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마운 만남 2/자전거산책

인향만리(人香萬里) 영산-마산 라이딩

황와 2023. 5. 10. 20:30
23.5.10 혼자 옛근무지 영산초와 지인 찾고 마산까지 라이딩하다./264
       코스 : 마산터미널-영산터미널-영산초(김향숙,손봉춘)-영산체육관(박종록)-점심(박종록, 남기두, 남가준)-연지(김종훈 모)-만년교-도천초(성두원)-송진쇠나루공원-남지대교-두암 반구정유허지-칠서휴게소 뒷길-청계(칠서면)-안기(느티나무)-회문마을 취당 조선생유적비)-오곡들판길-광려천변로-내서읍 중리역-구슬골-마재고개삼거리-서마산IC-광명촌-마산역-집)
거리 시간 : 41km, 4.5시간, 
특색 : 1985년-89 5년간 근무한 영산초교를 38년 후 방문하다.-역사관에 내 사진이 남아있더라.
           정성을 다해 열정으로 복무한 학교 내 헌신을 지역민이 다 알아주더라.
          김향숙 학교장 안내와 손봉출 교감 발간책 두 권 선물받다. 
           옛 지역민 면담(박종록, 남기준, 남기두, 이태재, 신박,  김종훈 모)
           도천초 (성두원 교장 축하, 배구중)
           창녕 송진쇠나루공원 느티나무,  
           낙동강변 두암 조선생 반구정 유적지
          칠서 안기마을 느티나무밑  휴식 
          칠원 회문마을 취당(聚堂) 조영규(趙瑩奎) 선생유허비, 조성제 기적비, 황동수 혜적비,      
   

 

1. 영산초등학교 방문

 

내가 몸 담았던 그곳 

별난 영산사람들의 터전

여기는 화왕산 불기운이 영취산에서 멈추고

두 용호상박 싸움질하는

용난바위 우뚝한 영취산과

그 앞을 가로막는 삼각산 함박산

그 틈바구니에 옹기종기 모여사는 마을 영산

영산현감은 불의 기운 죽이려고 

연지 연못 파고 소방수로 삼았던가?

그래서 영산쇠머리대기 꿈틀거렸고

그 고장에 왜란의 소용돌이와 

한국동란의 전쟁터가 되었고

그 용트림 해소하고자 용 줄다리기했겠지 

삼일독림운동 앞장 서서 만세부른

명당지에 당당하게 앉은 백년 역사를 진작 이룬 학교

영산인의 긍지와 동지애를 키운 요람이었다.     

여기 영산사람들과 어울려 

5년간 영산의 역사 발굴하고 

이를 교육자료화하도록

교원들 불러 과학연수하고 

맨 먼저 과학실 설치부터 시작하여 

컴퓨터실, 국민정신교육실, 6.25전사관,

급식소 준공후 벽면 구성, 

전통예술실 꾸미기, 간이기상대 설치 등 

국민정신교육실 꾸미고 나서

청와대 손풍삼 담당관이 본교를 방문하여 극찬하며 

전국의 국민교육정신의 요람으로

효시 모범학교로 전개된 후 

영산교의 명성이 영산민속문화행사와 더불어

널리 알려졌으나 

정작 난 밤 새워 방학 휴일 다바쳐 

정성을 다해 꾸미고 교육하던 열정으로

혹사 밤샘 근무에서도 죽지 않고 살아서

38년 만에 다시 찾아 돌아본다. 

또 내가 주례섰단 정언선 선생도 격려할 겸 

그러나 정 선생은 유고로 나오지 못했단다.

건강해야 하는데 걱정스럽다.

교장 교감선생이 날  인도하여 안내한다.

옛 내 솜씨 흔적은 다 지워졌어도

학교역사관 사진첩에서 내 젊은 사진이 박혀있다.

그때 함께한 이름들을 발견하니 추억이 솟는다.

그때 그 고생한 이야기에 감사한 선물을 준다.

교감 손봉출의 문화유산 답사지 두 권

너무나 문화를 소중히 여겼던 내가

그 책을 받으니 감사하고 송구하다.

젊은 우리 후배 교원이 쓴

전문가 수준의 문화재 분석기

고맙게 잘 읽겠다고 덥썩 받았다.

영축산이 등뒤에 우뚝하고 

햇볕 밝은 남향 넓다란 운동장

아이들의 웅지가 자라는 학교로다.

