따뜻한 만남 1/국내외여행

진성 22회 친구들 8순 기념 충남 졸업여행

황와 2024. 3. 27. 22:54

 

24.3.26-27(1박 2일) 진성초22회 8순기념 충남 부여,보령,덕산,예산 졸업여행하다./264
      참가자 : 진주(성득찬,서재교,정민규,정재순,박주태,김영환,노현순,공맹순) 창원(이동춘,이순희,조덕순) 울산(최낙근)
                 부산(정말순), 서울(정규찬) 대전(오점환) 총 15명 
     대절차량 : 통쿱, 기사 : 하성호(빨강바지)       
     일정 : 3.26(화) : 진주(8탑승)-마산역(5탑승)-대전역(2탑승)-부여궁성지공원(부여국립박물관) - 구드랫돌 쌈밥(점심) -
                   부소산성(사자루, 백화정)- (유고)-(백마강수륙양용버스)-(부여시내시티투어)-보령 대천항-보령해저터널-
                   대천횟집센타(쭈꾸미 저녁)-덕산온천 가야호텔 (1박-전체회의 - 동기회 파산 결의)
              3.27(수) : 덕산가야호텔 온천욕-(황태국 아침)-충의사(윤봉길)참배-산책로 걷기-예산 수덕사 관람-(더덕정식)-
                   예당호 출렁다리 관람 - 대전역전-추풍령휴게소-남성주휴게소(저녁)-마산역전-진주
     걸은 거리 : 1일차 : 1만보, 2일차 : 1만보 총 2만 보 걷기     
     특색 : 2024년 8순년 마지막 동기회 여행 전체 모임에서 동기회 운영 파산을 결의함
                8순년 기념으로 부여 보령 덕산온천 예산 수덕사, 예당호 출렁다리 즐겁게 답사하다. 
                갑자기 사자루 앞에서 유고로 건양대부여병원 응급의료센타에서 진료 안심함 (병원 수행함)
                           

 

8순 부라보!

                                                                                         

 

 

80 부라보!

진주시 진성면 진성초등학교 제22회 졸업

고치 친구들이 코로나 벗어나 반갑게 만났다.

서로 손잡고 외간 남녀 어려운 친구들

고마움에 내 볼때기 만져주니 서로 사랑이다.

빈말이 참말이다.

서로 사랑하기에 50년을 기다려준 동기생

코로나 기다림보다 만남이 반갑다.

 

예당호에서

 

1959년 당시 진성국민학교 제22회 졸업생 65명 중에서

산지사방으로 흩어져 전국 각지에서

산업의 역군으로 또는 국가 사회 행정에 몸 담아

젊음을 국가산업진흥에 바쳐 일했고

국가 부름 받아 국방전선에서 총 겨누었다.

아들 딸 다 키워 장성하도록 독립시켜 보내고

80고개에 다다르고 있는 우리의 만년 행복

잘난 자는 아직도 펄펄 산천을 떠 돌아 다니는데

다들 "머리야, 허리야, 다리야" 하며

못난 자는 요양원에 갇히고

더 못난 자는 이미 하느님의 필요에 따라 먼저 데려갔다.

오늘 온 친구들은 15, 23%만 모였다.

몸 아파 숨어 있거나

이미 황천간 친구들이 수두룩하다.

얼굴은 쭈글밤탱인데 제법 분발라 팽팽하다.

온전한 얼굴은 하나도 없다.

그래도 웃으니 천진난만 아이들이 된다.

 

부여국립박물관

 

당시 진성초등학교 6.25 전란 화재로

본관은 일제 때 지은 목조 시커먼 건물에

현관 앞엔 작은 종 달려 시종시각 울리고

본관 긴 건물은 1학년과 고학년이 차지하고

부족한 교사를 어른들 부역으로 초가지붕 집 지어

3학년 교실은 흙책상에 짚방석 깔고

불 타버린 운동장 건너 교실터는 실과 실습장 고구마 캐고

2학년적 삼도는 구구단 못 외운다고 바지 벗겨 벌 받고

"연필 한 타스 열 두 다리"로 난 교실 웃음바다 되었다.

