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5.3.1 제64회 영산3.1민속문화제 관람하고 지인들 만나다./264 장소 : 경남 창녕군 영산면 성내리 놀이마당 제64대 동부대장 김찬수(길곡), 서부대장 석상원(대합) 역대대장 제19대 서부대장 유어 양진락(광산초 명자 부) 제33대 동부대장 남지 황용환(처 숙부) 관람 내용 : 구계목도놀이 시연(11시) 제64회 3.1민속문화제 개회식, 진놀이, 쇠머리대기 공연 면담 : 신박 : 영산초 졸업생 신장수 부모 - 풍천장어 점심 박종록 : 영산 경노당회장 체력단련장에서 면담 남기두, 김남식, 곽철현, 조 교장 방문 : 영산초교, 영산고교, 만년교, 영산석빙고, 영산연지 등 |
몇년만에 궁금한 영산이 날 부른다.
박종록 영산경로당 회장이 초청 전화다.
혼자 가긴 멋적어서 구하니 향산이 날따라 가겠단다.
형제간 즐거운 문화마당 민속잔치 설명하며
국도 5호선 타고 낙동강 건너니 바로 영산이다.
올라가며 영산의 역사 지형 사전 지식 전달했다.
향산은 초행이라 궁금함이 많은 기대를 갖는다.
서리 도롯가에 차대고
영산초등학교 앞에서 학교 역사 내력 설명하니
그의 친구 즉시 전화로 불러내 소통한다.
알고 보니 박경조 교장의 아들이다.
내가 5년간 이학교에서 정성을 다해 근무한 학교로
나의 이력중 가장 열심히 근무하고
제자중 고시 패스 제자가 셋이 나오고
매년 방학을 내몸을 투자하여 각 전시실을 꾸미고
영산지역의 특수성으로 즉 국난을 극복한 호국의 성지
첫째 임진왜란과 화왕산전투 전적지요
둘째 3.1만세운동은 영산24인의 선구자들이 결의하여
경남에서 가장 먼저 만세운동이 일어났고,
세쩨 6.25동란 때 북괴군이 낙동강을 건너 왔으나
영산지구 함박산 방어진지에서 막아냈었다.
영산을 국민정신교육의 요람을 만들어
전국 학교에서 많은 손님이 찾아온 시범학교로
일구어낸 장본인이 바로 나의 노력이었기에
그 결과 모범공무원으로 추천되어 국민포장을 받았고
그해 교육평가원 교감 국가고시에 합격하여
교감으로 승진하게된 추억의 학교다.
학교 뒷산은 높은 영축산이 버티어 섰고
앞 들판은 영남벌과 낙동강이 확트이는 배산임수 명지에
꿈많은 제자들이 자신의 꿈을 펼친 좋은 학교다.
영산시가지 거리를 걸어서
성내동 놀이마당으로 올라가니
만국기 펄럭이고 농악진군악이 울렁대는
사람들 모여든다.
주변엔 온통 축제 마당 식당과 전시상점엔
싸구려 호객행위 눈으로 점을 찍는다.
먼저 민속문화제 역사를 확인해 주려고
동부대장비에서 제33회 때 황용환 대장 기록확인하고
그는 내 처숙부이셨기에 가족 모두 가서 축하해 주었다.
그때 남지와 영산에 본부를 차려두고
각 지역인들이 응원하러 오면 그들을 음식과 술을 대접하느라
온가족이 고생했었고 그일이 하루가 아니라
약 한달간 이루어 지니 큰경비도 노력도 소모되었었다.
그게 민중의 문화였고 끈끈이 이어온 역사였다.
아무리 어려워도 중단하지 않고 개최되었으나
최근 코로나 사태로 국가적 재앙이라 한해 중단하였다.
서부대장 중에는 제19대 유어면 양진락씨 기록이 확인된다.
그는 유어면 광산초등학교 근무시 학부모로 양명자의 아버지였다.
당시 서부대장을 나간다고 동네사람들 구경갔다.
요즘 나훈아의 "명자야!" 란 노래가 나오면 그 애가 생각난다.
그 학교가 농촌벽지학교였기에 난 오토바이로 통근했던 학교다.
삼일민속문화제를 발상개척한 인사로
조성국 선생의 조상이 있다.
그분은 원래 마마를 앓아 곰보선생님이셨는데
열정적 연구와 솔선 수범 노력으로 영산줄다리기 를 발전시킨 선지자로
영산줄다리기 기능보유자로 으름난 분이었으며
꼿꼿하고 강직한 성품으로 영산 문화를 창조한 어른으로 존경받는 분이었다.
그는 내가 영산학교에 근무할 때에도 살아계셨던 분이다.
