따뜻한 만남 1/가족사랑기

추석절 고향 방문

황와 2025. 10. 6. 21:27

추석차례상

 

추석날 아침 스스로 눈을 뜬다.

맨먼저 내 몸부터 순질하여 깨끗이 닦고 

제삿상 꺼내와 먼지닦기, 행주로 닦기

북쪽 전면 사진 철거이동 및 청소 

향로, 향, 향안,  맹석자리, 촛불, 창문 입구문 열기,

제기에 각종 음식 갖추어 담기 

젯상 위에 진설하고 

난 종손으로서  지방을  모시고 집사분정으로 진행하되

제복은 개량한복을 입고 그위에 청색 도포와 유건을 쓰고

절차에 맞추어 나는 제관 아내는 집사 (작주자)

우리 내외가 지내는 호젓한 주석 차례였다.

아내도 곁에서 함께 절하며 차례르 지냈다.

중간에 삽시반중 후 삼초반을 함께 하고 

사신배 하고 난다음에 음복례를 마치고 철찬하니 

증보부모와 조부모님 한쌍 부자분을 먼저 모시고 

양부모님과 생부모님 한쌍  형제분을 다음에 모시며 

사신배 후 음복 때 알밤 한톨 딱 깨무는 느낌이 참 좋다.

제사후 제삿숭늉에 지방 태운 잿물을  바깥 화단에 부었다.

 

모든 제사 끝내고 병풍 젯상 향안을 행주로 닦아서 제위치로

다음은 치워둔 아이들 사진 다시 피아노 위 제자리로 

제기를 닦아서 제기함에 차곡차곡 넣고

제삿밥과 음식 고기로 탕국과 함께 한그릇 아침밥 먹고 

아픈 아내는 집에 두고 혼자 고향으로 고속도로를 타고 올라갔다.

9시에 출발하여 갔는데 차들이 촘촘히 서서 가니 

성묘길이 매우 느리게 주행하다보니 

고향 숙모댁에 들어가니 이미 숙부님 제사는 끝난 후였다.

종제가 다행히 내려와서

어제 지난 번 내가 해 둔 벌초작업을 더 깨끗히 했다고 하니 고맙다고 했고 

제수비를 숙모님께 전하고  

가정 안부 이야기 하다가 설 질병이기는 방법 가정 안녕 빌고 

숙모가 손수 농사 지은 고추와 대추 참깨를 얻어 싣고 

큰집으로 이동하여  큰집 삼종숙모와 종제들

부산에서 올라온 병철종제 가족과 동생 병석 가족들 함께 합석하여

건강 소식 교환하고 또 큰집 종숙모가 주는 고춧가루와 깨 한되 얻고 

다시 삼거리 치돗가 동생 아픈 집을 방문하여 조카창훈이 명은이 만나고 

동생 오늘도 투석하는 날이라 명은이 차로 병원에 투석하고 왔단다.

투석하고 나면 항상 그날은 어눌해 지는 증세로 몸을 가누지 못한단다.

특히 서울에 있는 창훈이가 고향에 와서 이야기 쏟아대니

훨씬 집안 분위기가 밝아졌다.

명은 창훈 남매 앉혀두고 여러가지 병과 몸상태 물어보고

옛날 어려운 형편 이야기하며 아버지의 고생한 점 들려주었다.

특히 그는 맹인1급 장해자라 전 KBS 앵커로 있다가 퇴출된 아이니까 

항상 부족하고 불만스러움에 생활할까 봐 걱정하고 있었는데 

그가 오히려 우릴 위로하며 건강하기를 기원하고 

특히 밝은 표장으로 웃으며 수용하니 긍정에너지가 솟고 

듬직해지고 고맙다고 전했더니 당연하게 여긴다.

 

조금 이어서 외종 용봉 계복 형제가 당도하였다.

내외종간이니까  동생 아픈데 위문하러 왔다.

참고마운 방문에 인척의 가까움을 몸으로 느낀다.

특히 병원에 있을 때도 들렸고 오늘 또 왔으니 고맙기 짝이 없다.

