육사뜰 소식/만사참례기

고 성환욱의 부부 재회 승천

황와 2025. 8. 15. 22:30
25.8.15 진외가 고 성환욱 친구 승천 배웅 대전 성심장례식장 조문하고 동생 병 위문하다./264
        참가자 : 성득찬 기찬 형제, 상영주 아들, 정기환, 나(성기찬 차)
                      나와 정기환 내동생집 병위문하고 오다.  
        코스 :   집- (내 차로 이동)-진성 (성기찬 차에 탑승)(4명)-대진고속도-대전성심장례식장 조문(제문낭독)- 상주와 환담 점심
                      -대전 성심장례식장 출발-정기환 동승-진성 성득찬 부인 위문-내 동생댁 정기환과 함께 위문-내 차로 창원 정기환                      댁 배송-우리집 도착 

 

진외가 종형제 고 성환욱 상 조문

 

오늘 독립한 광복절날 

난 좋은 친구 하나 하늘로 우주선 보낸다.

몇년전 아무것도 모르며 어리석게 떠난 별님 찾아 

오늘 부부상봉하도록 축원하는 가족 이별식

그래도 진성초등학교 제22회 졸업생 친구요 

그리고 겹인연 우리 할머니 친정 손자 진외 6촌 내외종간

함께 자라면서 도움주고 받았던 인척사 

그걸 끊고 하늘의 부름받아 간다.

우리 할머니 형제 그의 할아버지 성온진 

한문학의 학식이 높은 유학자로서 한문서당을 운영

우리 할아버지는  역시 한문학과 예학의 존중받는 선비

그래서 할머니는 학자풍 자질을 몸으로 익힌 조용한 인품자

우리 할아버지를 찍어서 여동생과 짝을 이루니

처남 남매간 인격 만남이 선인들 수준으로 교류하였다. 

그래서 가장 가까운 인척관계로 오가곤 했고 

가족간에도 서로 편한 관계였고 

자연히 우리집에 오면 편하게 함께 공부하고 

그집에 가면  또 펀하게 한문을 질의하고 배우게 되었다.

또 같은 반같은 동기생으로 초 중을 같이 다녔고 

고등학교는 갈라져 나왔으나 

각자 직업으로 그는 행정공무원으로 난 교직공부원으로 

딴세상을 살았지만 그는 적응력이 약해서 자주 부딪히는데 고민했고 

그 걸 술로서 달래가고 있었기에 많이 걱정했었다.

그 술 주정이 사람을 허약하고 모자란 사람으로 인식되어 

한동안 후배들이 먼저 올라가는 좌절에 고민하기도 했지만

진양군 각면으로 자리를 옮기며 경험을 쌓고 

진주시 각동 사무소로 이동하며  행정주사로 퇴직하였었다.

퇴직후 조금 쉬는가 싶더니 부인이 아파 그 간호와 가사를 돌봐야했으니 

10여년 고생하며 휠체어 끌고 간호했지만

나중엔 치매로 구별로 못해 노인병원에 입원 그래도 매일 운동시키고 

정성을 다해서 보살폈지만 나중엔 하늘로 보내야만했었다.

 

 

 

할멈 보낸 빈자리 집만 우두커니 지키는 신세

아들딸 모두 진주를 떠나살게 되었고 

혼자 나가자니 친구도 떨어지고 

그래서 폐인처럼 흘러 다니다가

도저히 혼자 내버려두어서는 안되겠다고 

아들이 철도청 공무원으로 있는 대전 아들집으로 합가

친구지인이 많은 진주생활을 떠나 타향으로 갔으니

처량한 늙은이 언제나 외톨이로 살다가 

결국 아들 며느리도 함께하기 어려우니 

직장에 나가는 아들딸 내외 때문에 다시 성심요양병원으로 옮겨서 

거기서 갇혀 살다가 지금은 1남 1녀 외손녀 하나 두고 

젊을적 방탕하게 지냈던 걸 반성하며 조용히 소식도 없이 지내더니 

오늘 병원 조문실에 드니  화환과 조화가 가득했지만

조문실 액자에는 젊을적 사진에다가 

특별한 그의 표정 입술 오무리고 조용히 듣는모습이 

어린 학생처럼 단순하고 불쌍하게 보인다.

주변의 국화 꽃이 불편하다.

눈물 삼키며 동기회장 성득찬이 잔드리고 

난 써간 제문 다들 알아듣게 큰소리로 슬픔을 읽는다.

다들 조용히 그의 일생 들으며 흐느끼니 

마지막 재배하여 그와 인연 이별식하고

상주와 인사하며 소개 서로하고 조문 

묘소는 재작년  부인 장사 때 미리 준비해둔 혼백함 함께하기로 하고 

준비하고 있단다.

후손은 아들딸 오누이에 아들은 대전지하철에  며느리도 어느 직장에 나가고 있고 

아들에게는 외동딸 하나로 손자가 없으나.

딸에게는 사위와  딸 하나가 있어서 그의 후손은 어디까지 갈런지 

행사를 위해 큰조카가 백관으로 보조하고 

울산 사는 조카 딸이 와서 보고있고

그의 엄마인 사문댁 큰 종수는 나이 들어 진성에 서 그대로 산단다. 

장례절차와 우리집과의 관계를 알려준 후에 

접빈장소에서 늦은 점심 함께 먹고 

우리들 할 일이 없어질 즈음 환송받으며 내려왔다.

