따뜻한 만남 1/조상사료실

내 6대조 할아버님(篁齋, 휘 嵎)께서 2백 년 전에 간 길 따라 걷다.

황와 2026. 4. 18. 18:06

 

26.4.18 토요일 모전과 함께 함안 옛길 찾아 6대조부 간길 따라 걷다. 

       코스  :  마산역-산익 광익재(匡翼齋,), 이동명 회장댁(구지뽕액 선물) -모움실 모전 고가 방문(머위, 방풍, 쪽파, 우엉잎)- 도동 안길 -중광마을(학산정(鶴山亭) 유허지(遺墟址) 첨망(瞻望)(중광마을 뒷산골)-문래고개-득성마을-득성고개,(모전 부친 식재 괴수) 성고개(城峴) -(이수정(점심) -함안읍 향교-강지골-백암마을-정동마을-죽전고개-팔미당고개-산익마을-신당고개-죽암마을-중리-마재고개-두척마을- 관해정-마산항   
       거리 시간 인원 :  5,200 보,  4.4 km,  3.0시간,  모전과 나  동행 답사, 모전 고가와 모전아버지 식재수 촬영
       특기사항 :  모전과 함께 산책 겸 황재조 걸어가신 코스 답사 실시 
                         선조 할아버지 간길 찾아 함께 걸으며 긴노정 잠자신 숙박지 걸은 코스  점검하며 새삼 더듬었다.
                         내 행위로 황재 할배가 더욱 거룩해진 위인이 된다.(61세 회갑년에 진주지방 병신보 족보 초단을 짊어지고 
                         밀암선조가 주축이 되어 새족보를 발간하고자 영해 인량리와 영양 석보까지 답사하며 약 천리길 (약 400km)를 
                         20일간 메투리 짚신 신고 괴나리봇짐 지고 빈집에서 자고 아는 사람 집 찾아 밥 얻어 먹으며 다녀온 왕복 그 먼
                         2천리 길(약 800km)를 노구를 이끌고 다녀 오신 후 앓으시다가 아들 먼저 앞 세우고 할머니 먼저 보내신 후
                         향년 67세로 돌아가신 낙동강에서 뱃놀이 동범행사에 참여하신 진주 선비로 진주유림으로 운구서원 재건 비용
                         을 운구서원에 전달한 역할과  진주유림 추천으로 유월장을 지내신 할아버지이시다.
                         진산 회봉 하겸진 선생께서 지으신 묘갈명이 있고  유고집이 있다고 여지승람에 기록되었고
                          '황재집'을 2017년 12월에 국역해석 발간하였다.      
          

 

오늘 토요일 마산역시장 장보기 짐꾼되어 갖다오니

아침 먹자 마자 모전의 동행 호출이 온다.

빈 말이 없는 사람이라 나도 밥숫갈 빨리 놓고 약부터 먹었다.

오늘은 또 세상구경 외출날이라 반갑다.

아파트 정문에서 그의 차에 타고 즐거운 나들이 나간다.

찻간의 대화가 늘 관심을 기울여 주니 고맙다.

먼저 산익마을로 들어가서 함안동친회장 동명 종인집으로 먼저 든다.

모전이 심부름해준 기계 전달한다고 들렀다.

반가이 맞아주니 황송하다.

그가 전문생산하는 구지뽕액을 한봉지 먹고 

또 한박스 내게 선물해 주니 미안하고 고맙다.

 집안에 즙액짜는 시설되;어 있고 주변에 봄꽃이 화창하다.

바로곁에 광익재 재실이 있어서 

예전에 들려서 사진을 찍으려했는데 못 찍어서

문 좀 공개해 달라고 했더니 열어준다.

솟을대문을 들어가 4칸 재실로 광익재 바를광 날개익 집재자다.

이 집은 마산 내서 안계골에 있는 광음재(호 광심정, 휘 영배)의 아들이신

광익재 (호 광익재, 휘 운망) 선조의 시제 재사이다. 

건물 상량문은  향인 조광제 유문이 썼다.

바로 곁에는 동문 종인의 집도 깨끗하게 재건되어 있다.

