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5.10.25 (토) 외사촌 하용봉 며느리 보는데 진주mbc 컨벤션홀 참석 축하하다. 장소 : 진주종합운동장 1층 예식홀 자 하성은 부 노혜정 (둘 다 고등학교 교사) 만난사람 : 외종 형제 자매 가족들과 그 생질들 (용봉, 계복, 계양. 갑정(최서방), 행숙(한서방), ) 이종들 가족들 ( 나, 동학, 설호, 문순, 은숙. 영숙, |

진주 단목골은 진양하씨 집성촌으로 나의 생모 단목골댁 친정
나를 존재하게 한 외가이다.
외조부 단암 하경좌 선생
집안 아이들을 가르치는 훈장이셨고
그분도 먹고 살기 어려워 그분의 외가인 우곡선생의 굼실 옆 방촌에서
외가를 오가며 진양정씨 충절개 우곡선생의 명성이 살아있는 곳에서
외가마을 선비였던 훈장과
또 당시 겨우 농사지으며 집안아이들 사랑에 불러 가르치던
직와처사 이현지 우리 할아버지도 굼실 우곡정에서 서로 만나
먼저 우리 할배와 우곡선생 후손 외조부 사이에
아들과 딸이 있으니 "우리 사돈함세" 언약으로 서로 상대도 모른 채
혼인한 사례로 내 양아버지와 양어머니가 그렇게 혼인하게 되어
당시 지수초등학교 다니던 14실 이인호 아버지와
4자매 중 막내인 18살 정계순 어머니가 혼인하였다가
슬하에 딸 병춘 누나 하나 낳고 더이상 아이가 없어서
당시 이름있는 양반가의 종가 가계를 이어가기 위해 양자를 세웠다.
한편 또 직와훈장 둘째아들 이승호 생아버지가 대장부로 알려져 있었고
단암훈장도 서로 교류한 학자로 세째 딸 하연수 생어머니가 있어서
서로 사돈하기로 언약하고 어울려 선한번 얼굴 한번 못보고
부모의 약속에 순응하여 혼인하니 우리 삼남매의 아버지 어머니이시다.
혼인 후 미춘 누나가 먼저 태어나고 내가 두살 터울로 태어났고
다시 연년생으로 동생 동율이 태어나니 젖을 떼기도 전에 태어났으니
난 자연히 큰어머니가 아들이 없자 태어나자마자 큰어머니의 양자가 되어
엄마 젖을 떼어 동냥젖과 밥물로 내가 자라게 되었고
양자로 완전히 자라게 되었기에 생모는 나를 낳아 주어서 고맙고
양모는 나를 정성으로 바르게 길러 주어서 고마운 분이다.
그런데 기구한 운명은 양부는 일본에 가서 삼년만에 산업사고로 돌아가셔서
할아버지와 25살 양모가 화장된 잿상자를 안고 현해탄을 건너와 묘를 썼고
이후 양모는 친딸 누나와 나를 기르는데 정성을 다해주셨고
생모와 아버지는 건장한 체격으로 모범장사로 이름나있었으나
어머니는 젊을적 노동요를 잘하는 재치를 보여
동네에서 억세고 왕성한 힘으로 잘지냈으나
생아버지는 6.25동란때 보국대에 선발되어
어쩔 수 없이 방어산 전투 인민군 보급품을 져 나르는 일을 하다가
당시 생물학전으로 뿌려진 콜레라(호열자)에 감염되어
약 1년만에 할아버지 할머니의 간호에도 돌아가시고
이어 1달후에 할아버지 마져 돌아가시니
집안은 어린 숙부 한분과 생과부 삼동서가 서로 어울려 살고
어린 우리 삼남매 여자만 득실대는 집안
결국 생어머니도 6년후 반찬 구하러 간다고
나무내 강에 조개잡다가 돌아가셨으니
오늘 외가댁 다섯 딸 중에서 맨 먼저 돌아가신 부모복이 없는 내외종간이었다.
그뒤 양모와 숙부모 슬하에 자라며
양모가 살아계실 때 고모님 소개로
누이는 반성 경주 김정제에게 시집가 4남매 낳아 다복했으나
자형을 40대에 먼저 보내고 혼자 살고 있고
나를 애써 정성으로 기른 양모는
태어난 누이 구만면 장 집안 이상동에게 결혼시켰으나
산후병으로 낳은 아들과 함께 불귀객이 되었고
나를 오로지 키우는 재미로 사시다가
향년 59세로 아들 키운 영화도 보지 못하고
모진병으로 병원도 가보지 못한 채 한스런 생을 마감했다.