내가 영산교에서 가르친 학생 중

현재 세 명이 고시에 합격하여

행정과 법조계에 근무중인 것이 자랑이다.

 

영축산과 영산초전경

2. 영산인과의 만남

 

영산학교에서 나와 먼저 동갑 친구 박종록 원장을 찾는다.

워낙 후덕한 친구라 니것 내것이 없이 주는 친구다.

그의 딸 아들도 다 내 손을 거쳐갔으니 궁금하다.

처음에는 출타중이라 없더니 

10시 반경  그의 체육관에서 만난다.

그저 둘이 앉으면 이야기가 재불재불 쏟는다.

그가 나의 말을 자꾸 끌어내고 있다.

나는 영산소식 궁금해서 묻고 

그는 영산을 꿰뚫듯 설명한다.

재주도 많아 이것저것 다 손대고

붓글씨 추사체 대가로 서예가 되었고

색스폰 연주가로 지역사회에 봉사하고 

리듬밴드 연주가로 드럼도 잘 친다.

또 영산교회에선 장로님으로

영산인 향노회 회장으로 100여년의 역사로

지난 4월에는 경노잔치를 국악인 불러 

거창하게 해냈다고 자랑한다.

참 대단한 열정을 가진 명사다.

항상 봐도 열살 어린이 같은 성품이 발랄하다.

그가 여기저기 나와 함께한 사람들 불러대니 

남기두 당시 밤새워 벽지 도배를 해준 청년이었고

영산삼일문화제 집행위원이었는데 

영산 문화의 선도자였고 가장 유능한 인재였다.

또 그의 종형인 남기준씨는

나와 함께 영산학교에 근무했고

그의 아들이 내반에서 자랐다.

넷이 모여 서로 낼려고 다투는 점심 대접받고 

옛날 이야기하며 영산인의 특성 격려했다.

그들의 별난 성격이 지금껏 문화제를 이끌어 온다고 

자랑을 자랑으로 선전해 주었다.

옛날 동직자들 소문도 듣고 

이제 거의 다 황천객이 된 상태다.

또 커피점까지 들러 마지막 코스까지 완료한다.

결국 점심은 남가두씨가

차는 박종록씨가 계산했다.

남기준씨 아들 남형욱이는 창원 볼보에 근무한다니 가깝게 있다. 

또 당시 어머니회장이었던 김종원 모친

댁을 방문하니 마치 고갱의 그림속에 여인처럼 

고고한 모습으로 양품점 그대로 하고 있다.

김용화 동갑친구의 부인이자 종훈이의 어머니다.

정말 학교를 위해 바쁘게 도와 주셨고

정이 쌓여 오갈 때 언제라도 들리면

아름다운 미소로 사람을 편하게 해 주는 학부모다.

오늘도 박카스 내 놓고 

한참이나 아이들 이야기 하다가 

건강하라고 배웅받으며 나온다. 

오늘 영산 읍내 장날이라 사람들 많이 나왔지만

아는 사람은 거의 없다.

듣는 소식에 처족 동서 남정태 이야기 듣고

직전 향노회 회장했단다.

그의 딸 정미도 제자인데 지금 간호사 한단다.

계성 화곡 사는 이태재 선생 전화 나누며

옛 음성 반가움이 철철 넘친다.

영산에서 탁구 치고 바둑 두고 

건강하다니 반갑고 서로 만나자고 사정한다.

살아있는 자의 기쁨이 거기에 있다.

애석하게도 구암 김종대 선생은

작년도 돌아가셨다니 맘이 허전하다.

나를 동생처럼 보살펴 주었던 은인인데

코로나로 가 뵙지 못하고 저승으로 갔다.

광계리 집은 누가 관리할까?

내가 그에게 해준 뜻있는 선물은 

시를 써서 구암선생의 이력을 아크릴 패 만들어 

정년을 축하해 주었었다. 

그걸 가장 기쁘게 받으셨는데.

다음 산소라도 한번 다녀와야겠다.

슬픈 조사라도 지어 올려야 하는데.......

학교 지킴이 하시는 분이 

창녕 낙영동 사는데

고 김태철 교장 선생 소식을 전해준다.

교장 사모님이 농사일하며 건강하시다니 다행이다. 

오늘 옛지인과 어울려 지내다보니 

모두가 내게는 가까운 사람들이었다.

