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은 이어져오던 시제일이 겹치지 않는 날
항상 우리 파종 시제로 참석하지 못했던 처지
성재공파 둘째 집 도산공 선조 시제에
처음으로 참여해 보고자 송강 형님께 말하니 대환영이란다.
함께 참여할 분을 구하니 동호 대부께서 동의 한다.
아침 9시 정각에 마산에서 출발하여
대정거리에서 동호 대부님 모시고 마진으로 월강교 건넜다.
옛날 그곳에는 나룻배 있어서 외갓집 이모집 갈적에 건너다녔던 나루다.
또 강안 절벽에 도로 닦아서 마진으로 들어가면서
옛 추억 초등 4학년 말에 거기까지 시사떡 얻어먹으러 갔다가
추운 날씨에 돼지고기 한도막 물고서 몇번이나 물고 빨다가
큰 더미 꿀꺽 삼켰다가 집에가서 배가 아프기 시작하는데
오만가지 처치도 안되고 돌돌 구르다가
큰집 오산할배 대춤까지 맞았으나
도저히 안되어 집안 장손 하나 식훈다는 위기로
나를 엎고 온 약방으로 사봉 반성 약국마다 진료다니다가
결국 들말할배(휘 현방)가 부산의 일가 한의원 우용 원장이
우리 집에까지 와서 진맥한 후 차츰차츰 차도가 있었고
우리 금실댁 양모님은 군북장에 까지 가서 잉어를 사 이고 와서
고움국으로 생기를 돋궈 내가 살아나게 된 숨은 이야기 나오는 곳
여기 산비탈 강기슭에 있는 그 묘소가 생각난다.
마호골 입구에서 도산재 찾다가 올라가는 길을 헤매고
마진보건진료소 옆길 올라가 도산재를 든다.
예전 조상유적 사진 촬영한다고 돌아다닐 적
이재실은 문이 잠겨 들어가 보지 못하고
담너머로 찍어간 게 다였는데 오늘에야 유정문을 들어 선다.
도산재는 2000년(경진) 7월 7일에 상량했다고 하니
최근에 지은 재실로서 5칸 재실은 매우 큰 재실이고
소도산아래 도산선생(휘 강)이 49살에 처음으로 입향하여
수 많은 자손을 번성하게 한 작은집 재실이다.
들어서니 아직도 소나무 맑은 향기 배어나오는 새 재사로
넓은 마단과 밝은 마당은 잘 관리가 되는 재실이었다.
재실 기문은 정산 선조가 썼고
재실 중수기는 최인찬이 짓고 김종길이 썼다.
당호는 사성당 정성을 생각하는 집으로
왼쪽 방 두 개는 율수헌과 지숙료로
조상의 덕을 이어받는 집과 유숙하는 방이라는 뜻이고
오른쪽 방 읍주실은 제물준비를 하는 방이라는 뜻이다.
원래 도산재의 장소는 매호서당 자리에 있었으나
허물어져 새로 이곳 밝은 곳으로 나와 재건축하였으니
새천년의 시작년인 2000년에 시범적으로 건립한 파조 도산공 재사다.
사방으로 둘러처진 담장은 경호강 강돌로 기와담 둘러치고
대문은 높은 집을 표상하는 솟을대문으로 대문간 지었다.
마루에서 창문을 여니 남쪽 하늘이 훤하고 마진들판을 바라보며
남강이 모래사장을 펼쳐 마을을 감도는 풍광에
강건너 벼랑위 제월대에는 아버지 성재선생(휘 예훈)이
하늘 우러러 태평연월을 기도하던 돈대로
선고의 뜻을 이어받아 성경유도(誠敬儒道)를 가업으로 삼은 길지이다.
후손들이 가득하여 수많은 유명인사들이 배출되었고
마진이 우리 재령이씨 세거지로 하영남(河嶺南)에 이름 떨쳤도다.
특히 나에게는 이모집이 마진동네 한가운데 있어서
어릴 적 우리 형제가 외가 갔다가 마진 이모집으로
다시 남강을 건너서 매끌 이모집으로 지수면 압재를 너머
마실 동네 왕고모댁으로 새해인사 다녔던 코스의 중간 동네이다.
오늘 처음 마진과 도산공 선조 우모소를 들러 참례하는 의미가 크다.
유복으로 환복하고 개좌 열어 예의 갖추며
송강 형님의 구수한 언변 해설로 사람들 조용히 경청하고
도산공 후예들이 여기 마을에 갇혀있지 않고
전국 사방으로 새 살길을 찾아 번져 나갔기에
그분들이 높은 수준으로 학문을 배우고 각자의 재주를 펼쳐서
해설하는 중에 수많은 명성을 가진 후예들이 배출하였으니
마진 마을의 자랑이요 긍지이며
또한 마진마을 단위 유적물을 그대로 보관하여 문적을 기증하여
재령이씨 세도가의 기록문화를 학술발표회를 통해서 알리니
우리나라 민생연구의 중요한 자료로서 그 구실을 공개해 주었다.
나는 마진마을의 아름다운 풍광과 풍수지리적 길지로
남쪽이 확 틔고 뒤에는 소도산이 북쪽바람을 막고
남강수 구비쳐 물도리하여 휘감아 흐르는 곳
이런 곳에 입향조 도산 선조의 혜안은
수 많은 후손들을 배출하게 하였고
그 지맥으로 사람들이 충효를 실천하며 인재가 후덕하니
얼마나 복받은 사람들인지 스스로 인식하여
도산 선조의 유지를 받들어 화목단결해 주었으면 좋겠다고 했다.
제사 집사분정으로 송강 형님이 추천하는 안을 그대로 승인하여
초헌은 현영 종인이
아헌은 내가
종헌은 환경부공무원으로 있다가 퇴직한 창원 종인이
집례는 전문가 병택 종친이
축은 오늘 직일을 맡은 영환 종인이
나머지는 참여자가 적어서 좌우집사를 맡아 진행했다.
제사는 홀기에 의해 창홀하며
엄숙한 절차대로 진행했고
나는 정성을 다해 선조에 대한 숭경심(崇敬心)을 드러니 재배했다.
다들 마치고나서 음복 나누며 난 알밤으로 복받았다.
비빔밥과 진설떡과 과일로 점심식사를 하고
남은 떡과 고기는 봉가를 싸서 배부했다
도산재도 결산협의 속에 어려움 나타난다.
나이든 사람들이 고향 선조 지키는 일은 성의가 없고
유사할 사람이 없어서 몸이 불편한데도
억지로 제사받드니 모두 어려움 토할 수 밖에 없다.
그러나 누구든 해야하는데
그 일 할 사람이 없으니 답이 안나온다.
갑갑함에 우리 는 먼저 나오고 말았다.
나오니 거마비 억지로 호주머니에 찔러 준다.
향초대 조금 낸 것이 그대로 내게 오는 것 같다.
월정에 들러서 동호대부 내려 드리고
고속도로로 금방 집으로 돌아왔다.
오늘 하루는 매우 넉넉한 조상찾기 행사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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