육사뜰 소식/재령창원회

안동 영양 석계 선조 유적지 답사여행계획

황와 2020. 11. 4. 22:55

[36] 안동 영양지역 석계선조와 정부인장씨조모 유적답사

 

일시 : 2020.11.7. 07:00-20:00

주관 : 재령이씨창원종친회(회장 이병목)

코스 : 마산역-동명휴게소(조식)-서안동IC-경당고택(광풍정, 제월대)-(학봉고택)-갈암선생금양강도소-월영공원(정부인시비, 월영교, 중식)-도산서원-석보 두들마을(장계향문화체험교육원, 전통술제주소,석계고택,석계종택,석천서당,항재고택,유우당,녹동고택(광산문우),이병태고가,정부인장씨유적비,낙기대,주곡고택,만석군댁) -(석식)-마산역

 

[해설자료]

석계 선생과 정부인 장계향 할머니

 

[사시던 곳] : 영해 인량→②석보 두들마을,→③수비→④안동 풍산 수곡 (도솔원)→⑤석보 두들마을(할머니 혼자),

[자녀] : 73, 10남매

七賢者 : 靜黙齋 尙逸(67)8-存齋 徽逸(54)-8-葛庵 玄逸(78)-4-恒齋 崇逸(68)-4-定于齋 靖逸(69)-1-平齋 隆逸(63)-7-廣麓 雲逸(29)

七山林 -石溪선생, 靜默齋(상일), 存齋(휘일), 葛庵(현일), 恒齋(숭일), 密庵(재栽), 顧齋(만槾)

 

석계 이시명 선생

운악공 함()과 진성이씨 어머니의 5형제중 3

영해 재령이씨 가문 출신인 석계(石溪) 이시명(1590~1674)은 안동의 대학자 경당(敬堂) 張興孝의 문인(門人)으로 향시에 여러 번 합격했으나, 병자호란 이후 명나라에 대한 절의(節義)를 품고 산림에 은거했다.

그는 평생 학문을 닦으며 자식과 제자 교육에 힘쓰는 삶을 살았다.

석계연보

1590 영해에서 출생(1)

1600경 아버지 임지 따라 잠시 서울에서 삶(11)

1607 아버지 의령현감 부임으로 따라가 삶(18)

1610 광산김씨와 혼인 (21)

1611 첫아들 상일 출생(22)

1612 진사과에 합격 성균관에 입교(23)

1614 광산김씨 사별 (25)

1616 안동장씨와 재혼(27)

1623 인조반정(34)

1624 향시 별과에 합격(35)

1632 영해 운악선생 운명 3년간 시묘살이(43)

1633 스승 경당 선생 운명 (44)

1636 병자호란 후 벼슬버리고 낙향(47)

1640 영양 석보로 이거 석천서당 제자 교육(51)

1644 영해 모 시묘살이 3(55)

1653 영양 수비로 이거 (64)

1672 안동 풍산 수곡으로 이거(83)

1674 향년 85세로 돌아가시니 수곡에 묘소를 씀

 

[정부인 張桂香 할머니]

정부인 장계향 할머니는 석계 선생의 스승인 경당 장흥효의 외동딸이시다. 10세 때 지어 쓴 학발시학발로 병을 안았는데(鶴髮抱病)/ 해는 서산에 지려하네(西山日迫)/ 두 손 모아 하늘에 빌건만(祝手于天)/ 하늘은 아득하니 어찌하나(天何漠漠)‘라는 부분이다.

고모부가 부역을 위해 멀리 떠나게 되고 팔순의 그 노모가 병석에 누워 있는 상황을 슬퍼하며 지었다.

 

정부인 장씨 할머니는 현모양처의 정석이시며 이문열의 소설 선택(選擇)’의 주인공이시다. 어릴적부터 퇴계학의 종맥이신 경당 선생인 아버지에게서 학문을 익혀 이어받았고 詩 書 畵에 재능이 출중하여 선비학문을 교육과 실천하였다.

특히 석계 선생과 혼인하고 나서 학문을 접고 媤家親家 다 보살피며 孝婦賢母10남매를 올바르게 길러 아들 7형제를 七賢子라는 칭송을 얻었고 어려운 살림살이를 하면서 도토리죽으로 끼니를 못잇는 사람들을 구휼하여 이 때문에 최근 조선일보에서 노블레스 오블라주의 표본으로 알려진 바 있다.

석계 할아버지께서 돌아가시고 나서 넷째 아들과 함께 다시 옛집 석보로 돌아와 사시다가 1672년부터 7순이 넘어서 여인들에게 꼭 필요한 전래 음식조리법 146가지를 적은 음식디미방이란 책을 한글로 적어서 최초의 음식조리서를 남겨 주시고 1680년에 향년 83세로 석보에서 돌아가셨으니 안동 대명동에(수곡)에 내외분 합장하였다.

할머니의 공적으로 1999년도 11월 이달의 문화인물로 소개된 바 있고 할머니 시비(詩碑)는 안동 월영공원에 섰고 할머니유적비는 두들마을 언덕에 서 있다. .최근 정부 특별지원금으로 장계향문화체험교육원을 완공하여 많은 관광객과 옛 음식조리법에 대한 교육과 연수 고택체험이 이루어 지고 있다.

 

석계 불천위 제사는 기일(음력 820) 오후 8시쯤 석계종택(영양군 석보면 원리2) 사당에서 지낸다. 참석 제관은 30~40명이다. 제수로 특별한 것은 없으나 높이를 일정하게 하고 5탕을 쓰며, 제주는 석계 부인 장계향이 지은 음식디미방의 술들을 종부가 가양주로 빚어 사용한다.

