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마운 만남 2/자전거산책

임란 홍의장군 첫 기강전투 승전지 기강나룻터 첫 답사

황와 2024. 3. 17. 22:14
24.3.17(일) 혼자 낙동강 남강 합류점 의령군 지정면 성산리 기강나룻터 의병의 숲 공원 둘러보다./264
          코스 :  마산터미널-남지터미널-남지대교-칠서공단-장암보건지소-6.25경찰승전탑-송도교-돈지마을-충선각 쌍절각-
                    의병의 숲 공원-성산리둑길 끝-의병의 숲공원길-합강점 앞 전망대-녹자팔각정-송도교-대산초교-구대산초 농장-
                    유원-소속도교각밑 공원-광려천변로-중리역전-마재고개-서마산IC-마산역-집) 
          거리 시간 : 약 60km, 7 시간 답사,  혼자, 
          특색 : 남지터미널에서 무작정 못가본 지정면 합수점 기강나루 공원 가보기로 하고 출발
          유적답사 : 두암선생반구대 유허비- 부목보건진료소-두암선생묘소입구(대암마을)-장암보건진료소-6.25경찰승전공원-
                           남강 송도교(송도나룻터)-강씨 박사공파 지파 재실과 묘소)-두곡마을(국어학자 이극로, 가수 이효섭 고향)-
                           충선각(홍의장군 첫 승전지)과 쌍절각(의병장 손갑익(충)과 그 아들(효))  - '의병의 숲' 수변공원 답사
                           (강건너 남지 개벼리길), 합강점(내 6대조 황재조께서 동범놀이한 장소)- 웅곡마을(이운룡 장군묘와 기강서원)                             대산초교(전 구혜초교)-경남로봇고교- 전대산초부지  농장 조성)- 덕연서원(주세붕 )   
           느낌 : 오래간만에 자전거 산책 즐겁고 힘들었다.

 

6.25때 경찰병력이  송도나루전투에서 승전하여 남지로 가는 길을 막았다.

 

오늘 한번 내 뱉은 말로 자전거를 버스 화물칸에 실었다.

어디든지 맨 먼저 출발하는 차를 타고 갈 작정이다.

10시 정각에 창녕 남지차가 먼저 떠난다.

찻간에서 갈코스를 더듬는다.

이미 잘 아는 곳은 제외하고 나니

낙동강 건너 기강나루를 언제나 한번 가려고 했는데 못갔다.

결국 기강나루 코스 조금 멀지만 낙착이다.

오늘은 가는 도중 유적은 다 둘러보고자 한다.

남지에 내리니 10시 30분 

점심 먹을 걸 준비하기 위해서 아이마켓에서 떡 빵 사고

남지대교를 용감하게 건너 갔다.

강물이 며칠전 비로 제법 푸르고 불었다.

봄맛은 물이 불어나는데서 찾는다.

강가 왕버들 강아지가 푸르렀다. 

 

강건너 두암바위턱에 우뚝선 비석

임진란 의병장 두암 조방선생이 

강가 너럭바위 위에 반구정 지어 놓고 

강건너 송진 창암에 곽망우당 의병장과

서로 마주보고 그리며 동범교류를 한 선비이다. 

홍수로 반구정 사라지자 

용화산 언덕에 반구대 짓고 제자기르며

돌아가시고 난 후 묘는 용화산 양지쪽에 썼는데

오늘 확인하니 대암마을 옆 능선에 있다고 표석이 섰다.

 

용산마을 지나서 칠서공단로를 뚫으며 

바로곁에 홍포서원과 칠원윤씨 시조묘가 있음 알지만 

자주 보았기에 스치고 지났다.

공단로를 벗어나 부목으로 드는 입구 

내가 잘 아는 정초안 교장과 그 선조묘 보인다.

올라가 보지 못하지만 예전 함께 남곡교에 근무할 때

그곳에 묘소를 가꾼다고 자주 가는 걸 봤는데

그집안이 모두 갑자기 몰사하는 일이 벌어져

잘못 건드린 화를 입은 것이라고 소문났었다.

 

부목초등학교 자리를 보며 

지금은 부목보건지소로 활용하고 있다.

내가 교육청 근무할 적에 3학급 겨우 유지된 벽지였었다. 

동네는 부자부자에 칠목을 쓰니 목축을 잘하는 부자동넨데

골짜기에 있으니 가장 낙후되었으나

거기에 우리 일가들이 많이 살고 항렬이 너무 높다.

증조 고조 항렬 자가 그때까지 계셨다.

항렬이 높다는 것은 자손이 많이 퍼져 가장 아래 형제 가계이다. 

입사마을 지나 대암마을 통과할 때 두암선생묘소입구가 보인다.

남지대교옆 구암 조방선생 반구대 유적비

 

장암마을 지나서 장암보건지소 지나면

우리 처사공파 추모재가 남강가에 있다.

