따뜻한 만남 1/국내외여행

산수벗님들 금무진장 1박 2일 벼락여행

황와 2019. 1. 16. 22:07

19.1.15-16 산수회 다섯 금산, 무주, 진안, 장수 1박 2일 즐거운 단합 여행하였다/264


언제나 첫걸음은 미지수다.

그래서 기대는 상상을 편다.

아이들마냥 누락없이 즐겁게 모였다.

마나님들 허락 맡고

서마산 IC 만남이 넘친다.

이번에는 지리산 서북쪽 고장

금무진장(錦茂鎭長)을 훑기로 했다.

이미 모두가 동의한 코스다.

한 번도 못가본 코스는 안내자가 네비아가씨다.

문자 넣어도 소식 없는 곳이 있다.

어쩔 수 없이 사람에게 물어물어 길을 찾는다.

그러나 동네 사람들 마저 추위 땜에 길가에 없다.

또 바로 이웃에 두고도 모른단다.

사람들 얼마나 무관심 속에 사는지

천연기념물 국보급 문화재도 모른단다. 

그러나 포기할 우리가 아니다.

결국 찾아내니 기쁨이된다.

아침 미세먼지가 뿌옇다.

전국적으로 오늘이 최고 나쁨이란다.

미세먼지 마스크 94번 쓰고 나섰다.

가다가 덕유산 휴게소서 잡시 휴식하고

추부 IC 빠져나가서 요강리 은행나무를 찾는다.

식물은 주소가 없으므로 지도에 안뜬다.

고속도로 지방도로 겹쳐져 보이지 않는

굴다리 통과하여 찾아내니

당당한 천년지기 은행나무 우뚝하다.

천연기념물 제84호 기물 보호수 

가운데 속통은 비었으되 뱅둘러 새 가지 돋아 

왕성하게 자라는 모습 기운을 느낀다.

들판 가운데 도롯가에 당당하게 선 신목

천년 역사는 규모에서 놀란다.



다음은 두번째 문화재 

조선태조대왕 태실을 찾는다.

다행히 산아래 주차장까지 안내해 준다.

네비 푸른선을 따라 운전하다 보니

금산군 추부읍을 지난다.

미꾸라지(鰍魚)가 연관되어 추어탕 집이 많다.

중부대학입구를 조금 지나니 목표지점이다.

숲길 오솔길 올라가니 상쾌하고

숲속길 걷기가 우리의 행복이다.

만인산 숲속길 추부터널 위고개에

태조대왕태실이 자리한다.

조선 초대왕 태실이라 잘 보관되었으리라 보았는데

태 항아리는 일제가 민족말살 정책으로

전국 태실을 서삼릉으로 옮긴 후

비석과 석물을 부수어 매장한 것을

다시 발굴하여

깨어지고 부수어진 것을 짜 맞추어

옛 모양 그대로 복원해 두었다.

난간석을 다시 만들어 넣은 듯 색이 차이난다.

규모는 당당하고

난간은 여덟 병사가 둘러싼 모양이다.

처음 그가 태어난 함흥에서 여기 금산으로

다시 금산에서 일제시대에 일산으로 이장하게 된 것이다.

깨어진 비석은 거북받침대 위에 땜질하여 세워 놓았다.

만인산 정상에 있던 것을 약 1km 이동하여 설치했단다.

오르내리는 숲속길이 명품길이다.

고갯마루 난데없는 유격 세 줄 다리 고공공포증 참으며 건넜다.

재미있는 체험이었다.


    

    


추부읍 소문난 추어탕집

주차장 차의 댓수를 세며 들어갔다.

맛집은 주차자동차 댓수와 비례한다는 속설

확실히 손님 수가 많다.

맛지게 뜨거운 그리고 뻑뻑한 국물 

추위 불어 가며 맛나게 마셨다.

그리고 건배하며 생탁 한 잔도 걸쳤다.

그만하면 족한 친구들의 주법이다.


다음은 금산읍 칠백의총으로 향한다.

아가씨 가리키는 파란선을 따라

날씨가 갑자기 을시년 스럽더니

가루 눈이 뿌린다.

남쪽으로 내려오는 길이다.

칠백의총 그리고 중봉 조헌 대장

임진왜란 목숨을 걸고 왜병과 싸운 그 충성심

경내에 드니 나라위해 거룩한 죽음 

당연한 성역화 위대한 사업 박정희 대통령의 공적이다. 

국란극복 국민계도교육관이자 현장체험장

그분 아니었으면 누가 이리할까?

둥근 봉분 깔끔한 관리에 감사했다.

우리도 잠시 참배했다.

기념관에 들리니 기록화 벽면에 가득하고 

수염 가득한 매서운 눈매 

조헌 장군과 영규대사,금산싸움에서 왜병과 접전 

7백 의사 몰사하였으나 충성을 다한 그 성심

감사하고 또 감사했다.

