육사뜰 소식/재령창원회

장마중 합천군 선조의 유적을 찾아서

황와 2020. 7. 22. 18:59

                                                   20.7.22 재령이씨창원종친회 합천군 선조유적답사 여행하다.

                                                       코스 : 마산역-의령-삼가외토 뇌룡정,용암서원,남명생가 -두심동 운구대,

                                                       운구서원-천지예가 중식-황계폭포-경원사 배향-함벽루-의령-마산역(저녁)

                                                       참가인원 : 19명(병철, 충주, 정호, 동춘, 병목, 완섭, 수엽, 수오(총장), 완섭,

                                                        관호, 흥렬, 이호 모, 병돌, 장환, 병학, 성섭, 순섭, 병수(함안), 재홍(서울)

                                                       차량 : 25인승 관광버스(병돌 사무국장 협찬)

                                                       식비 : 점심 : 병목 회장 자담(천지예가)

                                                               저녁 : 이호 모 자담(정원갈비)        

                                                       특색 : 장맛비 속에서도 상선조 유적찾아 합천지역 답사여행

                                                                경건하고 즐거운 맘으로 뇌룡정 운구서원, 황계폭포, 경원사, 함벽루

                                                                극정경험으로 각인하였다. 특히 우중 답사로 선대유적유무 확인하고

                                                                삼 시조공(표암공, 강양군, 재령군) 참배, 합천이씨 종중과 인맥텄다.

                                                                수량 많은 황톳빛 황계폭포와 황강벽 질펀한 황강물 절경 구경했다. 

                                                                답사는 체험교육, 잊지못할 극정경험으로 메모를 하였다. 

                                                                서울종친회 재홍 사무총장, 함안종친회 병수 동행 

 

1. 출발하면서

 

갑자기 하늘이 울어댄다.

가야하느냐 말아야 하는냐

무조건 가면 하늘이 도와준다는 신념

지휘관이 흔들리면 병정은 폭풍이 인다.

대절버스는 멀리서 봐도 비상등 깜박인다.

종친회원만 19명

전국구 사무총장 재홍씨 서울서 달려오고

함안 신선한 역군 병수씨 보태고

수오 총장, 호 모친까지 한차다.

즐겁고 희망찬 맘으로 장마비 원망 안한다.

밧줄기도 조금씩 가늘어진다.

남해안고속도로 군북에서 빠져나가

정암교 건너고 대의 삼거리에서

외토동 남명을 찾아 들어갔다. 

왜냐하면 그 선생은 우리 할배의 스승이었기에

우리의 스승이시기도 하다.

모촌, 갈촌 할배 형제와 곽 마우당, 김 동강까지

선조들의 출현에 가장 영향을 미친 대 학자이시다.

 

2. 뇌룡정(雷龍亭) 남명 유적

 

양천 강물도 흙탕물이다.

밤새 웃비가 많이 왔는가 보다.

양천은 삼가 쌍백 일대에서 모여든 물

우에서 좌로 흘러 서쪽 남강으로 흘러 간다.

생비량 구비돌고 신안에서 남강물과 합수한다.

뇌룡정 감도는 양천 언덕

뇌룡정 마루에 걸터앉아

남명선생 연보를 하나하나 훑어간다.

해설안대로 하나하나 인생을 들춘다.

여기 외갓집인 외토에서 태어나서

어릴 적 부모님 벼슬따라 한양으로 가 벗 사귀고

기묘사화 때 숙부님의 연루로

아버지 조언형 파직되어 삼가로 낙향하였고

스무살에 진사 초시에 합격했으나

시험관이 기묘사화에 연루된 죄로 취소되었다.

스물 둘에 김해에 살던 남평조씨와 혼인하고

다음해 부친상을 당하여 서울서 

삼가 갓골 선산으로 운구하여 시묘 3년상을 다하였고

김해로 어머니를 모시고 거처를 옮긴 후

산해정(山海亭)을 짓고 16년간 거주하였다.

33세에 향시에 급제하였고

44세에 첫아들을 9살때 잃고  

모친이 70세로 김해에서 돌아가시니

또 고향으로 운구 3년 시묘살이를 하셨고

그 다음부터 여기 토골살이로 

계부당(鷄仆堂)과 뇌룡정(雷龍亭)을 짓고

자신의 칼에 안으로 마음을 밝히는 경(敬)을

밖으로 행동을 결단하는 의(義)를 새기고

성성자(惺惺子) 방울을 달고 늘 자기를 깨우치며 다녔단다.

토동에서 16년간 거주하면서 제자를 만났으니

내암 정인홍을 비롯한

우국충정에 앞장 서 행동하는 여러 선비를 길러냈으니

곽재우, 조종도 등 이름난 임란 의병장수 속에   

모촌공 이정, 갈촌공 이숙 우리 할배 형제도 함께 창렬하였다.

