따뜻한 만남 1/국내외여행

석우회 고령 대가야 고분군 돌다.

황와 2018. 8. 25. 17:06

18.8.25 석우회 10명 여름 나들이 고령 대가야유적 답사여행 했다./264

코스 : 마산역-대가야박물관-지산동고분군-왕릉박물관-영남식육식당(점심)-우륵박물관-개실마을 -마산역

거리 : 약 400km  참가인원 10명


오래간 만에 석우회 외출이다. 

30 여년전 야간 대학원 동문수학 학우들

모이면 옛꿈과 학연을 되삭임질한다.

서로 존중하고 위로하고 건강 묻는다.

오늘은 열 여섯 명 중 열 명 참가다.

이제 시원찮은 몸 나서기 조심스러운 모양 

예전 꿈 펼치던 추억 이야기

요즘 무너지는 교육현장 걱정스런 한숨

찻간 토론장 모두 교육전문가다.

난 열심히 차만 몰았다.

갖가지 정보들이 서로 오간다.

노년을 지혜롭게 사는 법

고령 도착할 때까지 수다쟁이가 된다.

그 이야기 속에 끼어 들었다가 

진입로 놓쳐 위험 겪기도 했다.



태풍 지나간 고령 대가야 옛터

오늘 보니 들판이 강을 따라 너르다.

대가야박물관부터 들어 역사 훑었다.

먼저 대가야를 알고 현장 고분군 가기로 했다.

기록 이전의 역사

유물 유적이 대신한다.

약 천년 전의 사람이 남긴 

그 이전 천년 전설 설화 이야기를 쓴 역사책 

고려 김부식의 '삼국사기'와 일연의 '삼국유사'다.

그 기록 없었으면 역사가 없다. 

그 이전의 부족국가 시대,

고고학 발굴 출토 유물로 검증한다.


     



가야국 중의 큰 면적 대가야국 고령이 그 유허지다.

그 증명이 지산동 고분군과 그 출토품이 증거자료다.

초기 구석기시대 돌칼 주먹돌로부터

고배토기, 철갑옷, 금관과 장신구, 도자기 ........

순장된 모습과 석곽무덤 덧널무덤

모형 바라보며 부장품 유물 눈으로 설명 들었다

기록은 요즘 해석으로 읽었다.

가야의 역사 없는 게 아니고 유적이 역사다.

그 때 문자 없어 남기지 못했는지,

또 남겼으나 자료 훼손으로 없어진 건지?

모든 자료가 숫자 연번을 이름표로 달았다.

고분군으로 올라가

몽실몽실 앉은 고분군에서 기념사진 찍었다.

아직도 무더위 다 가지 않아 땀낸다.

오늘은 백중(절은 우란분절) 머슴 잔치하는 날이다.

불자(佛者)들 절 찾아 조상 어른께 천도제 올리는 날

능선에 앉은 수십 기 무덤 보며

당시 대가야국의 힘을 지금도 느끼고 있다. 



대가야 왕궁박물관에 들어

권력자와 그 부하 식솔들 함께 묻혔다.

현실 두고 사각 돌벽 쌓고 덮개석 걸치고

그 위에 흙을 덮고 봉분 지어 수백 기   

마지막 무덤속 나오며 더위 식혔다.

주변에 테마공원 공원 드넓다.

차에 회원들 태워 시장통 고령 쇠고기 내음

영남 식육식당 점심 때 만원이다.

맛고기 굽고 맛체험 포식했다.


    




고령 대가야 읍내 돌아 

악성 우륵 가야금 박물관

천년 음악소리 정원에 울린다.

그 청아한 소리

석상, 동상 앞에서 가슴에 울린다.  

악성 우륵 선생

12곡 작곡 그 음악 연줄 

땡볓 비맞고  5년간 썩은 오동나무 

제작의 원리를 잘 설명해 준다.

12줄에서 8줄, 18줄, 25줄 가야금 신계발품

악성 성혈현에서 태어나

가실왕 명으로 가야금 만들어 작곡하고 연주하고

가야 망하자 신라로 귀화하고

다시 충주 변방으로 가서 탄금대에 앉아 

나라 잃는 역사 슬픔에

손끝 까지면서 농월했겠지 ?

충주를 도니 탄금대 우륵 선생

요즘도 숲속에서 가야금 뜯더라.


      




다음 마지막 갈 곳 개실마을 

점필재 김종직 선생이 생활했던 마을과 집

조선 사림파 거두 주자 성리학의 대학자이다.

원래 아버지 김숙자가 야은 길재 선생에게서 전수받은 성리학자였고

대를 이어 그의 아들 김종직 선생에게로

그는 밀양 부북면 추원재에서서 태어나 학문을 익혔고  

벼슬에 나아갔다가 돌아와

여기 개실마을에서 말년을 보낸 곳으로

그의 제자가 탁영 김일손과 일두 정여창가 기묘사화에 연루되어 

죽은 스승 김종직을 부관참시 되었으니 아깝지 않으리오.

그 종가집 대단한 규모다.

안채 8칸 집 영남지역에서는 매우 큰 저택이었다.

지금 복권되어 문충종가로 살아있다.

부슬부슬 비 맞으며 엄숙히 느꼈더라.

앞산 뾰족한 산이 전망을 명당으로 만든다.


    



돌아오는 길 

경남대로 국도 타고 

창녕 지나서 

옛 25년의 고향 관통해 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