따뜻한 만남 1/조상사료실

모현정(慕賢亭)과 낙동 8경

황와 2022. 1. 12. 12:03

  창암동범록, 용하산하동범록 

 

                                             [남지철교 능가사 뒤에 있는 모현정]

 

이곳은 진주 선비 우리 6대조 황재(篁齋) 이우(李嵎) 할배께서 이 행사에 참가하여 시를 남기셨는데 합강정 3편과 내내포 1편 무기연당 1편이 황재집(篁齋集)에 실려있다.  이 행사에 우리 재령이씨 선비로 이조판서 갈암(葛菴)이현일(李玄逸)과, 합천군수 갈촌(葛村) 이숙(李潚), 모계(茅溪) 이명배(李命培) 선조께서도 동참하셨으니 모현정은 우리 선조의 유적이기도 하다.

황재 할아버지의 합강정 짧은 7언시 하나를 읊어보면 

 

             합강정(合江亭)

낙강지수포용화 (洛江之水抱龍華)    낙동강물 한량없이 용화산 안고 돌고

하유전현백세가 (下有前賢百世家)    그 아래 옛선현 끊임없이 이어져가는데

금일수위배주정 (今日誰爲杯酒政)    오늘도 누구와 더불어 한잔 할까 했더니

무릉선리자분하 (武陵仙吏自汾河)    벌써 무릉신선이 눈앞에 아른거리네

 

모현정(慕賢亭)과 낙동8경 

 

모현정은 남지철교 앞 능가사 절 뒤편 철교산 등산로 초입에 있다.

임진왜란이 끝나고 한강 정구 선생을 비롯한 35인이 용화산(龍華山) 아래 낙동강에서 선유하였다.

이후 함께 선유한 23문중 35인의 후손들이 동범계(同泛契, 모현계)를 조직하여 모현정을 지어 지금까지 매년 35인의 선조들께 향사를 드리며 숭모하고 후손들이 친목을 도모하는 장소다.

지난 세월의 풍우로 많이 훼손되었으나 근년에 보수하여 현재의 모습으로 남아있다.

4백여년전 당대의 내노라하는 선비들이 낙동강 7백리 중에서 가장 아름답다는 남지의 낙동강 8경을 선유로 즐겼던 경관을 답사하며 그 시절을 되짚어 보자.      

    

7년간(1592-1598)의 왜란이 끝나고 의병장 곽재우(郭再祐)는 1602년(선조35) 창녕 우강의 창암정(滄巖亭 현 망우정)을 두암(斗巖) 조방(趙垹)은 함안 계내에 반구정(伴鷗亭)을 낙동강을 사이에 두고 마주보고 지어 서로 쪽배로 왕래하며 많은 선비와 왜란에 참여한 동지들과 교류하고 학문에 정진하며 유유자적할 무렵, 1607년(선조 40년) 3월28일 한강(寒岡) 정구(鄭逑) 선생이 성주에서 동래온천으로 가는 도중에 남지의 대표적인 조선시대 선비 간송(澗松) 조임도(趙任道) 선생의 부친 입암(立巖) 조식(趙埴)과 숙부 두암(斗巖) 조방(趙垹)의 주선으로 용화산 아래 머물며 , 한강(寒岡)이 처음 벼슬에 나아간 창녕현감(1580, 38세)과 이후 함안현감(1586, 44세) 재임 때 교류하고 함께 수학한 선비와 왜란에 참여한 동지들로 여헌(旅軒) 장현광(張顯光), 망우당(忘憂堂) 곽재우(郭再祐), 문암(聞巖) 신초(辛礎), 갈촌(葛村) 이숙(李潚), 영모당(永慕堂) 신방집(辛邦楫), 두암(斗巖) 조방(趙垹), 광서(匡西) 박진영(朴震英)을 비롯한 23문중의 35인이 낙동강 7백리 중에서 가장 아름답다는 용화산 아래서 배를 타고 산수를 즐겼던 큰 행사를 하였다.

 선유(船遊)의 순서는 임진란 의병의 첫 전승지인 기강(歧江)나루가 있는 낙동강의 용화산 서쪽 ① 용화암(龍華巖 합강정

合江亭)에서부터 -②청송사(靑松寺) - ③도흥보(道興步) - ④내내촌(奈內村, 남지철교마을) - ⑤경양대(景釀臺) - ⑥시우포(是藕浦, 반구정 伴鷗亭) - ⑦평사면(平沙面) - ⑧창암사(滄巖舍, 현 망우정忘憂亭)까지 동범하였다. 