50세에 19살 은진송씨와 재혼하여 이후 3남 1녀를 낳았고

55세에 단성현감에 제수된후 을묘사직소(乙卯辭職疎)를 올려

불의에 강직한 선비정신을 조정에 알렸으며,

58세부터 제자들과 지리산을 열두 번 오르며

행동하는 제자를 길러내었다.

1561년 회갑때 집과 재산을 동생에게 물리고

다시 산청 덕산으로 이주하여 산천재(山川齋) 생활을 시작하였다. 

이대기, 김우옹, 김효원, 정구, 최영경, 곽재우등이 찾아와 제자가 되었다.

1572년 72세로 산천재에서 돌아가시니 묘는 사리에 있다.

이후 1592년 임진왜란이 일어나자

그의 제자들이 의병을 일으켜 국난에 숨어 살지않고

행동하는 애국인으로 나라를 위해 싸웠다.

즉 이론으로 성리학을 실천한 퇴계학파 보다

행동 실천에 앞장선 남명파 선비가

조국을 건지는데 더 큰 역할을 했던 것이다.         

부슬비 오는 뇌룡정은 남명 생애를 말해 주었다.

용암서원과 우람한 사직소 돌비, 초상까지 둘러보며

물 고인 큰 용암서원 잡초 무성한 마당

오가는 이 없음을 잡초가 말해준다.

용암서원 묘정비문 송시열이 지었으니

싫어하던 위인도 사람을 알아봐 주었구나

토동 생가에 비 맞으며 둘러보고

예전 맞배지붕 몸채 한 동 황토언덕에 보였는데

최근 새 건축물 빽빽히 모두 재건해 두었는데

환하게 송진 내음 그대로 풍긴다. 

여기가 그의 외갓집 태어난 집이다.

유명한 위인은 언제나 표본이 된다.

토동마을 육각정 마루에 앉아

고인이 된 현섭 전부회장의 아지매께서 준비해 온 음식과 술로

분위기가 우중에도 상승 화합 자축하였다.

참 고마운 종부이시고 상산김씨 양가 출신이시다.

사람은 누구나 본 데가 있어야 배운다.

 

 

3. 운구서당(雲衢書堂) 삼은(三隱) 유적

 

종일 비는 추적거린다.

황매산 자락 구름 머무는 네거리

두심동을 찾아 여러 동네를 두른다.

골짜기마다 누런 물이 넘쳐 흐른다.

두심동 들어가는 길이 좁아 뒷걸음치고

중간길을 거쳐 운구대에 도착했다.

바위 숲이 구름속에 우뚝하다.

운구서당 잡초 우거져 거미줄 쳐져 있고

관리자 여기 없으니 문도 잠겨 처량하다.

단지 세 분 삼은(三隱) 선생 비만 또렷하다.

좌는 홍만은(晩隱 洪載) 선생

중은 조금은(琴隱 趙悅) 선생

우는 우리 할배 이모은(茅隱 李午) 선생이 섰다.  

세 분 모두 고려왕조 망함에 통분하여

벼슬 버리고 두문동에 숨었다가 낙향하여

여기 구름동네에 모여 함안 담안, 원북, 합천 두심동 

세 어른은 망국의 쓸쓸한 망복절의(罔僕節義)를 나누었던 동지다.

운구대는 이 세 어른의 놀이터요. 좌담소였으니

나누는 이야기마다 시(詩)가 되고 핏빛 전언(傳言)이 되었다.

여기 우리 할배 모셔져 있어 찾아왔건만

비석만 쳐다보고 묵념으로 자리를 뜨는 못난 자손이 된다.

받아가는 느낌, 우리 가슴에 칼이 되길 바란다.

예상하고 갔지만 너무나 쓰라린다. 

조상을 버린 우리에게 벌을 내리는 듯

운구서원 배향이란 글귀가 무색하다.

남들도 그리 훌륭하다는 모은 선조를

우리는 매년 찬 술 한 잔도 못 올렸으니 부끄럽다.

풍산 아재 비문 복사해 와 열심히 설명했었다.

온 신발이 비이슬에 젖는다.

 

 

4. 합천호반(陜川湖畔) 중식

 

우중행사는 구름 속으로 떠 다닌 듯

합천호로 자리를 옮겼다.

천지예가 소고기 버섯전골로 따뜻한 회장 맘 읽었다.

사람의 본모습

소줏잔 들어가니 목소리도 상쾌해 진다. 

창밖엔 거세지는 빗물 유리창 타고 내린다.

뿌옇게 흐려지는 호숫가

은근한 시심 정자에 앉은 듯 따라 나온다.

늘어진 나무잎이 시야를 가린다.

일엽주 띄우고 낚싯대 드리우면 신선화 한폭 되겠지

대병 고향 완용 친구가 갑자기 드리워진다.

