따뜻한 만남 1/조상사료실

선조 산가 대청소는 조손이 만나는 날

황와 2025. 9. 26. 20:26

예전엔 집안 자손들 만나

서로 어울렁더울렁 재미있는

종중 벌초날이었는데

한사람 돌아가고나서

콩가루 집안이 되어 

집안 어른도 없고 고저도 없고 

제멋대로 돌아가니 모두 내몰라라다.

그래서 불러모아 볼래도

우리 아인 새로산 집 인테리어로 바쁘고 

동생은 목숨이 오락가락 아프고 

사촌은 야기 살다가 김포로 올라가 버려 

직장 다닌다고 못 오고

불러내도 불려올 사람이 없다.

할수 없이 이젠 웃대 조상 책임은 내가 아니니

큰집 아이들에게 맡기고 

우리집 산소 벌초는 할수 없이 내가 맡는다.

아무에게도 연락해봤자 대답은 없을 터이니 

연락없이 내차로 8시 아침챙겨먹고

찬물 과일 챙겨넣고

낫과 톱, 벌쏘임 방어 에프킬라

긴팔 긴바지 무더워도 안전을 위해 준비했다.

고향에 가자마자 광에 있는 예초기 꺼내서 

반성 벌초전 예초기 청소하고 

생생 잘 돌아가게 기름 준비하여 

생질점포에 벌초때 구비물 찾다가 커피만 얻어마시고 

알부자 달걀 추석선물만 받아왔다.

작은 생질집에서 자동차 타이어 점검하고 

질부에게 김밤 두줄 주문했더니 

돈을 일체 안받는다.

또 외삼촌 체면 구기며 싸 가지고 간다.

 

질매재 부모님 산소부터  벌초직업 시작

그런데 누가 제초작업을 해 두었다.

누가 했을까 

여기저기 생각해 봐도 누군지 생각 안난다.

풀을 베기만 해두고 까꾸리질은 안했다.

그레서 까꾸리로 부모님 머리를 긁어 드렸다.

모두 시원한 느낌으로 내게 웃는다.

나의 양부모님 내외분

내 생부모님 내외분 

형제 동서간에 한자리에  묘소가 있다.

이 묘소를 여기 쓴 까닭은 

각각 돌아가신 해와 장소도 달랐는데 

남해고속도로 로선이 지나감에 따라

이장할 곳이 없어서 결국  당시 월아산고갯길 

지겟군만 지나다니는 고갯길 

아무도 간섭하는 일이 없었고 

마치 공동묘지처럼 아무도 몰래 묻곤하는 장소였고 

이 고갯길은 집에서 가장 높은 곳까지

제게로 져 날라야하는 최악의 자리 였는데 

거기에 형제분부모님이 자리하고 나서 

달음산고개를 넘는 도로가 생기고 나니 

명당자리가 되고 말았다.

고개먼당 차세우고 바로 성묘하는 자리라 

또 봄철이면 벚꽃나무 동생이 심어 관광지가 되었다. 

오늘 땀뻘뻘 흘리며  까꾸리질과 예초기 작업

서툰 내 몸에 얼마나 땀을 많이 흘렸던디 

하늘이 노래지고  찬물만 계속 들이켰다.

12시경 김밥으로 점심 두 줄 다 비우며 

많이 먹어야 힘을 쓴다는 진리를 체험한다.

만약 입맛 떨어지면 피로감에 몸살이 날텐데 

난 억지로 우겨 넣으며 과일도 고구마도 억지로 씹었다.

다마치고 나니 1시경 부모님 산소 산가 청소 완료하고 

고개 숙여 성묘하고 주성영역 돌아보았다.

증조부모님 합봉묘

 

조부모님 합봉묘

다음은 작은골 대밭뒤 번덕에있는 칡밭에 

증조부모님 합봉 묘와 조부모 합봉묘를 작업했다.

무더위에 늘어진 몸 극도로 피로하지만

나밖에 할 사람이 없으니 내가 할 수 밖에 

예초기만 말 잘 들으면 벌초가 쉬울 거란 생각에 

시동 걸어 메어 보지만 일은 절대로 순탄하게 되지 않는다.

내 몸이 흔들리니 자꾸 흙에다 박기 마련이고 

조심스레 잘 해보자니  다른사람처럼 곱게 깎이지 않는다.

아마 여남 번 흙에다 쳐박았을 게다.

그러니 짧은 데는 짧고 긴데는 길다.

대강 긴 풀만 다 깎고 까꾸리질 했다.

특히 칡넝쿨이 얽혀서 잘라내야 하는데

낫은 차에 두고 와서 손으로 비틀어 잘랐다.

그리고 성묘하고 

다시 숙부님 산소로 내려가서 

온 잔디밭을 기는 칡넝쿨을 순서대로 잘라 던지고 

간풀은 예초기로 대강 베고 

까꾸리질  묘소 주변만하고 나니  

하루 해가 넘어간다.

결국 예년에 하던 고조부 산소는 손도 못대고

다음 추석날 해야겠다고 생각하며

숙모님댁 들어갔더니 아침에도 저녁에도 집에 안 계신다.

할수 없이 그대로 돌아오고 만다.

고속도로 귀가길 밀려 내려왔다.

내일 장모님 산소 벌초하려고 예초기는 그대로 싣고 왔다.

숙부님 평장 묘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