오학년 적엔 신우염에 걸려 뚱뚱 부어서

오로지 돌감나무에 앉은 까치와

빨갛게 익은 홍시를 헤아리며 대화하고

친구들 한번씩 찾아오면 돌감 한 주지 꺾어주던 그 처절함

치료할 게 없으니 무당 불러 궃과 작두타기도 여러 번

천당문 앞에서 되돌아 온 재생 행운

굼실댁 양어머니와  다못골댁 친엄마의 기도 아니었으면

난 이 세상 사람 아니었다.

이웃 양촌 할배 할매, 진외가 대실 아재, 씰미 들말 할배,

수 많은 이웃 어른들 기원으로 다시 태어났다.

난 백일이상 결석으로 유급해야하나

유급하지 않겠다고 억지 눈물 뿌려가며 고집 부려서

우리 22회 친구들과 함께 졸업할 수 있었다.

졸업식 때 나에게 온 꽃다발 수상을 을수가 대신 받았다.

 

부여박물관 앞에서

 

195541일 입학하여

1학년적엔 정양숙 선생님 난 홍군 리레이 선수되었고

2학년적엔 이옥남 선생님 진주여고 갓졸업 대대장 강단이 무서웠고

3학년적엔 이을우 교감선생님 뿔테 안경에 인자한 분이며

4학년엔 귀내 최병순 선생님 난 그때 처음 붓글씨 배웠다.

5학년 6학년은 이지상 선생님 연이어 올라가며 괴롭혔고

그 젊은 열정에 힘 입어 난 무사히 졸업하고

5학년적엔 학예회 '혹 떼려 갔다가 혹 붙여 왔네' 에

홍첨지 역할로 주연배우 되었고

그 때 내 각시는 숙란이, 딸은 상순이고

박첨지는 환철이 , 그의 아내는 금순이였다.

난 혹을 못 떼고 다시 양쪽에 붙였으니 

그 서러움과 어른들 앞에 부끄러움에

퍼질고 앉아 울다가 무대를 내려가지 않았던

생생한 실증 연기 넌센스 추억이다.

6학년적엔 '단종애사'에 사륙신으로 조연 역할했었다.

특히 주산과 미술로 교내사생대회에 1등하여 

두 번씩 영남예술제에 참가할 수 있었고,

갈 때마다 선생님의 진주 천전집에 재워

우리를 가족처럼 보살펴 주셨다.

매년 운동회 연습 때마다 덩치값 한다고,

덤블링 밑에 깔려 어깨 껍질 벗겨지기 예사였고,

여자들은 무용 되풀이 연습으로 매일 밤늦게 귀가했으니

부모님 등불 들고 마중 나왔었다. 

졸업전 중학입시 특별지도한다고 남으라 하면 도망치고

남자와 여자들 갈라져 고무줄 끊고 해꼬지하고

하교길 앞뒤에 서서 놀래키운 장난치던 개구장이였였다.

나중에 교육심리학에서 배운 바 이성을 구박하는 행위가

어릴 적 각인시키는 애정 표현방식이란 걸 그때서야 알았다.

중학입시 결과 진주사범 병중에 환철이 혼자만 붙었고.

진주중에 주은이, 남중에 재월이, 천곤, 환욱이, 기용, 나

진주여중에 숙란, 마여중에 금순이

반성중에  정규, 두기, 순화, 을수, ....... 

난 진주남중 장학생 선발고사에 응시했다가

무시험으로 장학금 조금 받으며

새벽밥 삼태성 시계 보고 8년내내 기차통학했었다.

 

삼충사 참배(성왕, 성충, 계백)

 

추억 이야기, 자녀들 이야기, 할멈 이야기

이야기가 거의 밑천이 다할 때쯤

진주에서 여덟, 마산역에서 다섯, 다시 대전역에서 둘 태워

만날 때마다 꼬라지 쳐다보고 웃었다.