다시 구혜리를 돌아서 지정면으로 향하는 낮으막산 산세속에

높다란 승전탑 6.25 경찰관 전승탑이 우뚝하다.

내용을 읽어보니 우리나라가 갑자기 광복하자마자

국가의 기초를 마련하느라 어수선할 즈음에

국군도 결찰도 행정관서도 똑똑히 구비하기도 전에

불법 남침했으니 갑자기 낙동강 전선까지 밀릴 수 밖에 없었다.

그때 우리집은 대밭에 말매어 놓고

무조건 밥해내라고 총으로 위협하니

우리먹을 양식으로 밥을 해줄 수 밖에 없었고 

그 군인들이 밀고내려와 여기 송도다리까지 왔던 모양이다.

전국토 전장이 되니 전선에 군인 부족하여 

경찰관들도 전쟁에 투입될 수 밖에 없었고 

여기 남강협곡에서 수많은 경찰관이 죽음으로 나라를 지킨

거룩한 유적지였다.

조용히 서서 묵념합장했다.

우리나라 여러곳에 경찰승전탑이 많이 있으나 

여기가 가장 큰 승전탑으로 기념식을 여기서 합동으로 열린단다. 

 

6.25 동란중 북괴군 6사단 낙동강 전선을 뚫기 위하여 송도나루전투에서 수 많은 경찰관이 전사했다.

 

태극기

 

이다리가 바로 송도교다.

남강이 흐르는 협곡에 높다랗게 놓인 다리로 

의령 신방 합청으로 통하는 중심도로인데 

이 다리를 동란으로 파과한후 다시 건설하지 못해서 

오래도록 남간에 큰 바지선을 띄우고 버스를 배에 실어서 

건너편으로 도강했디고 하고 

여기 나룻가는 오가는 사람들이 많아 장사들이 많았고 

송도나루하면 메기찜과 잉어찜이 유명한 곳이다.

 

송도교 (전쟁중 다리가 끊겨 아래 남강물을 큰 배에 버스를 실어 건넜다.)
남강 하류 , 송도나루지역  5km흐르면 낙동강과 합수점이 있다.

 

강물이 넉넉히 양쪽 절벽에 부딪혔다가 

약 5km쯤 내려가면 낙동강 본류와 만나는 합강점이 있다.

거기에 나루가 있었으니 기강나루다.

여기는 조운 이 낙동강과 남강으로 갈라져 운반하였으니

임진란때 가장 먼저 승전보를 알린 전투가 기강전투였고

그 기강전투지는 홍의장군이 현수고를 달고 의병을 모았던 

유곡면과는 약 5km 가까운 곳이다.

왜선들이 북진하는 왜군의 전쟁물자를 보급하고

군인들의 양식을 영남 곡창지에서  수탈하여 드나드니

합강점에서는 수많은 적선들이 오르내릴 때

이곳에 매복해 있던 의병군들이 14척의 왜선에 불을 지르고 수몰하니

왜병의 물자 보급선을 끊어 버린  쾌승이었다.

그자리에 영정조때 비를 세워 현창하니

백성들이 그 고마움을 갚으려고 보덕각을 세우 충절을 새겼소

그 옆에도 쌍절각으로 합천 선비 손인갑이라는 의병장이 

임란중 여기저기서 싸워 공적이 많았지만

전장에서 전사하였으니 충신이요

그의 아들 송약해는 아버지를 찾아 시신이라도 거두려고

전장을 헤매다가  역시 전사했으니 그는 효자로다

부자의 충성과 효성이 귀감이 되라고 충절각을 세웠단다.

그 두 비각 앞에는 박정희 데통령의 분부에 따라 표석을 세웠다고 

기록되어 있다. 

 

 

보덕각 (홍의장군 곽재우 장군이 첫 승전지에 세워진 백성들의 보덕불망비(왜군 보급선 14척 침몰)

 

쌍절각(의병장 부 손인갑 충절각, 자 손약해 효자각) - 아버지는 의병장으로 전장에서 싸우다 죽고 아들은 아버지 시신 거두려다 죽고

 

여기서 약 2km 떨어진 곳에

웅곡마을이 있으니 

그 마을 중심 등줄기에 우람한 묘소가 있으니

그 어른이 우리 재령이씨 방조 선조로서 

임진왜란때 이순신 장군과 원균장군을 도와 

옥포해전을 처음으로 승전한 부장으로

여러차례 남해 해전사에 기록을 남기시고 

이순신장군이 돌아가신후  제 7대 삼도수군통제사가 되어 

왕명에 따라  통영에 출렬사를 짓고 

그 충열을 기리게 한 분으로 

그분이 태어난 곳은 경북 청도 매전면이었는데

그의 아들이 좋은 자리를 찾아 이장한 장소가 웅곡마을 뒷산인데

묘재사로 기강서원을 짓고  

매년 의령 함안 진주의 유림들이 시향을 지내고 있는데 

임란과 기강나루가 연관이 있다. 