 

 

광익재

 

다음은 바로 가야읍 도움실로 모전고가로 향했다.

바로 드니 붉은 모란이 활짝 웃음으로 밝게 반긴다.

집주위 전포에는 각종 나물이 연하게 자라고 

지난해 홍수로 뒷산 물이 흘러넘침에 따라 

집뒤 옹벽 견치돌로 여물게 쌓고 

집뒤 언덕에서 내려오는 수로는 콘크리트관을 묻어 

물이 흘러빠지게 잘 공사 완료했으며 

어제온 비로 전체를 둘러보며 발이 빠져서 흙구두가 되었다.

온 집둘레가 깔끔하게 정리되어 집의 부지 훨씬 넓어졌다.

특히 집뒤 옹벽은 튼튼하게 쌓여 이제 언덕이 무너질 염려는 없다.

 

다음은 온 주변에 널린 봄나물 뜯어 가라고 맡긴다.

쌉쌀한 입맛 돋우는 머위잎

깔끔한 향기 풍기는 살짝 되친 우엉잎

야들야들 향기로운 방풍나물

온밭에 시퍼런 매운맛 쪽파 몇 포기 

한껏 뽑고자해도 우리 내외 둘 너무 많이 가져가도 버린다.

봄향기 뜯으며 굵고 넓고 연한 잎만 솎아내니

저절로 입맛이 돌아오는듯 입맛다신다.

오늘은 모전의 정으로 또 한번 즐거움 만든다.

종류별로 검은 봉지에 담아넣으니  푸짐하다.

입에서 고맙고 잘 먹겠다고 감사인사 더한다.

 

모전종가

 

다음부터는  우리 6대조 할아버지이신 황재공 휘 이 휘 선조께서 

병신년 족보 수단을 진주지역 종인을 대표하여 

진주 동산리 고향집에서  영해 창수 인량을 거쳐  영양 석보까지  

전국각지역에 흩어진 우리 종친의 족보에 올릴 초단을 회갑 넘은 노인이

약 한달 반동안 짊어지고 가서 전달해 주니 

재령이씨족보가 처음 창간하는 기반을 마련한 것이다.

그렇게 전국에서 모여든 종인들의 노력이 처음에는 허사가 되어 발간되지 못했으나

그 다음은 석계{ 할배의 손자인 밀암 휘 이재 선생이 주선하여 경신보를 발간하여 

처음으로 체계를 갖춘 재령이씨 족보를 발간 배포함으로써 

재령이씨 족보 체계를 완전히 갖추게 된것이다. 

그때 우리 할배께서 다른 파 종중을 대표하여 영해와 영양으로 모여드니 

종중사 큰 대업을 육순이 넘은 노인이 1천리 왕복 걸음에 몸이 견디기 어려웠을게다.

그길을 찾아 천천히 걸어서 답사해 보고자 

함안 율간파 종인 웅섭 종친을 만나 그길을 가보려했다.

동산 집에서 -청원리-지곡-군북-인곡-도움실-도동-중광정-강지골-산익-갈밭-두척-관해정- 

김해 산천재- 통도사-경주 표암전-옥산서원-포항-흥해,-영해-인량 독동재- 충효당-영양 석천서당(귀가)

-돌아오는 길은 간길 그대로 돌아오니 약 1달 반 소요, 집에 돌아오니 목과 소매 섶에 앉은 때가 

며칠 삶아씻어도 빨래하느라 할머니들이 굉장히 고생했다는 소리까지 

초고의 유학자들이 고생했다고 서로 격려해 주었단다.

특히 동행한 학자들이 그 기초를 닦아놓았기에 종족사가 차곡차곡 역사를 답할 수 있다.

 

오늘 우리는 도움실에서 나와  도동을 지나 학산정 정자가 있던 산중턱 대나무 우거진 골짜기를 

첨망하며 그 길이 무지하게 몸을 상하게 하는 피로감이 쌓이게 되었고 

들판길 올라가며 문래고개를 타고 넘고 작은 낮은 고개이지만 

넘나드는 학생들 등하교길 매우 고생했었고 

득성골 넘는 고개 모전 아버님이 31살 적에 직접 심었다는 느티나무 

밑둥치가 성인 여럿이 손잡고 재워야 하겠고 

이것은 이미 돌아가신 부모님 추억을 되살리는 장소가 된다.