아직도 살아주어서 고맙단 표현이다.

차는 커텐을 걷어도 별로 보지 않고

오로지 추억만 되살리며 나를 살아나게 한다.

회장이 우리 갈 코스 알려주지 않아도

아무도 궁금해 하지 않았다.

대전에서 출발하여 창밖을 보니

세종시 금강자전거길이 보인다.

내가 다섯 번이나 자전거 타고 국토종주한 길이다.

다음은 공주보가 금강가에 보인다.

부여에 도착하니 점심 때무렵

구드랫돌 식당에서 주문하고

남는시간 잔디밭 너른 공원 산책로 돈다.

옛 집터였던 왕궁터 밝은 잔디밭에

깨어진 기왓장 백제의 유물이 그대로 쌓여있다.

백제 역사의 고장 부여국립박물관 문이 잠겼다.

주변을 돌며 봄꽃핀 박물관 계단에 앉아 기념사진 찍고

부여현 객사 부풍관을 돌아

옛 관공서를 방문 상관을 모시는 숙소

양쪽으로 대청마루이고 중앙에 방이 있다.

공원을 돌아가서 다시 식당에 이르니

영환 장자 내외가 부여군청에 근무하는데

아버지 뵈려왔다가 많은 선물을 전하고 갔단다.

부여빵과 딸기, 무릎 파스, 부여우산 까지

한꾸러미 선물을 우리에게 전한다.

점세 친구와 그 자식이 고맙고 자랑스럽다.

자식은 부모의 자랑일 수 밖에 없는데

난 그런가 반성해 본다.

백제식 쌈밥 점심상

서해안 어류 육류 해초류 젖갈 온갖 색깔 쌈에

모두 잔 들어 건배하고 건평 빈다.

쌈밥 반찬 채소 여물처럼 씹으니 소가 된듯

최고의 향토음식맛 배불러서 숫가락 놓았다.

새벽밥 먹고 첫 점심이라 모두 좋아했다.

식당안은 민속박물관 온갖 생활도구 걸렸다.

호롱등, 풍로, 다리미, 고드랫돌, 요령......

옛 농촌 못살던 추억을 되살린다.

 

백제왕도 부여 사비성 기왓장

 

오후부터 정식으로 관광에 나선다.

백제유적 답사 안내자 없어 내가 가면서 대충 해설했다.

어슬픈 해설이지만 잘 들어 준다.

부소산성을 오른다.

먼저 백제말기 삼충사를 들러 묻는다.

여기는 백제 삼충사 사당 유적이다.

삼문을 들어서 삼충사 현판은 고 박정희 대통령의 글씨다.

사당 좌측은 의자왕에게 잘못된 정치를 고하다가 죽은 성충이요,

중앙에는 나당연힙군의 공격에 맞서 백강과 탄현을 지킨 좌평 흥수요

우측에는 백제 황산벌전투 최후 명장 계백장군을  모셨다.

큰 액자 초상화가 사진처럼 조용하다.

모두 배위에 세워 묵념 경의를 표했다.

다시 나와서 부소산성으로 오르는 송림길

천년송들이 허리굽혀 맞이한다.

우리는 높은 사신사처럼 당당하게 오른다.

그러나 몸은 현실이 아니라 자꾸 굽어지고

자주 앉아 쉬다가 가곤한다.

난 그들과 보조 맞추며 낙담하지 않도록 이야기로 이끈다.

숲속 산책로 걸을만한 코스지만

몸이 안 따라주고 시간이 별로 없다고 재촉한다.

앞서 간 친구들 백화정 낙화암 고란사 돌 적에

겨우 사자루에 올랐을 적 비상이 걸렸다.

허리굽은 모양새가 더 힘이든 덕순씨

그만 다리가 풀려 길바닥에 나동그래졌다.

어쩌랴! 급히 휴지로 닦고

웬 아가씨(홍씨로 공원매표소 직원)는 119 신고로 부르고

안정을 취하고자 하지만 얼굴은 피범벅

난 자꾸 별일 없음 안정시켰다

앞잇발도 부러졌다.