특히 의병군, 승군들이 목숨 걸고 싸운 전사는 

길이길이 우리 가슴에 살아 있을 겁니다.

경내 유난히고 백송이 많고 

청와대 경내에 심어져 있던 금송

여기로 옮겨져 심어졌구나.

식물이 무슨 죄가 있을까 ?


    

    

    

    


다음은 보석사로 향했다.

천년고찰 역사는 은행나무가 말한다.

전나무 숲길도 긴 내음이 울린다.

학생들 고맙게 쓰레기 줍기 봉사활동에 나왔다.

덕암 풍수 절이 앉은 자리가 명당이란다.

양쪽 계곡에서 흐르는 물 만나 흘러가고

곧고 바른 산의 지기가 대웅전으로 쏟아지니

여기서 많은 인물 공부해서 배출했단다. 

왼쪽 계곡에 서 있는 천년 은행나무

주렁주렁 금줄 달았는데

세인의 기도가 나무의 목걸이 되었다.

나무의 주간이 아직도 튼실하고 

그 자태 덩치가 우람하다. 

가루눈이 목 뒤에 차디찬 계절을 뿌린다.

오후 3시경인데 벌써 어둠이 느낀다.


    


태고사로 향했다.

대둔산 속에 숨은 고찰 

절을 좋아하는 친구들에게 안식 주자고 간다.

그러나 길은 자꾸 멀어지고 

눈발은 미세먼지와 함께 차창을 가린다. 

한참을 달렸건만 길은 산속으로 눈길을 만든다.

어쩌랴 아무 눈장비 하나 없으니 

자동차는 약 3km 목전에서 되돌아 서고 만다.

하늘이 말리니 다음 기회로 미룬다.


 마지막 코스 무주 설천면 태권도원으로 향했다.

세계태권도의 종주국의 중심지 

수많은 세계태권도인의 방문 희망지이다.

우리 나라에서  우리가 안 가봤기에 방문이다.

여전히 눈가루는 바람에 실려 뿌리고

길은 첩첩산중으로 끌고 들어간다.

첫길은 언제나 서툴다.

네비에 의존하나 안전에 눈을 똑바로 세운다.

5시경인데 골짝 어둠은 등불을 켰다.

찾아든 태권도원 가로등만 반기고 

개미새끼 한마리도 요동이 없다.

차로 한바퀴 휘두르고 

길거리 펄럭이는 태권도원 깃발만 보고 나온다.     



이제 잠자리 찾아 떠난다.

다음날 덕유산 구경하자고 

구천동 무주리조트로 향했다.

눈은 계속 뿌려 길바닥에 하얗게 쌓이는데

눈속에 미끄러움 겪어본 내 경험에

자꾸 지옥으로 향한다.

그러나 눈은 아직 바닥에 깔리지 않으니

십수 km 가는 것도 멀게 느껴진다.

안에 탄 친구들 떠들던 소리도 함께 줄어든다.

구천동 리조트 도착하니 어느새 어둡다.

먼저 저녁밥부터 챙긴다.

불이 환한 한우 고깃집

갈비탕으로 허기 해결하고 

눈속 헤맬 것 상상하다가 

더 오기 전에 떠나는 게 상책 

향적봉 포기하고 무주읍내로 어둔길 내려왔다.

불빛 비추는 길이 모두 찬 기운에 얼었을까 

두려움에 천천히 내 몸에 땀이 난다. 

시내 첫 이리스 모텔에 여장을 풀었다.

9시경 일찌기 피곤을 눕힌다. 


높은 산속 관광기대는 눈이 말리니 

적상산 안국사와 사고지도 눈길 무서워 떨어내고 

아침 양평해장국집 찾아 시내 헤매다가  

맛있게 아침을 해결하고   

무주 읍 남대천이 가로 지나니 아름다운 고을이다.

반디모양 다리가 매우 요란하다. 

여긴 반딧불 잔치와 태권도, 스키장으로 지역 명성을 알린다.

호남의 이름난 루각 한풍루 찾아 오르니

무주공설 운동장 옆 언덕 위 덩그렇게 앉았다. 

전에 강가에 있던 루각을 이설하였단다.

누각 기둥 재목은 오래된 주름을 안고 있지만

단청은 새롭게 호화찬란하다.

누각 위에는 올라보지 못하고

무주 고을 옛 사람들의 정취감만 읽었다.


         


다음은 진안지역으로 향했다.

용담호 빙 둘러 돌며

육비속에 다도해를 보는 듯 드넓다.

찌푸린 하늘과 미세먼지도 걷히고

따스한 햇빛이 우리 등을 비춘다.

푸른 물 푸른 하늘 용담호는 조용하다.

진안의 8대 승지라 드라이브 코스로 적격이다.

지도가 없이 돌다보니 어디쯤 가는지 요량이 없다.

단지 네비 아가씨 목소리가 지도다.

전체를 읽지 못하면 바보가 되는 모습이다.

