따뜻한 만남 1/가족사랑기

을사년 설날 차례후 고향 방문 집안 두루 방문하다./264

황와 2025. 1. 29. 22:10
25.1.29 설날 차례지내고 고향 부모님 성묘하고 동생병원 집안 대소가 둘러 누이집 둘러오다.
        코스 :  아침 설날 차례-진성 숙모댁-부모님 산소 성묘-동생 입원병원 방문-큰집, 원호아재집, 옛터전-누이집-마산
        특색 : 설날 차례지내기와 부모님산소 성묘 
                  가까운 집안 방문 명절 찾아뵙기  (숙모집, 큰집, 원호아재집, 옛우리종가터(월산재), 누이집)
                  동생 병원 방문 (진주노인병원 4층)-투석중이라 면회못하고 돌아옴           

 

을사년 설날을 이번설에는 우리 부부만 조촐히 맞는다.

성남 사는 아들 손자는 눈 오는데 위험하다고 

내려오지 말라고 전화했으니  

창원 사는 딸내는 어제 가족들 모여와 미리 세배하고 

밥한끼 먹고는  다  몰려갔고 

오로지 앉았다가 일어서기 곤란한 노구를 이끌고

단촐하게 차리고 한복은 차려입고 

차례지내며 온가족 식구들 건강 빌고 

조상의 음덕을 달라고 뻔뻔하게 빌었다. 

가장 더 필요한 것은 지금 다 삭아가는 동생이

조금씩이나마 살아나기를 애걸하며 차례 올렸다.

이제 어눌해 지는지 제사지내는 순서도

지낼 때마다 조금씩 달라진다.

그래서 홀기를 읽으며 해야 할까보다.

모든 진설 철거하고 젯상 향안 닦아 챙겨 넣고

아침겸 음복상 차려 젯밥 비벼 먹고는 

고향을 향해 성묘길 떠났다.

마산시가지부터 서마산 고속도로 진입로가 긴줄 밀려선다.

빨리 올라가야 숙부님 제사에 참여할텐데

고속도로 정체줄이 10시가 넘어서도 뚫리지 않는다.

차가 이리도 많으니 그 너른 8차선 고속도로가 막히지....   

 

설날 차례 우리 내외가 지냄

 

고향에 도착하니 숙모댁 이미 제사를 끝마쳤다.

돌아가신 날이 14년전 설날에 돌아가셨기에 

올해는 제 14주기 기제사이다.

3헌을 바쳐야 하는데 종제 혼자서 지내니 차례처럼 단헌으로 끝마쳤다.

축문도 써 갖고 갔지만 읽지도 못했다.

함께 음복음식 입다시며 잠시 이야기 하고 

숙모에게 세배올리고 종제와 그의 딸에게서 세배 받으며

세뱃돈 챙겨 주었다. 숙모에게도 조금 전했다.

그리고 종제와 함께 성묘하러 나섰다가 

증조부모, 조부모, 숙부 산소는 나중에 종매들과 외손들 오면 성묘한다기에 

종제에게 맡기고 질매재 양부모 생부모 산소 들러서

살펴보니 두더쥐들이 땅속을 파 돌아다녔는지 흙이 솟아나 있기에 

함께 흙을 밟아 다지고 둘이서 성묘했다.

절만하고 오는게 아니라 주성영역까지 하며 둘러 돌았다.

종제가 그래도 잘 다듬어 주니 고맙다. 

이제 성묘하러 올 사람도 자손으로 나 혼자인 것이 애처롭다.

동생이 정성껏 잘 보살폈는데 이제 아파서 못일어난다.

질매재 양부모, 생부모 산소 성묘

 

차를 몰고 동생있는 병원으로 향했다.

지난번엔 5층에 있었는데 4층으로 내려 갔다.

오늘은 투석하는 날  면회 사절이란다.

오늘은 병원내 후손들이 그의 부모 찾아서 많이 내방하여 

면회객이 각층마다 많다.

자세히 증상을 물으니 피부가 건질러서 피가 많이 맺혔다고 한다.

지난번보다 더 심한가 보다.

이제 피부도 물러 앉는가 생각하니 가슴 아린다.

월수금 하니 설날이라도 지금 하는 시간이라 

할 수 없이 되돌아 나온다.

다음부턴 반드시 사전 전화로 예약하고 와야 한단다.

난 여러번 만났지만 종제는 처음 와서 되돌아 가니 실망이다.

내일 올라가면서 만나고 가라고 했다.