석계종택 옆에 석계가 1640년 영양으로 들어오면서 지은 집 석계고택이 따로 있다. 현재 종택은 종손이 35년 전 새로 마련한 것이고, 이전의 원래 석계종택은 석계가 마지막으로 이사를 했던 안동에 있었다. 석계 13세 종손 이돈(1938년생)씨는 그동안 종택을 드나들며 조상 현창사업을 해오다 최근 부인과 함께 귀향해 종택을 지키고 있다.

석계선생이 불천위가 된 것은 정부인이 어려운 경제적 여건 아래서도 남편을 잘 내조함은 물론 자식교육에도 남다른 정성을 쏟아 모두 훌륭한 인재로 키웠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여자로서 학문은 본분이 아니라고 생각해 시서(詩書)는 그만두었다. 석계와 혼인한 후에는 평생 동안 부군을 섬기는데 예의와 공경을 다했고, 자녀들에게는 지극한 자애 속에서도 훈계를 할 때는 매우 엄하게 하면서 10남매 모두를 훌륭하게 키워냈다. 이렇게 현모양처이자 시인, 서예가, 교육가 등으로 모범적인 삶을 보여준 그는 여중군자(女中君子)’로 칭송받고 있다.

 

[경당 장흥효 선생]

본관은 안동(安東). 자는 행원(行源), 호는 경당(敬堂). 부장(部長) 장팽수(張彭壽)의 아들이며, 어머니는 안동권씨(安東權氏)이다. 김성일(金誠一유성룡(柳成龍)을 사사하고, 뒤에 정구(鄭逑)의 문하에서 학문을 닦아 문명이 높았다.

관계 진출을 단념하고 후진의 교도에 전념하여 제자가 수백 명에 달하였다. 특히, 역학(易學)을 깊이 연구하여 오류된 것을 의심, 이를 고증, 연구하여 20년 만에 십이권도(十二圈圖)를 추연(推演)하였다.

12월을 배열하고 24절후를 분배하고, 또 원회운세(元會運世)와 세월일진(歲月日辰)의 수를 그 위에 더하여 일원소장도(一元消長圖)라 하였는데, 장현광(張顯光)이 이를 보고는 참으로 전인이 발명하지 못한 것을 발명하였다.”라고 극찬하였다.

문하에 이휘일(李徽逸) 이현일(李玄逸) 등 학자가 있다. 1633년에 창릉참봉(昌陵參奉)에 임명되었으나 교지가 도착되기 전에 돌아가셨다. 뒤에 지평에 추증되고 안동의 경광서원(鏡光書院)에 제향되었다. 저서에 경당문집(敬堂文集)이 있다.

                                                                                         [네이버 지식백과]

 

[도산서원]

경북 안동시 도산면 도산서원길 154 (토계리)

동서재(東西齋) 정면 3칸 측면 2,

전교당(典敎堂:보물 210) 정면 4, 측면 2,

상덕사(尙德祠) 정면 3, 측면 2

사적 제170. 1969년 지정.

동서재(東西齋) 정면 3, 측면 2칸의 홑처마 맞배집.

전교당(典敎堂:보물 210) 정면 4, 측면 2칸의 홑처마 굴도리집.

상덕사(尙德祠) 정면 3, 측면 2칸의 단층 기와집. 원래는 이황이 도산서당을 짓고 유생을 가르치며 학덕을 쌓던 곳으로, 1575(선조 8) 한호(韓濩)의 글씨로 된 사액(賜額)을 받음으로써 영남(嶺南) 유학의 연총(淵叢)이 되었다.

서원 안에는 약 400종에 달하는 4,000권이 넘는 장서와 장판(藏板) 및 이황의 유품이 남아 있다.

흥선대원군(興宣大院君)의 서원 철폐 때에도 소수서원(紹修書院숭양서원(崧陽書院) 등과 더불어 대상에서 제외되었다. 1969년 문화체육부에서 해체 복원하여 면목이 일신되었다.

20197월 전국 8개 서원과 함께 한국의 서원이라는 이름으로 유네스코 세계유산에 등재되었다.

                                                                                                 [두산백과]

 

[영양 석보 두들마을]

[장계향문화체험교육원]

교육연수 : 다양한 공간시설 활용을 통해 워크숍, 교육연수 등

전통음식체험: 음식디미방음식 시식, 만들기 체험

전통한옥체험 : 전통한옥체험을 통한 휴식공간 제공

다도체험,예절교육,전통혼례,고택음악회 등 다양한 문화행사,

 

시설위치 : 영양군 석보면 원리리 산7번지

시설규모 : 부지 33,719, 건축연면적 4,438.57

시설현황 체험공간 : 사무실, 교육숙박동(30), 강당, 음식식사 체험, 실습체험실·

휴양공간 : 한옥체험 3(25), 체험동 관리실

추모공간 : 장계향 영당, 재실 준비실, 예절 체험관 등

 

[석계고택(石溪古宅)] 정부인 장씨 할머니 기거

[석계종택(石溪宗宅)] 석계선생 종택 사당

[석천서당(石川書堂)] 석계 선생 강도소

[석간고택(石澗古宅)] 항재 고택

[유우당(惟于堂)] 이상도 - 파리장서 대표 이돈호, 독립시인 이병각

[녹동종택(匡山文宇)] - 이문열

[주곡고택(做谷古宅)] 주곡 이도 고택

[이병태고가] - 이병태

정부인장씨유허비

낙기대(樂飢臺)

남악초당(南嶽草堂) 갈암 선생 강도소 -약 5km 떨어짐

 

{안동 경당 고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