사람의 향기가 내게 전해진 하루다.

 

3. 영산의 문화재 연지와 만년교

 

영산을 떠나기 전에 영산의 자랑 문화재

영산 앞들에 자리잡은 연지 못

푸른 둘렛길 데크길이 산책 명품로다.

오늘은 분수까지 쏘아 올리니 아름답다.

빙둘러 약 2km쯤 되려나 

물이 초록빛으로 나뭇잎을 닮았다.

바람이 숲그늘 가지 흔들고 

마치 소동파가 노래한  중국 서호를 본 느낌이다.

벚꽃 피고 수양버들 흔들 때가 좋았겠지만

난 녹색 꽃이 핀 지금이 더 아름답다.

물이 가득하니 영산은 부자가 된듯 

또 화재를 막는 방재수되니 풍수지리 명지이고 

비탈진 영산들 농사용 물 배급하니 

연지는 벼룻물이라쓰지만 

실제로 영산인의  마음을 넉넉히 해주는 재화 물이다.

다음은 둥근다리 만년교를 본다.

오늘따라 둥근다리 위로

젊은 커플티 입고 예쁘게 지나간다.

반쪽 다리는 물속에 그리고 

둥근 가락지처럼 하늘과 땅을 묶는다.

참 아름다운 절경이로고 

수많은 사진작가가 이 다리를 떠 갔다. 

옛 조상의 과학적 구조를 고맙게 본다.

시간이 없어서 남산의 6.25전적비와

영산석빙고는 둘러보지 못하고 지난다.

 

연지

4. 도천초교 방문

 

사랑하는 후배 성두언 첫 교장되어 

이번 삼월에 도천초에 배치받았다.

가는 길도라 찾아들었다.

도천면 도일리 예전 도일초등학교자린데

도천초교가 먼저 폐교되고 

송진초와 신제초 학교도 폐교된 후

도일학교 자리가 면 중심지이므로 

면이름 따라 도천학교 이름을 이어받았다.

단층 작은 예쁜학교가 동네 가운데 포옥 싸여있다.

오늘 강당에서 수요 배구하는 날이라고 

그리로 안내하여 찾아드니

오늘 교육회 배구 지구예선대회 날이란다.

대회 시작전 성두원 교장 잠시 불러내서 축하해 주고 

그들의 행사 걸거치지 않으려고 

이내 되돌아 나왔다.

참 멋진 후배 인사들이다. 

부디 멋진 학교장이 되기를 기원하였다.

장학사도 해봤고 교감도 했으니 잘 하겠지

학교가 아담하고 탐스럽다.

우리나라 학교는 이제 세계 최고 수준이다.

동네을 돌아나오니 꽃들이 화원처럼 아름답다.

아이리스, 달맞이꽃, 개양귀비, 줄장미 ...... 

 

 

6. 송진 쇠나루공원 느티나무

 

곧은 길 5번 국도 영산들판 타고 내려와 

도천면 십자둑을 넘고 

송진마을에서 강변둑길을 따라 

동네앞 강변 암반지 먼당에 푸르게 자라는 

마치 우영우 나무처럼 씩씩한 정자나무

바람과 그늘어 만들어 시원하다.

벤치에 앉아 쉬니 신선경이다.

낙동강물이 멀찌기 드러누워 흐르고 

공원 앞에 감도는 개천은 계성천 꼬불꼬불 살아서 

망우당 창암 앞에서 낙동강에 섞인다. 

예전 여기는 송진바깥 동네라 

낙동강 나루가 건너는 자리로 

뻘녁에 솟은 암반 언덕

꼭대기에 솟은 보호수가 그늘 좋고

옛 마을의 흔적으로 감나무가 그대로 섰고 

대밭도 둘러 자라고 있다.

눈아래 산딸나무 활짝 피어 흰나비 무리 같다.

강둑길을 따라 자전거길이 평탄로다.

그 길로 송진 우강 월령 아이들

남지중고에  줄지어 걸어다닌 먼 학교길이다.  

 

7. 낙동강과 두암 선생 반구정유허비

 

남강과 만나니 엊그제 내린 빗물로 

물이 많이 불어났다.

하늘이 강물에 빠져서 놀고 

질펀하게 흐르는 강 위로 남지대교 자전거 달린다.