아마 생애 마지막 만남이 되리라 애닯다.  

 

고향으로 돌아와 집안 집집마다 한바퀴 돈다.

큰집에 들러 큰집종부아지매 세베드리고 

큰집 종제들과 부산에서 올라온 종제들 가족 모두 

세배받고 덕담 용기잃지 말라고 일렀다.

떡국 한그릇 가볍게 마시고

많은 손님들과 가족들 번거로울까봐 

살며시 간다온다 말 없이 떠나왔다.

다음은 중촌리 다래미아재집 들렸다.

우리 황재조의 다섯번째 아들 가계라 

제법 촌수는 멀지만 금산면 다래미마을에서 외롭게 살다가

이곳 집성촌으로 넘어와 사는 현재 살아있는 최고 숙항렬이다.

평소 정신이 어지려운 것처럼 질환에 앓았으나

다행히 요즈음은 많이 나아져서 

오늘 아들과 함께 그의 어머니 산소 성묘하러 갔단다.

둘째 아들이 함께 갔으니 걱정은 없단다.

입 다시고 가라고 해서 단술 한컵 마셨다.

이야기 들으니 할매 삼형제 중에 장형 일호 아재도 돌아가셨고

막내 진호 아재는  처와 상처하고 혼자 출입도 못하고 집에 있단다.

삼형제 그 아재들도 그리 어렵게 사신다.

만나지 못하고 나오며 건강하기를 빌었다.

그동네를 지나면서 옛적 우리 할배들의 집터를 살핀다.

내가 어릴때 알았던 중촌 집터 논과 덤벙 샘 

조산옆에 큰집 할배 춤주는 할배집터가 있고 

그 윗대 할배들은 들터 조산옆 대밭이 있는 곳

큰 신작로 길가 대밭에 포옥 싸인 정원경씨 집이 있었고 

그집 뒤에 현달 현선 현박 삼형제와 판호가 살던 집이 있었고

그집 앞에 당시 대목으로 동네집을 짓던 성환영 어른의 집이 있었고 

그의 조부 재실 월산재를 지은 장소가

나의 6대조 황재 할배의 옛 집터였다는 

월정 수진 할배의 이야기를 들었기에 둘러 사진에 담았다.

우리의 옛 터전을 확인하니 역사를 잇는 느낌이다.

아마 여기서 황재 할배는 대밭에 만취헌을 짓고 젊은이들을 모아 가르치며 

학문을 익히고 예절을 선도하며 선비로 살아가시다가 

우리 재령이문의 첫족보 수단을 짊어지고 

함안 동래 경주 영해 석보까지 다녀온 동정일기를 남기셨고 

모은 할배의 유적지인 운구서원을 개축하는 헌성금을 모아 전달하였고

1841년에 향년 67세로 돌아가심에 유림 유월장으로

문집을 남기신 산림처사로 이름난 학자이셨다.   

다음은 동생집 가족은 생략하고 

반성 누이집으로 가서 생질들 세배인사 받고 

누이의 걱정 덜어 드리고 희숙이 가족 만나 성금 전하며 용기 북돋워 주었다.

머리가 다시 난 걸 보니 잘 이겨내고 있다.

누이는 또 뚱딴지 한포대를 나에게 당뇨초기 잡으라고 

정성드려 캐서 내게 몽땅 실어준다.

형제자매는 확실히 가장 가까운 응원자이다.

동배도 식구들 몰고 대구 처갓집으로 떠난다.

    

옛 선조집터 - 고 성환영(대목 , 월산재) 집터는 약 180년전 내 6대조 황재(휘 嵎)조의 집터였다고 전해진다.

 

난 반성으로 평촌 지나고 어석재를 넘어서 군북으로 

고속도로 길이 넘쳐서 자동차 줄이 국도로 줄을 잇는다.

가다가 쉬다가 멈추기를 나중엔 다리에 쥐가 난다.

빈터에 차 세우고 한참 지나고보니 시동을 안 끄고 내린다.

아무래도 이제 정신이 혼미해 지는가

눈도 자꾸 한쪽으로 몰려서 도로선이 겹쳐진다.

피로도가 심해지니 그 증상이 더 해진다. 

이제 자동차 운전도 그만 둬야 하나?

집에 오니 아파트 주차장이 모두 다 찼다.

뱅뱅 돌다가 담에 붙여 겨우 세우고 들어왔다.

기다리던 아내의 걱정이 귀에 꽉 박힌다.

무사히 다녀온 것이 다행이다.

설날 만남이 그래도 넉넉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