배를 두드리며 고마와했다.

 

 

 

4. 황계폭포(黃溪瀑布) 황톳물 폭동

 

당초 청와대 세트장 갈 계획 바꾸어

가장 최고의 절경 이룰 황계폭포로 바꾼다.

평소엔 가녀린 폭포수 바람에 흔들려 흐르지만

오늘은 우중 수량 불어나 멋진 경관되리라.

고원평야 지나서 지그재그 내리막길 내려와

황계골짜기 드니 황톳물 몰려 흘러온다

폭포 오르는 데크길도 위험하다고 막는다

정면에서 바라보니 나를 향해 몰려온다.

무척 성이 났는지 폭동을 내며 달려온다.

요동치는 몸짓에 소리마저 공포다.

누우런 물이 부셔지니 하얗게 표백된다.

모두들 그 광경 사진으로 뜬다.

오늘만큼 큰 울림은 처음이다.

2단으로 흐른 물은 그 격정 그대로 꺾여 내려간다.

내려오는 길 용주면 중심지서 황강 다리 건너서

월평리 합천이씨 시조 강양군 묘소 들리려했으나

우중 위험 때문에 생략하고   

문 열고 기다리는 경원사로 향했다.

 

 

5 경원사(慶源祠) 삼 시조공 참배

 

미리 연락해둔 합천이씨 대종중 임원 나와 기다린다.

활짝 대문 열어 놓고

입구 돌비 굵은 비문 읽고 가파른 돌계단 일주문 지나서

내삼문 활짝 사당문 앞에 도열하여

좌측 월성이씨 표암공 원시조 휘 알평 공과

중앙 합천이씨 시조 강양군 휘 개 공

우측 재령이씨 시조 재령군 휘 우칭 공을 맞는다.

우리 재령군 할아버지는 고려중기 보조공신으로 책봉되어

황해도 재령군에 식읍 받아 번성했으나

재령평야 서어산에 묘소가 있다.

국토 중단으로 70여년 갈 수 없었으니 안타깝고

남한 우리 후손들 밀양에 경덕사를 지어 모시고 있으나

여기 경원사에 세 시조를 합천이씨 종중에서 관리하고 있으니

고맙고 감사할 따름이다.

묘정에 고목 소나무 명품 기상을 자랑한다.

사당에 들러 청강 고문 최연장자로 헌관 되어

표암공 강양군 재령군 세 분 시조 할아버지께

촛불 켜고 향불 피우고 삼좨주 유통하고

헌작 올려 엄숙히 배향했다.

우리 온다고 합천이씨 대종회 임원들이 마중해 주셨다.

관리사에 모여 함께 인사 당기며

합천이씨 대종회 화수회장 종옥 님께서 자세히 설명해 주고

정일 , 수희, 형수 한수 임원 다섯 분과

우리 열 아홉 인사 나누고

나누는 차 한 잔이 그리 따뜻하였다.

우중 행사가 더 결속을 맺어주는 듯

배웅 속에 고맙게 보내준다.

 

6. 함벽루(涵碧樓) 유유자적 홍수

 

마지막 코스 우중에도 찾는다.

합천의 가장 명소 함벽루

선비들이 찾아서 시를 읊는 곳이다.

황강 너른 물가에 발을 담그듯 서있는 2층 누각

난간 기대면 환한 백사장 살결처럼 보드라운 모래 흐르고

바짓단 걷으면 바로 건너갈듯한 얕은 모래

오늘은 누우런 황토물에 깊이를 알수 없다.

저건너 모래사장이 그래도 밝다.

아이들 물놀이터도 물에 잠긴다.

강벽 바위에는 놀다간 선비들 이름들 어지럽다.

자기가 안 팠을 게고

종이나 머슴들이 유선놀이 시중에 무척 고생했겠다.

작은 산이 바로 대야성터

신라의 국경지대 백제와 만나면 싸우던 싸움터

신라장군 죽죽이 싸우다 전사한 대야성

산자락 틀면 죽죽장군 비각이 기념 유적이다.

유유히 흐르는 강물을 따라 데크길 열리고

오늘 하루 멋진 합천 유적 탑사길 유의미한 행사였다.   

 

7. 돌아오는 길 

 

하루 종일 비는 찔찔거려도

우리가 하는 행사 때마다 조금씩 가늘어진다.

무사히 마치고 국도를 타고 대의에서 의령으로

정암교 건너서 고속도로 재빨리 내려오니

4시경 무사히 마산역에 도착한다.

또 서운하다고 저녁 불러 정원갈비집에서

소고기전골로 마지막 술잔 기울이니

모두 기분 좋아 소리도 씩씩해 진다.

또 경비는 고 현섭 아재 아지매가 앞서 부담했다.

오늘 멋진 행사였다고 모두들 감사했다.

조상을 알면 아는 만큼 보람을 느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