여기저기 차창가에 눈망울만 굴린다.

제법 돌았는데 용담호도 끝이 난다.

금강 상류 발원지 내륙호였다.


다음은 마령면 수선루(睡仙樓)로 찾아간다.

작은 시야로 다니다 보니

어디로 가는지 어느 도로로 가는지

현대인의 약점이 그대로 드러난다.

물이 굽이쳐 흐르는 작은 강가 절벽에

제비집처럼 동굴에 기대어 선 정자

마치 중국 절벽 잔도에 지은 절집 같다.

마령면 공설 운동장이 펼쳐져 있고 

몇집 안되는 마을 뒤엔 연안송씨 선조들이 자욱한 

구산사(龜山祠), 구산서원(龜山書院), 구암재(龜巖齋) 몰려있고 

그 뒤 절벽에 거북바위(龜巖) 내려다 보고

송씨 4형제 바위 동굴 정자에 매일 올라가 

눈아래 풍광 다듬고 시문(詩文)지으며 

풍월을 읊은 문화가 고스란히 전한다.

낮은 동굴 안에 2층 누각 짓고 

작은 방 벽엔 산수 호랑이 그림 그리고

단청 아기자기 칠하고

마루에 앉으니 휘감는 강물 굽이쳐 흐른다.

저절로 시심 발동하니 나오는 말이 시가 된다.

바위는 자갈돌 숭숭 박힌

진안지방의 마이산 돌과 같은 고유 암석이다. 

'송씨 수선루'라 붉은 글씨 바위에 새겼다.

먹붓글씨도 눈에 보인다. 

신선 놀음에 강가 둑길 산책하니 우리가 선비다.

새롭고 신기한 풍광 보는게 공동의 기쁨이다.


    

    

    



돌아나와 이산묘(駬山廟)로 향했다.

진안의 이름난 관광지 마이산 아래다.

구한말 호남지역 의병 열사들이 창의 동맹한 결성지

찾아보니 바로 마이산 매표소 입구다.

예사로 스치고 지난 이곳이 우국 역사의 중심지 였구나.

들고보니 큼직한 돌비들이 머리를 찌른다. 

바위 암벽에 새긴 태조 이성계의 주필대(駐蹕臺)

마이동천(馬耳洞天) 거친 바위에 글을 팠고 

이산묘 정전에는 단군, 태조 세종, 고종이 앉고 

좌 영모사(永慕祠)와 우 영광사(永光祠)에는

이름있는 우국독립 지사와 열성조 위패가 모셔졌다.

여기가 애국 독립운동의 산실이었구나

대한광복기념비엔 이승만 대통령글씨가 살아있고

이산사 현판은 이시영초대 부통령 글씨

돌비엔 김대중대통령 글씨가 중요성을 이른다.

건너편엔 독립운동자 추모비 밝다.

돌아나오며 마치 구국독립운동을 한 기분이다.


    

    

    

     



다음은 마이산관광단지 올라

금당사(金堂寺) 둘러 마주 보는 산정  

고금당(高金堂) 우뚝하고 

첨봉 전망대 바람 어지러웠던 예전 등정 추억 새롭다.

탑영제 연못에 오르니 또 다른 풍광

거기에 부교 놓아 데크로드 지난다.

양지쪽 신기한 물위 다리 재미있지만

너무 까부는 예산 낭비다.

탑사에 올라 일일이 둘러보고 

여러차례 왔지만 이갑용도사의 한인간 수련이

문화재되어 사람 감동이어준다.

우뚝한 말귀 뾰족한 봉우리엔

지질 테라스 움푹움푹 파이고  

시원한 섬진강 발원 물맛으로 가슴씻는다.

뾰족한 천지탑 오방탑 다 둘러보고 

사하촌 식당에서 산채나물에 목살 등갈비 구이

그리고 커피 한잔 만복했다. 

다시 진안을 빠져나와 장수로 향했다.


    

    

    


진안장수 고속도로 스쳐 

장수 의암공원으로 향했다.  

의암 주논개의 고향 장게면 생가지 미루고

장수읍내 의암공원 의암사로 찾았다.

장수 군민의 공원지다.

의암사 들리니 문화재해설사

자세한 영상과 해설로 맞아준다.

주논개 외동딸로 귀하게 자랐으나

아버지 조실로 고아되어 

망나니 삼촌에게 팔려 장수현감 최경희 만나고 

부실로 들어가 진주성싸움에서 남편 전사하니

진주성 함락후 승진연에 기생으로 참가해 

왜장 안고 남강물에 뛰어드니 

의암 논개 애국충절 나라의 여인이 되었다.

장수를 대표하는 위인으로 추앙받고 

공원 내에 사당지어 배향하고 

앞뜰에 연못파서 목재데크길 산책로 둘러돌며 

멋지고 멋진 1박2일 여행 맺었다.

돌아오는길 마지막 종회

우산마을 옹심이 칼국수로 배웅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