119차량 재촉해도 입구 모른다고 늦어진다.

다행히 아가씨가 오르는 길 설명하고

다음 일정에 맞춰 본대는 백마강 유람에 내려보냈다.

아가씨에게 고맙다고 친구와 함께 정중히 전했다.

영환 아들에게 부여군청 직원의 친절 사례를 알렸다.

 

부소산성 정상에 있는 전망대 사자루

 

20여분쯤 지나서 산정에 도착하니

난 보호자로 119차에 동승하고

차안에서 환자 인적사항 기록하고 

말을 씹히며 정신을 차리게 한다.

다행히 혼절하지 않고 대답 잘하니 안심이다. 

도착한 곳이 건양대 부여병원 응급실

다행히 별 기다림없이 검진하니

얼굴 상처가 깊지는 않고 피부만 갈았다고하고

뼈나 관절은 이상없다고 한다.

단지 옛날에 씌운 잇발이 부러진 것이 큰 일이다.

옆에서 가족처럼 안심시켜주니 안정을 찾았다.

환부 모두 소독 파상풍 감염 예방주사까지 완료

집에 돌아가서 창원에서 소독치료하면 된다고 한다.

2일분 투약 받고 실경비 기어히 자기 돈으로 계산하니

택시로 버스에 돌아왔을 땐 서로 위로와 감사했다.

친구들 백마강 수륙양용차 유람에서 돌아와

부여시내 시티투어에 함께 승차하여

정림사지 5층석탑 보며 국보탑이란 걸 알리고

궁남지에 들러 백제 연꽃정원으로 이름있다고

돌아나오며 로타리에 거대한 성왕 동상섰으니

공주에서 부여로 왕궁건축 천도하고

가장 백제 성대를 누렸던 왕이다.  

오후 놀란 일 조용히 잘 마무리되어 안심하고

다음은 좋은 먹거리를 찾아 서해안으로 떠났다.

 

 

충청도 서해안은 갯펄밭에 자라는 조개 낙지

모래사장으로 이름난 해수욕장이 많다.

도착한 곳이 보령시 대천해수욕장 유명하다.

해지기전 보령해저터널부터 먼저 간다.

대천항과 안면도 사이 천수만 바닷길을

예전 빙 둘러 다니면 몇시간 걸리는 길을

해저 50m아래에 터널 17km 뚫어

서해안 교통과 물류가 훨씬 좋아졌단다.

한번 건너갔다가 다시 돌아오며

혹시나 바닷물이 차 오른다는 뉴스를 생각했으나

바닥에 물이 나는 것도 보이지 않더라.

한번 가 봤다는 추억의 소리 들으러

먼길 오가고 나니 이것도 낭비 같다.

대천회센타에서 눈으로 활어 구경하고

지정된 쭈꾸미탕 정식 수북히 나온다.

주인과 서비스인 모두 남비에 붙어서서

우리들 입맛에 맞춰 먹물통 떼고 가위질한다.

우린 우물우물 서툰 잇빨로 씹으니

볼따구니가 아프다.그래도 맛난다.

그처럼 비싼 쭈꾸미를 많이 먹어본 일이 없다.

시커먼 먹물통을 먹고나니

복장이 어느새 새까매졌다.

고맙다고 회장 총무 천년만년 살라고 박수로 기렸다.

속을 채웠으니 다시 밤을 뚫어 어디로 간다.

깜깜한 밤 서해안에 지는 낙조가 그립다.

다들 피곤했는지 눈을 감고 듣는다.

 

보령 대천 쭈꾸미 폭식

 

예산군 덕산온천 가야호텔에 짐을 푼다.

오늘 밤은 한방에 모여

지나온 과거 동기회 역사부터 꺼낸다.