모전을 세워 촬영해 주며 기념으로 마련해 보라고 

나무의 팻말을 세워서 그 기록을 남겨두라고 의견 제안했다.

득성마을을 지나니 성고개 미치기 전에 

한국동란시 북괴군이 침범 했을 때 

많은 함안 국민보도연맹 사건 유적지로서 

수많은  난민을 골짜기에 가두어 놓고 

난사해 죽여 그 시체를 묻은 장소가 그 골짜기 안에 있었단다.

썸찍한 마음 미신 돋을 까봐 

그 아래 마을은 나환자 마을로 변해 전후 이상자들이 많아져서

나환자 들이 생산하는 닭 돼지 소 외양간 거름 내음에

늘 향기로운 이야기들도 숨었다.

언덕 아래를 내려다 보니 함안들판이 넓게 펼쳐졌다.

함안천 건너 백암(흰돌 마을) 과 정동 마을이 있고 

죽전고개 넘으면 입곡마을 우리일가 들이 많이 몰려산다.

예전 모전이 동생들과 매일 넘나들던 고개였단다. 

우리는 죽전고개를 넘어  입곡마을을 지나

산익마을로 통하는 팔미당 고개를 넘고 산을 너머 

산익마을 들어가서 의논했다고 적었고 

다음엔 갈전으로 나가 신당고개너머 내서 중리로 

마재고개넘어 두척고개, 두곡마을 두곡서원 최치원선생 영정 보고

관해정으로 들어가 회원서원에서

한강 정구선생과 미수 허목 선생 사당에 향을 피워 참배하고

마산만에 둥둥 떠 있는 대형 철선을 보고 놀랐다고 했다.

그리고는 창원향교를 넘어 진영을 넘어 진례로 

김해 수로왕릉을 보고 산해정 신산서원에서 자고

황산나루를 건너서 물금 양산 통도사에서 스님과 이야기하며 잤고 

경주에서는 우리성의 비조 표암전과  표암바위를 둘러보고

옥산서원 이언적 선생의 유적 돌아보고

영해에서 인량마을로 들어가 회의에 참석하고

각자 가져온 초단 영해 본부에 다전달하고  

다시 태백산맥을 넘어 두들마을 원리로 가서

석계 선조의 재실인 석천서원에서 잤다는 것으로 끝맺는다.

그러나 돌아 오는 길은 어떻게 왔는지 기록은 없지만 

800km 이상이니 짚신신고 괴나리봇짐 멘 모습 

오늘 할아버지 간곳 상상하며 체험해 보았다.

길가에 핀 모란이 너무 화사하여 찬란하게 웃는다.

 

 

 

 

 

    

   

중광정 학산정 유지
문래고개 옛길
득성고개 모전 부친이 30세때 심었다는 고갯마루 느티나무 쉼터
성고개 함안 국민보도연맹 사건 유허지
성고개(함안성터 고개 (북촌과 득성촌 사이 고개)

 

이수정(무진정 - 조삼 선생 유적지)

 

이수정으로 나와 점심 연못가에 있는 

한식뷔페집에서 맘껏 떠 먹는 맛으로 

평소 둘다 당뇨약 처방받아 먹는 신세로서 

과한 당분과 쌀밥이나 밀가루 위주의 음식은 멀리하게 되어 

간결하게 잡곡밭 봄나물에 비벼먹는 그 맛이 

우리를 동류항으로 묶어 맛을 찬양한다.

그리고 이웃 카페로 들러  시커먼 쓰운맛 아메리카노 마시며 

모든 결제수단 오로지 내개 양보할 줄 모르고

무조건 모전이 자기몫으로 만든다.

맘 놓고 먹지 못하니 가슴이 더부룩해진다. 

감사하자 

할아버지 가신길 그대로 걸어본 느낌 훨씬더 의미깊은 코스였다.

백모란
자모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