진양하씨 족보이야기를 하다가 우연히 진양하씨와 우리 이씨와 연비가 관계를 묻다가 

해밝게 자기 성씨 족보계열을 이야기하는 걸 보며 고마와 했고 

특히 우리 왕고모할머니 동곡댁에 대한 자료를 물으니 

그의 전자족보를 보여주며 왕고모부 할배의 휘함도 모르고 있었는데 

휘함이 진양 하계수(河啓秀)로 자는 치실(致實)

1895년(고종 을미년)에 탄생하여 1916년(병진) 9월 초3일에 졸하시니

향년 22살에 조졸하셨고 묘소는 단동산의 축좌에 있다고 하며    

 

내 왕고모 동곡댁(東谷宅) 할머니는 아버지가 이수호(李壽鎬)로 기재되어 있는데

이는 수영(壽英) 또는 수용(壽鏞)의 잘못된 오기였고 

 

고종 1893년 계사에 태어나셔서 

1972년 임자년 3월 초4일에 돌아가셨으니  향년  80살에 운명하셨고 

청상 23세에 미망인으로  57년간 수절하시다가

내가 25살 젊을 때 돌아가셨음을  찾았다.   

왕고모할머니 댁에 놀러다니고

항상 친정 손자들 왔다고 땅콩과 곳감을 남겨두었다가 주며

우리에게 친정 핏줄로 유난히 아껴 주셨던 분이셨습니다.

다행히 외가가 있었기에 매년 한번씩 겨울방학이면 

외로운 할머니를 둘러보던 방문코스였었다.

돌아가신 후에는 할머니 산소를 매번 들리곤했는데 요즘 못 가니 궁금하다.

그 할머니에겐 자녀가 나지 않아 집안에서 양자를 세워주었는데

처음에는 도산댁 아들  하운식(河雲植)이란 사람을 세웠는데

술만 먹으면 양모에게 행패를 부린다는 소문을 듣고 

 

우리 집안 숙부 세 분이 찾아가 항의하고 고발하여 

나중엔 법적 다툼으로 행적이 밝혀져 법원선고로 파양되었으며,

그후 홀로 오랫동안 지내다가 그의 동서 행정댁 둘째 아이를 맘에 두어

다시 초등 2학년 하성오(河成梧)가 입양되어

장성한 후 평창홍씨 열세와 경주시 어느 예식장에서 결혼하였고 

그때 나도 외가 대표로 참석하여 축하해 주었다.

그 후 동현(東賢1991년생)과 동진(東震1994년생), 딸 영재(英才 2000년생) 를 낳아 

 

왕고모부 족보의 대를 이어 주었다.

당시 우리 집이 외가가 되니까 몇 번 다녀 가곤 했고

그뒤 금산면에 정착하여 사는 곳으로 찾아가곤 했는데 

특히 사립유치원을 경영하며 번성하는가 싶더니

절대적인 유치원아가  줄어들자 사업을 접고  

지금은 어디 어떻게 사는지 소식이 끊어졌다.

하계수 왕고모부의 상계는  아버지는 하기원(河箕源) 이고,

조부는 하경홍(河慶洪), 증조부는 하현범(河鉉範) 이시다.

 

다음은 누이집을 방문하였다.

누이집은 혼자 집을 지키고 있었다.

혼자서 밤을 깎고 있던 중

나를 맞고 알밤 몇알 오독오독 소리와 맛이 일치했다.

그리고 사두었던 보리쌀과 각종 묵은 나물재료를 내어준다.

또 담아 삭혀두었던 두릅과 참외 장조림을 찾아 넣어준다.

보리쌀 값으로 10만원 드렸고  용돈 5만원을 주었더니

10만원을 다음 외종 아들 결혼식 부조금으로 주라고 하는 걸 

내가 대신 내어 주겠다고 하고 치료 용돈으로 돌려 주었다.

동기간에 돈으로 정을 가를 수 있겠는가?

여러 가지 챙겨주는 정성이 돈보다 더 귀하다.

또 매끌 이모 아들 하야가 누이를 찾아 오늘 왔다 갔단다.

참 고마운 인연맥이 작동하는 날이기도 하다. 

 

돌아오는 길 일찍 나서서 일반성에서 평촌

어석재 넘어서 군북으로 가야로 

함마대로로 신당고개 넘고 내서로 집에 도착하니 4시다.

대신 쉬지않고 막힘없이 천천히 달렸기에 운전 피곤함으로 졸음은 없었다.

요즘 쉬 피로감으로 자주 졸음운전에 시달려 왔었다.

 

저녁에는 또 몸의 균형을 찾기위하여

산호천변 밤길 걷기 와 체육공원 각종목 유연성 훈련 다 마치니

결리던 엉치뼈 통증이 사라지고 없다.

추석날 한일이 많다. 

  

밤 산호천변 건강 걷기 5,880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