진성초총동창회 개시에 성득찬 사무국장이 맡아서 하던 중

우리 동기가 개최할 시기에 맞춰

사전 회비를 적립하여 기금을 마련하고

동기간 회원들 친목과 단합 교류를 도모하기 위해

나무냇들판 양수장에서 남여 혼숙하며 시작된 동기회였다.

우리 동기들이 주관한 제9회 총동창회 체육대회엔

그 때 여러 차례 사전협의로 여러 종목 색 다르게 한다고 

축구 배구 윷놀이 피구까지 다양화하고

이를 본때있게 무사히 완수해냈으며

유니폼 입고 까불던 그때

남은 경비와 매년 회비 조금씩 보태서 이어져 왔다.

이제 부모도 자식도 부조  다 끝나고

미성 자녀 여섯 남았기에

회칙 규정에 따라 지불하기로 하고    

40년간 어울려 온 동기회를

이제 친구들 불러도 잘 모이지 않고

집안 가족이 아파 거들어 주지 못하니

모두 그 현상에 아쉬운 종말을 합의했다.

고향에서 회원행사마다 일어난 부조 주선하며

우리의 심부름 대표가 되어 왔고

고향 왔다고 밥술을 대접해 준 그 인정

말로만 고맙다고 치부해 왔다.

이제 그 기력이 80고개를 넘고 있으니

이번 여행이 10년 주기로 세 번째

60주년 환갑, 70주년 칠순, 80주년 산수

세번 째 졸업여행이 되어 아쉽게 그친다.

맘은 100수까지 가고 싶은데

난 졸업 당시 아픈 후 약하고 어려워서

부산 수학여행에 참가하지 못한 여한이 남아있다.

오늘따라 한국과 태국 축구대회를 여관방 응원

우리가 3 0으로 이겼으니 기분 좋고

자정을 넘자마자 제 방으로 찾아간다.

불을 끄고 고시랑대다가 꿈나라로 갔다.

 

덕산 가야온천의 총회

 

327일 새벽 5시 개장

토깐이 버릇 가진 낙근이가 먼저 깨운다.

늘 부지런히 산 증인이니 고맙다.

지하 온천탕에서 푹 담갔다.

옛날 애기쏘에서 꼬추 내놓고 멱감던 친구들이다.

뜨거운 열탕에 퉁퉁 불려서

건탕 맥반석실에서 기름 땀 좍좍 빼고

냉탕에서 물벼락 둘러 맞고

담금질하듯 뜨신물에 담갔다가 찬물에 담갔다가

단단해진 몸 박박 타올로 닦아내고

어느 새 반들반들한 청년피부가 된다.

회장 총무님은 특실에 자며

주사(酒肆)에게 두드려 맞고

욕실에서 물세레 둘러썼다고?

황태국 백반으로 아침 해장하고

즐거운 나들이 준비 마친다.

 

예산 덕숭산 수덕사 일주문

 

오전 일정 버스에 또 오른다.

여기는 예산군 덕산온천

황마카피트 깔린 산책로에서 잠시 산책하고

동서남북 모르게 차에 실려 다닌 길

충의사에 온 걸 보니 예산군이다.

충의사 바로 청년 애국투사 윤봉길

중국 상하이 홍구공원에서 일본 천황 생일 국경절에

수많은 친일인사들 군장성 참배객들 늘어선 데서 

중국 점령군 대장 백천을 폭탄으로 제거한 독립사

그 분이 바로 매헌 윤봉길 의사이시다.

함께 서서 사당에 분향 묵념 참배했다.

다시 이어지는 곳은 덕숭산 수덕사다.

우리나라 9대 총림 중에서 하나로

이름난 여승 고 일엽 스님이 생각나는 절이다.

사하촌 입구 식당상가들이 더덕 내음 많이 풍긴다.

영남식당 앞에서 주인이 내미는

막걸리에 도토리묵 한 점 찍고

거대한 새 일주문 통과하여

옛날 일주문을 거쳐 대웅전 올라가

옛 건물 전경과 절의 위치 풍수지리 살피며

예전 왔다가 간 기억 되살리나 거의 새 건물이다.

