무너져가는 집을 비워주지 않아 

겨우 쫓아내고 관리사를 부셔버려서 청소가 깨끗이 된듯하다.

한바퀴 관찰해보고  다시 점심장소로 이동했다.

지정면 입구 농협매점 식당에서 쇠고기 전골로 점심 나누고 

균태 모은종회장이 증보된 모은선조의 절의상징 고려동 교정본을 

나누어 주었는데 창원종친회는 5권 배정으로 

동영 추원재회장과  병목 대종회사무총장 도유사 장환 종친

또 창원종친회 충도회장 그리고 나 5권으로 나누었다.

1달동안 교정을 보고 이를 1월 4일에 제출해 달라고 했다.

거기서 부산 종친들은 이별하고 

다음 중랑장 선조의 장인인 윤환 묘소를 내가 안내하기로 하고 

선도차에 올라 인도했다.

장소는 함안군 칠원읍 유원리로 줄지어 천천히 나아갔다.   

 

기강서원 정비공사
서원관리사 철거
점심식사 - 지정농협식당

2. 중랑장공 장인 윤 환공 묘소 안내 방문

 

함안군 칠원읍 유원리 유원마을 앞에 윤환묘소길 안내한다.

구마고속도로 바로 옆에 있는 곳으로 

골짜기 입구 연못가에 주차하고 

산으로 오르는 넓은 길을 올라가면 

산위 조금 경사가 완만한 잔디언덕에 

묘소를 둘러싼 네모 호석이 잘 석조된 충효공 윤환 묘소가 있다.

둘레석과 월석이 모두 주변에서 나는 판석으로 쌓아 

예쁘게 정비해 두었다. 

그러나 묘소 월석은 흐트러진 그대로 완공하지 못했다.

도착한 모든 방문자 재배하며 성묘부터 먼저하고 

내가 주변의 이야기를 첨부하여 설명하고

칠원윤씨 시조묘소는 여기서 약 12km 떨어진 곳에 있다고 했다.

고려말 세 번이나 문하시중을 맡은 대 학자로 

따님을 우리 중랑장공 선조에게 시집 보낸 집안이다.

이런까닭에 김포파 종인들이 한번꼭 찾아뵙기를 희망했기에 

내가 평소에 두어번 찾아 방문했던 경험을 이분들에게 안내한 것이다.

이 방문에 김포에서 세분, 균태 모은 회장, 진주 용섭 간사,

우리 창원 충도 회장과 장환 도유사가 동행했다. 

비문을 읽을려고 훑어봐도 우리 할아버지 휘자는 보이지 않고 

다시 아래로 내려와 재사곁에 세운 신도비문을 읽었다.

'고려문하시중추성병의동덕변리익찬공신칠원백시충효칠원윤공휘환신도비'

2020년에 새로 세운 8자 높이 큰 대비였다.

그 비문을 일일이 읽어보며 찾았으나 

3녀중 첫째는  남좌시, 둘째는 이양실, 세째는 김윤양에게 시집보냈다고하는데 

우리 할배 휘자는 이 일자상자 인데 맞지 않다.

어찌된 영문인지 모르겠다.

그러나 우리 김포파 고족보에 그리 기록되어 있다고 하니 그리 알고 간다.

거기서 같이 온 여러 종인과 헤어지고 

김포파 종원은 전화기를 식당에 놔 두고 와서 다시 가고 헤어졌다.

오늘은 매우 추운 날씨에 두꺼운 옷으로 감고 나가 

다행히 날씨가 풀어져서 잘 마치고 돌아왔다.

오늘로서 조상 시제 참석을 마감하며 

조상을 찾아 참배하는 그 정성은 

조상이 날 찾기에 행복한게 아니라 내가 그를 찾기에 보람있는 것이다.

즉 나를 편안케 하고자 조상을 찾아 절하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