따뜻한 만남 1/가족사랑기

금혼식날 선물 찾아서 쏘다닌 밤

황와 2023. 11. 26. 22:05
23.11.26 저녁 먹고 온 사방 시장번화거리를 돌아다녔다./264
    코스 : 집-통합교-산호천변데크길-중앙통로-꽃가게-합성동옛길-식당가-집
    거리 시간 : 6860보 5km 1.5시간
    특색 : 오늘은 아침부터 새끼손가락 베고 상쾌한 날은 아니었다.
              밤에서야 오늘이 50주년 결혼기념일이라는 걸 알고
              밤 걷기 나간다고 하고 무언가 정표를 남길 선물 구하려 헤맸다.
              결국 아무것도 못사고 빈손으로 돌아왔다.
              어찌도 살만한게 그리 없는지
              너무도 당연하게 살았나 보다.       

 

 

오늘은 아내 도와준다고 아침 먹고

못난이 무우 썰어 주다가 삐끗

새끼손가락을 베고 말았다.

어제 갈아둔 중국집 사각 칼

채소 써는 칼날에 상처를 입고

놀라 온통 화장지 둘러 싸고 

오른손으로 잡고 있자니 피가 붉게 배어나온다.

압박붕대로 칭칭 감아 몇시간 쓰라림에 견뎌냈다.

일회용 반찬고로는 어림도 없다.

아내는 장갑 안준 걸 수십번 되뇐다.

모두 내가 어슬프게 시작한 걸

괜히 아내가 마치 죄인이 된 양 미안해 한다.

오늘은 그렇게 시작된 날이다.

종일 퉁퉁 싸맨 손가락 올리고 지냈다.

조금 벗기니 다시 피가 줄줄 흐른다.

피가 굳을 때까지 기다릴 수 밖에 없다.

 

자연히 내가 환자가 되니

난 하루내내 위로 받으며 호강했다.

그런데 저녁 먹고 나서

운동이나 가볼까 하다가 

오늘이 어떤 날인지 아찔해 진다.

사람들이 최고의 기념일로 받드는 50주년 금혼일

역부러 계산기까지 두드려보며 확인했다.

아내에게 물으니 아내도 모른다.

참 무심한 부부였구나.

평생 사랑하리라 행복하리라 다짐해 놓고

아무도 몰래 하루를 흘려보내고 있었다.

생각해 보니 손가락 다친것이 신의 계시였던가!

너무 아무 생각없으니 자극준 게로구나.

 

운동 나가며 먼저 첫바퀴는 한바퀴 돌고 

아무리 생각해 봐도 무심하기에 

무얼 사줘야 웃음기 뛸까?

입을 것 먹을 것 모두 허사시할 게다.

입 짧은 성질에 먹을 것도 없다.

아무리 생각해 봐도 사가는 음식은 반대할 게다.

식성따지면 50년간 같이 살았지만

맛있다는 것 한 번도 없었다.

그 만큼 입밧이 까다롭다.

그 덕에 난 사시사철 잘 지은 밥을 대접받고 살았다.

혹시나 현장에서 보면 생각날까 봐서 

양덕동 식당가, 합성동 먹거리 가게

이리저리 둘러보며 가능성 훑어도

이 음식은 이래서 싫어하고

저 음식은 저래서 안먹겠다고 가로젔는다.

고소한 통닭집을 지나가도 

이미 저녁밥 먹은 터라 더 들어가지 않을 거라

꽃가게라도 가서 백송이쯤 살까?

하필 일요일 저녁 전부 문 다 닫겼다.

아들 딸에게 엄마에게 전화라도 한 번 해 주라고 

알려주는 게 내 할 일이었다.

 

때는 1973년 11월 26일

부산 조방앞 금탑예식장에서 

이태호 창녕교육장의 주례로 결혼했었다.

일주일만에 잡혀진 결혼 날이라고 

서울 동숭로 서울대학교에서 

중등 지리과 준교사 시험 2차 응시하러 갔다가

응시도중 대학본부에서 앰프로 방송하며

차례를 기다리던 내게 

순서를 앞당겨 가며 면접을 받고 

재빨리 부산으로 내려가니 결혼 날짜 잡혔다고

결국 시험도 제대로 못보고 

결혼식 준비에 뛰어 다녀야 했다.

일주일 만에 양복 드레스 맞추고 

가봉도 않고 결혼식 전날 예복 찾아 입고

오가는 혼례절차 다 무시하고 

각자 준비한 복장으로 결혼하는 신세

제대로 집안과 친구들에게 연락도 못했다.

특히 혼주인 숙부님이 당시 행방불명 되어

찾아서 눈 온 강원도 정선 일대를 헤매며 소식을 찾다가

결혼식날 아침에 시꺼먼 옷으로 도착하니

갑자기 기성복집에서 양복과 넥타이 갖춰 입혀

혼주로 모신 그런 결혼식이었다. 

 

나와 같은 사람에게 시집 와준 그녀는

그때 이미 여럿 선을 보며 

좋은 혼처를 찾고 있었고 

특히 부잣집 딸로서 좋은 사람만 구하려 다녔다.

우연히 당시 눈에 다래끼가 나대는 통에 

첫만남을 안대를 하고 만났으니 

그 인연은 기적이 아니면 그럴 수 없었다.

난 영원히 싸우지 말고 행복하기를 다짐했다.

50년동안 얼굴 한 번 붉히지 않고 지낸 게 내 정성이다.

물론 이견도 있었지만 나보다 아내가 더 참아주었다.

서로 늘 항심으로 존경하며 살았다. 

난 우리집보다 처가집 친척들을 더 챙겼다.

그러니 처갓집에서는 신망받는 사위였다.

 

그리 만나 아들 딸 하나씩 낳아

모두 장성하여 30대 초반에 다 시집 장가보내고

친손자 하나 외손자 둘 잘 자라고 있고 

아들은 한약사 딸은 교사로 성장하여 

반남박씨 며느리와 영월엄씨 사위 얻어 

화목단아하게 행복한 가정 이루었으니

오늘 아내에겐 부끄럽지만 

금혼식 행사는 없어도 행복한 가정을 이루었다.

평생 그렇게 처음처럼 사랑하리다.

요즘 힘이 없고 아픈 몸이 늘어나니

내가 잘못한 것 같기에

더욱 기대며 건강하기만을 기도하는 맘으로 삽니다.

 

 

장미(사랑)
모란(그리움)
백일홍 (행복)
복수초(행복감)
만병초 (위엄, 존엄)
함박꽃(작약:수줍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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