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번도 경험해 보지 못했던 추석 명절
20.10.1 추석날 차례 홀로 지내고 고향 조상 성묘하고......
그러나 썩 기분 좋은 날은 아니었다./264
오늘은 추석날
그러나 더 기쁜 손자 7살 생일날
그 예쁜 놈 만나고자 꿈꾸는 할미 할애비
세상이 말린다.
코로나가 말린다.
할미는 세상 눈치보고
일주일 전부터 언질을 주었다.
이번엔 내려오지 말라고
난 그 얘기 결재하지 않았다.
그게 할애비 그리움이다.
그러나 하루전날
"이번엔 모두 내려오지 마라"
그말 하는게 할애비 사랑 표시였다.
오늘따라 할미는 더 늙어보이고
더 힘들어 한다.
이것저것 거덜어 봐도 별 도움이 안된다.
맘 씀씀이 아내의 얼굴에 박힌다.
어쨌던 짜증내지 말기를 기도한다.
남자는 늘 잘못하는 자가 되어야 한다.
젯상 차리고 제기 닦고
제물 괴고 척척 거들었다.
더운 맷밥이 올라와야 준비 끝이다.
내외간 준비하는 것도 근래 처음이다.
명절 사람이 북적대야 하는데
아들 하나 안 오니 절집 같다.
지위에 증조부모, 조부모 불러 앉히고
젯상 그득하게 제물차리고
잔칫상처럼 잘 대접하는 정성
둘이서 조용히 제사지냈다.
난 제관, 아내는 집사자
나는 잔 들고, 아내는 술잔 치고
50년 차례 중에 오늘 모습은 처음이다.
앉았다 일어서는 것도 아픈 몸
엎드렸다가 겨우 일어서서 잔 올리고
삼초반(三招飯)도 처음이란다.
부엌에서 제사 음식 만드는데는 50년,
정작 제사지낼 때는 관객으로 서 있었다.
내 가슴에 아픔이 된다.
아버님 어머님까지 두 번 지냈다.
피곤한 몸 또 설거지하고
남은 음식 차려 넣자니
고향 성묘는 혼자 내쫓는다.
지금껏 함께 갔는데
오늘은 너무 피곤한가 보다.
혼자 한다는 게
지금껏 달관이 되도록 익혀졌는데
오늘은 느낌이 다르다.
즐거워야 할텐데 가라앉은 날이다.
혼자 진주를 향하여 고속도로 달리고
숙모집에서 앉아
현안 뒷뫼 종산 이야기 꺼내니
옛적 서러움 모두 토해내니 질펀하다.
분별 어렵겠다고 느껴 입을 닫는다.
동생과 질매재, 뒷뫼 산소 성묘하고
종제가 누이 동생들 잘 타일러
뒷뫼 먼당 종산 건은 구비서류 갖춰주라 했다.
할배 앞에 엎드리니 꾸중하는 듯하다.
큰집에 내려와 종제 내외들 만나
조상을 잘 모시려고 정성을 다해주니 고맙다고
고마움 서로 바꾸었다.
여기는 여기대로 원한이 많다.
돌아가신 분들의 서운한 대처를 지금에야 나무란다.
해결은 현세대에서 해야 하는데.......
쌀 두 가마 찧은 것 싣고
동생집 들러 아픈 곳 물어보고
추석이 즐거운 날이 아닌것 같다.
일찌감치 나서서 마지막 성묘자리
남지 장모님 성묘하러 달린다.
고속도로가 빽빽하게 멕힌다.
함안에서 빠져나와
법수로 대산으로 남지로
장모님 산소에 술 한 잔 드리고
40년 같이 산 정을 절했다.
이제 산새와 잡초와 친구할테지
자주 찾아뵈어야 하는데
무덤덤한 사위가 되어버렸다.
우리 아이들 정성으로 키워주시고
따뜻한 밥 생명을 퍼먹이신 분이다.
감사하고 감사한 은공이다.
돌아오며 종처남 집에 들러
친구처럼 지낸 고마움 서로 전했다.
처숙모 아흔 인생 이제 헛소리 하신다.
팔을 만지니 뼈마디가 만져진다.
다정한 말이 늘 감사하게 느낀다.
돌아오는길 차량줄에 끼어
추석날이 차분한 날이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