또 한종목 영산쇠머리대기는 김형권 선생이 기능보유자 이셨는데
그 역시 사진작가로 영산문화재 사진을 찍어서 보급하며
영산문화를 알리고 첫날 개회식전에 공연하는 영산쇠머리대기를 발굴한 분이다.
영산인은 다음 후계자를 위하여 그 기능을 지금도 전수교육을 통하여 이어받고 있는데
그 교육 또한 자원을 이어주는 문화전통이다.
다음은 영산의 삼일운동시발에 대한 역사기록 벽화 부조다.
당시 보성고보(현고려대학교)에 다니던 구중회(후에 초대 제헌의원임) 의사가
서울에서 일어난 33인의 대표자가 발표한 삼일독립선언서를
가슴깊이 숨기고 고향 영산으로 내려와
24분의 열사들과 결사대를 조직하고 영산장날을 이용하여
독립선언문을 낭독하고 만세운동을 벌였는데
이는 서울의 행사 9일 후에 벌어진 경남 최초의 독립만세운동이었으며
24명의 열사들은 일제하에 옥고를 치루었다.
그들이 또한 영산인이 주축이었고 영산을 이어 창녕으로 번지게 되었다.
이 얼마나 앞선 영산은 호국의 선진지였는지?
24명의 거룩한 이름이 새겨져 있다.
다음은 11시경 하얀 무명베로 맞춰 입고
짚신 신고 머리끈 동여맨 작업인부
어깨등에 목도나무 메고 베어낸 거대목 메고 나르는 행렬
노인들은 빈지게 지고 따르고
검은치마 흰적삼 입은 아낙네
따바리 물동이, 돌덩이 머리에 이고 양손 놓고 춤추며 따르고
운동장 가운데에 가설된 외나무 다리를 건너는 가교
모두 미끄러운 짚신신고 조심조심 목도를 한다.
옛날 구계리 골짜기에서 나무를 베어 운반하던
노동요를 합창하며 위험교를 건너는 모습
호화로운 깃발 찬란한 행사보다 더 위험 부담이 더 크고
젊은이 보다는 나이든 어른들이 아니면 행하기 어려운 민속이다.
카메라들이 목교 다라밑에서 줄지어 섰고
사람들 좀 물러나라고 애걸을 하나
사진작가들 좋은 장면 포착하려고 자꾸 모여든다.
목도하는 묶음을 분산되도록 묶은 과학성이 지혜롭다.
정오경 되니 동부서부 군사들이 진군농악대를 앞세워
오방색 깃발 휘날리며 놀이마당에 들어온다.
사람들이 물바가지 깻낟처럼 모려 들어오니
온 마당이 찬란한 공연이 휘몰아친다.
그 음악에 선 사람 모두 울렁이며 어께 들썩인다.
그들 일부러 사람들 무리 안으로 몰아넣고
할수 없이 춤추게 만든다.
온 마당이 동부군 서부군 순으로 들어와서는
마당 한바퀴 진력을 펼치며 자랑질하고
흥겨운 멜로디는 리듬에 맞춰 박수와 흥을 불러낸다.
쇠머리에 탄 동부 홍군과 서부 청군
우쭐우쭐 칼춤 추며 사방을 휘감는다.
그러다가 온 농악이 익을 무렵
점심시각이 가까우니 모든 다열 중단을 선언하니
순덕이 모양 행동 딱 그친다.
민중이 통제하는 지휘에 흥을 재운다.
이내 점심시간을 예고하고
우린 지인 찾아서 헤매다가
먼저 행시 합격했던 수제자 신장수군 부모님을 만난다.
옛날 담임과 학부모 만남이라 반갑다.
우리는 서로 고마움을 안고 만났으니 다정해진다.
아이들 소식에 수다쟁이가 되고
그들 다 잘 살고 있다니 내 보람도 커진다.
담임선생 대접한다고 학부모 아픈 몸 이끌고 나왔으니
천상 오늘은 대접받을 수 밖에 없다.
사양해도 그들 이끄는대로 간다.
옛날 고급음식점인 풍천장어집으로 이끈다.
그들 1년내 가야 비싸서 못먹는 집인데 미안하다.
노릇노릇 구워내온 장어구이
난 아이들 묻고 답하느라 고기 집을 여가 없고
평소 아픈 몸 말소리 적던 어머니는
오늘 수다쟁이 되어 기쁨으로 토해낸다.
얼마나 기다리던 즐거움인지 순박함에 시간을 주었다.
이런저런 이야기 향산은 그 아들이 후배가 되니
즐겁게 대화속에 인정을 먹었다.
감사하며 문화마당에서 건강하라고 축원하고
다시 우리 내외를 꼭 한번 오라고 초청한다.
