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양두들마을과 영해인량마을 재령이씨 종적(宗蹟)답사기
영양 두들마을과 영해 인량마을 재령이씨 종적(宗蹟)답사기
19.7.5 재령이씨창원종친회 임원단 영양 석보 두들마을과 영덕 창수 인량마을 둘러보다./ 육사(堉史)
답사코스 : 마산-대구-동명휴게소 아침식사(완섭 자담)-남안동JC-청송휴게소 서울팀 만남-동청송IC-
석보 두들 마을 장계향문화체험교육관 (석계종손 돈, 영해파회장 훈 합석) - 장계향문화체험교육관
관람, 수안재, 영당 참배, 유물관, 음식디미방, 석계고택, 석계종택, 석간정사, 유우당, 녹동고가,
전통술체험관- 진보 한식당(점심)-당진영덕고속도- 청수 인량마을 충효당(영해파 총무 중섭) -
우계종택- 갈암종택 (종손 원흥, 사당 참배) - 강구항 대게식(저녁)-포항- 경주-마산
참가인원 : 8명(내 차, 동영, 준희, 기호, 정호, 장환, 병목, 완섭)
열성적 종친회 참여자 여덟
내 차에 6시 20분 보독히 싣고
새벽길 먼 일가친척 찾으러 나섰다.
이름 있는 우리 성 집성촌 문화 답사 여행
즐거운 맘으로 중앙고속도로 올랐다.
아침 상쾌한 기분으로 종인들 가볍게
묻고 답하고 토론장에 학습장
전통예절 문화 교류장이 되고 만다.
대구를 넘고 동명휴게소에서
순두부백반으로 아침 해결했다.
완섭 부회장이 기분 좋게 쏘았다.
기회가 되면 서로 헌성해 주니 고맙다.
남안동에서 새 당진-영덕고속도로 처음으로 탔다.
산위 터널을 이어 길이 편안하다.
청송휴게소에서 서울 웅호, 일환 두 회장과 조우했다.
서울 창원이 모이니 종친회가 풍성했다.
진보를 거쳐 석보 두들로 올라갔다.
새로 지은 장계향문화체험교육관 속으로 든다.
이돈 원장이 한복 갖추시고 반갑게 우릴 맞는다.
이훈 영해파 회장도 와서 기다리신다.
서울 영해 창원 종친회 대표들이 함께
여중군자 장계향할머니 문화체험관을 자랑스럽게 배운다.
원장님의 따뜻하고 밝은 말씨로
하나하나 쏙쏙 귀에다 집어넣어 주신다.
가장 중요한 합의는 추원재 중건에 따른 경비를
큰집 근재공 종중에서 쾌히 부담해 주신다는 약속이었다.
종중을 설득해서 선조유적 중창에 봉헌하려는 뜻
그 거룩한 합의를 지켜보며 박수쳤다.
추원재 다시 짓고 계은(溪隱) 할배 효자비각도 옮기고........
선조 숭조정신은 어리석은 후손들이 나를 세우는 직무다.
참 고맙고 미더운 결정 현장 증인이 된다.
구석구석 돌며 원장님 해설사 역사 속에 가족사 펼친다.
얼마나 자세한지 우리 모두 모범생 학생이 되고 만다.
온갖 여분의 할머니 책과 영상자료 일일이 챙겨 전한다.
할머니 재실 수안재(修安齋)와 영당(如一祠)에 들러
엄숙한 맘으로 영정 앞에서 참배하고
우리 창원종친회의 작은 맘 향초대 올렸다.
몇 년 전 할머니 친정 경당선생 종가를 둘러볼 적
"저는 방외갓댁에 왔다"고 이야기하니
경(敬)자 글씨 큼직한 사랑방에 앉혀
종가 음식 단술 유과 내어주시며
정성으로 안내해주시던 경당 종손의 접빈 범백에
고맙고 귀티나는 선비댁 따뜻함에
할머니의 가풍을 짐작할 수 있었다.
