따뜻한 만남 1/가족사랑기

을사년 김장 작업

황와 2024. 12. 29. 16:28

 

할머니 표 김장 작업

 

올해가 다가려는 세밑 

엄마 아빠가 되려 한다.

아니 할배 할매가 되려 한다.

아들 딸을 위한다지만

오히려 손자를 더 머리속에 키운다.

그들 제발 편하게 살라고 하지만

노인은 꼼작거려야 사는 맛이 난다.

하염없이 움직여서 아이들 길러냈던 경험자다.

노인이 움직이지 않으면 이미 죽은자가 된다.

그래서 잔소리로 삶의 의미를 찾고 

지난 추억으로 아이들 성질을 안다.

얼마나  자랑하고픈 아이들인데 

그 부모님은 누구나 세상의 어떤 위인보다 더 

나의 배경이고 보호자요 기댈 언덕이다.

그러므로 평생을 섬겨야할 최고의 위인이다.

 

다가는 갑진년  섣달 그믐 

몇번이나 기획하고 꿈처럼  준비해온 

아이들 입에 꼭 맞는 할머니표 김치 

그를 위해 야위고 힘없는 아내 

어디서 그 용기 솟는지 

새벽 역시장 1주일 내내 자전거 오르내리며 

양념 재료를 사다 나르고

배추는 고냉지 매추가 꼬시다고 

전번장에 미리 사서 냉장고 보관했다가 

집으로 배달받아 30포기 응달 베란다에 쌓아놓고 

어제부터 난 꼼짝 못하는 하인

지휘하는 불호령에 덩치값 하는 일 모두 내 몫

마나님 명령에 "예,예" 대령이다.

그런데 그 명령 일관성 없이 기분대로 내리지만

한마디 응답하면 완전 죽사발 말폭탄 떨어진다.

옛적 섭섭했던 이야기 다 쏟아낸다.

그 전략에 남정네는 다 KO가 되고 만다.

 

그래도 김치 담그는 일의 주무자는 아내다.

그러니 헛소리 않하고 따른다.

눈에 아이들과 손자들 기뻐하는 모습이 포개지면 

그게 할미 할배의 기쁨이다.

양념 갈고 거기에 들어가는 재료가 어찌그리도 많은지

아내의 실험정신은 해마다 첨가된다.

김치맛의 결정이 마치 우리손맛에 달리지 않고 

첨가재료의 맛에 달렸다고 맹신한다.

새우젖 멸치젖국 간간히 집어넣는 걸 보니 

아내의 혓바닥도 그 기능이 감별사 기능을 매년 잃어간다.

나더러 맛보라고 하지만 난 뭐든지 맛있다고 느끼는 사람이다.

그러니 날더러 "이래도 흥 저래도 흥" 한단다. 

밤잠 못자며 김치속 정성 다해놓고

내일이면 만들어둔 맛 믿지못하고 또 젖국을 지른다.

자꾸 짜와질 수 밖에........

 

새벽 일어나 김치작업 완전군장 

식탁 위에 전체 비닐 깔고 테이프로 고정하고 

앞치마, 빨간 김장 고무장갑,

머리에는 모자, 입에는 마스크

모든 재료 다섞어 만든 고추김치속 

아침밥 먹자마자 전쟁터에 나가듯 맘으로 준비

식탁위 공장에서 난 김치 만드는 기계가 된다.

어쩌다가 한번씩 간이 맞냐고 입에 쓴 배추속잎 주면

상큼한 맛에 쓴맛이 짠맛이 되어 물어오지만 

내 입엔 어느 것이나 맛있다는 소리 나오면 꾸중이다.

짜냐? 싱겁냐? 날더러 리트머스시험지가 되라한다.   

종일토록 속넣기 작업 

눈에는 뻘건 고추가루 양념과 화끈한 매운 내음

얼굴에 확확 품길 뿐

고정된 기계작업 주변은 온통 지뢰밭

허리 아프고 오줌 마렵고

그래도 꾹 참는 것이 장기인 여든 노구

오로지 손자들 기쁨만 바람이다.

드디어 작업 3시간 작업완료 

아내는 우리 먹을 것은 뒷전으로 미루고

아들네에 보낼 것 덜 매운것 2통

딸네에 보낼 것  약간 매운 것 2통

또 평소 관심둔 이웃 선배집 약간씩 

그러고 보니 우리 몫이 적게 남는다.

우리는 다음 더 담아먹으면 되지. 

냉장고 챙겨넣었다가 

내일이면 아이스박스에 넣어

아들네로 딸네로 배송하고 나야

하인급 임무는 끝나지만 

밤이면 겹쳐온 피로로

아내는 비몽사몽 헛소리 잠을 못이룬다.

이제 엄마 아빠 노릇도 

할배 할미 노릇도   

그저 아이들 맛있게 먹는 입만 쳐다보며 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