강건너편은 남지개벼리옛길이다.

 

또 여기는 임란후 많은 선비들이 나라의 부름이 없어서 

낙동강에 배를 띄우고 노닐며

국구의 걱정을 하고 시를 짓고 풍류를 즐겼다고 

창암동범록과 용화산 동범록이 전하는데 

여기에는 영남의 학자들이 많이 참가하였던바

나의 6대조부 휘 황재선생께서도

원래 고향은 진주이지만 

여기 낙동강에 와서 시를 짓고 남기신 작품이

황재집에 실려있는데 

합강정 3편, 낙동강 2편 남지철교옆 내내동 1편이 실려있다.

그 할아버지는 4백년 전에 돌아가심에 유월제를 지내신 선비셨다.

바로 여기가 우리 할아버지께서 배타고 오르내리던 현장이다.

 

건너편 절벽에는 남지 고곡사람들이

남지장에 오르내리던 옛길 '개벼리길'이 지난다.

건너편 대밭숲에는 작은 정자 지어 아름답고

봄이면 벼랑에 복사꽃 피어 강물에 꽃잎 띄운다.

산책 오솔길이 너무 정답기에 

많은 사람들이 산책을 즐기는 코스다.

그 뒷산은 마분산(馬墳山)이라 하는데 말무덤이 있었던 산이다.

 

일설에 의하면 임진왜란 때 홍의장군께서 말을 타고 지휘하였는데

엉덩이에 수많은 화살을 맞고

말이 죽어서 산에다 묻어주었다고 한단다. 

 

기강나룻터 (의령 사람들 남지장에 나룻배로 건너다녔다.)

 

난 성산마을 앞에 곧은 제방길을 따라 

끝까지 올라가서 건너편 창아지 영아지 마을 비리보고

내려올 때는 경변 수변들판 통로를 내려왔다.

은행나무도 멋지게 잘자랐고 

매화나무엔 백매가 만발하였다가 지고

꽃잎이 하얗게 바람에 날린다.

들판에 꽃을 심었던 모습이 있고 

물가에 핀 연록왕버들이 봄빛을 발한다.

너른 중신로를 내려오니

공휴일 차 몰고 쑥캐는 여인들 많다.

엉덩이 방석까지 달고 다니며 평화로운 풍경이다.

  

의병의 숲 수변공원

 

기강나루 공원에 데크깔린 나루터에

봄바람이 오후 더 살랑거린다.

거기서 늦은 점심 빵조각 먹다가

잘못 넘어가는 바람에 목맥혀 고생했다.

나이드니 어쩔수 없는 현상이 도진다.

주변 봄볕에 한시간 동안 주저앉아 놀았다.

2시경 자리에서 일어선다.

봄들판 정말 아름다운 자연인이 되었다.

이제 돌아갈 일이 막막하니 괜히 다리가 아프다.

 

 

건너편 산이 수없는 화살을 맞아 죽은 홍의장군의 말 무덤산이라 전함(마분산)

 

봄동산에서 출발한다.

돌아오는 길은 웅곡앞 곧은 도로를 따라

함의로를 끌다가 타다가  송도교 다시 건너고 

구혜마을을 관통하며 대산교 한번 훑어보고 

여기에 나와 세번이나 근무한 김영미 선생님이 있다기에 

일요일 문닫힌 교정만 찍었다.

다시 로봇고등학교로 변한 대산종고를 보고

전 대산초등은 불하되어 안단테교육치유농장으로

일요일인데도 정원을 홀로 보살피고 있다. 

평림마을고개에서 허덕이며

도둑고개가는 삼거리에서 벽에 기대 쉬고

언가마을 네거리 오른쪽으로 돌아 

유원마을 앞에서 오곡들판쪽으로 광려천변로를 올라

덕연서원 도랑건너 물빛 그림자 보고

고속도로 다리밑 돌의자에 앉아

남은 간식 모조리 챙겨 먹고 충전했다.

이제 몸이 나른하여 보충하지 않으면 쓰러진다.

 

도랑가 산책로를 따라 광려천 오르고 

함마대로 다리에 올라 중리역전 지나서 

마재고개까지 참고 참으며 올라 

내리막길에는 기분좋게

골목에 나오는 차만 없으며 그대로 달렸다.

석전동 근주지역을 지나 마산역관통하고 

집에오니 완수한 기분 만땅인데

조금만 타고 안오고 늦게 왔다고 트집이다.

오늘 안가본 숙제길 달리고 

유적 해석하며 즐긴 하루 150리길 피곤하다.  

매화가 만발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