단지 대웅전은 옛 그대로 국보

맞배지붕에 단청 퇴색되어 사라지고

마치 단청 안한 건물처럼 보인다.

본존미륵불 삼상은 금빛 찬란하고

건물 뒤 산줄기 생기운이 내려오는 자리에 서서

우리의 낡은 몸 생기 받았다.

생기 받은 몸 실험 손가락 떼기로 증명해 보였다.

주변에 핀 진달래가 멋져서 사진에 남겼고

새로 생긴 수덕사 근역 성보관에 들러

마리 사자가 이고 있는 3층 석탑 우람하고

장차 국보감 화려한 불탑이다.

전시관에 들러 각종 유적 전시물 확인하고

고승덕적 대선사들이 종정을 맡으면서

한국의 불교를 이끈 명사들을 소개한다.

대한불교의 법종통이 이어진 대찰이었다.

절을 내려오며 고승의 사리탑을 찍으며

잘 조각된 모습이 대단한 예감을 자랑했다.

프랑스에서 활동했던 이응노 화백의 고향답게

옛 여관건물 초가지붕으로 이어 졌고

본채 건물엔 석편지붕이 기와지붕처럼 아름답다.

이응노 전시관 주변에는 봄꽃 곱게 피어 있다.

절을 내려와 사하촌 영남식당에서

마지막 점심으로 기대되는 더덕구이 밥상

주전부리 먹다가 보니 때가 돼도 배가 안 고프다.

그러나 채곡채곡 맛난 반찬 다 뱃속에 채워넣고

정작 밥은 절반은 남기고 만다.

이틀동안 음식 호강 많이 했다.

선물가게에서 회원들 더덕 선물 사고

난데 없이 나와 회장은 덕순씨 벽시계도 받았다.

미안하기 짝이 없는 행위 고마움으로 해석했다.

 

예산 충의사(매헌 윤봉길) 참배

 

수덕사 대웅전(국보)
진달래 필적에 탐방

 

새로 조성한 4사자삼층탑(근역성보관 옆)

 

다시 마지막 코스로 향한다.

예당호 출렁다리 걷기다.

예산군과 당진군 사이의 내포평야 농업용수를 제공하는

대형 저수지로 예산군 쪽에 출렁다리 400m 놓아서

전국의 관광객을 불러 모은다.

주변에 관광시설 세워 유혹하는데

우린 출렁다리 걷기만 했다.

출렁다리가 아니라 단단다리다.

중간 3층 전망대에는 다리가 불편해서 오르기 생략했다.

호숫가에 난 실버들이 새파란 봄빛을 증명한다.

참 아름다운 풍경화로다.

컴퓨터 바탕화면 사진으로 찍었다.

전국 지자체마다 이름난 구경거리 만드는데

예산은 연중 천만객이 다녀간다는데 성공한 지역문화다.

 

멋진 풍경 예당호 출렁다리

 

이제 가야할 길 멀어서 버스에 올라 하향한다.

어느길 어느 고속도로로 오는지

대전역에서 서울 규찬, 대전 점환 친구 내려주고

추풍령에서 가는 비 오는 소리() 폭포 소리() 듣고

남성주에서 늦은 귀가로 마나님 고생 안 시키려고

가락국수 순두부백반 한그릇 저녁 비우니

드디어 온 먹을 꺼리 다 맛봤다.

마산 시외터미널 앞에서 낙근 말순 보내주고

마산역전에서 나와 순희 덕순이 내리고

마지막 손 흔들며 배웅했다.  

진성에서 득찬 재순 주태 내려주고

진주에서 재교, 민규, 영환, 현순, 맹순 내리니

팔순 졸업여행 영원히 마감됐다.

 

어찌 되었던지  계속 숨 잘 쉬고,

건강 챙기며, 잘 살아 있거래이,

친구여!

90을 꿈처럼 기다려 보자꾸나 !

 

                                                   [24.3.29   육사(堉史이동춘 즐겁게 기록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