오면서 정기환 친구와 더불어 소싯적 이야기 하며 

진성으로 내려와 성득찬 부인 만나 

그도 눈병치료로 전국을 쏘다니며 병원진료 받다가 

서울 성모병원 안과를 내 전우의 아들 소개로 치료받고 왔다가 

다시 부산대병원 안과에서 치료받는다고 고생을 위문하고 

동생집으로 옮겨 나와 정기환 친구가

갑자기 동생 아프단 소식 듣고 함께 가자고 해서 

집에들리니 지난번보다 조금 상태가 나아진 것 같기에 

고마와 하며 위문하고 나왔다.

난 호주머니에 남은 10민원을 주며 맛진 것 사먹으라했다.

돌아내려 오는 길 친구와 함께 타고오며 

지난이야기 동생위문에 감사하고 

늦은 길 아내가 기다리기에

팔룡동으로 꺾어 돌아 내려주고 

집에 돌아오니 저녁밥 준비해 놓고 나를 기다린다.

날 기다린다고 걱정했었던 모양이다.

 

 

 

 

[고 성환욱 행정주사 제문]

 

弔 辭

 

維歲次 乙巳 閏六月 乙未朔 二十二日 丙辰

 

진성초등학교 제22회 동창회 회장 성득찬은 여러 동기 친구들을 대표하여 조문합니다.

 

故 行政主事 昌寧成公 諱 煥旭 친구여!

 

하늘婦人 만나러 떠났구료.

우리 갈 길 친구가 먼저 갔구나.

어느 누가 먼저 가도 이젠 아까운 나이는 아닌데

늘 흉한 소식이 올 때면 언제나 가슴이 저립니다.

비단으로 맺은 궁합 천상배필 아끼던 마누라 먼저 보내고

10여년부터 시들머들 정신줄 놓고

바짝 야윈 몸으로 목소리 힘 없어지고

진성 고향 떠나 아들 곁 대전으로 떠나더니

고추친구들 모임도 참석하지 못하고

객지 타향에서 아무 말벗도 없이

외로움을 운명으로 안고

숨만 붙여 살고 있다고 들었는데

어제 오후 길을 걷는 중 부고를 듣었네

 

자네와 난 씰미동네에서 같이 자라다가

똥메 양지쪽 언덕빼기 높다란 약국집으로 이사 가고 나서

집에 가면 자네가 있다고 온방을 쏘다니며 놀고

함께 숙제하고 바둑 장기 두며 놀았었지

우리는 배움이 모자라 언제나 여러 형제

가난으로 천덕꾸러기로 살아가야 했고

자네는 진주남중학교와 진주고로 진학했을 때

앞길이 훤히 밝았었지만 부러움에 기회를 나누길 바랬었고

군대 갔다가 와서 지방공무원으로

진주시 진양군 일반행적직으로 승진하여

진주시와 진양군 동과 면 행정을 정성을 다해 발전시켰는데

퇴직후 부인의 갑작스런 악질로 간호하고 진력을 쏟았으나

결국 살려내지 못하고 절망 속에 온몸 허물어졌으니

어찌 정심과 몸을 지켜낼 수 있었으랴!

 

사방통문으로 부고 전하고

진성초등 22회 동기 친구들을 대표하여 오늘 영전에 엎드리니

그 슬픔과 미안함을 이루 말할 수 없다오.

 

그대는아버지 희자 주자 약국 아버지와 대실댁 안동권씨 사이에

6남매 중 둘째로 태어나서 부유한 가정애서 올곧게 자라났고

우리와 함께 진성초등학교 22회 동기생으로

전후 흙교실에서 짚방석 깔고 흙단책상에서 나마 열심히 공부했고

나는 형편이 안되어 초등학교로 학력을 끝냈지만

자네는 진주남중과 명문 진주고를 나와

군대 다녀와서 일반행정직 지방공무원으로 들어가

30여년간 일선행정 실무를 익혀서 진양군 각면 계장과 부면장

진주시내 동장을 연임하며 행정 발전에 기여했고

마지막 동장으로 정년퇴직하여 정년여행을 즐길 여유도 없이

부인의 갑작스런 악질 투병으로 가족간호와 관리 보호에 20여년간 고생하다가

결국 부인을 먼저 보내고 나니 

아들딸 모두 직장 다니느라 나중엔 부칠 곳 없는 몸

혼자 외로움에 불규칙한 생활로 지내다가

결국 5년전에 아들댁으로 합가하여 대전으로 갔으나

그 이후 고향에 한번 오지 않았으니 소식도 두절되고

어찌 사는지 모르다가  부음을 들으니 애석하고 미안합니다.

친구들이 모두 다 안타까와 애석해 합니다.

우리가 봤을 때 유복하고 부유한 집에 태어나 잘 자랐으면

행복할 줄 알았는데 인생은 그게 정답이 아닌가 봅니다.

가장 보장된 직업이었기에 집안의 기둥이 되기를 바랬는데

평소 사회생활에 서툰 관계로 말년에 고생이 된것이지요.

 

그러나 지난 일은 지난 일로서 사라지고

이제 영혼이 갈라져 바뀌더라도

부디 바른 인도로 아이들 남은 자식들 잘 안내하고

하늘에서 부모님과 부부 만나 못다한 정을 나누며

남은 자식들  음덕으로 잘 보살피고

먼저간 우리 친구들 만나 옛이야기 나누며

부디 먼저가 계시게 .

朴酒로 잔 올리니 歆饗하시옵소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