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4.11.10 큰집에서 사과공 후손 8위 및 통덕랑 후손 5위 시제 합사 지내다./264 사과공 종가 시제 3헌관 : 초헌 병철, 아헌 용덕, 종헌 동권 축, 집례 : 동춘 통덕랑 봉가 시제 3헌관 : 초헌 병일, 아헌 동권, 종헌 용덕 축, 집례 : 동춘 참석자 : 남자 6명, 여자 6명 특색 : 사과공 종중 숭조원 성묘 및 주성영역한 후 알밤 줍기하고 사과공 10대조 이하 증조부까지 8대 까지 합제 먼저 지내고 통덕랑 7대조부터 증조부까지 4대와 문호 아재 합제 다음 지냈다. 제관이 너무 적어서 통합하여 집사자를 겸직하여 진행했으나 집례 홀기대로 창홀하면서 진행했다. |
나의 직계 선조 큰집 시제에
혼자 참석하러 자동차 몰고 올라갔다.
큰집 마당에 제전 장소 마련하라 하고
병철 동생과 함께 배망골 산소 성묘하러 갔다.
사과공종중 숭모단 몇년전 나의 도움 받아
함께 선조의 묘소를 모두 한자리에 모아 집묘한 묘단이다.
성묘하고 주성영역하니 멧돼지는 달라들지 않았으나
잔디가 완전히 잘 자랐을 줄 알았는데
아주 얇게 번저 썩돌이 드러나 보인다.
그런데 주변에 우거진 밤나무에서 떨어진 밤을 줍지않아
그대로 노다지 널려 있기에 양호주머니 불룩하게 주웠다.
큰집으로 돌아와 준비해온 지방과 축문 내어 놓고
아이들이 만들어온 양철판 지방판에
아래위 자석으로 고정하여 설치하니 병풍도 안벼리고 좋다.
워낙 한번에 8대를 붙이자니 비좁다.
또한 주과포 제수에 할머니가 세 분인 분 두 분인 분이 있으니
술잔을 세로로 놓아야 한다.
아무리 제관이 적어도 엄숙해야 하기에
삼헌관은 동생들 형제간에 삼헌간 돌려가며 맡고
난 집례와 축을 함께 맡아 진행했다.
가장 많이 걸리는 시각은 모든 술잔에 침주하여 잔을 올리자니
오래도록 '여 상의'를 불러야 했다.
내가 축문 읽고 다시 집례하자니 바쁘다.
유식시간에 엎드려 기다리고
'진다' 시간에 술잔을 비우고 따뜻한 찻물을 올리는 절차를 진행했다.
지난번까지는 밥을 안먹으니 물을 마실 필요없다고 생략했으나
노인일수록 목이 멕히니 더욱더 잣물이 필요하다.
그래서 숭늉 잡수시는 시간을 찻를 드시는 시간으로 바꿨다.
사신재배하고 희망자 음복하니 병철 종손이 맡고있는
사과공파 직손 시제는 완료했다.
지방과 축문을 태워 대문옆 화단에 부었다.
다음은 큰집 직계 선조 즉 우리의 고조할아버지 시제를
병일 종손이 종손이 되어 지냈다.
그러나 엄밀한 종손은 일찌기 죽은 동일 동생인데
다음은 그 아들인 영훈 남훈 형제가 종손을 이어야 하는데
아직 결혼도 안하고 또 현재 직장으로 가서 근무해야하니
오늘은 둘 다 안보인다.
그러나 큰 아들 영훈이는 다 마치고 나니 왔다.
다음은 네가 주관하여 시제 지내야 한다고 일렀다.
시제는 전과 같이 홀기 부르며 진행했고
7대조부터 6대, 5대, 고조, 증조, 일본에서 횡사한 큰아들
즉 문호 아재(큰집 아이들로서는 큰아버지다)도 함께 진설했다.
잔이 15잔을 붓자니 시간이 오래 걸린다.
초헌은 병열이, 아헌은 동권이, 종헌엔 용덕이가 진행했다.
그들에게 물으니 한문 홀기도 들으니 이해가 된단다.
여러번 듣고 귀에 익히면 어떤행동을 해야 하는지 알게된다.
전과 같이 되풀이 되니 쉽게 진행되었다.
마찬가지로 내가 축문 읽고 맨나중에 축문을 불 태우니
통덕랑 이하 선조도 시제를 마쳤다.
음복시간에 막걸리잔 마시니 하도 잔이 많아서
퇴주그릇에 담긴 술을 두 번이나 비워야 했다.
마치고 방에서 음식 점심 나누어 먹고
난 정도리(월정)로 우암대부 만나러 올라갔다.
담벽에 붉은 완두가 꽃처럼 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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