그러마고 하면서도 그들이 진심으로 요구하는듯 고맙다.
삼일절 기념 행사가 진행중이다.
많은 인사들 본부석 좌석에 온 내빈들
모두 소개하고 기관장마다 축사하고 나니
시간이 많이 흘러 지겨움 느낄 때쯤
농악이 울리기 시작하니 잔치마당이 된다.
동부지역 한무리 서부지역 한무리
하늘엔 잠자리 드론들 떠서 왱왱거리고
카메라대열은 자꾸 좁혀 몰려든다.
그러나 양의 동무대장군
음의 서부대장군
마당 한가운데를 휘휘 태극모양 돌아가니
자연적으로 구경군은 바깥으로 밀려나고 만다.
무리지어 두어 바퀴 돌고
서낭대 앞에 나와 서로 넘어뜨리기 두세 번 하다가
쓰러뜨려 이기니 이겼다고 춤바탕 일고
서낭대 먼저 달려나와 본부석 우승깃발 달아주니
동네 기운이 승리자로 춤발이 돋고
깃발이 춤을 춘다.
다음은 진잡이 놀이
진앞에 선 수많은 깃발 오색깃발과 영기들
중앙으로 모여들어 깃발끼리 싸운다.
깃발이 찢어지고 넘어지고 부딪히니
대밭에 폭풍이 부는듯 휘청거린다.
가까이 있으면 댓가지살에 눈찔리겠다.
다시 혼잡해지면 전쟁 중지 신호에 해해 웃으며 헤어진다.
민중의 맘이 바로 평화다. 춤이다.
다음 차례가 본게임 시작이다.
경상대학생이 든 쇠머리 목우 무게만도 매우 무겁다.
두 뿔이 맞닿으니 위험하기 짝이 없는 기구다.
이것은 만들적에 못은 쓰지 않고 새끼로 튼튼하게 감았다.
그러나 부닺다보면 찌그러지기도하고 위험하다.
두 쇠머리들이 두어 바퀴 세를 과시하며 돌아서
동쪽은 동부대장 붉은 양의 군복이
서쪽은 서부대장 푸른 음의 군복이 조화롭게 섞인다.
고깔 모자쓴 여인들 농악춤이 귀엽고 재미있다.
연신 기쁨의 대열 온동네 기쁨이 전달된다.
조용히 나아가 두 머리 맞대어 본다.
피라밑 모양 목우가 하늘 향해 일어선다.
목우를 최대한 밀어올려 상대편 목우 위로 올리려고 솟으니
서로 용호상박 하늘로 솟고
삼장군 대장 중장 소장 모두 목도 뽑아 칼춤 추며 더 밀라고 지휘하니
그 모습 싸움이 아니라 춤이 되고 만다.
격전에 하부 장정들도 체력 바닥나면 내려서 쉬다가
또 맞대기를 며러번 쓰러질듯 솟았다가
옆으로 넘어지려는 찰라 전투중단 명령내리면
이내 쇠머리 내리고 축제의 마당이 되는 민속혼 체험
관객도 공연자도 땀내나는 몸이 되고 만다.
두껍게 입고온 추위도 땀이 숭숭 솟는다.
영산이 준 발열충전이다.
오늘 행사는 이것으로 마감이다.
그러나 각동서부 진영은 영산대로를 행진하여
많은 행진인사들 이끌고 처음 지역으로 돌아간다.
그곳에선 얼마나 많은 이야기가 올해 농사를 점치고
오늘의 승리를 찬동할런지
그 기쁨에 술판이 늦게까지 벌어지고 후렴 잔치는 이어지겠지
모레 줄다리기 작전짜기에 시끄러울게다.
항년인은 오늘 참 행복한 국민이 된 것 같다.
날씨가 일기예보따라 꾸므레해진다.
마지막 박회장 만나러 세력단련장 갔다가
그의 괴팍스런 집념 헬스장, 서예실 악기시설보며
그의 추사체 글씨가 이제 대성을 이루었음을 느꼈다.
마지막 그의 친절 기어히 카페 찾아 차를 마시며
고마운 그의 대응에 다음기회 만나자고
어슬프게 달아나 나온다.
3시 온다는 비가 4시 빗방울 되어
차에 실어둔 우산 쓰지 못하고 비맞고 걸어서
차를 타고 오며 영산의 문화재 안내
무지개다리 만년교 설명해 주고
올라가 기년사진에 담아주었다.
함박산 약수터 아래 영산석빙고 보여주고
돌아오는 길 영산문화의 독특한 전염에
향산도 한 번 꼭 볼거리였다고 평가한다.
오늘하루 돌아다닌 발걸음 8,900보
7.5km 운동 걷기한 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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