 

이 날의 돈독하고 격조높은 동범의 의의를 남기고자 한강 정구 선생이 참여한 사람들에게 정구(鄭逑), 곽재우(郭再祐), 박충후(朴忠後), 장현광(張顯光)은 휘, 자, 호, 시호 순으로 작서에 따라 첫머리에 적고 이하는 휘, 자, 호, 연령순으로 적은 후 모임의 날짜를 기록하도록 하였다. 이책의 제목도 한강 정구 선생이 직접 '용화산하동범록(龍華山下同泛錄)'이라 칭하라 했다고 전하고 있다.

 

이 책은 당시 23세로 처음 정구 선생을 뵙고 참석한 간송당(澗松堂) 조임도(趙任道) 선생이 이후 14년이 지난 1621년(광해군 13년)에 추서하여 중수하면서 남긴 '용화산하동범록추서(龍華山下同泛錄追序)'책과 당시 용화산동범의 선유 모습을 8폭 병풍과 두루마리 그림으로 제작하여 남겼으나 현존하지는 않는다고 하나 불행중 다행으로 그 병풍을 모사한 것을 1744년에 박진영의 후손 박상정이 '기락편방(沂洛編芳)'으로 재발간하여 도설(圖說)을 실은'용화산하동범지도(龍華山下同泛之圖)'로 지금까지 전하고 있어 당시와 오늘날의 모습을 추정할 수 있는 중요한 자료가 되고 있다.

 

'용화산동범지도'의 원래 명칭은 '용화산수도'이다.

이자료는 낙동강 7백리 중에서 가장 아름답다는 남지읍 용산리 기강나루에서 부터 용화산 절경과 웃개나루 망우정의

4백년전의 옛날모습을 담고있는 귀중한 자료이다.

원래 '용화산산수도(龍華山水圖)'에는 합강정 그림이 없는 것을 박상정이 '용화산하동범지도(龍華山下同泛之圖)' 삽입한 것으로 추정한다.

이는 간송의 망모암일기에 따르면 내내에서 남지 용산리 기강으로 이사한 것이 간송 49세로  그해 가을에 합강정사를 지었다. 간송(澗松)은 현종 5년(1664년)에 향리 80세로 고종하셨으며, 간송 서거 80년 후 '용화산하동범지도(龍華山下同泛之圖)'를 판각된 것을 보면 간송(澗松)을 흠모한 박상정이 삽입한 것으로 추정한다. 

 

 
   낙동 8경
 
제1경 - 龍 -  용화산(현재의 합강정)

용화산(龍華山) 합강정(合江亭) 기강(岐江) 아호(鵝湖)에서 기강은 낙동강과 남강이 만나는 지점의 용산 앞의 강을 기음강(岐音江) 또는 기강 또는 걸음강으로 불리고 있으며, 아호(鵝湖)는 현재의 용산리 아곡(鵝谷 알개실) 마을 앞에 옛날에 있었던 커다란 호수를 말하며, 아곡마을 앞의 호수에 고니(거위. 백조)가 많이 날아와 아곡이라는 지명을 갖게 되었다고 창녕 지명사와 남지읍지등에 기록으로 나와 있다.
 

 

합강정

제2경 - 華 -  청송사(현재의 반구정)

 


 
제3경 - 山 - 도흥보(도흥나루 .현재의 동호마을 나루)
 
 
 
제4경 - 下 - 내내촌(현재의 철교 건너 내내마을과 능가사)
 
 
 
제5경 - 同 - 경양대(지암담. 현재의 제왕담)
 

 
제6경 - 泛 - 시우포(현재 반구정 유허비)  옛 진동나루 ,웃개나루(上浦津)
 
 
 
제7경 - 之 - 평사면(현재 남지 IC 앞 백사장. 계성천 주변)
 
 
 
제8경 - 圖- 창암사(현재 망우정)
 

                                   주)송강(松江) : 현재 송진을 거쳐 망우정 앞으로 흐르는 계성천의 고명(古名)

 
            모현정 위치

 

 
 
용화산하동범지도(龍華山下同泛之圖)의 8경의 위치도

 

                                     
 
용화산하동범록(동범한 35인의 인적 사항) 편액
 
 
모현정 현판과 주련

 
모현정기
 
 
도흥루 현판
 
 
모현정 복원 헌성록(慕賢亭 復元 獻誠錄)
 
 
모현정 중건기
 
 
모현정 상량문
 
 
모현정 주련 모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