정문 앞에서 대표들 방문 기념 촬영하고
두들문화마을의 주곡(做谷)고택, 만석군(萬石群)고택, 석계(石溪)고택,
석계종택 어슬픈 정경 설명 내가 하면서
녹동댁(鹿洞宅) 고택이었던 석간정사(石澗精舍) 큰 향나무 아래에서
석계 할배의 일곱아들 중 네째 아들인 항재(恒齋) 할배(휘 嵩逸)께서
위 세 형님 중 첫째 형님 정묵재 일찍 돌아가시고
둘째형 존재, 양자로 나가시고 학문으로 널리 나다니시며
세째형 갈암, 정부에 출사하셨으니
기둥처럼 고향을 지키며 거쳐하신 집이요
후손 문학가 문열이 어릴 적 거쳐한 집이란다.
곁엔 유우당(惟于堂)고가 거북주춧돌에 당당하다.
이집은 파리장서 민족독립의병장 돈호공과
일제 독립시인 병각공을 키운 생가다.
석천서당은 지금 번와공사 중
음식디미방 민속전통주체험관에 들러
주전자로 술 따르는 전통주
술꾼 훼당 도유사는 술맛 못 본다고 싱거운 불만이다.
시간에 쫓겨 진보 한식 전통 맛집에서
원장의 맛진 음식 접대로 찬란한 식사했다.
다음은 영해종중 중심지 인량 갈암종택 방문길
당진 영덕 고속도로에 올라 영덕으로 새길 뚫어서
영해 인량으로 올라갔다.
먼저 충효당으로 올랐다.
영해 입향조이신 사암(思庵)공 애(璦)자 할배께서는
중부(仲父) 율간(栗澗) 할배의 영해부사(寧海府使) 부임시 따라와 정착한 곳
후에 울진현령(蔚珍縣令)을 역임하셨고
아들 의령현감(宜寧縣監) 운악(雲嶽)공 함(涵)자 할배와 함께 모신 사당
V자 하홰나무 아래에서 영해파 종중의 역사를 들었다.
바로 박약회 용태 회장님이 충효당 종손이시다.
은행나무 아래에서 인량마을길 포장작업
매캐한 냄새가 하옇게 길바닥에 깔린다.
내려가면서 둘째집 우계종택에 들러
우계종손 혁희씨 만나길 기대했으나 출타하고 집에 없다.
십오년전 인량 오촌 유적 촬영시 동행 안내해준 분이다.
당시 안내자 중 또한 분 태희씨 당시 창수면장이셨고
그 뒤 영덕군의원으로 활동하셨는데
그의 동생 중섭씨가 작년에 돌아가셨다고 전한다.
참 안타까운 소식이다.
갈암종택에 들어 종손 원흥씨 만남과
우리 종가의 가풍 접빈 따뜻하다.
시원한 각수박에 달콤한 감주 종가 전래 범백이다.
사당에 들러 갈암(葛庵) 선조의 33자 위패 글씨
'顯先祖考資憲大夫吏曹判書兼成均館祭酒 世子侍講院贊善諡文敬公府君 神主'
'顯先祖妣貞夫人朴氏 神主'
엎드려 향초대 올리고 재배했다.
갈암 거룩한 선조의 학문과 성정을 전달 받았다.
보고 느끼니 현장 체험 아닌가
다음은 우리에게 또 다른 영해 범백 보이려고
강구항으로 이동하여 거창한 만찬
광어회와 영덕 대게 음식
술잔 돌며 친절과 정성을 마셨다.
즐거운 종친간의 대화 활발했다.
모든 게 오늘 우리 때문에 만들어진 기회다.
조상의 긍지 한아름씩 안고 가니 얼마나 좋은지
참가한 창원종친회원들 값진 현장체험했다.
일일이 손을 놓으며 배웅해 주시는 고마움
밤길 고속도로 내려오면서 내내 이야기했다.
밤 10경 도착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