육사뜰 소식/재령창원회

故 淸岡 李秉喆 서기관부군공 치제 조문

황와 2021. 8. 30. 14:11

        21.8.30 고 청강 이병철국장 치제 조문하다.

               장소 : 경상대학교부속창원병원 장례식장

               치제 : 11:00 재령이씨창원종친회 주관

               초헌 : 회장 이병목, 아헌 이동영, 종헌 이균태(부산)

               독축 : 이동춘

               참례자 : 창원 : 이장환, 이대호, 이병돌, 이병한,  진주 : 이용섭 

               발인 : 21. 8. 31 08:00  

               장지 : 고성군 개천면 청광리 선조묘역

 

 

[故 淸岡 李秉喆 書記官府君公 致祭 祝文]

 

維 歲次 辛丑年 七月 戊子 朔 二十三日 庚戌일에,

載寧李氏 昌原宗親會長 李秉穆

宗親會員代表하여 삼가 엎드려 감히 하옵나이다.

 

昌原宗親會 會長 故 淸岡 書記官府君公 靈前에서

오호 痛哉요 오호 哀哉로다.

께서는 일찌기 昌原宗親會에 나오셔서

17會長과 이사, 부회장, 고문으로 30여년간 활동하시며

宗親會 發展을 위해 率先垂範하셨고,

載寧李氏大宗會 景德祠 獻官, 先祖 祠堂 獻官으로 수년간 매월 朔祭에 참가 奉祀하고

載寧大宗會 元老顧問, 茅隱公大宗會 理事, 覲齋公宗會長, 判官公宗會長으로

家門을 위해 獻身 奉仕해 오시며 특별히 崇祖精神宗親 親睦을 위해 노력해 주셨습니다.

어릴 적 아버지 형제분을 잃고

아기 상주로 궁핍한 가문을 맡아 苦使를 겪으시며

通學 晝耕夜讀 自手成家하여

공직에 나가 淸白吏로서 公職者見本을 보였고

집안과 가솔을 돌보셨으며

祖上崇拜兄弟友愛敦篤하여

行儀儒仙處士답게 模範이셨습니다.

 

포천 判官公 派祖 墓祭日 매년 千里 먼길

長老로 수십 년 率先 先導해 주셨고.

宗會 때마다 곧은 말씀으로 宗人을 일깨웠으며

宗中人들을 團合結束하도록 지도해 주셨습니다.

그간 건강했던 몸 부인 잃은 후 세월에 노쇠하여

약국 병원 출입 잦으셨고,

홀로 창원집에서 잘 버티시더니 결국 입원하여

병원에서 딸애집으로 결국 요양병원으로 가셨으니

지난 2177釜山 요양병원에 입원하시자

문병 때 皮骨相接한 모습으로 유리창 너머

확성기로 통화하며 감사하던 생전모습이 마지막이셨군요,

폭우 속 돌아오는 길 우리 宗人들 모두들

얼마나 슬펐는지 모릅니다.

그날 다녀오면서 공의 생애를 듣고 쓴 글이 이렇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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淸岡 李秉喆 局長

그는 누구인가?

載寧李氏 覲齋公派 判官公 後孫으로

진주 智水面 淸原里 原故鄕에 살다가

祖父 때 새터를 찾아 固城 淸光里移居한 후

淸光에서 태어나 자랐으나

어릴 때 아버지 형제를 잃고 어린 상주 노릇과

집안 少年家長으로 가사를 돌봐야 했고

養母, 親母를 정성으로 모시며

땔나무군, 꼴지겟군 하루 두 짐씩 家率勞動을 다하고

배움이 그리워 晝耕夜讀 講讀하다가

벽촌 淸光國校에 입학하여 졸업하고

외지 유학 통근 학구열로 自學自習하여

당시 어렵다던 釜山工高에 당당히 합격하여

큰산 넘는 한골재를 야밤에 넘어서

삼십리 반성역으로 나가 부산까지 기차통학하며

상상도 못할 먼 유학길을 새벽 밤을 오가며

實習獎學金으로 어렵게 고교를 졸업하고

동아대학교로 야간부에 진학하여 獎學金으로

겨우 졸업하여서 土木建築公務員으로 공직을 출발하였다.

土木建築行政實務者로 올곧게 업무를 추진하며

강직한 성품으로 國利民福을 위해 근무하였고

당시 건축공무원에게 숱한 유혹에도 淸廉服務하였으니

務實力行淸白吏로 공직자의 모범이 되셨다.

경남도청 토목담당계장, ,군청 건축담당과장

울산시, 진주시, 창원시 건설국장으로 근무하며

수 많은 도로개설 및 도시확장 건축업무를 추진하여

지방행정 발전에 크게 기여하였고

퇴직 후에는 재령이씨종친회 활동에 적극 참여하여

종중발전과 집안 숭조교육에 솔선 기여하였고

17대 창원종친회 회장으로 2년간 근무하면서

종중의 단합과 숭조행사에 빠짐없이 참례하고

근재공종회 집행이사와 회장을 역임하며

투철한 종문의식으로 후배들의 모범이 되셨다.

특히 어릴적 여러 형제중 장자라

혼자만 수학하게 되었으므로

동생들의 어려움을 자기책임으로 여겨

한 식구처럼 배후를 돌보니

友愛는 많은 사람들의 본보기가 되셨답니다.

그러다가 5,6년 전 恩津宋氏 夫人을 먼저 사별하고

혼자 자취하며 奉祭祀를 손수 준비하여 지내고

종사 出行時 한복손질까지 철저히 티내지 않고

몸과 행동을 정갈하게 유지하신 거룩한 大人이셨습니다.

이제 요양병원에 입원하여

몸과 마음도 저문 87세의 老軀

생각은 아직도 또렷하나 몸은 휠체어 신세

스스로 擧動이 어려우니 看病人에게 몸 맡기고

온종일 침대생활에 運身하기 어려운 몸

그래도 말은 살아계심이 고마워

모두 소리없이 속으로 울었다.

立志傳的인 한 인생사 짚불처럼 사그러지려한다.

아아! 가슴 아픈 일이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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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 하늘나라에서 淸岡公이 꼭 필요하신가 봅니다.

그래서 먼저 불러 데려가셨기에

부디 天堂 極樂에서 앞서간 夫人 만나 永生하시옵고

하늘에서 내려다보며

남은 食率과 형제 자매 子女들 손자들 잘 보살피고

또 우리 宗親會 發展을 많이 응원해 주십시오.

모든 宗人精誠을 모아 비옵니다.

 

오호 哀哉요 오호 痛哉로다.

어디 가서 의 그 따뜻한 목소리,

믿음직한 풍채, 仁慈한 모습

다시 듣고 볼 수 있으리오,

이제 모든 짐 다 내려놓으시고 永眠하시옵소서.

편안히 儒仙 되어 가시옵소서.

아아! 애통한 마음 금할 수 없어 하며

엎드려 再拜합니다.

부디 소찬 박주를 흠향하시옵소서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