나는 남지서 창원황씨 동직자와 결혼 남매를 두었고
동생은 전의이씨와 결혼 4남매를 두었으나
지금 몸이 아파 출입을 금하고 있다.
그뒤 나는 학교를 그대로 다녀서 교장까지 마쳤으나
누이와 동생은 국민학교 초등교육만 마치고
어렵게 산 일생을 나는 죄인처럼 느끼며 산다.
오늘 혼주 하용봉 과 박혜옥 교장 부부는 둘다 진주교대 후배로서
날 따르며 교직을 수행하다가 교장으로 승진 정년퇴임하고
진양하씨 종손으로 오래도록 외삼촌 하일원 과 외숙모를 잘 모시고 살다가
돌아가시고 난후 집안여러 남매의 장자로 이끌고 있었으나
낳은 냠매가 다 교직으로 근무하며 희망을 두고 있었으나
그간 두 아이들이 성년이되고 중년이 될때까지 혼인의사를 접고 지내니
종사를 이어갈 대를 잇지 못함에 많은 고민을 해 오던차에
아들이 장가간다는 소식에 우리 인척들이 더 고마와하고 기뻐했다.
그래서 오늘 그 외종조카 결혼식을 집안의 축제처럼 여기며
진주공설운동장 mbc컨벤션홀로 모여들게 되었으니
난 제일 큰 이모집 이종 동학 종제가 자동차로 모시기에 따라 나섰고
도착하니 외종들 삼형제(하용봉,계복, 계양) 삼자매(하갑정(최서방), 하행숙(한서방)
이종들 (큰이모 집 동학, 둘째 이모집 설호, 문순, 은숙, 영숙 내외
세째 이모는 우리 엄마고 네째 이모는 매끌 이모 진양정씨 하야 형제
다섯째 거창 이모는 딸이 왔다는데 만나지 못했다.
현재 이모로 매끌 이모는 요양병원에 계시고
거창 이모는 거창 남하면에서 내외분 살아계시는데 다리가 불편해서 못오셨다.
내외종간 다 만나보니 외종 이조을 중에서 내가 제일 연장자다.
반갑게 두 손 잡으며 안부 사는 곳 물었다.
결혼식은 2시 30분 개회되었다.
늦게하는 결혼이라 외종 내뇌분에게 숨은 기쁨을 모처럼 느낀다.
얼마나 오랜 동안 기다린 행사였는지
조금 더 갔더라면 부모님 맘 썩일일 없었을 텐데
그들에게도 8년동안 맘 많이 썩이며 기다렸단다.
신랑 신부 모습이 어깨 너머로 까불대고 신난다.
주례가 없어도 그들이 서로 성혼선언하고 약속공포한다.
제발 저렇게 즐겁게 이겨내는 부부가 되기를 박수로 기원했다.
시아버지 덕담에 친구 쌍동이 손자둔 걸 자랑하더라고
자기는 친구에게 세 쌍둥이 낳을 거라고
자성예언하며 박수로 웃음 받았다.
사돈되는 이는 부부10조를 들어 잘 살라고 이른다.
축가는 두 선생님 제자들 삼현여고생들과 제일여고 생들이
각각 자기 담임에게 축하노래를 춤추며 깜찍한 노래를 선물했다.
두 가족 기념사진을 찍는데 늘어서 보니
50여명이 늘어서 이종들은 설 자리가 없어서 식당으로 모였다.
부페식 맛지게 먹으며 네게 많은 음식을 배달해주니 고맙다.
일부 이종들 매끌이모 병원에 방문한다고 가고
난 차를 타고갈 기사에 매달려 돌아와야 했다.
모든 친척들 만나니 모두 반갑고 한번씩 이렇게 만나는 것이 인간사 다.
이를 통해서 정은 들어가고 인맥이 형성된다.
집에까지 태워다 주니 종제도 고맙다.
오늘은 모두 최고의 축하행사였다.
그 사돈되는 분도 창원 도계동에 살고 있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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