멀리 남지철교 모습 아름답고 

강벽을 따라 두드러지게 솟은 바위절벽

여기를 두암이라 했단다.

임진의병 장군 두암 조방 선생이 

전후 모든 벼슬 버리고 강벽 정자 짓고 배 띄우고 

낚시로 세월을 낚고 우국충정을 삭이고 있었으며

반구정 지어 시문으로 한량이 되어 말년을 보내며

건너편 창암의 망우정에 곽재우 장군과 함께 교류하며

동범모임을 갖고 배타고 놀던  선비였었다.

그가 교류한 사람들은

당시 영남의 이름있는 사림학사 선비들로서

배를 타고 시짓고 노래하니  신선 놀음이었다.

이름난 이는 우리 갈암 할배도 참여했었고 

당시 함안의 이름있는 학자들은 모두 동참했으니

우리 6대조 할아버지인 황재 선생(휘 우)께서도 

합강정과 내내마을 시를 남겨 놓았었다.

이를 황재집으로 번역하여 책을 내었었다. 

한강 정구, 여헌 장현광, 망우당 곽재우, 간송당 조임도, 두암 조방 

갈촌 이숙, 모계 이명배 ...........

그들은 임란을 마치고 허탈한 상태로 오히려 유유자적하였으니

전후 복구 중 나라가 얼마나 어려웠을까

오늘은 두암선생 비문을 일일이 읽어 보았다.

글은 이가원 박사가 짓고 조광제가 글씨를 썼다.

역사가 허전하게 각인된다.

 

두암 조방 선생 반구정 유허비

8. 안기마을 보호수 느티나무

 

강변둑길 지나오다가 풋마늘 발견하여 뽑고

아내가 좋아할 것에 한 봉지 뽑았다.

용산마을에서 직진하여 

칠서휴게소 뒷길로 고속도로 따라 가다가

길가에 핀 하얀 찔레꽃

짙은 향기를 온 들판에 뿌려댄다.

하얀 형광이 꽃에 발린듯 빛이 난다.

길가에 돈나물도 빽빽하게 돋았다.

내려서 나물 뜯어가고 싶지만

오늘따라 뒷짐판이 없어서 눈독만 들이고 만다.

칠서공단에서 나오는 차들

길섶으로 피하며 달려 청계마을 지나고

고속도로다리 밑으로  안기마을로 빙 둘러 돌고 

마을앞 정자나무 느티나무가 바람에 흔들린다.

남은 간식 떨어넣고 한참 쉬어 가슴을 진정시켰다.

보호수가 깔끔하게 늙고있다. 

 

안기마을정자 느티나무

9. 회문마을 취당 조영규 선생 유적비

 

다시 길을 달린다.

집에서 맘 조리며 기다리는 아내 때문에 

자꾸 달리는 속도를 재촉해 댄다.

회문마을 앞 거북등에 6척 대형비 용관 쓰고 

마을 앞길에 선 비석들이 우뚝하다.

자세히 읽어보니 함안조씨 충절을 지켜 울분한 

취암 조영규 선생의 충절비다.

취암 조영규는 조선말 우리나라가 일본의 힘에 눌려 

강제 수호조규를 맺자 이를 분통스럽게 자계하여 

피를 토하고 돌아가셨으니 이후 그 충절비를 종중원들이 

돈을 거출하여 세웠다고 한다.

이 비문 역시  이가원이 지었다.

옆에는 특출한 인사로

해남 조성제씨가 자금을 많이 조달했단다.

광려천을 따라 감돌며 

해그름 오곡들 물잡은 논에 윤슬 물결 금빛이고

칠원 고속도로 톨게이트 밑에서 물 마시고

자이 앞 도랑가에서 보랏빛 칼퀴나물 보며

보라쟁이 김호중 생각나고

물맑은 광려천을 따라 자전거길 올라오다가 함마대로 만나고

중리역 앞에서 구슬골 오르막 지겹게 올라

마재고개 삼거리에서 내려오며

골목길에서 뛰어나오는 차와 사람에 놀라며

서마산IC  건너서 광명촌 앞으로 

석전동 뒷길을 따라 마산역 광장으로 내려와 

집에 도착하니 약 40km, 100리를 4시간 30분간 탔다.

운동하고 나니 엉덩이는 아파도 무릎은 평온하다. 

 

취당 조영규 선생 유적비
아이리스
오곡들 윤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